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3호선

롤플레잉 2006. 4. 4. 12:37
교대역 통학버스를 타기 위해서 매일 3호선 녹번-교대 구간을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교대에서 녹번으로 돌아올 때엔 자리 잡기가 쉽지만, 아침 교대행은 쉽지 않다. 지하철이 붐비기도 하지만 더욱 문제인 것은 녹번역에서 탈 때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교대에 도착할 때까지 거의 대부분 그대로 간다는 점이다. 이럴 때마다 정말 고통스럽고 짜증 섞인 의문이 든다. 지금 앉아 있는 사람은 집이 구파발 위쪽이나 일산 쪽이라는 얘긴데 대체 이들은 아침에 어디까지 가는 것일까. 서울 시내를 남북으로 관통하고도 모자라 교대에서도 내리지 않는다면 이들은 양재 이남에서 일한다는 걸까. 혹시 수서까지 가는 길인가. 양심이 있다면 종로3가 을지로3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고속터미널이나 교대쯤에선 내려 줘야 되는 거 아닌가? 이 머저리들은 이렇게 사무실이 멀면 남쪽으로 이사할 생각은 왜 않는 거냐.

물론 종로3가나 을지로3가에서 내리는 사람도 조금은 있다. 그런데 이 때에도 매너가 중요하다. 오늘 아침에 안국에서 한 자리가 났다. 잽싸게 앉으려는 순간 어떤 아저씨가 먼저 그 자리를 덮쳤다. 간발의 차로 놓쳤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대신 그 옆자리를 노려 볼까 하고 옆으로 한 간 비켜섰다. 아 그런데 이 인간이 종로3가에서 내리지 뭔가. 당연히 그 자리는 내가 비키고서 새로 들어온 어떤 망할 아가씨 차지가 되어 버린 거다. 순간 뒷목이 뻣뻣해 오는 것을 느꼈다. 대체 한 정거장 가려고 앉은 인간은 뭐란 말인가. 다리가 불편해 보이지도 않았다. 이런 날은 하루 종일 운이 나쁘다. 아니나 다를까 내 앞자리의 학생은 마치 내릴 것 처럼 몇 번 바깥쪽을 두리번거리더니 교대에 도착할 때까지도 일어설 생각을 앉는다. 이 땅에 정의란 없다. 나쁜 인간들...

그래 사연이 있겠지. 사무실은 남쪽이지만 어쩔 수 없이 북쪽에 사는 이유가 있겠지. 한 정거장이라도 앉고 싶을 정도로 다리가 아팠던 거겠지. 내리려고 한 게 아닌데 괜히 내가 오해한 거겠지... 미안하다. 잠깐 흥분했나 보다. 다만 이 한마디는 꼭 하고 싶다. 지하철에서 앉아 가는 사람들이여, 내릴 거면 기척이라도 해라. 안 내릴 것처럼 엉큼하게 눈 감고 있지 마라. 그럴 때마다 살의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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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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