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학교 다녔을 때 도서관과 조금만 더 친했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모르긴 해도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에는 도서관이라는 장소가 나랑은 전혀 관계 없는 곳인줄만 알았다. 내 스스로도 내가 도서관에 앉아 있는 모습이 상상이 되질 않았다. 도서관 앞에 붙어 있는 '어제 OO실에서 제 가방을 가져가신 분께. 다른 것은 마음대로 처분하셔도 좋지만 OOO 노트만은 꼭 돌려 주세요...' 같은 글을 보면서도, '그것 봐라. 괜히 도서관에 가니까 저런 걸 잃어버리지...'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처음엔 도서관에서 동기들을 마주치면 녀석들 얘기가 '어쩐 일이냐.' 정도였지만 나중에는 '누구 찾으러 왔니?'가 될 정도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누구 찾으러 갈 때가 아니면 내가 도서관에 왜 가겠는가. 참으로 웃기는 것은 그런 내가 도서관 아르바이트로 장학금도 받았다는 사실이다.

작년에 다시 학교 들어갈 준비를 하면서 도서관과 다시 인연을 맺었다. 워낙에 도서관에 대한 선입관이 있는지라 적응하기 힘들줄 알았지만 의외로 도서관이라는 곳이 괜찮은 곳이었다. 우선 많은 책을 이것저것 골라서 마음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대형서점에서도 가능한 일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불편하게 서서 보는 것과 여유있게 허리 펴고 앉아서 보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게다가 시끄럽지 않아서 좋지 않은가 말이다. 피곤하면 졸아도 괜찮다. 친구 R처럼 자다가 침으로 빈대떡을 부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몇 번을 생각해도 이거 정말 괜찮은 장사다. 아니 왜 예전엔 이런 좋은 곳을 몰랐단 말인가.

도서 대출 코너에 앉아 있는 아저씨 또한 도서관에 대한 인상을 바꾸는 데 한몫을 했다. 영등포 도서관의 대출 담당 아저씨의 표정을 본 사람은 누구라도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을지 모른다. 아~ 그 평온한 얼굴이란...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다 털어내고 무심의 경지에 이른 듯한 그 얼굴. 느릿느릿한 손길이 책에 닿는 순간 띡~ 하고 바코드 읽는 소리가 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은 '아... 저런 거 나한테 시켜 주면 정말 잘 할 수 있는데... 이러다가 오후 5시가 되면 퇴근 준비를 하겠지. 부럽다...' 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공부하면서 도서관학과로 갈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학교에서도 공강 시간에는 주로 도서관에 앉아 있다.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도서관 체질이 된 것은 아니다. 사실 어디 갈 곳이 마땅치 않은 까닭이다. 동아리에 든 것도 아니고 학생회실에 앉아 있기도 좀 그렇다. 학생 휴게실은 도무지 시끄러워서 10분을 앉아 있기 힘들다. 적극적으로 찾았든 혹은 다른 대안이 없어서이든 간에 어쨌거나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것은 좋은 일이라 하겠다. 공부는 습관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내가 이 공간을 예전처럼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물론 나중에 본격적으로 입시공부를 하게 되면 또 지겨워지겠지만...

도서관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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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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