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도서관에서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의 책을 빌렸다.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서부 히말라야 고원의 '라다크' 지방에 대한 이야기다. 가난하지만 평화롭고 행복한 그 공동체를 서구식 '개발' 문화가 어떻게 파괴하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책의 첫장부터 무엇인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처음엔 그게 뭔지 구체적으로 감이 오지 않았으나 곧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 책은 그 내용이 어찌 되었건 간에 형식은 여행기이다. 그런데 첫장의 라다크 지방에 대해 묘사한 부분에서 그곳에 대한 풍경이 전혀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글을 읽을 때 가장 집중력을 요하는 부분이 묘사(描寫)이다. 글쓴이가 써 놓은 대로 하나씩 천천히 머리 속에 그 모습을 떠올려 보는데, 만약 잘 되지 않으면 글읽기가 금방 지쳐버린다. 내 경우는 허기도 진다. 때마침 주위가 소란하다거나 하면 괜히 짜증까지 나는 건 물론이다.

묘사를 미적분에 비유하고 싶다. 글쓴이가 눈으로 보거나 마음 속에 그리는 것을 언어라는 기호로 추상화시키는 것은 수학의 미분(微分)과 같고, 읽는이가 그 기호를 통해 다시 심상(心像)으로 구체화시키는 것은 적분(積分)과 같다. 하지만 이 과정이 수학과는 조금 다른데, 그것은 문학에서는 적분상수를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글쓴이와 읽는이의 지식과 경험이 다르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전혀 다르진 않더라도 꽤나 왜곡되어 전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읽는이의 대부분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묘사할 때엔 그림이나 사진을 함께 실어야 전달 과정에서의 정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읽기도 어려운데 쓰기는 오죽하랴.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묘사해 보라고 하면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대상에 대한 정확한 관찰도 어렵지만 더욱 어려운 것은 필요 없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대상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즉 한정된 기호로 문제를 푸는 이가 제대로 적분할 수 있도록 그 중에서 꼭 필요한 부분만 골라내야 하는 것이 어렵다. 이태준은 『문장강화』에서 묘사의 요점을 이렇게 말했다.
⑴ 객관적일 것, 언제든지 냉정한 관찰을 거쳐야 할 것이니까
⑵ 정연할 것, 시간상으로, 공간상으로 순서가 있어야 전폭(全幅)의 인상이 선명해질 것이니까
⑶ 사진기와는 달라야 할 것, 대상의 요점과 특색을 가려 거두는 반면에 불필요한 것은 버려야 한다.
말은 쉽지만 어려운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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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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