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생신이라 오랜만에 처가 식구들 총집합하여 노래방에 갔다. 언제나 옛날 그대로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이런 자리에 오면 그렇지도 않다. 점점 부를 노래가 줄어드는 것이다. 신곡은 당연히 알 리 없고 옛날 노래는 자꾸 내 기억 속의 리스트에서 없어져만 간다. 사위들 노래 한 곡씩 하라는데 메뉴를 붙잡고 한참을 씨름하고서야 고른 곡이라는 게 윤수일의 '아파트'라니. 그나마 학창시절의 응원가가 아니었다면 이마저도 힘들었을지 모른다. 고맙다 아카라카. 너희들이 정녕 쓰레기만은 아니더구나.

젊은 사람들과 앞으로 노래방 갈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미리 최신 노래 몇 곡은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내는 말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한 일을 위해선 또 그만큼의 정열이 필요하다. 내 인생에서 새 노래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서태지까지였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린다. 가사도 궁금해지지 않는다. 에픽하이의 'Fly'라는 노래도 라디오에서 들을 때 가사를 'You can fry'로 듣고 달걀 프라이를 권장하는 노래인가 했었다. (실제로 내가 보기엔 에픽하이의 발음이 문제가 많다. 내 생각엔 얘들이 일부러 이런 장난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한때는 나도 노래방에 꽤나 자주 드나들었던 적이 있다. 군대 가기 전이었는데 학교 앞 단골 만화방 주인네가 차린 노래방이었다. 다른 곳에 비해 특별히 시설이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만화방 단골이라 주인 아줌마의 기분에 따라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었고, 다른 노래방과 달리 배경화면으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그 당시 그 노래방에서 보았던 영화 중에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제레미 아이언스의 '데미지'라는 영화다. 감정 잡고 노래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아 글쎄 화면에서 갑자기 이 아저씨가 팬티도 걸치지 않은 채 쌍방울을 딸랑딸랑 울리며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마이크를 떨어뜨렸다. 누군가 뒤통수를 확 후려치는 기분. 영화 제목이 왜 데미지인지 바로 알아버렸다.

신촌에 가 보면 노래방은 없어진 것이 확실한데 지나가면서 얼핏 보니 만화방은 아직 그대로 있는 것 같다. 주인이 그대로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음에 시간 나면 꼭 들러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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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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