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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4.22 여행을 떠나고 싶다
  2. 2006.04.20 휴전선, 환율
  3. 2006.04.17 뇌의 신비
  4. 2006.04.13 역시 자율이 어렵다
  5. 2006.04.12 고속도로 전광판
  6. 2006.04.11 싸으시고와 어리섞지
  7. 2006.04.10 내리막
  8. 2006.04.08 부모의 마음
  9. 2006.04.07 할부 안 해요
  10. 2006.04.07 묘사와 미적분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다.

원래 시험기간이 되면 공부 외엔 뭐든 하고 싶어지는게 인지상정 아닌가. 예전에는 주로 책을 보고 싶었다. 꼭 공부 못하는 인간들이 시험기간에 다른 책을 찾는 것 같다. 참 이상한 것이, 시험칠 과목의 책만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재밌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그 내용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기까지... 그래서 시험기간만 되면 '오늘의 책'이나 학교 구내서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기어이 몇 권을 손에 쥐고 돌아오기도 했다. 물론 시험이 끝나는 순간 거짓말처럼 마법은 풀리고 사 놓았던 책은 그대로 책장에서 썩는 법이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선 아무래도 책보다는 게임이 주류가 되었다. 꼭 마감 시간 받아 놓고선 게임 CD를 만지작거린다. 새 게임을 받아서 설치도 해 보고, 예전에 하던 게임도 한 번씩 점검해 준다. 요 한판만 끝내고 일을 시작하리라 다짐하지만 어느새 한판이 열판이 되고 새벽 세시를 넘겨서야 진한 커피 한 잔 마시고 울면서 일을 시작한다.

원래는 여행을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다. 등산의 경우도 산을 올라가지 않고 밑에서 바라보는 걸로 만족하는 나로선, 굳이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멀리 떠날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었다. 여행이 주는 재미보다는 고생스러움이 먼저 머리에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여름 피서철에 멀리 움직이는 것은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렇잖아도 날도 더워 짜증스러운데 사람들 바글대는 곳에 비싼 돈 줘가며 찾아간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래서 대부분의 여름 휴가는 방콕행이다. 국내 여행도 이러할진데 해외 여행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해외 여행이라곤 신혼여행이 전부다. 게다가 그것도 함께 간 사람 때문에 즐거운 여행이지, 사실 돌이켜 보면 그다지 알찬 여행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태국 문화에 깊이 감명 받은 것도 아니고, 먹거리를 제대로 섭렵하고 온 것도 아니고, 기암절경에 넋을 놓은 것도 아니다.

요즘은 이상하게 여행을 가고 싶다. 그것도 멀리 떠나고 싶은 것이다. 예외적으로 예전부터 몽골의 고비사막엔 꼭 가보고 싶은 맘이 있었지만, 그것은 내 인생에 언젠가 한 번은 가 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일 뿐이었다. 언제 어떻게 가리라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래서 해외 여행을 꿈꾸는 지금도 그 행선지에 몽골은 들어가 있지 않다. 또한 서유럽이나 미주는 단호하게 제외된다. 도무지 걔네들이 사는 모습은 궁금해지지가 않는다. 최근 내 관심을 끄는 곳은 동유럽이나 지중해 연안 국가들이다. 그 중에서도 이 엄중한 시험기간 내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곳은 터키다. 이스탄불에서 누가 날 초청한 것도,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왜 그곳인지는 모르겠다. 이제 곧 여름이 되면 시원한 알프스가 생각날 법도 하건만, 날도 더운 지중해에 왜 가고 싶은 건지. 혹시 얼마전 다시 잡았던 '대항해시대'의 영향인가...

덕분에 생전 처음으로 여행사 사이트도 기웃거려 보았다. 비용이 턱없이 많이 든다. 패키지로 가야 할지, 배낭여행 형식으로 가야할지도 잘 모르겠다. 게다가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딸은 대체 어디다 맡긴단 말인가. 아니 맡길 곳이 있어도 그렇다. 장기간 부모랑 떨어져 있는 게 어린 딸에게 좋을 것 같지 않다. 아무튼 나를 둘러싼 객관적인 상황으로 본다면 여행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이놈의 시험기간이 주는 특수한 상황은 언제나 사람으로 하여금 터무니 없는 바람을 갖거나 공상을 하도록 만든다.

그래... 막상 실제로 출발하려 하면 역시 귀찮을지 모른다. 역시 이 모든 책임은 시험이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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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환율

롤플레잉 2006. 4. 20. 19:24
군대 있을 무렵이니까 아마도 95년이나 96년일 것이다. 그즈음 난 내무반에서 가장 많이 외박을 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친구 S 때문이었는데, 거의 매달 면회를 와서 날 서울로 빼내어 가곤 했다. 약혼자라 해도 그 정도로 정성이 뻗칠 수 있을까. 암튼 S는 그 일 하나만으로도 천국에 갈 요건은 충분히 갖추었다. God bless him!

그러던 어느 달엔가 갑자기 외출 외박이 전면 금지되었다. 북한군의 거동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무슨 일에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북측의 3개 사단이 휴전선 쪽으로 전진 배치되었으므로 우리 군도 경계 상태에 들어갔고, 그 영향으로 당분간 정기 휴가를 제외한 일체의 바깥 나들이를 금한다는 내용의 명령이 각 부대로 내려왔다. TV 뉴스에도 같은 내용이 흘러나왔다. 이런 썩을... 하지만 내가 누군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어나가는 집념의 당나라 군인 아닌가. 어떻게 서울로 튈까 고민하다가 결국 어머니께 도움을 청했다. 역시 '모친위독 급래요망'의 여덟 글자가 적힌 전보 앞에서는 휴전선의 긴장 상태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 달도 어김 없이 놀러 나가게 되었는데... 나와서 친구들한테 현재 이러이러해서 나오는 데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더니 친구 T 녀석이 하는 말이,
"크~ 북한군들은 휴전선에 얼굴이 딱 붙어 있겠네..."
"왜?"
"이제껏 걔네들 전진 배치되었다는 얘긴 들었어도 뒤로 물러섰다는 얘긴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
"음...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
요새야 이런 뉴스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당시만 해도 휴전선 얘기는 박정희 이후로 꾸준하게 우려먹던 국민 겁주기용 메뉴의 하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민들이 그런 내용으로 긴장해 주었기 때문에 말이다.

뉴스에서 환율이 또 내렸단다. 그래서 경제가 더욱 어렵단다. 환율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래도 나름대로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정말 혼란스럽다. 워낙 공부를 못해서 내가 이해를 할 수 없는 건지... 환율 얘기만 나오면 언제나 우는 소리다. 환율이 내리면 수출이 안 된다고 난리다. 국가 경제의 중요한 축인 수출 전선에 크나큰 타격이 온단다. 이놈의 나라는 언제까지 가격 경쟁력으로만 승부할런지는 몰라도, 아무튼 환율이 내려가면 쌈마이로 내지르지 못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환율이 올라갈 때도 있는데 이때엔 그럼 뉴스에서 징징거리지 않는가 하면 또 그렇지가 않다. 이번엔 무슨 얘기를 하나 들어보면, 원료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원료 수입가가 올라서 타격이 막심하단다. 아니 그럼 어쩌란 말이냐. 환율이 올라도 울고, 내려도 울고... 대체 언제쯤 우린 환율로 웃을 수 있다는 거냐. 아니 환율이 올라서 수출이 더 많이 된다 해도 그만큼 손해 보면서 파는 거 아니냐. 이거야 말로 론스타 손가락질 할 게 아니라 진짜로 막아야 되는 국부 유출 아니냐.

환율이 오르내리면 분명히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의 두 가지 측면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런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을 수가 없다. 차라리 두 경우 모두 이래서 좋다고 홍보를 하는 것보다 더 화가 난다. 이 빌어먹을 얘기 뒤에 숨어 있는 논리가 대체 뭔지 알고 싶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환율이 내리니 국민들더러 올려달라는 거냐. 못살겠다고 울고 있으면 자동으로 조절되는 거냐. 환율... 혹시 이것도 휴전선처럼 국민 겁주기용이냐. 아주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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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신비

롤플레잉 2006. 4. 17. 18:41
심리학개론 중간고사 준비에 여념 없는 요 며칠, 거의 생물학에 가까운 심리학 내용이야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지만, 새삼 인간의 뇌(腦)라는 것은 정말 미지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열심히 암기하는데, 어째서 책을 덮는 순간 그 생생하던 기억이 모조리 표백된단 말인가. 참으로 신비하기 이를 데 없다.

제발 내일 시험치는 동안 만큼은 날아가지 말길...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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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학기부터 무려 20학점 아홉 과목을 듣고 있다. 단순하게 3학점짜리 여섯 과목만 듣던 예전에 비해 많이 벅찬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범대는 다른 학부와 달리 졸업 이수 학점이 많은데다가 3,4학년에는 수강 과목 조정이 어려워 1,2학년 때 조금 무리를 해 놓아야 한단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과목을 듣다 보니 관리가 쉽지 않다. 어떤 과목이 이번주에 휴강인지, 어떤 과목의 과제가 있는지, 시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등 여러모로 신경 쓸 게 많다.

그래도 아직까진 남들 따라가면서 그럭저럭 해 왔다. 수업 빼먹은 것도 거의 없고 과제도 지금까진 모두 제출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기특한 일이다. 그런데 처음 수강신청할 때엔 전혀 문제 없어 보이던 과목이 의외로 따라가기 어렵다. '엑셀과 파워포인트'라는 3학점짜리 과목인데, 나로선 거저먹기로 신청한 과목이었다.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는 전문적으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디가서 빠진다는 소리는 듣지 않고 살아온 데다가, 이 과목이 사이버강의라 수업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한 주 내에 자기가 가능한 시간에 사이트에 접속해서 수업을 들으면 되는 것이다. 즉 세 시간 만큼은 집에서 수업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좋은 제도가 있다니... 그런데 막상 해 보니 이게 제일 말썽이다. 한 주 동안 전혀 손도 안 대다가 마지막날 밤 11시 넘어서야 허겁지겁 사이트에 접속한다. 출석 확인에 급급하여 수업 내용도 그냥 건너뛰기 일쑤다. 어느새 시험이 다가왔는데 막상 응시하려고 하니 걱정이다. 시험도 기간 내에 응시하고 싶을 때 자율적으로 치르는 방식인데, 전혀 모르는 내용은 아니니 설마 엉망으로 성적이 나오랴만 그래도 시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으니 응시 확인 버튼을 누를까 하다가도 다시 취소 버튼을 누르고 만다.

이러다가 시험 기간도 넘기지 않을까 두렵다. 그냥 시간표가 있어 출석하는 게 더 마음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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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차를 직접 몰아 학교에 다녀왔다. 갈 때는 통학버스랑 거의 같은 시간이 걸렸으나, 올 때는 상당히 단축되어 두시간 조금 넘어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에는 출근길이라 강변북로가 막히니 어쩔 수 없다. 승용차로 움직이면 기다리는 시간이 없어지고, 출발 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 좋은 면도 있지만, 오며 가며 졸 수 없어 피곤한 면도 있다.

예전부터 고속도로 전광판을 보면 궁금한 것이 있다. 구간별 소요 시간이 그것인데, 이것을 대체 어떻게 산출하는지 알 수 없다. 도로공사 직원이 실시간으로 달려 보고 계산을 하는 건지, 통신원들이 알려 주는 것인지, 하늘에서 보고 측정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무인 장치가 있는 것인지 말이다. 전광판에 표시되는 정체 구간은 대체로 맞다. 그런데 소요 시간은 나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내 운전 실력으로는 도저히 제한 속도를 지켜가면서 전광판에 적혀 있는 시간 내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가 없다. 만약 천안IC까지 30분이라 되어 있으면 경부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를 훨씬 넘긴 120~130 km/h 정도로 열심히 달려야 겨우 그 시간 내에 도착하는 것이다. 아니 도로공사는 제한 속도를 지키지 말라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그 시간 내에 도착하는 비법이라도 있단 말인가. 혹시 통신원들이 계산해서 알려 주는 것이라면 그들은 이니셜D의 소위 드라이버 또는 운전의 신이라도 된다는 건가.

교통 방송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는데, 캐스터가 서울-부산 간 다섯 시간이라고 얘기하면, 내 경우엔 보통 거기에 두 시간을 더하면 얼추 맞아 떨어진다. 아직도 내가 초보를 못 벗어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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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유소에서 주유도 하시고 포인트도 싸으시고...
응암오거리에 있는 주유소의 포인트 안내 문구이다. 대충 매직으로 써 놓은 게 아니라 멋지게 현수막을 만들어 붙여놓았다. 이걸 보고는 아무런 논리적 합리적 근거 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전혀 고차원적인 코미디가 아닌데도 그냥 삶의 액센트 같은 게 느껴진달까, 암튼 그랬다. 가끔은 이런 것도 재밌지 않은가...

탐하지 아니하고, 진노하지 아니하고, 어리섞지 않은 ○○○!
청주 어느 지역의 5.31 지방선거에 나온 ○나라당 후보가 내건 현수막의 문구이다. 좀전과 다를 거 없는데도 이번엔 전혀 재밌지가 않다. 난 왜 같은 류의 코미디인데도 한 쪽엔 후한 점수를 주고 다른 한 쪽은 한심하게 생각하는지... 값싼 당파성의 찌꺼기인가, 아니면 '정치'라는 단어에 대한 병적인 과민반응인가...

아무튼 저런 주유소에서는 기름을 넣어도 저런 후보는 찍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난 아무래도 간판집 해서는 절대 성공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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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

롤플레잉 2006. 4. 10. 11:48
지난 겨울에 자다가 속이 쓰려 벌떡 일어났을 때 아무래도 이러다가 죽겠다 싶어 건강검진을 받았다. 검사는 명동 근처 백병원에서 받았는데 물론 삼성병원보다는 한 단계 떨어지지만 나름대로 깔끔하게 해 놓았다. 마침 검사하는 날 함박눈도 내리고 해서 생각지도 않던 분위기 있는(?) 병원행이 되었다.

종합검진이긴 하지만 이번엔 특정 부위, 즉 위장이 아파서 받은 검사였으므로 아무래도 문진할 때 위장 관련 얘기를 많이 하기도 했고, 나 자신으로서도 내시경 검사에 온 신경을 다 쏟고 있었다. 다른 검사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청력검사를 하러 작은 방에 들어갔을 때였다. 처음 하는 검사도 아니고 해서 마음 편하게 먹고 있었다. 헤드폰을 끼고 소리가 나는 쪽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검사였는데, 이상하게도 오른쪽만 계속 검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간호사의 표정이 조금 굳어진다. 이윽고 간호사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하는 말이,
"왼쪽은 안 들리세요?"
"예? 왼쪽도 했어요?"
"어 이상하네. 그럴 리가 없는데."
"..."
"다시 한 번 해 볼게요."
다시 검사를 시작했으나 여전히 왼쪽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그래도 안 들리세요?"
"예..."
"좀전에도 검사했는데..."
왼쪽 청력이 약해진 것도 아니고 완전히 귀머거리가 된 것이다. 순간 머리 속에 '아 드디어 나도 정말로 내리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 몸의 어느 한 부분이 고장나기 시작한 것이다. 불과 몇 초 사이에 갑자기 나이를 먹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이제 얼마 안 가 다른 곳도 이상이 생길까. 좀 있으면 눈도 침침해 질까. 이제부턴 재생도 안 된다던데... 남은 인생을 귀머거리로 살아야 하나...

근데 이쯤에서 뭔가 의문점이 생겼다. 아니 여지껏 귀머거리가 되도록 어떻게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물론 한쪽 귀를 막고 검사를 해 본 적은 없으나 이 정도라면 왼쪽에서 들리는 소리는 약하게 들려야 정상 아닌가. 간호사가 기계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더니 조금 후 돌아왔다. 고장이란다. 아휴~ 간 떨어질 뻔했잖아. 하필이면 내가 검사할 때 고장이 나서 사람 놀라게 하다니...

돌아오는 목요일에 치과에 간다. 어금니에 금을 입히는 날이다. 나하고는 전혀 관계 없는 줄로만 알았던 일들이 점점 나에게 생긴다. 무릎이 시큰거리고, 거울을 보면 새치가 하나둘씩 늘어간다. 기억력도 떨어진 것 같아 슬프다. 내가 아기를 낳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갑자기 이러는 건지...

영원한 젊음은 없겠지만 막상 예전같지 않으니 건강, 젊음 같은 단어가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운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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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마음

패밀리 2006. 4. 8. 17:14
딸이 오늘 처음 치과에 갔다. 어디가 아파서가 아니라 예방과 점검 차원에서 간 것이다. 영유아때 방심하다가 이빨 전체가 상해서 영구치까지 엉망으로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주위에도 그런 사례가 있다는데 안 가볼 수도 없다. 그렇잖아도 혹시 벌써 이빨이 썩지 않았을까 걱정하던 차였다.

향후 유망 업종은 모조리 어린이 관련 사업이 아닐까 싶다. 어린이치과라고 찾아간 곳은 예약 아니면 받아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대기실에도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로 넘쳐난다. 역시 적게 낳는 만큼 귀하게 키우려나 보다. 나만해도 본인의 이빨은 관리를 못해 신경치료까지 받으러 다니면서도 딸 건강은 미리 챙기게 된다.

대기실 중앙엔 커다란 화면의 TV가 걸려져 있고 그 밑으로 매트를 깔아놓아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벽으로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무심한 책이 책장에 꽂혀 있었다. 매트 위엔 벌써 노는 아이들로 정신이 없었다. 처음엔 딸을 안고 있었으나 팔도 슬슬 아파오고 입고간 점퍼 때문에 덥기도 해서 매트 위에 조심스럽게 딸을 내려놓았다. 치과에 온 아이들 중에서 나이가 단연 어렸으므로 내심 걱정이 되었다. 큰 아이들 틈에 끼어서 주눅이 들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웬걸, 주눅이 다 뭔가. 성큼성큼 걸어다니더니 자기보다 큰 남자아이가 가지고 놀던 공을 냉큼 빼앗아버린다. 순간 당황하는 그 아이의 모습. 그러나 상대는 너무나 어린 꼬마라 화를 낼 수도 없다. 엄마가 "오빠 공을 네가 뺏으면 안 되지. 돌려 줘." 라고 말을 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덩치 큰 아이들 틈에서도 전혀 움츠러들지 않고 돌아다니며, 심지어 박명수식 호통개그까지 날린다.

접수할 때 아이의 성격을 체크하여 적는 게 있었다. 평소 전기청소기 소리가 들리면 화들짝 놀라 엄마 품으로 달려들곤 해서 '겁이 많음'이라고 했는데, 오히려 나중에 어디 가서 애들 패고 다니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될 정도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것이고, 속으론 그렇지가 않다. 딸이 바깥에 나가서 기가 죽거나 다른 아이들에게 얻어터지고 들어오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은가 말이다. 역시나 부모 마음은 다 같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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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부 안 해요

롤플레잉 2006. 4. 7. 16:55
오랜만에 집전화가 울렸다. 젊은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OOO 회원이시죠?"
"절 아세요?"
"안녕하세요. LG카드입니다. 저희 카드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번에 저희 LG카드에서 할부 이용하실 때 부담 없이 사용하시라고 XXX 카드를 발급해 드리고 있습니다. 이 카드를 사용하시면 혜택이..."
"전 할부 안 해요."
"예 그러세요? 고객님... 하지만 이 카드는..."
"전 원래 할부 안 해요."
"이 카드는 5년 동안 연회비도 없구요..."
"그래도 전 할부 안 해요."
"하지만 전자제품 같이 가격이 부담되시는 걸 사실 때나 자동차세를 분납하실 때에도..."
"전 전자제품 살 때도 할부 안 해요."
"고객님... 물론 지금까진 사용하지 않으셨지만..."
"앞으로도 할부는 안 할 거예요."
"허허... 알겠습니다. 고객님. 앞으로도 저희 LG카드를 많이 이용해 주세요."
"예..."
애썼다. 하지만 절대로 안 넘어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부디 좌절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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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와 미적분

롤플레잉 2006. 4. 7. 09:30
어제 도서관에서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의 책을 빌렸다.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서부 히말라야 고원의 '라다크' 지방에 대한 이야기다. 가난하지만 평화롭고 행복한 그 공동체를 서구식 '개발' 문화가 어떻게 파괴하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책의 첫장부터 무엇인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처음엔 그게 뭔지 구체적으로 감이 오지 않았으나 곧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 책은 그 내용이 어찌 되었건 간에 형식은 여행기이다. 그런데 첫장의 라다크 지방에 대해 묘사한 부분에서 그곳에 대한 풍경이 전혀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글을 읽을 때 가장 집중력을 요하는 부분이 묘사(描寫)이다. 글쓴이가 써 놓은 대로 하나씩 천천히 머리 속에 그 모습을 떠올려 보는데, 만약 잘 되지 않으면 글읽기가 금방 지쳐버린다. 내 경우는 허기도 진다. 때마침 주위가 소란하다거나 하면 괜히 짜증까지 나는 건 물론이다.

묘사를 미적분에 비유하고 싶다. 글쓴이가 눈으로 보거나 마음 속에 그리는 것을 언어라는 기호로 추상화시키는 것은 수학의 미분(微分)과 같고, 읽는이가 그 기호를 통해 다시 심상(心像)으로 구체화시키는 것은 적분(積分)과 같다. 하지만 이 과정이 수학과는 조금 다른데, 그것은 문학에서는 적분상수를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글쓴이와 읽는이의 지식과 경험이 다르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전혀 다르진 않더라도 꽤나 왜곡되어 전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읽는이의 대부분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묘사할 때엔 그림이나 사진을 함께 실어야 전달 과정에서의 정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읽기도 어려운데 쓰기는 오죽하랴.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묘사해 보라고 하면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대상에 대한 정확한 관찰도 어렵지만 더욱 어려운 것은 필요 없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대상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즉 한정된 기호로 문제를 푸는 이가 제대로 적분할 수 있도록 그 중에서 꼭 필요한 부분만 골라내야 하는 것이 어렵다. 이태준은 『문장강화』에서 묘사의 요점을 이렇게 말했다.
⑴ 객관적일 것, 언제든지 냉정한 관찰을 거쳐야 할 것이니까
⑵ 정연할 것, 시간상으로, 공간상으로 순서가 있어야 전폭(全幅)의 인상이 선명해질 것이니까
⑶ 사진기와는 달라야 할 것, 대상의 요점과 특색을 가려 거두는 반면에 불필요한 것은 버려야 한다.
말은 쉽지만 어려운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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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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