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꿈

롤플레잉 2006. 3. 22. 01:39
가위[명사] 잠을 자다가(잠결에) 무서운 꿈에 질려서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답답한 상태.
¶가위에 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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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에 눌리는 빈도가 잦아질 때가 있는가 하면 또 한동안 완전히 잊고 살 때도 있다. 고3 때와 불광동 자취방 시절엔 거의 매일같이 가위에 눌려 신음했다. 그 둘의 공통점을 찾아 보면 확실히 그 당시의 삶 어딘가 한 구석은 어두운 곳이 있었던 것이다. 가위 귀신은 인간의 두려움을 먹고 산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처음엔 가위에 눌린다는 것 자체가 정말로 놀라고 두려운 일이었다. 의식은 또렷하게 돌아왔는데 몸은 전혀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 내 의지는 잠에서 깨려 하고 있으나 내 몸은 계속 잠으로 빠져드는 상황. 조금만 몸을 비틀면 깰 것 같은데 도무지 힘을 줄 수가 없으니... 하지만 이런 몸서리치는 상황도 반복되면 그럭저럭 참을 만해진다. 아 반복의 위대함이여...

요즘은 가위에 눌리면 우선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게 된다. 우선 내가 어디서 자고 있었는지를 돌이켜 보고, 현재 내 꿈 속에서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모조리 몰아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잠이 든 자세인데, 어떤 자세인가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몸을 움직여서 가위 상태를 몰아낼 것인지에 대한 전술을 짤 수 있다. 이 때 당황해선 안 된다. 무작정 몸을 움직이려 애써 봐야 괜히 힘만 뺄 뿐이다. 힘을 비축하였다가 리듬을 타면서 결정적으로 몸을 튕겨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서 잠에서 빠져나오려는 때가 정말로 중요한 순간인데, 이때 안심해서 긴장을 풀고 몸에 힘을 빼 버리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수고가 된다. 실제로 잠에서 깨었다고 안도하다가 다시 몸을 결박당한 때도 많다.

가위 눌림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 꿈속의 꿈, 즉 재귀적 꿈(recursive dream)이다. 꿈 속에서 다시 꿈을 꾸고, 그 꿈 속에서 다시 꿈을 꾸는 것이 반복되는 것이다. 물론 그 꿈 속에서는 현재가 몇 차원의 꿈 속에 들어와 있는지를 의식하지는 못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 꿈에서 깨는 것을 반복하며 차원을 세어 나간 후 최종적으로 잠으로부터 완전히 도망친 후에 가능한데, 이 꿈에서 깰 때는 예외 없이 가위에 눌리게 된다. 내 경험으로 가장 많은 차원은 불광동 시절의 7차원이다. 이런 대박 하나 걸리면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한다. 갖은 고생 끝에 겨우 잠에서 깼더니 그것이 또 꿈 속이었을 때 느끼는 절망감. 이런 상황이 두 번 이상 반복되면 잠에서 깨는 순간에도 완전히 현실로 돌아온 것이 맞는지 확신할 수가 없다.

물론 이 재귀적 꿈도 위대한 반복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얼마 전에 3차원의 꿈을 꾸었을 때였다. 너무나 오랜만의 재귀적 꿈이라 놀라긴 했지만, 처음 당하는 일도 아닌지라 곧 마음의 안정을 찾고 복잡한 실타래를 풀듯이 한 겹 한 겹 꿈을 벗겨내어 마침내 현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무리 적응이 되어도 잠에서 도망치려는 노력 자체를 꺾은 적은 없다. 사실 가위에 눌릴 때마다, 몸을 움직이려 해도 안 될 때마다 '그냥 관두고 자 버릴까...?' 하는 유혹에 항상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도 아직 한 번도 그냥 자 버린 적은 없다. 여기서 포기해서 잠에게 져 버리면 왠지 모르게 내가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거나 다른 차원의 세계로 떨어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들어서이다. 이 세계에 얼마나 미련이 많아서인지, 도저히 이 긴장의 끈만은 놓아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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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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