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의 하나

롤플레잉 2006. 4. 1. 02:14
2006년도 상반기 고적 답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많은 곳을 둘러보았으나 많은 것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우선 매서운 바람과 맞서야 했으며, 빡빡한 일정과 씨름해야 했으며, 높은 곳을 오를 때마다 날 그 자리에 주저앉히려는 중력과 싸워야 했다. 이 중에서 무엇보다도 괴로웠던 것은 바람이었다.

백제의 땅은 타지의 방문객에게 어떠한 호의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사고(思考)의 끝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마저 얼려버릴 것 같은 무시무시한 추위와 바람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마누라 말 들어 손해 날 일 없다더니 역시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두터운 옷 챙겨 가라는 잔소리를 몇 번이나 무시하고 가방 무거워지는 게 싫어 그냥 나섰더니 날씨가 아주 제대로 보복을 해 오는 것이다. 바람은 답사 마지막 날에서야 잦아들었다.

그런데 용케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첫날 의례적으로 감기약을 하나 먹긴 했으나 실제로 감기 기운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로선 생각밖의 선전이다. 찬바람만 쐬어도 바로 감기 몸살로 몸져 눕던 기억이 불과 몇 달 전의 일 아닌가. 그런데 이런 악랄한 추위에 감기 환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도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만으로도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둘 중의 하나이다. 그 사기꾼 같던 한의사가 제대로 약을 썼거나, 나도 아내처럼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있다는 얘기다. 진짜 이유가 무엇이건 집나가서 아픈 서러움을 겪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솔직히 여행 중에 아프거나 탈이 날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런 속에서도 배탈 하나 없이 어디 부러진 곳 없이 요 며칠을 대견하게도 잘 버텼다. 물론 강행군 속에 무릎이 시려오고 약간의 술병(두통)은 있었지만 이정도면 훌륭하다.

가을에도 보약을 먹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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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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