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환율

롤플레잉 2006. 4. 20. 19:24
군대 있을 무렵이니까 아마도 95년이나 96년일 것이다. 그즈음 난 내무반에서 가장 많이 외박을 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친구 S 때문이었는데, 거의 매달 면회를 와서 날 서울로 빼내어 가곤 했다. 약혼자라 해도 그 정도로 정성이 뻗칠 수 있을까. 암튼 S는 그 일 하나만으로도 천국에 갈 요건은 충분히 갖추었다. God bless him!

그러던 어느 달엔가 갑자기 외출 외박이 전면 금지되었다. 북한군의 거동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무슨 일에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북측의 3개 사단이 휴전선 쪽으로 전진 배치되었으므로 우리 군도 경계 상태에 들어갔고, 그 영향으로 당분간 정기 휴가를 제외한 일체의 바깥 나들이를 금한다는 내용의 명령이 각 부대로 내려왔다. TV 뉴스에도 같은 내용이 흘러나왔다. 이런 썩을... 하지만 내가 누군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어나가는 집념의 당나라 군인 아닌가. 어떻게 서울로 튈까 고민하다가 결국 어머니께 도움을 청했다. 역시 '모친위독 급래요망'의 여덟 글자가 적힌 전보 앞에서는 휴전선의 긴장 상태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 달도 어김 없이 놀러 나가게 되었는데... 나와서 친구들한테 현재 이러이러해서 나오는 데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더니 친구 T 녀석이 하는 말이,
"크~ 북한군들은 휴전선에 얼굴이 딱 붙어 있겠네..."
"왜?"
"이제껏 걔네들 전진 배치되었다는 얘긴 들었어도 뒤로 물러섰다는 얘긴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
"음...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
요새야 이런 뉴스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당시만 해도 휴전선 얘기는 박정희 이후로 꾸준하게 우려먹던 국민 겁주기용 메뉴의 하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민들이 그런 내용으로 긴장해 주었기 때문에 말이다.

뉴스에서 환율이 또 내렸단다. 그래서 경제가 더욱 어렵단다. 환율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래도 나름대로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정말 혼란스럽다. 워낙 공부를 못해서 내가 이해를 할 수 없는 건지... 환율 얘기만 나오면 언제나 우는 소리다. 환율이 내리면 수출이 안 된다고 난리다. 국가 경제의 중요한 축인 수출 전선에 크나큰 타격이 온단다. 이놈의 나라는 언제까지 가격 경쟁력으로만 승부할런지는 몰라도, 아무튼 환율이 내려가면 쌈마이로 내지르지 못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환율이 올라갈 때도 있는데 이때엔 그럼 뉴스에서 징징거리지 않는가 하면 또 그렇지가 않다. 이번엔 무슨 얘기를 하나 들어보면, 원료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원료 수입가가 올라서 타격이 막심하단다. 아니 그럼 어쩌란 말이냐. 환율이 올라도 울고, 내려도 울고... 대체 언제쯤 우린 환율로 웃을 수 있다는 거냐. 아니 환율이 올라서 수출이 더 많이 된다 해도 그만큼 손해 보면서 파는 거 아니냐. 이거야 말로 론스타 손가락질 할 게 아니라 진짜로 막아야 되는 국부 유출 아니냐.

환율이 오르내리면 분명히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의 두 가지 측면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런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을 수가 없다. 차라리 두 경우 모두 이래서 좋다고 홍보를 하는 것보다 더 화가 난다. 이 빌어먹을 얘기 뒤에 숨어 있는 논리가 대체 뭔지 알고 싶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환율이 내리니 국민들더러 올려달라는 거냐. 못살겠다고 울고 있으면 자동으로 조절되는 거냐. 환율... 혹시 이것도 휴전선처럼 국민 겁주기용이냐. 아주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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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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