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골드바흐의 추측』 이후 실로 십수 년 만에 읽는 수학소설―물론 이런 장르도 있다면―이다. 이런 소설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는데 심지어 나 몰래 영화까지 나온 걸 보면, 그 영화 어지간히 못 만들었나 보다.

수학을 소재로 한 글은 내게 즐거움과 동시에 약간의 괴로움을 함께 가져다 주는데, 그것은 바로 책을 읽는 도중에 자꾸 곁길로 빠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역시 다르지 않았는데 소설 초반부터 친화수親和數(우애수友愛數)가 나오는 바람에 제대로 둘러가는 책읽기가 되고 말았다. 이제껏 알려진 가장 작은 친화수인 220과 284가 나왔는데, 다른 친화수는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해짐과 동시에 그것을 구하는 알고리즘을 머리 속에 그려 보기 시작했다. 우선 주어진 수의 약수를 구해야 하고, 그 약수들의 합을 통해 반대편 수가 만들어지면 그 수의 약수와 그 합을 구해서 원래의 수와 비교하고… 이 정도면 괜찮았는데, 곧이어 1부터 1억까지의 자연수 중에서 소수素數(prime number)의 개수를 구하는 함수를 만들어야 했다. 5761455개가 바로 그 답이라는데, 이걸 그냥 믿으면 되겠나. 직접 구해 봐야지 않겠나. 예전엔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를 분명히 C나 파이썬으로 만들어 보았는데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떻게 하더라. 다행히도 그 이후에는 특별히 옆으로 샐 만한 거리가 없었다. 후반부의 오일러의 등식 빼고.

등차수열의 합을 구하는 공식이 등장하는 부분을 읽을 땐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3학년 때가 떠올랐다. 사실 이 공식을 생각하면 무조건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10살 어린 시절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등차수열의 합, 정확히 말하면 1부터 10까지의 합을 구하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 내가 이루어낸 첫번째 수학적 성취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일 없이 무심히 흘러가던 10살의 어느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무튼 그때 우리집에 한 서적 외판원이 찾아왔다. 당시에는 어린이용 학습만화나 백과사전류의 책들을 팔러 다니는 외판원이 많았다. 그 아저씨는 우리에게 조기 수학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정열적으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어머니와 내게 제시한 문제가 1부터 10까지의 합 간단히 구하기였다. 듣는 순간엔 막막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도전 과제는 한 가지 맹점이 있는데, 도전자로 하여금 "여기엔 반드시 간단한 해답이 존재한다"는 것을 먼저 알려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만약 내가 이 아저씨를 통해서가 아니라 방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주제를 생각해 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 박사의 말처럼 답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문제가 어려운 법이지, 답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문제는 하나도 어려운 게 없다. 그런 면에서 내가 나름 눈치가 전혀 없진 않았나 보다. 분명히 존재하는 법칙을 이제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잠깐 동안 그 수들을 빤히 노려보았더니 역시 해결 방법이 떠올랐다. 1과 10의 합과 2와 9의 합이 같음을 발견한 것이다. 3과 8, 4와 7, 그리고 남은 것은 5와 6 쌍. 정답은 11 × 5 = 55. 짜릿한 기분이 온몸을 감쌌다. 그렇다. 이렇게 생각하면 1부터 100까지의 합도 두렵지 않다. 주어진 수열의 처음과 끝을 더한 값에 수열의 개수를 2로 나눈 값을 곱해 주면 된다. 수열의 개수가 홀수인 경우엔 중앙값을 제외했다가 나중에 따로 더하면 되고. 당연히 주어진 문제를 풀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외판원 아저씨는 "아드님이 참 똑똑하시네요" 라는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남기고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서야 했지만, 그날 내가 얻은 작은 수학적 성공을 도와주신 그 아저씨가 없었다면 3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등차수열의 합이 내 인생에 그렇게 큰 의미로 남아있지는 않을 것이다.

기억이 80분만 지속되는 삶은 대체 어떤 것일까. 아무리 내가 지금 머리 속으로 그려 본다고 해도 실제로 그 상황 속에 놓이지 않는 이상 박사의 삶을 완전히 공감하긴 어려울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닥치는 대로 메모해 놓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데 곧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음날 일어나면 자신이 처한 상황부터 다시 인지해야 하는 문제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즉 "내 기억은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메모부터 맨 처음으로 숙지하면서 하루를 절망 속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게다가 매일 메모가 쌓인다면 일어나서 한숨 한번 쉬고 곧바로 그간의 메모들을 죄다 머리 속에 집어넣어야 되는데, 내게 왜 이런 형벌이 주어졌는지 한탄하기도 바쁜 와중에 그 많은 메모들이 머리 속에 들어오겠으며, 또 그 정보들을 머리 속에 집어넣고 싶을까. 그뿐만 아니라 주어지는 정보는 날이 갈수록 불어날텐데 말야.

사실 소설의 완성도만 따지자면 그리 칭찬해 주고 싶은 작품은 아니다. 우선 박사와 그의 형수와의 관계가 별로 매끄럽지 않다. 정지한 시간 속의 영원한 연인이라는 거창한 관계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형수가 등장하는 분량은 민망할 정도로 적다. 아님 말고 식으로 감히 넘겨짚자면, 박사와 형수의 이야기가 잘 전개되지 않아, 소설이 완성되는 시점에서 작가가 그 부분을 통으로 들어낸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으로 사용된 '박사가 사랑한 수식', 즉 오일러의 등식이 주는 임팩트도 좀 부족하다. 소설이 이 수식의 아름다움을 과연 얼마나 제대로 표현해 주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고, 박사가 그 순간 왜 이 수식을 내밀었는지에 대한 설득력도 강하지 않다. 물론 이 부분이 작자로서도 어려웠을 터인데, 좀 더 세세하게 들어가는 순간 독자들의 책 덮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을까. 결정적으로 이 책에서 맘에 안 드는 것은, 왜 박사가 유독 아이들에게는 관대하고 친철하고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수학 문제를 풀 때엔 누가 옆에서 말 거는 것도 싫어하고 밥 먹는 것도 거르는 사람이 파출부의 아이만 나타나면 모든 것을 다 내어줄 듯 헌신적이기까지 한 모습을 보이다니. 이 아이에 대한 특별히 좋은 기억도 없는데 말이다. 박사가 기억하는 것은 파출부에게 열 살배기 아들이 하나 있다는 정도 아니던가.

이러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좋아해 주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박사가 가진 격려의 힘 때문이다. 수학에 관한 아무리 작은 문제 제기라도, 아무리 사소한 성취라도 절대 놓치는 법 없이 무한히 격려해 주는 박사의 품성, 성급하게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 것들은 애 키우는 부모나 누군가를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꼭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말은 쉽지만 행동하긴 쉽지 않다는 게 여전히 문제…

『골드바흐의 추측』은 몇 번의 이사 중에 잃어버렸다. 일부러 버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크게 아까웠던 기억도 없다. 재밌게 읽었으나 또 읽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 소설. 그러나 이 책은 소장하고 싶다. 나중에 다시 읽고 싶기도 하거니와, 나중에 딸이 이 책을 보고 수학에 조금은 흥미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부모의 욕심에…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아무리 봐도 아동문학은 아닌데 딸에게 읽히는 건 좀 아닌 듯하다. 관심을 강요해서도 안 될 일이고. 정말로 욕심은 욕심일 뿐.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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