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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3.04 노래방에 대한 기억
  2. 2006.03.03 생각의 지도
  3. 2006.03.02 길에 버리는 시간 2
  4. 2006.02.28 길에 버리는 시간
  5. 2006.02.27 증명사진
  6. 2006.02.26 누워서 뜨는 소
  7. 2006.02.26 딸의 돌잔치
  8. 2006.02.24 치과 가기가 두려운 이유
  9. 2006.02.23 덧글 유감
  10. 2006.02.23 러닝머신의 패러독스
장모님 생신이라 오랜만에 처가 식구들 총집합하여 노래방에 갔다. 언제나 옛날 그대로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이런 자리에 오면 그렇지도 않다. 점점 부를 노래가 줄어드는 것이다. 신곡은 당연히 알 리 없고 옛날 노래는 자꾸 내 기억 속의 리스트에서 없어져만 간다. 사위들 노래 한 곡씩 하라는데 메뉴를 붙잡고 한참을 씨름하고서야 고른 곡이라는 게 윤수일의 '아파트'라니. 그나마 학창시절의 응원가가 아니었다면 이마저도 힘들었을지 모른다. 고맙다 아카라카. 너희들이 정녕 쓰레기만은 아니더구나.

젊은 사람들과 앞으로 노래방 갈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미리 최신 노래 몇 곡은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내는 말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한 일을 위해선 또 그만큼의 정열이 필요하다. 내 인생에서 새 노래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서태지까지였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린다. 가사도 궁금해지지 않는다. 에픽하이의 'Fly'라는 노래도 라디오에서 들을 때 가사를 'You can fry'로 듣고 달걀 프라이를 권장하는 노래인가 했었다. (실제로 내가 보기엔 에픽하이의 발음이 문제가 많다. 내 생각엔 얘들이 일부러 이런 장난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한때는 나도 노래방에 꽤나 자주 드나들었던 적이 있다. 군대 가기 전이었는데 학교 앞 단골 만화방 주인네가 차린 노래방이었다. 다른 곳에 비해 특별히 시설이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만화방 단골이라 주인 아줌마의 기분에 따라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었고, 다른 노래방과 달리 배경화면으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그 당시 그 노래방에서 보았던 영화 중에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제레미 아이언스의 '데미지'라는 영화다. 감정 잡고 노래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아 글쎄 화면에서 갑자기 이 아저씨가 팬티도 걸치지 않은 채 쌍방울을 딸랑딸랑 울리며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마이크를 떨어뜨렸다. 누군가 뒤통수를 확 후려치는 기분. 영화 제목이 왜 데미지인지 바로 알아버렸다.

신촌에 가 보면 노래방은 없어진 것이 확실한데 지나가면서 얼핏 보니 만화방은 아직 그대로 있는 것 같다. 주인이 그대로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음에 시간 나면 꼭 들러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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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자의든 타의든 간에 책을 좀 읽게 된다. 그간 내게 주어진 시간에 비해서 독서량이 부끄러울 정도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단순히 게으른 천성 탓이나 네트워크에 물려 있었기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독서도 부단한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언제인가부터 지하철에서 자리 잡고 않기만 하면 졸기 시작한다. 피곤해서 독서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독서 자체가 피곤한 것이다. 활자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기껏 한다는 것이 무가지 위를 무의미하게 돌아다니는 정도다. reading은 줄어들고 그 자리를 glance가 채운다. 아무튼 이런 까닭으로 요즈음 독서량이 조금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아내의 문화생활비를 처치할 데가 없어 다수의 책을 구매하던 차에 '예스24'의 강력 추천도 있고 책값도 잔액과 거의 맞아떨어진다는 이유로 고른 책이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이다. 회원 리뷰를 신뢰하는 바는 아니지만 유난히 별이 많길래 대체 얼마나 내용이 좋길래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사고 방식과 지각 방식은 인류 전체에 대한 보편성만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그 차이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 말한다. 즉 문화적 차이가 세계관 뿐만 아니라 사물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체계까지도 구분짓는다는 얘기다.

이 책의 자랑거리는 비전공자도 아무런 준비 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여졌다는 것이다. 내용 자체는 다양한 심리학 실험의 결과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학구적인 분석을 전개해 나가지만, 뭐 그런 것쯤은 한글만 안다면 누구라도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다.

또한 이 책의 저자에 대해 대단하다고 느끼게 되는 점은, 정말로 새로울 것 하나 없는 뻔하디 뻔한 내용을 이렇게 책 한 권으로 부풀리는 재주이다. 읽기 쉽고, 내용 전개에도 무리가 없지만, 읽고 나면 뭐랄까 좀 허탈하기까지 하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일 뿐이다. 오만한 서양인들에게는 그나마 약간의 신선함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 그대로 서양인의 서양인에 의한 서양인을 위한 동양을 이해하려는 노력일 뿐이다. 그래 애썼다. 하지만 돈 아깝다...

혹시라도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 관심 가지는 사람 있다면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만 당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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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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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있던 두 과목 수업이 모두 휴강이란다. 그걸 확인하러 또 7시간이나 차를 탔다는 얘기다. 심지어 아침에는 버스가 늦게 도착해 강의실까지 헐레벌떡 뛰어 도착했는데 말이다. 교수 개인 사정에 의한 휴강이란다. 3시간 연강 짜리가 말이다. 나중에 학생 개인 사정도 봐 줄까 의심스럽다.

만약 17년전이었다면 희희낙락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다른 애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입이 귀에 걸렸다. 하긴 고등학교에선 휴강이라는 게 없었으니... 하지만 난 이번 학기 등록금 생각이 먼저 나더라.

내일도 두 과목인데 제발 오늘처럼 허탈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누누히 말하지만 차 타는 거 절대 안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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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에 일어나 학교를 다녀왔더니 저녁 7시가 다 되었다. 순수하게 교통 수단을 이용한 시간은 7시간이고 거기에 배차 시간을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을 더하면 오늘 총 8시간을 길에다 버린 셈이다. 학교에 가서 별로 한 것도 없다. 사진과 제반 필요한 서류 작성해서 제출하고 학번 받아서 수강신청 요령 등을 듣고 온 것이다. 소요된 시간은 2시간이었다.

기차는 그래도 나은 편인데 버스는 정말 괴롭다. 버스에서는 우선 흔들림이 심해 책을 읽기가 어렵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창밖을 바라보거나 자는 것 뿐이다. 게다가 정확한 도착 시간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승객으로 하여금 조급증이 생기게 만들며 계획성 있게 이동 시간을 사용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냥 잔다고 해도 숙면이 되지 않아 피곤하긴 매한가지다.

이번 학기 시간표를 짜 보니 하루에 두 시간만 들어 있는 날도 있다. 그 두 시간을 위해 7시간을 버려야 된다 생각하니 정말 화가 치민다.

그렇다고 자취를 할 수도 없고... 이래 저래 머리 아픈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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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사진

롤플레잉 2006. 2. 27. 23:12
여권 갱신을 위해 오랜만에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었다. 예전에는 증명사진을 찍을 때 필름을 함께 주던데 요새는 그런 것도 없는지 그냥 사진만 몇 장 준다. 하긴 이제껏 받은 필름을 재활용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별로 손해는 아니다. 필요하면 또 찍자.

내 손에 쥐어진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턱선이 완전히 무너진 수더분한 아저씨가 날 보고 있다. 이상하게도 매일 보는 거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세월이 사진 속에는 온전히 담겨져 있다.

이래서 내가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 기분이 또 나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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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뜨는 소

롤플레잉 2006. 2. 26. 22:17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다. 역시 시간은 내 편이 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치과 가기가 꺼려진다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버틴다 해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닌 것이다. 늘 그렇듯이 이빨을 너무 늦은 상태로까지 몰고 가서 결국엔 치통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나서야 동네 치과 문을 두드렸다.

치과를 꺼리는 이유는 앞서 말한 바와 같지만 실은 아주 억울하고 원초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내 치신경의 문제인데, 난 원래 이빨 마취가 잘 안 되는 타입인 것이다. 더이상 어떻게 절망적일 수가 있을까.

간밤의 치통으로 벌써 기운이 하나도 없는 상태이지만 집을 나서면서 벌써 치과에 갈 수 없는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처음 들른 의원에서 예약 손님 때문에 오늘은 더이상 손님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돌아서면서 어이 없게도 안도의 한숨을 쉬기까지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금 엄습하는 강한 통증만 아니었던들 두 번째 의원으로 발길을 향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취 들어갑니다. 잠깐 따끔할 거예요."
"예..."
하지만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다. 혀끝으로 이빨을 살짝 건드려 보니 감각이 아직 살아 있었던 것이다.
"자 이제 치료 시작합니다. 아프면 왼손을 살짝 드세요."
"..."
윙 하는 드릴 소리가 나자마자 왼손이 번쩍하고 올라갔다. 동시에 신음소리와 함께 온몸이 뜰썩였다.
"어... 아프세요?"
"음음..."
"마취가 잘 안 되었나 보네요. 다시 합시다."
"..."
다시 마취 주사를 놓은 의사 선생은 나를 치료대 위에 버려 두고 그동안 다른 환자를 받았다. 나는 덩그러니 내버려진 채 누워서 천장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자 다시 시작합니다. 아프면 말씀하세요."
"음음..."
이번에도 역시 신음소리와 함께 치료대가 요동쳤다. 마취가 되지 않은 것이다. 온몸이 공중에 뜨는 것 같았다. 허영만의 비트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이민'의 별명이 순간 생각났다. '누워서 뜨는 소'가 이런 건가... 로렌스 올리비에가 마취도 않고 더스틴 호프만을 고문하던 마라톤맨도 떠올랐다. 나만큼 그 영화에 감정이입된 사람도 없으리라... 간호사가 한마디 했다.
"선생님, 어쩌죠?"
"휴~ 큰일이네... 할 수 없군. 이빨 안으로 주사 바늘을 찔러 넣어 보자..."
이러저러한 방법을 동원하여 결국은 여섯 번의 마취 시도 끝에 의사 선생은 포기해 버렸다. 환자도 의사도 간호사도 모두 지쳤다.
"할 수 없네요. 마취가 안 됩니다. 그냥 좀 참으세요."
"!!..."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때의 아픔이 떠올라 고통스럽다. 사실 순수하게 치료만 한 시간은 5분도 채 안 되었으나 의사 선생은 그동안 마취가 되기를 기다리는 나와 다른 환자들 사이를 바삐 오가는 바람에 이빨 하나 치료하는 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주말을 진통제로 버티고 내일 또 전쟁을 치르러 가야 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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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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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돌잔치

패밀리 2006. 2. 26. 20:40
금요일부터 2박3일로 부산에 다녀왔다. 딸의 돌잔치 때문이다. 남들처럼 뷔페식으로 잔치를 할까 하는 생각도 없진 않았으나, 우선 본인이 별로 원하는 눈치가 아니고, 풍악을 울려 가며 요란스럽게 하는 돌잔치치고 주인공이 힘들어하지 않는 경우를 별로 못 보았으므로 그냥 가족들끼리 밥이나 먹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간소하게 한다고 해도 돌상 차리고 친척들 부르고 하니 예상보다 거해진 면이 있다.

금요일과 일요일 이틀은 운전하느라, 토요일은 하루 종일 딸 안아주느라고 기운이 다 빠졌다. 딸은 집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가 밖으로 나가면, 즉 낯선 곳에 가면 유난히 아빠를 많이 따른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행동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잖아도 요새 무릎이 아픈 아빠로선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평소 하는 짓으로 보아 돌잡이에서는 단연 연필이 유력했으나 쌀을 먼저 집고 다음에 연필을 잡아,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아무리 가족끼리 하는 것이라도 사진도 찍고 그러다 보니 역시나 주인공은 힘들다. 본인도 그러하고 엄마 아빠도 그렇지만 돌 이것도 역시나 두 번 할 짓은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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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나야 그렇다 쳐도 주위에 보면 평소 운동 열심히 하고 건강 잘 챙길 것 같은 사람들 중에서도 유독 치과 가는 것만큼은 꺼려하여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치통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고통 중에서도 아주 날카롭고 소름 끼치는, 그러므로 어지간히 무던한 사람이라도 참기 힘든 통증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참기 힘들어 밤잠을 설치는 단계에 와서야 마지 못해 치과 문을 두드리게 된다. 대체 왜 그럴까.

내 경우에 치과가 두려운 이유는 이빨이 아파서가 아니다. 아픈 이빨을 낫게 해 주는 곳인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그렇다면 뒤로 젖혀지는 의자에 누워 윙 하는 소릴 내면서 돌아가는 드릴 소리가 겁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다. 한두살 먹은 어린애라면 모르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정작 무서운 것은 '과연 의사 선생이 환자의 이빨을 자기 것처럼 소중하게 다루어 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이다. 아무리 아픈 이라지만 그래도 내 몸의 일부이다. 그런데 의자에 누워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는 환자의 귀에 의사 선생의 "빼야겠네요..." 라는 무심한 한마디가 꽂힌다. 이런 말을 들으면 과연 자기 이빨이라도 그런 생각을 할지 솔직히 의심스럽다. 이빨은 한 번 뽑거나 갈아내면 다시 붙일 수가 없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치과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지게 된 데에는 두 가지 계기가 있다.

군입대를 앞두고 고향 부산에 내려와 있을 때였다. 친구의 형이 치과대학을 갓 졸업하고 동네에 개업을 했다. 달리 할 일도 없던 차라 가끔 그 치과에서 일도 도와주고 술도 얻어마시곤 했다. 의사 한 명과 간호사 한 명밖에 없는 작은 의원이라 나도 형 옆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도왔다. 그러던 어느날 한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왼쪽 아래 어금니가 심하게 상해서 신경 치료에 들어갔다. 무사히 치료를 마치는가 싶었는데 그만 형의 손이 삐끗하여 어금니 밑의 동맥을 잘라버린 것이다. 거짓말처럼 피가 퐁퐁 솟아올랐다. 내가 헉 하는 소리를 내며 한 걸음 물러났을 때 형도 당황한 듯 움찔했지만 이내 날 돌아보며 눈을 찡긋했다. 그러더니 잽싸게 실로 상처를 봉합했다. 동맥이라 쉽지 않았지만 거의 재봉틀 바느질 수준으로 몇 겹을 꿰매어 나가니 좀처럼 멈출 것 같지 않던 피도 어느새 멎어 있었다.
"집에 가시면 마취가 깨면서 많이 아프실 거예요."
"..."
"어금니가 엄청 심하게 상해서 그래요. 많이 아프시면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 드세요."
"..."
아무 것도 모르는 아주머니는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남긴 채 돌아갔다. 아마 다른 의원을 찾아가지 않는 이상 그날의 의료사고는 묻혔을 것이다.

또 하나의 사건은 군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상병 계급으로 겨울을 날 때였다. 찬물을 마실 때 송곳니가 조금씩 시려 오길래 군병원을 찾았다. 군의관은 "충치구만" 이라는 한마디 외엔 별말도 없이 내 이빨을 드릴로 한참을 갈더니 다 되었다고 돌아가라는 것이다. 솜을 꽉 물고 있다가 병원 문을 나서면서 뱉었는데, 갑자기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때마침 불어온 포천의 차가운 겨울 바람 때문이었을까. 맞다. 바람 때문이다. 그런데 평소와는 느낌이 좀 다르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뭔가 허전한 것 같은데... 아니 이럴수가... 이를 꽉 다물었는데도 입 속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오는 게 아닌가. 다시 병원 문으로 뛰어들어가서 복도에 있는 커다란 거울 앞에 섰다. 노래 가사와도 같이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아 글쎄 내 송곳니가 뿌리쪽 약간만 남고 삼분의 이 가량 없어진 것이다. 군의관 이 얼빠진 놈이 기껏 했다는 치료가 아픈 이빨을 아예 갈아내 버린 것이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상대는 장교다. 그 다음 주말에 외출증을 끊어 시내 치과를 갔더니 의사 선생 말이,
"아니 대체 누가 이빨을 이렇게 망가뜨렸어요?"
"..."
"안되겠네요. 뽑아야겠는걸..."
이빨 뽑으며 속으로 많이 울었다.

환자의 이빨을 자기 것처럼 소중하게 다루는 솜씨 좋은 치과 어디 없나. 혹시라도 알고 계시는 분은 추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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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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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유감

롤플레잉 2006. 2. 23. 13:54
인터넷 뉴스에 달린 덧글을 보면 등골이 오싹하다 못해 슬픔이 밀려올 때가 많다. 어제 네이버 뉴스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대입실패 재수생, 한강투신후 "살려달라" 외쳐 구조 [from 네이버 뉴스]
그런데 이 뉴스에 달린 글을 보면 정말이지 슬퍼진다.
'찌질이...에효'
'완존 웃찾사 구만..'
'쿠쿠 두렵나?'
'핳핳핳핳핳핳 비굴하다 정말.......'
'죽으려면 바닥이 딱딱한 곳으로 떨어져야지 .. '
아니, 사람이 죽다가 살아났으면 다행으로 여겨야 되는 거 아닌가? 자기 친구나 동생이 저런 상황에 처했어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도대체 인간의 잔인함은 어디까지일까...

햇볕은 쨍한데 기분은 눅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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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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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마님 들어오세요."
"예..."
집 근처 정형외과에서 두 시간을 기다려 겨우 진찰실에 들어갔다. 세상에나... 거리에 노인들이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병원 대기실에 다들 모여 있는 것이다. 시장바닥과 다름 없다. 이렇게만 장사가 된다면야 의과대학 안 갈 이유가 없다. 요새 문 닫는 병원도 많다던데 다 거짓말인가...
"어디가 아프신가요?"
"예. 양 무릎이 아파서요."
"어디봅시다. 자~ 바지를 올려 보세요."
"..."
"여기가 아픈가요."
"아얏!"
"흠... 언제부터 아픈거죠?"
"며칠 되었어요."
벌써 두 달째 러닝머신 위에서 하루 한 시간씩 걷고 있다. 갑자기 몸무게가 10킬로 정도 늘었기 때문이다.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강호동이 될 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런데 요 며칠 사이 아침에 일어날 때 무릎이 시큰거린다. 계단을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로 아프다.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영 나아지지 않아서 혹시 러닝머신 때문인가 하고 동네 병원을 찾은 것이다.
"러닝머신을 두 달째 하고 있어요."
"그것 때문이네요."
"여태까지 멀쩡했는데 며칠 전부터 갑자기 아프네요."
"그동안 무릎의 피로가 누적되어 온 거겠죠. 암튼 사진을 찍어 봅시다."
두 시간 기다린 것도 모자라 또 얼마간을 기다려 엑스선 사진을 찍었다.
"역시나 무릎 연골이 문제네요."
"며칠 쉬면 나아질까요?"
"빨리 치료해야죠. 이 방 옆의 물리치료실 봤죠? 이대로 두면 거기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돼요."
"그게 무슨 소리죠?"
"관절염이 된다는 얘기죠."
이 나이에 관절염이라... 아직 딸 유치원도 안 보냈는데 그놈의 '글루코사민' 신세를 져야 한단 말인가.
"그럼 치료하면 완치되는 거죠?"
"음... 일단 증상은 완화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몸무게를 줄여야죠."
"어떻게요?"
"다이어트에는 걷는 운동이 좋아요."
"그럼 러닝머신을 계속 하라는 건가요?"
"아뇨. 지금은 무리죠. 몸무게를 줄인 다음에요."
'이 인간을 확 그냥~!!'
다행이다. 역시 교육의 효과는 오래 간다. 사람이 모든 일에 성질대로 하고 살 수는 없는 거다. 그래 참자...
"저어 선생님... 그러시면 무릎을 치료하자니 다이어트를 해야 되고, 다이어트를 하자니 러닝 머신을 해야 되고, 러닝 머신을 하자니 무릎이 아프고... 어쩌면 좋은가요?"
"에~ 그런 문제점이 있죠..."
도그마 성질 많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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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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