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도 물러간 것 같고 햇볕은 쨍한 토요일 오후. 원래는 외출할 생각이 없었으나 하늘을 보니 이런 날 밖에 안 나가면 왠지 잘못하는 것 같아서 늦은 점심을 먹은 후에 큰딸과 광화문으로 나섰다. 지난 겨울 광화문광장을 한 번 뚫어보려 하였으나 그날따라 비가 내리는 바람에 치킨만 먹고 철수하면서 날씨 좋을 때 꼭 재도전하리라 마음 먹었다.

오후도 꽤 늦은 시각이었지만 여전히 햇살은 눈부시다. 선글라스를 낀 아빠와는 달리 큰딸은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따가운 햇살과는 달리 바람은 왜 이렇게 세게 부는지. 혹시하는 마음에 점퍼를 가지고 간 게 정말로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

딸도 그렇지만 아빠로서도 광화문광장 위를 걸어보긴 처음이다. 딸은 광장 위의 동상이 본인이 아는 인물인지라 신이 났다. 책에서 본 할아버지가 서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 뒷편에 앉아 있는 세종대왕도 어디선가 들어본 인물임에 틀림없다. 물론 뭐하는 사람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도 역시 딸을 가장 흥분시키는 것은 이순신 장군상 앞의 분수다. 마음 같아서야 그 자리에서 뛰어들고 싶으나 갈아입을 옷이 없는지라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다음엔 정말 옷을 가져와서 제대로 한 번 놀고 싶다.

광화문광장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세종대왕상 뒤에 펼쳐진 잔디밭이었다. 여긴 다른 곳과 달리 원래 들어가도 되는 곳인지, 입장금지 팻말 같은 게 없다. 그렇다면 놀아 줘야지 뭐. 딸은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벗고 맨발로 풀밭 위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그 후에는 지하에 있는 세종대왕 전시관까지 둘러보고 이 할아버지가 뭐하는 사람인지 오늘 알게 되었다.

광화문에 놀러온 또 하나의 이유는 딸에게 수학책을 한 권 사주기 위함이었다. 최근에 자기 전에 아빠와 딸이 수놀이를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책을 사서 체계적으로 해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교보문고에 들렀다. 초등학교 1학년 수학 교재를 한 권 샀는데, 딸 수준으로서는 조금 쉽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 책 후딱 끝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책을 산 후에는 서점에 왔으니 당연히(!) 초코아이스크림 하나 먹어 주시고, 푸드 코트 옆에 있는 전자기기 전시 코너에 들렀는데 거기서 그만 아빠와 딸이 아이패드에 꽂혀 버렸다. 잠깐만 보고 가려 했는데 도무지 딸은 집에 갈 생각을 안 하는 눈치. 이제 그만 가자고 몇 번을 얘기한 다음에야 간신히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의 버스 안에서 아빠는 완전히 방전되고, 딸은 피곤하긴 하지만 오늘 신나게 놀았던 것을 되새김질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딸이 하는 말,

"아빠, 아이패드 언제 살 거야? 오늘? 지금?"

오늘 당장 사는 건 아니라고 말했지만, 아무래도 아이패드 사는 것은 기정사실화 된 듯. 가격이나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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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할 때에는 몰랐는데 이번에 도착한 책들의 공통점은 꽤 뚱뚱한 놈들이라는 것.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엔 좀 부담스러운 몸집인데 괜찮을까...

사은품으로 함께 온 백은 아무리 봐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땐 큰딸에게 주는 게 좋다. 딸이라면 이 물건의 적절한 용도를 찾아내겠지.

그런데 어느 책부터 먼저 볼까. 그것도 고민이라면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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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수험·입시 등의 단어가 작업기억 속에 로딩이 되면 그 순간 뇌 구조가 바뀌는 게 아닐까? 아무튼 이 또한 인체의 신비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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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우울할 때 쇼핑을 한다던데 아내와 나는 그런 취미는 없다. 그것이 우리 부부가 그 적은 수입으로도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결정적은 아니지만 제법 주요한 원동력이기도 할 터이다. 스마트폰 안 쓰면 병신 취급 받을 것 같은 세상에서도 그쪽으로 별로 관심 안 가고, 겨우내내 몇 벌의 옷으로 버텨도 아무렇지도 않다. 월급 받아서 한 달 동안 지출 내역을 돌이켜 보면 작은 딸 빵값으로 나간 돈이 제일 많았다.

그런데 요 며칠은 책을 좀 사고 싶다. 몇 년 전에 은사님이 내신 두 권으로 된 『영국의 역사』도 보고 싶고, 에드워드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그러고 보니 이것도 역시 두 권이구나─도 보고 싶고, 피터 윗필드의 『세상의 도시』도 보고 싶고, 요네즈 가즈노리의 『자전거로 멀리 가고 싶다』도 보고 싶고, 심지어는 예전에 도서관에서 본 에릭 홉스봄의 『역사론』도 다시 찬찬히 읽어 보고 싶다. 이 외에도 보고 싶은 책이 얼마나 많은지...

물론 지금 사 봐야 읽지 못할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보고 싶다. 작년에 사서 아직 개시도 못한 책이 책장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안다. 그렇더라도 더 사고 싶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책을 펴들면 두어 장 읽어내려가기도 전에 조는 것을 안다. 그렇더라도 책을 더 보고 싶다.

그냥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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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육체노동자가 아니며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기를 신께 빈다. 그런가 하면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육체노동도 있다. ...... 그러나 아무리 애를 쓰고 훈련을 받는다 한들, 광부는 될 수 없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中, 조지 오웰)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오쇼 라즈니쉬가 쓴 『반야심경』에 보면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는 말이 나온다. 아는 만큼 근심이라.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살다 보면 그런 일들을 꽤나 만난다. 올 가을에 산 『세계문화전쟁』의 경우도 그러하다. 출판사 비슷한 직장에서 잠깐 일해 본 게 무슨 큰 벼슬이라고 책을 볼 때마다 제본이나 인쇄 같은 것도 신경을 쓰는 폐단이 생긴다는 얘기. (그러고 보니 이놈의 '폐단'도 栗谷의 <萬言封事>를 공부하고 난 이후로 자주 쓰는, 별로 남에게 권장하고 싶지는 않은 표현이다.) 아무튼 『세계문화전쟁』을 보려고 책을 펼쳤다가 기분이 팍 상해서 도로 덮어버렸다. 2도 인쇄는 단도나 4도 인쇄와 달리, 편집자에게 뽑힌 그 색깔이 모든 영광과 비난을 한 몸에 받는, 아주 부담스러운 위치에 있다. 자신 없으면 그냥 4도에서 다른 색에 묻혀갈 일이다.

글 첫머리부터 딴 데로 새 버렸다. 원래 이놈의 인쇄 상태 따위를 얘기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결론은 그래서 『세계문화전쟁』이 미움을 받아 잠깐 쫓겨나고 그 자리를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차지했다는 얘기였는데, 이런 얘길 이렇게 장황하게 하다니... 그런데 『위건 부두...』를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없게 만드는, 자세를 고쳐잡고 읽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드는 구절이 나온다.

웃기지 못하는 걸로 유명한 개그맨 박수홍이 이제껏 방송에서 수없이 많은 말들을 했지만 딱 한 마디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가난이 제일 무섭다"다는 말. 남들은 다른 게 무서울지 몰라도 박수홍은 가난이 제일 무섭단다. 박수홍이 남들을 웃기려고 한 말인지, 아니면 정말 삶 속에서 우러나온 말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처음에는 웃었고 그 다음엔 충분히 불편했고 그래서 결국은 내 기억 속에 살아남은 말이다. 아마도 박수홍이 방송을 그만둔다 해도 이 말 만큼은 내가 죽는 순간까지 가지고 갈 것 같다.

대학 1학년 때 농활을 다녀왔을 때 3학년 선배가 나를 상경대 로비에 따로 불러서 앉혀 놓고 커피를 한 잔 뽑아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

"그래, 열흘 동안 고생해 보니 어떤 생각이 드니. 이제 노동의 의미를 알겠니?"

순간 당황했다. 엄청 고생한 것은 확실히 기억에 나는데 노동의 의미까진 솔직히 모르겠더라. 그 대신 이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앞으로 난 힘 쓰는 일로는 절대로 먹고 살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 힘 쓰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글쎄다. 삶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내가 육체노동 외에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도록 흘러간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내 스스로 육체노동이 좋아 그것을 선택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입으로는 노동의 신성함, 노동자의 힘, 노동자의 역사적 책무 운운하지만 막상 그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로 끔찍한 일이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일이 되는 순간 고달픈 건 마찬가지겠지만,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사이에는 책 몇 권 읽어서는 도저히 좁힐 수 없는 커다란 심연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 선배가 내게 말한 노동의 의미라는 게 혹시 이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의 불편함은 세월이 흐르면서 희석되어 갔다. 한 학번 선배들까지만 해도 노동운동 현장으로 들어가야 되는 걸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고, 앞으로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이 두려워서 떠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면서 이러저러한 반성(난 반성도 하지 않았는데!)들이 난무하고, 그 이후 몇 해가 가지 않아서 굳이 노동운동의 길을 걷지 않아도 아무도 손가락질 하지 않고, 스스로도 불편하지 않는 세상이 와 버렸다. 비록 대기업에 들어가서 돈 많이 벌진 않더라도, 그래도 좋은 사람 만나서 가정을 꾸리고 애들 낳아서 크는 모습 보면서 충분히 살 수 있는 정신노동의 길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차마 조지 오웰처럼 육체노동자가 될 일이 없기를 드러내놓고 신께 빌 수는 없었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정신노동의 길을 택한 거지, 노동 계급과 가까워질 생각은 손톱 만큼도 없다고 차마 말 할 수는 없었다. 몇 년 동안 놀고 먹다가 다시 내 손으로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 왔어도, 비록 말은 공공근로라도 해야겠다고 했지만, 육체노동이 내 몫이라는 생각은 하기 힘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지 오웰의 이 책은 이제 앞 부분의 몇 장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불편하다. 또 한편으로 불편하기 때문에 읽어야 할 것 같다.

이제사 하는 말이지만, 나는 육체노동자가 아니며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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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게으를 권리』, 폴 라파르그, 필맥, 2009
  2. 『모두스 비벤디』, 지그문트 바우만, 후마니타스, 2010
  3. 『세계문화전쟁』,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10
  4. 『십자가 초승달 동맹』, 이언 아몬드, 미지북스, 2010
  5. 『위건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한겨레출판, 2010
  6.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한겨레출판, 2010

두 장의 음반 소개는 생략.

그러고 보니 한 권만 빼고는 다 올해 나온 책이구나. 한동안 배는 부르겠지만, 그만큼 등골이 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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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전에는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도 제법 또렷하게 생각나더니, 요샌 거의 대부분 기억해내지 못한다.나이를 먹는다는 게 이런 건가. 하긴 수험서만 해도 그렇지. 책을 덮는 순간, 마치 史官이 洗草하는 것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되기 일쑤다. 좋은 말과 글은 되도록이면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욕심인데, 그걸 받쳐주지 못하는 몹쓸 기억력을 보면 자괴감보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뿐만 아니라 이건 제대로 된 독서가 아니다 싶다.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선 책에 밑줄을 그어서 나중에 찾아보기 좋도록 하면 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정하고 책상에 앉아 책을 볼 때만 가능하다. 보통은 지하철을 타고 이동 중에, 이불을 펴 놓고 누웠을 때, 화장실에 앉아서, 벤치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심지어는 길을 걸으며 책을 보기 때문에 필기구가 준비되지 않을 때가 많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이 견출지 같은 걸 붙여놓는 건데, 이것도 무언가를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그리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다. 컴퓨터가 옆에 있다면 마음에 두는 문구와 함께 그 당시 떠오르는 생각들을 함께 갈무리해 둘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이 방법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을 읽다가 컴퓨터 앞에 앉는 순간 (지금도 그러하다!) 독서의 흐름이 딱 끊어지기 때문이다. 30분 책 보다가 한 시간 컴퓨터 앞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는 게 어디 한 두 번인가. 게다가 그렇게 놀다가 다시 책을 잡는다고 해서 그 흐름을 다시 이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낡아가는 머리를 보완할 만한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놓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그래서 몇 번 시도해 봤는데 지금 가지고 있는 휴대폰 카메라로는 어림도 없다. 그렇다고 디카를 가지고 다니면서 찍자니, 그럴 바에야 수첩과 필기구를 가지고 다니는 게 훨씬 낫지. 결론은 지금보다 고성능의 휴대폰 카메라가 필요한데, 그러자면 지금 쓰는 휴대폰을 버리고 스마트폰으로 옮겨가야 되나...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스마트폰으로 가고 싶은 이유치고는 너무 궁색하다.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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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정치적이고 목구멍까지 쌉싸름한 맥주 이야기

2010 남아공 월드컵의 열기가 무르익을 무렵 화제가 되었던 소식 중 하나가 치킨집과 피잣집의 매출 증가와 함께 이들 음식의 감초격인 맥주 소비의 증가였다. 이처럼 맥주는 전통 술인 막걸리, 소주를 제치고 가장 친숙한 대중주가 되었다. 이제 맥주는 우리 삶의 벗인 것이다.
도서출판 따비의 신간《맥주, 세상을 들이켜다》는, 전 세계인이 함께 마시는 술이 된 맥주의 모든 것을 다룬다. 맥주는 유사 이래 세계 각지에서 노동자들의 급료로 쓰였으며, 중세 수도원의 생활 양식이자 중요한 자금줄이었다. 근대의 맥주는 노동자와 인텔리 간 소통의 장을 만들어 주었으며, 이들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한 이들은 금주령으로 맞서기도 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반전 연설을 한 곳이 뮌헨 킨들 홀이라는 맥줏집이었고, 나치스가 창당대회를 연 곳은 뮌헨의 슈테르네커브로이라는 맥줏집이었으며 이곳에서 히틀러는 최초의 정치 연설을 한다.
이 책의 저자 야콥 블루메가 “맥주는 사회와 정치를 떠받드는 강력한 요소이다”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맥주는 공동체의 술이며, 연대의 술이다. 도수가 그리 높지 않은 맥주는 쉽게 취하지 않으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함께 의식을 치를 수 있는 적절한 술이며, 소통의 장을 마련해 공동체의 기초를 튼튼히 해준다. 이처럼 맥주는 역사 속에서 주연은 아닐지 몰라도 주연의 손에 늘 들려 있던 중요한 조연이었다.

...

술을 거의 못하는 내가 그나마 즐기는 술이라고는 맥주. 요샌 막걸리가 대세라지만 20대 초반에 처음 술을 배울 때 막걸리를 마실 때마다 그 전날 먹었던 것까지 다 게워내는 경험을 몇 번 한 이후로는 도저히 막걸리를 입에 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러니 소주는 말할 것도 없다. 갈수록 소주도 약해진다고 하는데 내가 먹어보니 그게 그거다. 그래서 술자리에서는 본의 아니게 비싼 술, 즉 백세주나 산사춘 같은 술, 섞어 봐야 오십세주 같은 걸 먹는 정도일까. 와인은 어쩌다가 입에 맛는 걸 먹어보긴 하는데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 번 다시 그 술을 먹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와인은 품질과 맛이 왜 그렇게 천차만별인지... 그래서 내 술은 맥주다. 맥주 입장에서는 별로 친하고 싶지도 않겠지만...

이 책은 알라딘에 다른 책을 사러 갔다가 우연히 보고 덜컥 샀다. 맥주에 관한 얘기라잖은가. 소주가 세상을 말아먹든, 막걸리가 세상을 다 덮어버리든 내 알 바 아니다. 물론 저자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므로 내게 익숙한 하이트, 카스, MAX 같은 이름이 안 나온다는 게 좀 아쉽다.

지은이는 야콥 블루메[Jacob Blume]라는 사람인데 1961년생이다. 젊다. 예술사와 문학사를 전공했다는데 이 책은 역사책이라고 쓴 건가? 역사의 본질이 문학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해마지 않지만, 그렇다고 역사와 소설이 문학동네에서 같은 위상을 가지는 건 아니라고 믿는다. 책을 술술 읽히도록 재밌게 쓰는 것은 분명 칭찬받을 만한 지은이의 능력이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지은이의 상상력이 너무나 노골적으로 개입된다는 점은 분명 지적받아야 마땅하다. 읽는이가 설마 맥주에 관한 수필집을 기대하고 이 책을 사리라고 본 건가?

아직 절반도 못 읽은 시점에서 책 전반에 대한 품평을 하긴 좀 이르다. 마저 읽은 다음에 본격적인 난도질을 해도 늦지 않을 터. 그런데 책을 읽는 동안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냉장고 남은 술이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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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레어 아이템은 아니지만… [items on the bookshelf]

누가 피터 시스의 작품을 아동용이라고 하는지... 다른 책은 몰라도 『티베트...』 만큼은 어른들에게나 어울릴 만한 책이다. 딸에게 읽어줄까 하고 몇 년 전에 산 책인데, 사실 그 때 딸의 나이를 고려해도 이른 감이 없지 않았지만, 딸이 여섯 살이 된 지금도 읽어줄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 책. 물론 번역본이라도 별로 다르지 않다.

비교적 싸게 영문판을 살 수 있었다는 데에 만족하는 책. 나중에 딸이 크면, 그리고 영어로 되어 있어도 관심이 가면 어련히 알아서 보랴. 물론 피터 시스의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지금도 매력적일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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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서 보다가 화장실에 가면서 들고 들어가서 거기 내려놓고 온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태생적으로 화장실용일 수밖에 없는 책도 있다.

『한국사의 천재들』이나 『지금 여기의 세계사』는 끊어 읽기 좋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종횡무진 동양사』는 괜히 심각하게 읽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나저나 『대항해시대』는 이곳에서 탈출시켜야 되는데... 화장실에서 잠깐씩 보다가는 저 책 언제 끝날지 모른다.

Posted via web from monpetit's poster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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