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헉… 숨차다. 일단 말이 너무 어렵다. 좀 더 순화시킬 수 없을까 고민도 해 보았으나 우선 깔끔하게 다시 풀어 쓰기도 쉽지 않고, 꿈에서 읽은 내용을 최대한 살리다 보니 어쩔 수 없다. 말인 즉슨, 꿈에서 본 어떤 문제의 지문이다.

그 꿈을 일단 돌이켜 보면,

  1. 무슨 시험 같은 걸 치는데,
  2. 그 시험이라는 게 십자낱말풀이였고,
  3. 그 낱말들은 최소한 10글자 이상은 되었으며,
  4. 현재 지문의 답은 왠지 알파벳 C로 시작할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5. 그러나 사실 이미 열려 있는 낱말 또는 알파벳은 전혀 없었다.
  6. 따라서 지금 풀고자 하는 낱말이 정말로 C로 시작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꿈의 영역이므로 그냥 넘어가자.

결론적으로, 답이 뭐지? History? 이건 최소한 10글자 이상의 조건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C로 시작하지 않으므로 일단 기분이 나쁘다. 그러므로 패스. 그럼 '현대사'인가? 자신의 부모가 살지 않았던 시대이므로 말이 안 된다. 그럼 '근대사'? 그럴 것 같으면 '고대사'는 안 될 게 무어란 말인가. 그럼 '먼 과거사'? 그것도 아니면 '아주 최근은 아닌 역사'? 그런데 그런 뜻을 가진 영어 낱말이 있긴 있는 걸까?

에잉~ 개꿈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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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의 꿈에다 굳이 테마를 붙이자면 '형제' 정도가 아닐까. 아무튼 동생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우리 형제가 지금처럼 결혼해서 떨어져 살기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사는 곳은 처음 보는 곳인데,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다락방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에 물이 있는 걸로 보아 바닷가나 강가, 또는 호숫가가 아닐까 싶다. 다락방의 창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은 꿈 속에서도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아름다웠는데, 동생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경이롭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형제가 그렇게 창밖을 보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두 분 외삼촌께서 다락방에 올라오셨다. 외삼촌들도 지금이 아닌 젊었을 때, 즉 우리가 어렸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 계셨다. 외삼촌들은 먹을 것을 싸가지고 올라오셔서, 그 자리에서 간단하게 자리를 잡고 우리 넷이서 식사를 했다. 정찬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간식이라 하기엔 좀 거한 음식이었다. 내가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 때 정황으로 보아 외삼촌들이 멀리서 놀러 오신 게 아니라는 것은 거의 확실했다. 말인 즉슨, 우리 형제와 외삼촌 형제가 한 집에서 살거나, 최소한 한 동네에서 산다는 얘기다. 그리고 꿈 속에서 나는 그 사실에 대해 너무나 당연하고 또 자연스럽게, 즉 그렇게 모여 사는 것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식사 후에 외삼촌들이 내려가시고 나도 삼촌들을 배웅하러 다락방을 내려오면서 슬며시 다른 꿈으로 넘어갔는데, 뒤의 꿈도 그렇지만 앞의 꿈도 금방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보통은 잠에서 깨는 순간, 또는 잠에서 깨어 물 한 잔 마시면서 좀전의 꿈을 다 잊어버리기 마련인데 오늘은 꽤 오래 간다. 등장인물들이 좀처럼 내 꿈에 나오는 사람들이 아닌데 오늘따라 한꺼번에 다 나와서 인상 깊은 것 같기도 하고, 형제들끼리 모였다는 게 신기해서 꿈이 오래가나 싶기도 하고, 꿈 속에서 본 풍경이나 다락방 정경이 좋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요즘은 명절에도 잘 모이기 힘든 가족·친척들. 심지어 모두 모여서 산다고 생각하면 꽤 불편할 것 같다. 그렇지만 간밤의 꿈에서만큼은 모여 사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또 정답기까지 했다. 동생과 나도 예전엔 현재 우리 두 딸처럼 한 이불 속에서 장난도 치고, 서로 싸우다가 부모님께 혼나기도 하고 그랬다. 외삼촌 형제도 어렸을 때에는 아마 그랬겠지. 그러다가 자라면서 서로 각자의 삶을 따라 철새처럼 떠났겠지. 祭亡妹歌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한 가지에서 나서 가는 곳 모르게 된' 것이겠지. 한 번 가지가 나누어지면 비록 그것이 뿌리쪽으로는 연결되어 있다 하더라도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하긴 그래서 가끔 이렇게 꿈속에서나마 돌아보는 게 아닐까.

방금 전에도 한 몸처럼 뒤엉켜 노는 딸들이 나중에 자라서 각자의 삶을 살면서 한 번쯤은 오늘을 기억할 수 있으려나. 작년 연말에 동생이랑 술 한 잔 하기로 했다가 약속이 깨졌는데, 그 이후로 다시 약속을 잡지 못했다. 다음 주에 연락 한 번 할까...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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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꿈에서 어느 모임에 나갔는데 거기서 한 사람을 소개받게 되었다. 지금은 그사람의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나보다 약간 젊은 남자였다는 것만 기억날 뿐. 어쨌거나 그남자와 나, 그리고 두어 명 정도가 더 한 테이블에서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학교와 전공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그남자가 자기는 '국민대학교 국민학과'를 나왔단다.

"국민학과요?"
"예."
"거긴 뭐하는 뎁니까?"
"뭐하긴요. 국민학에 대해 배우는 곳이죠."
"국민학이 구체적으로 뭐하는 학문인데요?"
"글쎄요... 뭐라 한 마디로 대답하긴 그렇네요."

말하는 남자의 얼굴이 빙글빙글 웃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대화가 썩 내키는 눈치도 아니다.

"허허, 국민학이라... 설마 좋은 국민이 되자는 그런 겁니까."
"말하자면 그런 거죠."
"그래, 거기 나오니까 좋은 국민이 된 것 같습니까."
"전공 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래도 수업 시간에 좋은 국민이 되는 법은 갈쳐 줄 거 아닙니까."
"배운 거 다 까먹었지요."
"까먹었다손 치더라도, 가르쳐 주긴 한다 이 말이죠?"
"그런 셈이죠."

이제 남자는 이 불편한 대화를 어서 끝내고 싶은지 양미간에 주름이 가기 시작했다. 자기 전공에 뭐 하나 보태준 것도 없는 놈들이 자꾸 이렇다저렇다 하는 꼴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듣는 나로서도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는데, 대체 좋은 국민이 되도록 가르친다는 게 뭔지, 그런 걸 꼭 배워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걸 배운다는 것 자체가 '나는 말 잘 듣는 순한 백성이 되겠소'라고 선언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 싶어서 내 앞에 앉아있는 초면의 남자에게 불편한 감정이 불쑥 솟아올랐다. 그리고 남자를 소개시켜준 그 옆에 있던 지인에게도 뭐 이런 놈을 다 소개시켜준단 말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이런 놈과 알고 지낸다는 게 여간 한심해 보이지 않는 거다.

대화가 흐지부지 더이상 이어지지 않아서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 모두가 어색한 침묵의 바다에 빠질 즈음 부스스 잠이 깼다. 아침에 다시 꿈을 돌이켜 보니 우습다. 국민학과라니, 대체 누구의 아이디어인가. 글쎄, 어디서 들은 바는 없으니 필시 이 꿈의 주인인 내가 만들어낸 것일텐데. 그렇다면 혹시 난 좋은 국민이 못 되어서 슬픈 동물이었다는 건가.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 오히려 그 반대로, 좋은 국민--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겠지만--이 되고 싶은 놈들 꼴보기 싫은 마음이 이런 꿈으로 나타난 거겠지.

아무튼 요런 꿈, 재밌어서 좋다. 당시에는 어색했지만 깨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남는 게 있어서 좋잖은가. 국민학이라... 나 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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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0분. 도저히 혼자서는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덜덜 떨면서 큰방으로 건너와서 다시 잠을 청했다. 물론 바로 잠들기에 성공하지도 못했고, 두어 시간을 깨어 있다가 결국 다시 작은방으로 돌아와서 잠들었지만, 어쨌거나 홀로 버려져 있기는 싫었다. 아내에겐 그냥 무서운 꿈이라고만 해 두었다.

오늘 낮에 설거지를 하다가 그 꿈에 대해 자세하게 얘길 하려고 했는데, 꿈 내용을 머리 속에 떠올리자 그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지난밤처럼 온몸이 떨려왔다. 결국 아내에게 꿈 내용을 말하지 못했다. 생각만 해도 무서운 꿈.

다행히도 꿈 속에서 큰딸은 무사했다.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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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태규가 가끔 내 꿈에 나온다. 그렇다. 배우 봉태규 말이다.

가끔 나오는데 매번 역할은 고정되어 있다. 우리 둘의 관계는 처남과 매부 사이다. 즉 봉태규가 아내의 오빠로 등장한다. 이 시점에서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를 하자면, 아내는 딸만 넷인 집의 맏딸이다. 그러니 오빠가 있을 리 만무하다. 남동생도 없는데 하물며 오빠라니. 그런데도 내 꿈 속에서 봉태규와 나는 아무런 어색함이 없이 반갑게 만난다. 봉태규가 나더러 형님이라고 부르는 걸로 보아, 꿈 속에서의 설정으로는 아내와 나의 나이 차가 좀 나는 듯 싶다. 물론 현실에서는 한 살 차지만...

어쨌거나 우리 둘은 만나서 차도 마시고 당구도 치러 가는 등 극히 일상적으로 논다. 그러면서 주로 하는 얘기의 주제는 아내에 관한 것이다. 우리 부부 사이는 좋은지도 물어봐 주고, 다투었다면 오빠로서 동생에 대한 얘기도 해 주고, 여자들은 공감할 수 없는, 즉 남자들끼리만 통하는 그런 얘기들을 하면서 맞장구도 쳐 준다.

이 꿈의 패턴을 살펴보면 아내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지인도 등장하지 않고 오로지 우리 둘만 등장한다. 아내랑 오빠(?), 그리고 남편이 함께 등장하지 않음으로 인해 어색하지 않아 좋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렇다.

이런 꿈을 꾸고 나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내보다 나이도 새파랗게 어린 배우가 오빠 노릇을 하는 것도 우습고, 그 오빠라는 인간이 우리 부부 사이에 좋았던 일, 안 좋았던 일들을 다 들어주는 것도 우습고, 시시콜콜 다 얘기하는 나도 우습다. 게다가 그 오빠가 하필 왜 봉태규냐. 참 모를 일이다...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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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의 꿈에 당구장에서 작은 외할아버지를 마주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웃긴 상황이다. 난 그때 사실 당구장이 아닌 볼링장을 찾고 있었는데 왜 뜬금없이 지하 당구장으로 발길이 갔는지도 모르겠거니와, 내 생전 작은 외할아버지를 꿈 속에서 뵌 것은 고사하고 이렇게 우연히라도 뵐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아예 얼굴도 모르는 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한 '작은 외할아버지'라는 캐릭터가 꿈 속에 등장했다는 얘길 주위에서 들어본 바도 없다. 돌아가신 외할아바지도 아니고, 그 동생분을... 

할아버지는 당시 당구장 주인과 언쟁을 벌이고 계셨는데, 옆에서 들어본 바로는 아마도 이권 다툼과 관련된 내용인 듯했다. 이쯤 되면 꿈이 뭔가 조잡하고 어처구니 없는 국면으로 들어섰다고 봐야 한다. 아니 노인네가 무슨 당구장 이권에 개입하신단 말인가. 점잖게 사시기로 소문난 분을 이런 삼류 느와르에 등장시켜도 되는지 모르겠다. 내용으로 봐선 단순히 당구장에 국한된 것도 아닌 모양인데 말이다. 이렇게 꿈의 리얼리티가 급전직하하던 즈음, 할아버지가 나를 발견하시고 당구장 밖으로 나와 함께 나오셨다. 아, 이 얼마나 어색한 만남인가. 손자를 당구장에서 만나다니... 그래도 꿈 속에서는 그것이 꽤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여겨졌다는 건 확실하다.

할아버진 나와 함께 잠깐 묵묵히 걷기만 하시다가 말문을 떼셨다.

"내가 많이 늙었니?"
"예?"
"늙은 것 같냐고 말이다."
"별로 그래 보이지 않는데요. 그리고 안 늙는 사람 있나요 뭐."
"그러냐... 내가 보기에는 내가 많이 늙었다."
"..."

대화 내용이 뭐 이러냐. 참 밑도 끝도 없는 대화다.

보통은 꿈 속에서 의외의 인물이 나오면 그걸 빙자해서 전화 연락이라도 한 번 해야 되는 게 마땅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단 한번도 작은 외할아버지께 직접 연락을 해 본 적도 없는데, 지금 전화 드려서 꿈 속에서 할아버지가 나타나셨다고, 그래서 많이 늙었다고 하시더라고 전해 드릴 수는 없잖은가 말이다. 그래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할아버지 근황을 알아보았는데, 별 일 없으시단다. 그래... 당구장부터가 신빙성 없는 스토리였다. 무슨 일이 있을 수 없는 게 맞다. 이번 것도 역시 개꿈이다.

간혹 친척집의 태몽을 대신 꾸어준다는 얘길 들어봤는데, 이런 개꿈도 해당되는 얘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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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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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내가 아는, 그것도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어떤 여자와 흥미진진한 모험을 하는 꿈을 꾸었는데 ...

잠에서 깨는 순간 머리 속에서 그가 누구였는지 깨끗하게 날아가 버렸다. 어쩜 이렇게 까맣게 잊어버릴 수가 있나. 좀전까지 함께 적들에게 쫓기면서 몇 번이나 위기의 순간을 넘겼는데 말이다. 아직도 힘들게 계단을 뛰어올라갈 때 숨차던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말이다.

아... 이 글을 쓰다가 어머니 전화를 받느라 몇 분이 더 지난 지금, 그가 과연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이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이름은커녕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데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나. 흥미진진한 모험이라고 생각했지만, 조금만 더 거리를 두고 생각해 보면, 그렇게 신나는 모험도 아니었다. 원래 둘이서 시작한 모험도 아니었고, 전체 일행은 적들이라고 생각되는 어떤 집단에게 모두 잡히고, 둘만 용케 빠져나와 쫓기는 내내 난 불안에 떨어야 했고, 영국 드라마 '닥터후'를 표절한 방법을 통해 위기를 탈출해서 잠깐 안도했으나, 이내 다시 우리가 사는 시간과 공간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땐 어쩌지 하는 걱정을 했다.

이젠 정말 그 모든 것이 안개 속에 가려져 어느 것 하나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자고 일어나서 머리까지 아프다. 별 꿈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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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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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적 배경은 아마 내가 초등학교 다니는 정도의 나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당연히 아빠는 출근하셨고, 오늘은 엄마도 아침부터 외출을 하셨다. 집엔 나와 내 동생, 이렇게 둘뿐이었다. 오후 늦도록 엄마는 소식도 없이 돌아오지 않았다.

자꾸 전화벨이 울렸다. 그 때마다 동생이 받았는데 계속 한 사람에게서 전화가 오는지, 그 때마다 대화 내용은 비슷했다. 엄마를 찾나 보다. 엄마는 지금 집에 안 계시다고, 언제 들어오실지 알 수 없다는 말을 동생은 반복했다. 그리고는 매번 수화기 저 편의 사람에게서 메모를 받아 적었다. 엄마에게 전하는 메모였겠지만 그 내용이 궁금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 사람 좀 짜증난다. 엄마가 돌아오시면 전해 드리겠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도 이렇게 계속 전화질을 해 대는 이유는 뭔가. 엄마가 어련히 알아서 돌아오실까 말이다. 다급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지만 애들 둘이 지키고 있는 집에 무슨 공포 분위기 조성하는 것도 아니고 10분이 멀다하고 전화하는 건 예의가 아니잖은가 말이다.

처음엔 별 생각 없었으나 나중에 화가 난 내가 직접 전화를 받았다. 건조한 목소리의 남자다. 여전히 엄마를 찾는다.

"안 계시는데요."
"어쩌지... 그럼 엄마한테 들어오시는 대로 빨리 송금해 좀 달라고 전해줘."
"예. 그러죠."
"그럼 계좌번호 불러줄테니 메모 좀 해 줘."
"예. 말씀하세요."

남자는 계좌번호를 불러준다. '조흥은행 000-00000-0000...' 무심코 받아적다가 메모 내용을 보니 뭔가 이상하다. 번호가 전부 0이라니. 이런 번호도 있나? 아니 정말로 이상한 것은 분명히 상대방은 0이 아닌 다른 번호를 불러주고 있는데, 그것을 받아적는 나는 0으로 적고 있다는 거다. 갑자기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아까 동생이 해 둔 메모를 보았는데,

'농협 00000-000-000000-000'
'국민은행 000-00000-00000-00000'
'부산은행 00000-00000-000-000'

역시 전부 0이다. 머리가 쭈뼛 섰다. 그 순간 수화기 저쪽으로부터 기분 나쁜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웃음 소리를 듣는 순간 온 몸이 마비되면서...



꿈이다. 아내가 놀랐는지 날 깨웠다. 내가 자면서 신음소릴 내더란다.

"또 가위 눌린 거야?"
"아니. 꿈이었어."
"좀 어때?"
"무서워."

어찌나 무서운지 잠이 확 달아났다. 보통은 자다가 가위 눌려서 깨는 경우가 많은데, 지난밤은 특이하게도 악몽만 찾아왔다. 곧 정신을 차리고 아내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아내를 재웠지만 한 번 깬 잠은 쉽게 다시 들지 않았고, 또 무서움도 금방 떨쳐지지 않았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왜 무서운지 잘 모르겠다는 거다. 뭐가 무섭지? 좀 이상하긴 하지만 흔한 개꿈 아닌가? 그 땐 정말 심각하고 무서웠다는 게 우습다. 아 이런 시시한 꿈이 다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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