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동안 Walter Moers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라는 소설을 보고 있다. 집에서 진득하게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번에 깨달았다. 책을 펴들자마자 바로 내용에 몰입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앞에 읽었던 부분도 다시 확인하고 끊어졌던 상상력을 최대한 이어서 다시 시작할라 치면 어김없이 딸이 무슨 일인가를 만들어낸다. 아무튼 이런 악조건(?) 속에서 오랜만에 소설을 보고 있는데...

책과 문학을 소재로 한 판타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재밌다. 용과 오르크, 늑대 등이 나오는 판타지는 이제 너무 많지 않은가. 아참, 여기도 용은 아니지만 공룡은 나온다. 주인공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의 고향 린드부름 요새의 주민은 문학을 사랑하는 공룡이며, 미텐메츠도 아직 출판한 책은 한 권도 없지만 시인을 지향하는 공룡이다. 절대 싸움 잘하는 족속은 아니니 실망하지 않길 바란다. 판타지 문학이 대개 그러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만들어 놓은 세계인 차모니아도 꽤나 매력적이다. 사실 이 소설의 주무대인 부흐하임(책들의 마을이라는 뜻이다)이라는 도시는 책과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로망의 도시이지만, 또한 출판산업의 추악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음~ 본의 아니게 글이 책 소개로 흐르는 듯하여, 소설 내용은 여기까지. 이 책에서 재밌는 것은 차모니아 문학가들이 만든 책의 제목이다. 몇 가지를 인용하자면, 『털양말을 신은 호랑이』, 『면도를 한 혀』,『삶은 신선한 돼지고기 속의 생쥐 호텔』, 『오직 어제만 짖는 개』, 『나의 순간들은 너희의 머리카락보다 길다』, 『상처 입은 고마움』등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그 내용이 궁금해지는 책의 제목은 『비웃음을 안 당한 우스운 케이크』인데 유머의 거장 아네크도치온 페카의 전설적이고 희극적인 인생사를 다룬 책이란다. 제목만으로도 나의 상상력이 자극이 된다. 이러한 제목의 책을 실제로 만나보고 싶다.

책을 사랑하는 외눈박이 괴물 부흐링(책 마니아라는 뜻이다)족이 주인공에게 조언하는 말들도 인상적이다.
수식어는 주어의 천적입니다.
괴기소설은 목덜미에 차가운 행주를 걸친 채 쓰는 것이 가장 좋아요.
한 명의 시인이 표절하면 절도이지만, 많은 시인들이 표절하면 그것은 탐구입니다.
두꺼운 책들은 지은이가 짧게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두꺼워진 겁니다.
소설 내용을 떠나서 이런 뜻하지 않은 언어 유희가 글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어제는 이 소설의 저자가 만들었다는 '차모니아 야간학교'라는 사이트를 보기 위해 독일어를 공부할까 하는 미친 생각도 잠깐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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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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