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무렵 눈두덩이 아파오면서 그와 함께 감기몸살도 슬금슬금 따라오는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 주먹으로 내 눈을 때리는 듯, 도저히 모니터를 볼 수가 없어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게다가 지하철 역을 나서니 매서운 바람에 영혼까지 날아가는 것 같다. 그리하여 가방에서 넥워머―요거 순우리말로 적당한 낱말 없을까. 내 비록 분위기 파악 안 하고 순우리말을 고집하는 부류는 아니지만 넥워머 같은 참으로 아름답지 아니한 낱말은 주는 거 없이 밉지 않은가. 차라리 '목덥히개'라고 부를까?―를 꺼내어 쓰고 집에 왔다. 현관에 들어서자 딸들이 달려나오다가 놀라서 그 자리에 선다.

"뭐예요? 이 밤에 웬 선글라스?"
"그러게 말이다. 선글라스라니, 웃기지?"
"예. 그리고 얼굴은 왜 가렸어요?"
"아빠가 아파서 그래."

엘리베이터로 올라오면서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니 이런 반응이 나올 만도 하다. 따끈한 물로 온몸을 데치고 나니 좀 살 것 같다.

근데 무슨 파충류도 아니고 바람 좀 분다고 이렇게 골골하면 어쩌냐.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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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딸이 아프면 맘이 아픈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화가 났다. 내가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길래 이놈이 이렇게 내 인생을 가로막나 하는...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나의 부족함과 그에 따르는 조급함을 딸에게 덮어씌웠던 거였다. 그냥 인정하면 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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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 방학인데다가 지난주가 할머니 생신이라 주말에 부산에 다녀왔다. 요때가 피서 절정기라길래 차를 가지고 내려가는 건 처음부터 패스. 다음으로 비행기를 이용할까 하고 예매까지 했으나 어차피 공항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기차에 비해 나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예매 취소하고 KTX로 돌렸다. 이러나저러나 승용차로 안 가는 이상은 짐이 부담스럽다. 둘째 딸 기저귀와 갈아입을 옷만 해도 벌써 한 짐이다.

기차간에서 혹시나 둘째 딸이 심기 불편하시어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리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많이 했으나, 의외로 잘 놀고 심지어 중간에 한숨 잘 자고 무사히 내려갔다. 오히려 큰 딸이 심심해서 눈물날 지경이었다. 남들은 이럴 경우에 써먹으려고 닌텐도 같은 걸 사 준다지만 그런 거 하나 없는 우리집은 오로지 심심하면 잠을 청할 것을 강요한다. 물론 어지간해선 낮잠을 거부하는 큰 딸인지라 본인으로선 기차 여행이 정말 괴로울 것이다.

부산에 가면서 물놀이 준비를 안 해 갈 수 없어 몇 가지 챙겨가긴 했으나 물놀이를 싫어하는 엄마 아빠는 마지못해 끌려가는 기분. 혹시라도 딸이 물놀이 얘기를 안 하고 넘어가나 하는 헛된 기대를 하였지만, 절대 이런 거 그냥 잊고 넘어가는 법이 없는 딸의 성화에 못이겨, 광안리 해수욕장에 몸을 담그고 왔다. 날이 흐려서 그런지 아니면 아직 해수욕하기에는 이른 때여서 그런지 물이 엄청 찼다. 그뿐 아니라 바람도 세게 불어서 몸을 적시자마자 추워서 덜덜 떨었는데, 딸은 하나도 안 춥다고 우기면서 놀더니 그날 밤 감기를 제대로 맞았다. 그래서 열이 펄펄 나서 일요일 응급실에 가서 주사 한 대 맞고 약을 지었다. 물론 딸만 그런 게 아니라 온가족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감기에 걸려서 골골하고 있다. 월요일 현재 작은 딸은 콧물이 줄줄 흐른다. 내일 오전에 병원에 가야겠다.

그런데 이렇게 피서를 다녀왔더니 서울에선 본격적인 폭염이 기다리고 있다는 아주 우울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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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두 번은 기본,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 세 번까지도 병원에 데리고 다니는데,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정말로 딸의 병치레가 길어지니 가족 간의 사랑만으로는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엄마 아빠는 물론 힘들지만, 딸의 처지에서도 엄마 아빠에게 생긋 웃는 것도 잠시, 열 나고 콧물 나는데 어떤 아기가 칭얼대지 않겠나...

보통은 아침에 병원에 갔다가 어린이집으로 가는데, 오늘은 아침 시간대에 전화해서 예약하려 했더니 담당 의사 선생이 오전에 수술이 잡혔단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어린이집에 보냈다가 일찍 데리러 가서 병원에 갔다가 집에 오는 걸로 일정을 잡았다.

어린이집에서 딸을 업고 큰길까지 나와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가서 병원에 도착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병원도 몇 군데 있긴 한데, 아무리 해도 안 낫는데다가 동네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 주위에는 잘하는 병원이 없다길래 버스를 타고 서부병원 앞에 있는 이비인후과에 다니고 있다. 하지만 이곳도 명성과는 달리 몇 주째 출근하고 있으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가라앉았던 편도선이 다시 부어서 열이 나는 거라고 말하는 의사 선생한테, 감기가 너무 길어지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리 뾰족한 수는 없나 보다. 그저 약을 다시 지어줄 뿐... 긴 터널 같은 이놈의 병치레, 언제나 끝이 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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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부터 목이 아파 오더니 일요일부터 본격적으로 몸살감기가 시작되었다. 목이 아픈 것은 물론이거니와 온 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아프고 다리에 힘이 주욱 빠졌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몸을 가누기 어려워 만사를 제쳐두고 쉬고 싶었으나, 그날이 작은 딸 첫돌 행사가 있는지라 어쩔 수 없이 강행군을 했더니, 결국 일요일 오후에는 비명 소리가 날 정도로 온 몸이 아파왔다.

보통 때는 감기 정도는 집 앞의 이비인후과에 가곤 했는데, 그 때마다 약이 잘 듣지 않아 불만이었으나 딱히 대안이 없어 다신 안 간다고 다짐하면서도 문지방이 닳도록 그곳에 드나들었다. 그러나 이번 감기의 증상은 워낙 심각할 뿐만 아니라 요 며칠 전에 보아둔 병원이 있어 그곳으로 가려고 맘 먹었다. 작은 딸이 코감기에 걸렸을 때 버스로 몇 정류장 떨어진 곳까지 갔으나 예약을 안 하는 바람에 결국 진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섰던 그 병원이었다.

이곳이 얼마나 대단한 병원인지, 오전 9시에 병원 문을 열고 두 시간이 지나면 하루에 받을 환자의 예약이 모두 끝난다는 것이다.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한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전화로 예약을 받을 정도의 싸가지는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월요일 9시 정각에 진료를 예약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는데, 이놈의 인기가 보통이 아닌지 두 개의 전화번호를 돌아가면서 걸어 보아도 30분이 지나도록 계속 통화중이란다. 성질 급한 거 티 낸다고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오를 무렵 간신히 통화가 되어 오전 11시에 약속을 잡았다. 11시 10분 전에 병원에 도착했으나 정각에 진료를 받지 못하고 15분 정도 하릴없이 대기실에 내팽개쳐져 있었던 것은 얘기하지 말자. 어쨌거나 이놈의 대단한 의사 선생을 만날 수 있었잖은가. 게다가 이런 걸로 간호사들에게 괜히 성질을 부리면 결국은 내 손해라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꾸욱 눌러서 참았다. 손님이 왕이라지만 병원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 의사가 왕이다. 어떤 경우에도 환자가 왕인 경우는 없다. 환자는 그냥 약자일 뿐. 의사 이놈이 진료비는 많이 받아내면서 병은 안 고쳐줄지도 모른다는 불안 요소가 존재하는 한 환자가 큰소리 칠 여지는 없다.

병원에 오면 신기한 게 하나 있는데,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릴 때엔 진료실에 들어간 환자가 어쩜 이렇게 오래 진료하나 싶을 정도로 버티고 버티다가 나오는 반면, 정작 내 차례가 되어 들어가면 5분이 다 뭔가, 3분이면 나가라고 한다. 이건 대체 뭐냐. 내가 그렇게 쉬운 사람인가. 의사가 나가라니 나가긴 하는데, 그러면서도 기분이 상쾌하진 않다.

각설하고, 진료실을 나오는데 의사 선생이 뒤통수에 대고 한 마디 던진다.

"약 먹고 푹 쉬세요. 일단 사흘치 약을 드릴테니 목요일에 봅시다."

목요일에 봅시다? 사흘치 약을 먹고 낫지 않는 큰 병이라는 얘긴가. 아니면 의사 선생이 목요일에 내 얼굴을 다시 보고 싶어서 약을 연하게 준다는 얘긴가. 난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 이런 대단한 병원에 우여곡절 끝에 왔으면 다른 병원과는 뭔가 달라야 하는 거 아닌가.

암튼 의사 선생의 그 얘기 때문인가. 약을 받아와서 이틀째 먹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 마치 7년 가뭄의 논바닥처럼 목소리가 쩍쩍 갈라진다. 정말로 우린 목요일에 다시 만나야 하는 운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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