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롤플레잉 2006. 3. 16. 02:10
운전이 정말 두려울 때가 있는데 바로 오늘이 그런 날이다. 아침에 외가에 맡긴 딸을 데리러 가는 길이었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 예감이 좋지 않았지만 곧 떨쳐 버리고 시동을 걸었다. 저녁 7시가 지나 거리엔 이미 어둠이 내렸다.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고 돌아가는 순간 정면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질주해 왔다.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한 순간이었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고 경적을 울렸다. 식은 땀이 흘렀다.

안도의 한숨을 쉰 것도 잠시, 가로등이 희미한 신사동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중앙선 건너편에서 허연 물체가 앞으로 달려들었다. 강아지임을 직감하고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늦었다. 차 밑으로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강아지가 빨려들어갔다. 꽤나 속도를 내고 있던 터라 차는 강아지를 치고도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너무나 놀라 차를 세우려 했으나 이미 뒷차들이 현장을 덮어버린 후인 데다가 나더러 빨리 가라고 전조등을 깜박인다. 사람을 친 것도 아닌데 뭘 망설이냐는 분위기다. 할 수 없이 가던 길을 계속 갈 수밖에 없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놈의 강아지가 갑자기 튀어 나온 것이라고 마음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지만 영 개운치가 않다. 오늘따라 이 동네 사람들이 뭐에 씌었는지 그 후로도 처가에 도착하는 동안 몇 번이나 내 차 앞에서 무단횡단을 했다. 어떻게 처가에 도착했는지 잘 모르겠다. 딸을 데리고 돌아올 때엔 다른 길을 택했다. 아무래도 그쪽으로 다시 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다음엔 강아지가 아니라 사람일 수도 있다.
강아지가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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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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