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수다

패밀리 2008. 2. 23. 17:20
    딸이 우리에게 온지도 이제 며칠만 있으면 세 돌이다. 그동안 별 탈 없이 자라 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작년 이맘 때 어린이집 보낼 때만 하더라도 엄마 곁에서 떨어져서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적응을 잘한다.

    아무튼 우리 나이로 네 살이 된 요즘은 밥상 차리는 것도 도와주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도 척척 내온다. 기특하다. 다만 아직도 밤에 잠들 때엔 엄마가 곁에 없으면 아주 괴롭다. 아빠 혼자서 재우기엔 너무 벅찬데, 언제나 엄마랑 잘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정이 생겨 그렇지 못할 때엔 온 동네에 모르는 집이 없을 정도로 한바탕 굿을 하고 자야 된다. 요것만 고치면 이제 진짜 아기 딱지를 떼고 어린이 해도 된다.

4촌동생 백일잔치에서 6촌언니들과 함께


    딸에게 정말 신기한 것이 있는데, 말 많은 거, 시끄러운 거와는 거리가 먼 엄마 아빠 사이에서 어쩜 이렇게 수다쟁이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주중에야 어린이집에 다녀오니까 괜찮지만, 주말 이틀 동안 엄마 아빠가 딸내미의 수다를 받아주고나면 몸살 날 정도다. 목소리나 조용하면 말도 안 한다. 작년 가을 무렵부터 딸이 재미붙인 게 역할놀이 같은 건데,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냥 자기가 일정 시간 동안 하고 싶은 무엇이 되어 보는 거다. 딸이 좋아하는 역할은 애기, 누나, 야옹이, 멍멍이, 삐악이 등이다. 문제는 하고 싶은 거 그냥 하면 될 것을, 꼭 엄마 아빠에게 그걸 보여주려 한다는 데에 있다.
"엄마, 엄마~!"
"왜?"
"나는 누나 아니고 애기 할래요~! 응애, 응애..."
"응, 알았어..."
"엄마, 엄마~!"
"또 왜?"
"나는 이제 애기 아니고 고양이 할래요~! 야옹, 야옹..."
"그래 알았으니까. 엄마한테 얘기하지 말고 그냥 하렴."
"야옹, 야옹..." (고양이라 인간의 말을 못함)
"엄마 아빠 과자 먹을 건데..."
"야옹!!!" (자기도 달라는 뜻)
"뭐라고? 엄마는 고양이 말을 못 알아 듣는데..."
"나는 이제 고양이 아니고 누나 할래요~! 저도 주세요~! 많~이 먹을게요!" 

    다른 집은 어떨지 몰라도 잠의 달인인 아내는 주말에 낮잠을 안 자면 우울증에 걸릴 것이다. 당연히 한 잠 자고 싶은데 에너지가 넘치는 딸은 전혀 협조해 줄 생각이 없으므로 낮에 두 여자가 잠을 두고 한바탕 힘겨루기를 한다. 어르고 혼내기도 해서 어렵사리 딸을 자리에 눕히는데, 그래도 아직은 대부분 엄마가 이기니 얼마 다행인지 모르겠다.

    모녀가 달게 낮잠을 자고 있는 토요일 오후, 지금이 나로선 제일 한가한 시간이다. 잘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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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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