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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3.25 빨래 털기 놀이
  2. 2006.03.25 그 옛날의 커리큘럼 2
  3. 2006.03.24 예전에 부르던 노래
  4. 2006.03.23 이에모또(家元)
  5. 2006.03.23 올빼미 기르기
  6. 2006.03.22 꿈속의 꿈
  7. 2006.03.21 범생의 일탈
  8. 2006.03.21 Porco e Bella
  9. 2006.03.20 군대의 득과 실
  10. 2006.03.19 아내와 촌지

빨래 털기 놀이

패밀리 2006. 3. 25. 23:05
이제 돌 지난지도 한 달이 된 딸은 엄마 아빠가 하는 것을 금방 따라 배운다. 브러시를 손에 들고 머리 빗는 흉내를 내기도 하고, 수화기를 들고 전화 받는 시늉을 한다. 그 중에서도 전화기 줄을 목에 거는 것은 딸의 특기이자 자랑이다. 딸의 흉내 내기 중에서 엄마 아빠를 당황스럽게 하는 것이 TV를 켜고 끄는 행동인데, 특히나 엄마가 좋아하는 드라마의 결정적인 순간을 어찌나 잘 포착하는지, 딱 그 순간에 전광석화처럼 TV에 달려들어 전원을 꺼 버린다. 엄마의 비명 소리가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딸이 오늘 새로 배운 게 하나 있다. 엄마가 세탁기를 돌린 후 빨래줄에 옷을 걸기 전에 몇 번 터는 것을 본 것이다. 세탁기 쪽으로 달려오는 딸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손수건 하나를 건넸더니 이놈이 이걸 가지고 엄마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숨까지 헐떡거리면서 빨래 털기 놀이를 하는데 오늘 제대로 필 받은 것 같다. 아무리 말려도 듣질 않는다. 얼마나 열심이었으면 나중에 빼앗아 보니 손수건의 거의 다 말라 있었다.

어쨌거나 오늘 이놈 기분이 유난히 좋다. 덕분에 엄마 아빠의 휴일이 모처럼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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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질투는 나의 힘 中, 기형도
정말로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책장에 꽂혀 있던 어느 책이 종이 하나를 떨어뜨렸다. '편집부 89학번 학습 프로그램(2차)' 라는 제목의 종이다. 요즈음처럼 워드 프로세스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쓴 글이다. 다음은 문제의 학습 프로그램의 일부이다.
2차 편집부 학습 프로그램의 목표는 칸트의 말과 같이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설 수 있도록 격려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에 올바르게 복무하기 위하여는 현실 분석의 위력 있는 무기를 얻도록 하는 일인 것이다. 따라서 2차 학습 프로그램은 그러한 점을 통해서 성원 개개인의 내적 성장을 기할 수 있도록 한다.

part 1> 철학적 제문제
철학은 세계관으로서, 그리고 방법론으로서 우리의 삶에서 노는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은 이미 앞서의 학습에서 인식되어졌으리라 여긴다. 이 2차 학습에서는 그러한 문제인식을 실제 '삶의 변형'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도록 하는데 그 목표가 있다.

(참고서적:
『칸트』, F. 코플스톤, 중원문화
『칸트 철학 입문』, W.O. 되에링, 중원문화
『헤겔 정신현상학과 논리학 강의』, 황세연, 중원문화)
(* 도서는 참고서적과 기본서적을 제시할 것이며, 기본서적을 골간으로 하여 참고서적으로 보충할 것: 위에서는 '과학적 세계관'의 모태로서 칸트와 헤겔의 역할과 사상을 개괄적으로 이해할 것)

- 기본서적:『변증법적 유물론』, 아파나셰프, 백두
(참고서적:『세계철학사 II』, 아카데미, 녹두 『철학의 기초이론』, 콘스탄티노프, 두레)

후략
이 학습 프로그램(커리큘럼)의 백미는 역시 참고서적에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당시 편집부 선배의 친척이 중원문화 라는 출판사에 다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기본서적 한 권에 참고서적은 최소 두 권이다. 설마 이 참고서적을 다 읽고 세미나에 참석하리라 기대한 걸까. 아니면 선배들의 의식 수준은 저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으라는 것일까. 위에는 인용되지 않았으나 경제학적 제문제의 기본서적은 부총양삼(富塚良三)의 『경제학원론』이다. 이건 당시 군대의 금서 목록에도 올라와 있지 않은 책이었다. 다른 정치경제학 관련 서적은 어지간하면 금서 목록에 들어가 있었다. 여기에 참고서적으로 소개된 책이 아파나셰프의 『위대한 발견』과 마르크스 선생의 『자본』, 루빈의 『마르크스의 가치론』, 뵘바베르크의 『노동가치론 논쟁』 등이다.

참고로 이 커리큘럼은 이제 막 『철학에세이』나 한국 근현대사를 읽고 난 1학년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당시 1학년들은 다른 학회나 동아리에선 대체 무얼 공부하는지 궁금하여 서로 커리큘럼을 교환하곤 했는데, 다른 곳은 다들 비슷비슷한데 우리 편집부만 전혀 다른 걸 배우는 것이었다. 다른 학회 동기들에게 물어보면 칸트나 헤겔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편집부 선배에게 물어 보았다.
"왜 우리만 커리큘럼이 달라요?"
"이게 제대로 공부하는 거지."
"다른 학회들은 그럼 뭐죠?"
"편집부는 원래 수준이 좀 달라..."
"???"
정말 그런 것인지 수기 아저씨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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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노을 한울에 퍼져 핍박의 설움이 받쳐
보국안민 기치가 높이 솟았다 한울북 울리며
흙 묻은 팔뚝엔 불거진 핏줄 황토벌판에 모여선 그날
유도불도 누천년의 운이 다했다 농민들의 흐느낌이다
저 흰산 위엔 대나무 숲을 이루고 봉황대엔 달이 비춘다
검은 해가 비로소 빛을 내던 날 황토현의 횃불이 탄다
하늘 아래 들판에 산 위에 가슴마다 타는 분노는 무엇이었나
갑오년의 핏발 어린 외침은 우리 동학 농민 피다

학교에 가려고 새벽 바람을 맞으며 버스를 탔다. 오늘따라 어쩐 일인지 자리가 나길래 잽싸게 앉았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거리를 보다가 문득 예전에 부르던 노래 하나가 생각났다. 원래는 힘차게 불러야 되건만 아침 버스 안이라 그럴 수는 없다. 가만히 입 속으로만 불렀는데 무안하게도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고 목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누가 볼새라 얼른 눈물을 찍어냈다. 아침부터 이게 뭐냐...

아마도 오늘 '문화와 사회' 수업 시간에 할 내용 중의 '전투적 메시아니즘'과 다음주 답사 코스에 들어가 있는 동학농민전쟁 유적지의 합작품인 것 같다. 막상 그곳에 가면 덤덤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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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재밌는 책도 그것이 수업시간의 교재가 되어버리는 순간 뭔가 모를 거부감이 생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책 내용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없는 내용을 짜내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경제학원론'이나 '통계학' 같은 책만 해도 그렇다. 아무런 이해 관계 없이 그냥 교양 서적으로 읽어 보라. 정말 재밌고 유익한 책이다. (나만 그런가? -_-;;) 그런데 이게 3학점짜리 전공필수가 되는 순간 정나미가 떨어지는 것이다.

이번에 듣는 전공 과목 '문화와 사회'의 주교재인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도 그랬다. 심지어 이 책은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 재밌게 읽었던 책이다. 하지만 전공 교재로 부상하는 순간 바로 시큰둥해져 버린다. 레포트가 걸리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내용을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는 부담이 앞서서일까...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오늘 도서관에서 인류학자 프란시스 슈의 '이에모또(家元)' 라는 책을 대출 받았다. 집에 오는 길에 전체 분량의 사분의 일 쯤 읽었는데 벌써부터 흥미롭다. 이에모또란 쉽게 말하자면 조직의 오야붕 정도 되는 것 같다. 저자는 일본의 전후 경제 기적의 원인을 일본의 전통적인 사회구조이자 조직원리인 이에모또에서 찾는다. 나보다 조직을 앞서 생각하는 일본인의 조직원리가 일본의 경제 발전을 이끄는 주요 원동력이 되었다는 소리다.

물론 아직 책 앞부분이라 본격적인 내용 전개가 되진 않았다. 앞부분은 일본의 가족(家 이에)과 동족(同族 도오조꾸)에 대해 중국의 그것과 비교하고 있다. 이 부분의 내용은, 중국(또는 한국)에서의 가족의 개념은 혈연으로 구성된 조직임에 반하여 일본의 가족 개념은 혈연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그보다는 법인체에 가까운 조직이라는 것이다. 즉 멀리 있는 친척 도오조꾸가 아니며 가까이 있는 이웃은 도오조꾸가 되는 식이다. 일본의 상속이 장자 단독 상속 또는 데릴사위 단독 상속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법인에 사장이 둘일 수 없는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에모또에 대해 본격적인 고찰에 들어가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가족관에 대한 차이만으로도 신선한 자극이 된다. 사실 일본에 대해 아는 내용은 세계사 시간에 배운 정도가 고작 아닌가. 일본이나 중국이나 다 비슷비슷하다고 여겨 왔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일본문화의 한 자락이나마 잡아낸 것 같다. 다 읽으면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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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 기르기

롤플레잉 2006. 3. 23. 01:21
올빼미[Korean wood owl]: 올빼미목 올빼미과의 조류

학명Strix aluco
분류올빼미목 올빼미과
생활방식단독 생활
크기몸길이 약 38cm
누런 갈색 바탕에 세로줄무늬
생식난생
서식장소평지 또는 산지 숲
분포지역유라시아 온대지방

올빼미를 기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바사라 때문이다. 그놈의 만화가 아니었던들 그 기분 나쁜 울음소리에다 들쥐나 즐겨 뜯는 맹금류를 애완용으로 길러 보고 싶었겠는가. 카나리아나 잉꼬 같은 새도 싫어하는 내가 말이다. 근데 올빼미에 대해 찾아보니 문제가 몇 가지 있었다. 뭐 올빼미를 어디서 구할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는 일단 접어두자. 어차피 나도 조류 농장 같은 곳에서 살 생각은 없다.

아무튼 올빼미에 대해 백과사전에서 찾아본 바, 우선 내 생각보다 이놈의 덩치가 훨씬 크다는 거다. 이래가지고선 바사라처럼 뽀대가 안 난다. 어깨에 한 번 내려앉으면 주인이라는 사람이 중심도 못 잡고 휘청거려서야 이거 어디 폼 잡을 맛이 나겠는가. 새 한 마리 키우기 위해 보디빌딩을 해야 된다면 그것도 좀 우습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놈의 먹이가 마땅치 않다는 점인데, 이에 대해선 좀 고민하다가 결국 자기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묶어 놓고 키울 것은 아니니 혼자서 뭘 먹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지 않겠나. 물론 이렇게 되면 어디 가서 뭘 먹고 돌아왔는데 출처도 알 수 없는 피칠갑을 해 온다든지 했을 때 반겨주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는 난감한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 게다가 소위 주인이라는 작자가 아무 것도 해 주는 게 없으면 겉으로야 그렇지 않더라도 속으로는 날 깔보는 맘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

그리하여 올빼미 키우는 것이 처음 생각보다는 별로 폼도 안 나고 키우기도 쉽지 않아서 약간 시들해지고 있던 차에, 결정적인 문제를 알아버렸다. 올빼미는 맹금류인데다가 천연기념물이라서 애시당초 집에서 키울 수 없다는 것이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 다른 문제쯤은 다 덮어두고 열정 하나로 키울 수도 있었건만 법적인 문제 때문에 불가능했던 것이다. 아... 나의 로망을 가로막는 이놈의 법률이여...

좋은 세상이 오면 멋지게 한 번 키워 주리라. 올빼미야 그때까지 조금만 참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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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꿈

롤플레잉 2006. 3. 22. 01:39
가위[명사] 잠을 자다가(잠결에) 무서운 꿈에 질려서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답답한 상태.
¶가위에 눌리다.
네이버 국어사전

가위에 눌리는 빈도가 잦아질 때가 있는가 하면 또 한동안 완전히 잊고 살 때도 있다. 고3 때와 불광동 자취방 시절엔 거의 매일같이 가위에 눌려 신음했다. 그 둘의 공통점을 찾아 보면 확실히 그 당시의 삶 어딘가 한 구석은 어두운 곳이 있었던 것이다. 가위 귀신은 인간의 두려움을 먹고 산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처음엔 가위에 눌린다는 것 자체가 정말로 놀라고 두려운 일이었다. 의식은 또렷하게 돌아왔는데 몸은 전혀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 내 의지는 잠에서 깨려 하고 있으나 내 몸은 계속 잠으로 빠져드는 상황. 조금만 몸을 비틀면 깰 것 같은데 도무지 힘을 줄 수가 없으니... 하지만 이런 몸서리치는 상황도 반복되면 그럭저럭 참을 만해진다. 아 반복의 위대함이여...

요즘은 가위에 눌리면 우선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게 된다. 우선 내가 어디서 자고 있었는지를 돌이켜 보고, 현재 내 꿈 속에서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모조리 몰아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잠이 든 자세인데, 어떤 자세인가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몸을 움직여서 가위 상태를 몰아낼 것인지에 대한 전술을 짤 수 있다. 이 때 당황해선 안 된다. 무작정 몸을 움직이려 애써 봐야 괜히 힘만 뺄 뿐이다. 힘을 비축하였다가 리듬을 타면서 결정적으로 몸을 튕겨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서 잠에서 빠져나오려는 때가 정말로 중요한 순간인데, 이때 안심해서 긴장을 풀고 몸에 힘을 빼 버리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수고가 된다. 실제로 잠에서 깨었다고 안도하다가 다시 몸을 결박당한 때도 많다.

가위 눌림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 꿈속의 꿈, 즉 재귀적 꿈(recursive dream)이다. 꿈 속에서 다시 꿈을 꾸고, 그 꿈 속에서 다시 꿈을 꾸는 것이 반복되는 것이다. 물론 그 꿈 속에서는 현재가 몇 차원의 꿈 속에 들어와 있는지를 의식하지는 못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 꿈에서 깨는 것을 반복하며 차원을 세어 나간 후 최종적으로 잠으로부터 완전히 도망친 후에 가능한데, 이 꿈에서 깰 때는 예외 없이 가위에 눌리게 된다. 내 경험으로 가장 많은 차원은 불광동 시절의 7차원이다. 이런 대박 하나 걸리면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한다. 갖은 고생 끝에 겨우 잠에서 깼더니 그것이 또 꿈 속이었을 때 느끼는 절망감. 이런 상황이 두 번 이상 반복되면 잠에서 깨는 순간에도 완전히 현실로 돌아온 것이 맞는지 확신할 수가 없다.

물론 이 재귀적 꿈도 위대한 반복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얼마 전에 3차원의 꿈을 꾸었을 때였다. 너무나 오랜만의 재귀적 꿈이라 놀라긴 했지만, 처음 당하는 일도 아닌지라 곧 마음의 안정을 찾고 복잡한 실타래를 풀듯이 한 겹 한 겹 꿈을 벗겨내어 마침내 현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무리 적응이 되어도 잠에서 도망치려는 노력 자체를 꺾은 적은 없다. 사실 가위에 눌릴 때마다, 몸을 움직이려 해도 안 될 때마다 '그냥 관두고 자 버릴까...?' 하는 유혹에 항상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도 아직 한 번도 그냥 자 버린 적은 없다. 여기서 포기해서 잠에게 져 버리면 왠지 모르게 내가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거나 다른 차원의 세계로 떨어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들어서이다. 이 세계에 얼마나 미련이 많아서인지, 도저히 이 긴장의 끈만은 놓아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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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생의 일탈

컴퓨터 2006. 3. 21. 01:19
아직 인연이 닿지 않아 그런지 몰라도,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에 파이썬보다 더 쉬운 언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약간은 범생 스타일의 깔끔한 문법과 풍부한 자료형만으로도 충분히 주력(?) 언어가 될 자격을 갖추었다. 강력한 확장 기능은 보너스다. 그런 고로 이 언어의 발전을 지켜보는 것은 꽤나 흐뭇한 일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범생의 일탈이 시작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많은 않다. 하다보면 이런 기능도 넣고 싶고, 저런 문법도 구현하고 싶고... 왜 그렇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러다가 언젠가는 외관상 펄이랑 별 차이 없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모든 것을 다 갖춘다는 것은 또 그만큼 평범하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요새는 버젼 따라가기도 버겁다. 내가 늙어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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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 파이썬 2.5 미리보기 5편: 조건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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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돼지'의 Porco e Bella도 딸의 애청곡이다.

붉은 돼지는 주로 딸을 재울 때 등을 토닥여 주면서 들려 주는데, 방금 자고 일어났거나 몸 어디가 아프지 않은 다음에는, 즉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기필코 잠에 이르고야 마는 무시무시한(?) 음악이다. 그 또래의 아기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졸리면 투정을 부리게 마련인데 전혀 그런 거 없이 새근새근 잠이 드는 걸로 보아 본인도 이 곡을 즐기고 있음에 틀림 없다. 아마도 생후 2주부터 듣기 시작하다 보니 의식 저편 너머에서부터 이미 친숙해져 있어서일지 모르겠다.

OST는 아니고 편곡한 것인데 예전에 지니한테서 받은 CD 안에 들어 있었다. 덕분에 아주 잘 써먹고 있다. 땡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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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의 득과 실

롤플레잉 2006. 3. 20. 01:58
최근에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청년이 군대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를 내게 물었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군대를 다녀오는 게 좋은가요, 안 가는 게 좋은가요?"
오늘 내일 하는 사람도 아닌 내게 인생 전체라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우습긴 하지만 그래도 그 청년보다는 조금 더 살았으니 한 마디 해도 되겠다 싶었다.
"군대가 유익하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안 가려고 발버둥을 치겠어요?"
"몸은 좀 힘들더라도 나중에 돌이켜 보면 얻는 게 많다는 사람도 있잖아요 왜..."
"얻는 게 많다는 그 사람 군대 말뚝 박던가요?"
"그런 건 아니지만 한 번쯤은 경험해볼 만한 거라던데요..."
"그 얘긴 달리 말하면 두 번 다시 하기 싫은 경험이라는 거죠."
"그렇게 되나요..."
이쯤 되면 마치 내가 군생활 엄청 험하게 한 게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미리 말해두지만, 난 객관적으로 군생활 아주 편하게 한 축에 든다. 원래는 특공대로 갈 병력으로 분류되어 있었지만, 힘 쓰는 일은 하지 않을 팔자였는지 컴퓨터 특기를 인정 받아 전산병으로 복무했다. 혹시 전산병 하면 밤새도록 워드프로세서 두들기는 행정병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행정병과 전산병은 다르다. 전산병은 독립된 전산실 건물에서 근무하며, 군수자원관리나 일일병력보고, 기타 워게임(가상 전투) 같은 말 그대로 전산 관련 업무를 한다. 말하자면 팔자 좋다는 거다. 일반 행정병 중에는 장교 잘 못 만나 마르고 닳도록 워드만 치다가 급기야 입이 돌아가서 후송되어 가는 사람도 있다. 내가 맡은 업무는 유닉스 장비에서 COBOL이나 SQL 서버 등을 주로 활용하는 일이었다. 업무 환경도 좋아서 여름엔 에어컨, 겨울엔 보일러 난방이 기본이었으며, 남는 시간에는 자유롭게 책도 읽을 수 있었다. 남들은 돈 주고 배운다는 유닉스를 공짜로 익혔으니 나름대로는 군생활 알차게 한 편이다. 물론 나도 사격 훈련이나 혹한기 훈련, 유격 훈련 같은 건 다 받았으니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이 시점에서 군대에 대한 오해 몇 가지를 풀고 가자. 군대 가지 말라는 사람들 중에는 군에서 겪는 시련 같은 것은 사회 생활 하면서도 충분히 다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러므로 군생활 자체가 더욱 특별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사실은 절대 그렇지가 않다. 군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그곳이 군대라서 가능한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군대 만큼 혹독하고 극한 상황에 처하는 경험을 얼마나 하겠는가. 간단한 예를 들어 보면 알 수 있다. 부대 내에서는 머리 박기 하면서 꾸벅꾸벅 조는 사람이 휴가 나와서 집에서 한 번 똑같이 해 보면 안다. 유격 훈련하면서 지겹게 하는 선착순, 집에서 해 봐라. 그만큼 할 수 있는지...

인생의 황금기에, 한창 공부하고 생산적인 일을 할 시기에 군대 같은 곳에 가서 2년을 허비하고 오는 것이 정말 아깝다는 사람도 많다. 이런 논리도 자신을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오만이다. 방학 때 책 한 권 읽지 않고, 휴일에 공부 한 자도 안 하는 사람들이 꼭 이런 얘기한다. 남들 다 허비하는 2년이 자기 자신에게 주어지면 뭐 큰 일이라도 할 것 같지만, 내가 알기로 군대 안 간 사람 중에서 그동안 뭔가 이루어낸 사람 하나도 없다.

소중한 사람들과 2년 동안 떨어져 있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손실인가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 군대 가서 첫 휴가 나오면 친구들 모두 반긴다. 하지만 휴가나 외박이 잦아질수록 친구들의 태도가 예전같지 않다. 휴가가 시험기간에라도 걸리면 차라리 부대에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롭다. 2년은 정말 금방 간다. 물론 부대에 갇혀 있는 사람이야 그렇게 생각지 않겠지만 밖에 있는 친구들은 휴가 자주 나오는 군인들 정말 싫어한다. "너 또 나왔냐?" 이런 소리 의외로 자주 듣는다.

아니 그렇다면 군생활 동안 얻는 건 있고 잃는 건 별로 없으니 군대 다녀오는 게 좋다는 얘기 아닌가? 끝까지 들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는 안 가는 게 훨씬 좋다. 왜냐하면 군생활 동안 아주 필요 없는, 아니 배워서는 안 될 것을 하나 배워 오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강자에 대한 굴종'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해지는 것. 멀쩡한 청년들이 군대에서 이런 걸 배우기 때문에 내가 군대 안 갈 수 있다면 절대 가지 말라는 것이다.

이등병때엔 누구나 서럽다.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부당한 이유로 신체의 구속을 당한다. 게다가 이제껏 살면서 이렇게 자신이 가치 없는 인간 취급을 당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급이 올라가면 스스로는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적으로 자신에게 권위가 주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권위를 계속적으로 보장 받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상급자의 이익을 철저히 대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의 시계는 흘러가고 언젠가는 내가 저 정점에 우뚝 설 수 있는 날도 오는 것이다. 이는 정말 민주사회에서는 불필요한 정도를 넘어서 독이 되는 경험이다. 아주 짧긴 하지만 노예제나 봉건제의 맛을 보고, 그것이 군림하는 자나 그것에 기생하는 자에게 얼마나 달콤한지를 경험하는 것이다. 하긴 군대야말로 공식적으로 남아 있는 계급사회이니...

그렇다고 편법을 써서라도 군대를 다녀오지 말라는 얘긴 아니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안 갈 수만 있다면 가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럼 이 나라는 누가 지키냐고? 누군가는 조국의 영토를 수호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난 애국자 아니다. 딴 데 가서 알아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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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촌지

패밀리 2006. 3. 19. 00:24
아내의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이다. 요새 만인의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그 초등학교 교사말이다. 물론 처음부터 선생님을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직장 생활 하면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실무보다는 관리 쪽으로 일의 비중이 옮겨갈 수밖에 없고, 그 관리라는 것이 또 그만큼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일인지라, 조직에 충성하기 보다는 차라리 자객으로 살자는 생각에 아내는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고 임용고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다지 기대는 안 했건만 몇 달 뚝딱뚝딱 공부하는 것 같더니 재수 한 번 없이 덜컥 붙어버리지 뭔가. 기특하기도 하지... 의외로 공부 머리가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지금 내가 다시 공부하네 어쩌네 하는 것도 다 아내 덕이다.

아내는 교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촌지라는 것을 받은 적이 없다. 난 하도 신문에서 촌지 촌지 하길래 교사라는 직업이 원래 그걸 안 받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말 못하는 딱한 사정이라도 있는 줄 알았었다. 근데 알고 보니 그게 전혀 아니었다. 그런 거 안 받아도 아무도 뭐라 그러는 사람 없고, 그런 거 없이도 멀쩡하게 애들 잘만 가르치더라. 우리 부부의 궁합 중에 하나가 바로 '도덕률을 적용함에 있어 융통성을 부리지 않는다'는 점인데, 간단히 말하자면 양심적으로 산다는 얘기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도 강요하지 않고, 내가 당하기 싫은 거 남한테 하지 않고 산다. 이런 부분이 서로 잘 맞는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날강도 남편이랑 사기꾼 아내랑 사는 게 좋은 사람도 있을지 몰라도 최소한 내 세계관으로는 용납 못한다. 아무튼 그런 고로 아내는 이제껏 현금은 말할 것도 없고 그에 상응하는 유가증권이나 공연 티켓 등은 물론 자그마한 선물 하나라도 집에 들고온 적이 없다. 그런 아내에게도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바로 음식이다. 음식의 경우엔 우선 돌려 보낼 수가 없다. 상하면 아깝지 않은가. 또한 음식은 반 학생들이나 동료 교사들과도 나누어 먹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에도 앞으로 이런 거 하지 말라는 말은 빼놓지 않는다.

올해 초 아내가 학교를 옮겼다. 집에서 안양까지 출퇴근하기가 너무 멀어 학교를 옮겼는데 일산으로 발령이 났다. 처음엔 가까워졌다고 좋아했는데 막상 출근해 보니 별로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10분 정도밖에 단축이 되질 않는다고 한다. 암튼 새 학교에서의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며칠 전엔 교실 환경미화 후에 학부모들이 학교에 찾아오는 날이 있었다. 그날 퇴근길에 아내가 가지고 온 것이 어느 학부모가 아들 편에 보내온 김치였다. 학교에 냉장고가 없었는지 한나절만에 김치가 팍 시어버렸다. 아 그런데 이놈의 김치 맛이 장난이 아니다. 양념이 절묘하게 되어 있었다. 원래 반찬 가지수 많은 거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이 김치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반찬이 될 정도다. 밥에 비벼 먹기도 하고, 오늘은 비빔국수에도 넣어 먹었다. 얼굴 없는 돈보다 이런 촌지가 훨씬 좋다. 무엇보다도 맛있는 음식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질 않는가 말이다. 음식을 만든 사람의 정성도 그대로 전달이 되고 말이다.

이 자리를 빌어 그 학생의 어머니께 감사 드린다. 김치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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