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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1.30 밥이 보약?
  2. 2006.01.29 직립보행
  3. 2006.01.29 웃음의 공감대
  4. 2006.01.28 썩은 물 퍼내기

밥이 보약?

롤플레잉 2006. 1. 30. 23:21

결국 한의원에 갔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내키지 않는 걸음을 한 것이다.

사실 나로서도 상당한 위기감이 왔다. 근래에는 딱히 이렇다할 이유도 없이 계속 아팠기 때문이다. 찬바람이 약간만 불어도 어김 없이 감기 기운이 찾아왔다. 심지어 집 앞 가게에 다녀와도, 샤워만 해도, 창문만 열어 놓아도, 보일러 전원만 내려도 금새 열이 나고 오한, 두통에 시달리는 것이다. 두통약, 몸살약을 계속 달고 살았다. 마침내 새벽에 몸살과 함께 도적같이 찾아온 속쓰림에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서야 병원에 갈 마음이 생겼다.

아내랑 나는 살면서 몇몇 부분에 있어 참으로 잘 맞는 부분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말 많은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한의원행은 처음부터 어긋나 버린 면이 없지 않다. 왜 이리 말이 많은 것이냐. 물론 의사 선생은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환자를 마음 편하게 하려는 심산이었겠지만, 그런 의도로 내뱉은 농담이 나랑 아내를 처음부터 기분 확 나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덩치가 좋군요. 한 100킬로는 나가겠는 걸~"
      "연예인 닳았다는 소리 못 들었어요? 누구더라~ 아 생각났다. 김제동!"
      '이 인간이 어딜 같다 붙이는 거야... 쩝...'
가뜩이나 불어나는 체중에 예민해져 있는 내게 100킬로라니. 무슨 저주도 아니고... 그리고 누구? 김제동? 길에서 이런 말을 들었으면 드잡이를 놓을 수도 있는 도발 아닌가...

시작이 이러하니 문진이 어찌 되었겠나. 나름대로 의사 선생은 적극적으로 상태를 물었지만 환자가 퉁명스럽고 짧게 딱딱 끊어 대답을 하니 진도가 제대로 나갈 리가 없다.
       "근데 부인이 남편보다 안색이 더 안 좋아... 이렇게 창백한 걸 봐..."
       "예? 그럴리가요. 전 아픈 데 없어요."
       "맞아요. 이 사람이 얼마나 건강한데요."
       "아녜요, 아녜요. 겉으론 건강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그렇지가 않아요. 깡으로 버티고 있는 겁니다."
       "푸훗... 깡으로요?"
건강하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아내까지 보약이 필요하다는 얘기에 와서는 부부가 거의 의사 선생을 장사꾼 정도로 취급해 버렸다.
하지만 내가 환자라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과, 오늘 여기서 아무런 소득 없이 일어서면 또 날을 잡아서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 게으름으로는 하늘이 내린 궁합인 우리 부부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여서 결국은 약을 지어서 먹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의사 선생이 내린 나의 상태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껍데기만 남고 속은 완전히 바닥이 났다는 것이다. 즉 기름 없이 굴러가는 자동차 정도로 비유하면 되겠다. 체력, 기력, 양기 등등 컨텐츠라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안 남아 있단다. 맥도 잘 안 잡히는 수준이라나 뭐라나... 뭐 장황하게 말했지만 결론은 보약 한 재 지어 먹으라는 얘기였다. 물론 의사 선생 본인은 이 처방이 보약이 아니라 치료약이라고 강조했지만 멀쩡한 사람이 아무리 들어 봐도 그걸 지칭하는 우리나라 말은 보약 말고는 없는 듯했다.
       "근데 여기다가 단기간에 효과를 보려면 녹용을 쓰면 좋아요..."
       "아... 그런가요?"
       "녹용을 쓰면 짧은 시간에 몸이 화악~ 올라오지..."
녹용이 부스터나 스팀팩 정도 되는 모양이다.
       "근데 녹용을 쓰면 약값이 좀 올라가지."
       "얼마나 올라가는데요?"
       "녹용 안 쓰면 20만원, 쓰면 한 4~50만원..."
       "!!!..."
대번에 환자 인상이 험해지는 것을 보더니 바로 말이 바뀐다.
       "일반 약재도 효과 좋아요..." 
       "..."

우여곡절 끝에 20만원을 주고 한약을 지어먹었다.
한약은 다 좋은데 먹기가 지랄같다. 입에 써서 힘든 거야 어릴 때 얘기지만, 시간 맞춰서 빼먹지 않고 꾸준히 먹기가 어렵지 않은가... 아무튼 평소 자신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도 대견스러울 정도로 이번 약은 잘 먹었다. 복용시 금하는 음식도 가려 먹고 공복이나 식간을 지키라는 지시사항도 그럭저럭 따랐다.
하늘이 무심하지 않다면 환자의 이 정도 정성에는 뭔가 응답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 응답이 있긴 있다. 그런데 예상치 않은 곳에서의 응답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몸은 별로 나아진 게 없는데 왜 식욕만 마구 올라오느냐는 거다.
하루 세 끼도 모자라서 밤 12시가 다 되어서도 걷잡을 수 없이 밥이 땡긴다. 몸 속에 새생명이 자라는 게 아닌 이상 이럴 수는 없는 거다. 혹시 밥이 보약이라더니 의사 선생이 의도한 것이 이것이란 말인가... 밥 잘먹고 힘 내라고? 설마 진짜로 100킬로로 만들 생각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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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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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립보행

패밀리 2006. 1. 29. 14:32
나의 유아기 시절에 대한 기억력은 남다른 데가 있는 것 같다. 길지 않은 인생이나마 이제껏 살아오면서 나만큼 유아기 시절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을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
난 어머니의 젖을 먹던 시절을 기억한다. 어머니의 젖의 감촉도 기억한다. 그 시절 난 오른쪽으로 눕는 자세를 훨씬 더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기저귀를 갈아주는 어머니의 손길, 누워서 양손에 분유병을 쥐고 바라본 천장의 벽지 무늬...
내가 생각해도 참 별일이다.

이제 내가 딸을 키우는 입장이 되니, 내가 요만할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서 참 재미있다. 지금 생각하기로도 난 분명히 키우기 쉬운 아기는 절대 아니었다. 밤늦게까지 안 자고 울어댔으며, 목욕하기 싫어서 난리를 치고, 도망도 다니고...
자식 키워 보면 부모님 마음을 안다고들 한다. 그러나 나만큼은 아닐 거다. 현재 내 딸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 나의 어릴 때 모습과 직접 비교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의 나와 놓고 보면 정말이지 우리 어머니는 대단하시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것은 내 기억력이 미완성의, 아주 중요한 부분은 잃어버린 기억이라는 점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난 비교적 또렷하게 유아기 시절의 내 일련의 행동을 기억하긴 해도, 정작 중요한 그 행동의 동기, 즉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는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다는 거다.
행동의 동기가 왜 중요한가. 바로 현재 딸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분명 그 때 나도 특정한 상황에서 엄청 많이 울었고, 지금의 딸도 비슷한 상황에서 울어댄다. 근데 화가 나는 것은 왜 이놈이 우는지는 전혀 모르겠다는 점이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내가 그시절 이맘때 그랬듯이, 딸도 현재 걸음마를 배우고 있다. 몇 걸음 못 가서 바닥에 나동그라지기도 하고, 탁자 모서리에 찧어서 자지러지게 울기도 한다. 분명히 지금 상태로선 기어가는 것이 훨씬 정확하고 빠르다. 기는 게 별로 맘에 안 들면 걷는 것보다는 안전한, 무릎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왜 굳이 기를 쓰고 험한 길을 가려는 것일까. 신생아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냥 누워 있으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을텐데, 왜 굳이 뒤집으려고 온갖 방법을 다 쓰는 것일까. 뒤집는다고 해서 뭐 먹을 게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일껏 뒤집어놓고는 숨쉬기조차 어려워하지 않는가 말이다.

인간의 특징 중에 하나가 직립보행이라고 학교에서 배웠다. 그렇지만 딸을 보며,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직립보행 자체가 아니라 그 의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전혀 아쉬울 것 없는 현재를 넘어서려는 그 본능과 같은 의지가 아니었다면 인간이 두발로 땅을 딛고 설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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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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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을 초월한 절대적인 웃음의 코드가 있을까?
원래 TV 시청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다큐멘터리나 뉴스도 아닌 코미디 프로그램을 즐겨 볼 정도로 정성이 뻗칠 리가 없다. 근래에 들어 예외가 하나 생기긴 했는데, OCN에서 방영하고 있는 CSI가 거의 유일한 고정 시청 프로그램이다. 그리하여 예능 프로그램은 식사 시간에 틀어놓고 보는 정도가 전부에 가깝다.

얼마전 우연히 KBS에서 폭소클럽의 '올드보이'라는 코너를 보게 되었다. 문자 그대로 개그계의 올드보이 최양락이 나와서 진행을 하는데, 시쳇말로 한물 간 희극인들이 나와서 추억의(?) 개그를 선보이는 자리였다. 그날의 인물은 80년대에 나름대로 꽤나 인기를 끌었던 박세민이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느끼개그'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야~ 어떻게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도 박세민이 이렇게 재미가 없었던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그때와 지금의 내용이 달라진 건가... 그것도 아니다. 목소리는 전성기때와 다름 없었다. 물론 늘어난 뱃살이나 목살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당시의 이미지를 구길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 지루하고 재미 없을 수가 있나... 하긴 전성기의 박세민을 지금 머리 속에 떠올려도 역시나 지루하다. 코미디는 그 시대상을 반영한다더니 그래서 철지난 개그는 재미 없는 것일까?

뭐 그렇다고 현재의 웃음의 코드를 내가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무실에서 남들이 '그때 그때 달라요~'를 얘기할 때도 그게 무슨 얘긴지 전혀 몰랐고, '이 세상에 날씬한 것들은 가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와~ 엄청 용감하구나... 근데 별로 뚱뚱하지도 않은 사람이 뭐 저런 얘길 다 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더랬다. 공감대의 붕괴가 올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작정하고 한달을 코미디 프로그램에 투자하고서야 남들 웃을 때 적당히 따라 웃을 수 있는 수준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또다시 방심하는 사이에...
'북경오리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뭘 어쩌라는 거냐... 저게 왜 웃기는 거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옛날 개그는 이제 시시하고, 요즘 개그는 도무지 따라가기가 힘들고... 난 아무래도 동시대인들과의 공감대가 부족한 것 같다. 물론 그들과 코드를 맞추는 것도 이젠 좀 지쳤다.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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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물 퍼내기

롤플레잉 2006. 1. 28. 20:30
단 한 줄의 일기도 쓸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게 시간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나서야 그것이 절대 이유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글쓰기는 마치 우물에서 물을 긷는 것과 같아서 자꾸자꾸 퍼내다 보면 말라 버릴지도 모른다는 핑계도, 이 게으름을 영원히 덮어줄 수는 없는 일이다.
마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썩어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하여...
급한 마음에 우선 썩은 물을 조금씩이라도 퍼내기로 한다.

어떤 것이 두레박에 걸려 나올지는 현재로선 내 영역 밖이다.
그저 이놈의 게으름을 퍼내고 남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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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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