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플레잉'에 해당되는 글 239건

  1. 2006.04.12 고속도로 전광판
  2. 2006.04.11 싸으시고와 어리섞지
  3. 2006.04.10 내리막
  4. 2006.04.07 할부 안 해요
  5. 2006.04.07 묘사와 미적분
  6. 2006.04.05 사치의 유혹
  7. 2006.04.04 망할 3호선
  8. 2006.04.03 딸꾹질에 대한 두려움
  9. 2006.04.02 자연이 더 아름답다
  10. 2006.04.01 둘 중의 하나
오늘 차를 직접 몰아 학교에 다녀왔다. 갈 때는 통학버스랑 거의 같은 시간이 걸렸으나, 올 때는 상당히 단축되어 두시간 조금 넘어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에는 출근길이라 강변북로가 막히니 어쩔 수 없다. 승용차로 움직이면 기다리는 시간이 없어지고, 출발 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 좋은 면도 있지만, 오며 가며 졸 수 없어 피곤한 면도 있다.

예전부터 고속도로 전광판을 보면 궁금한 것이 있다. 구간별 소요 시간이 그것인데, 이것을 대체 어떻게 산출하는지 알 수 없다. 도로공사 직원이 실시간으로 달려 보고 계산을 하는 건지, 통신원들이 알려 주는 것인지, 하늘에서 보고 측정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무인 장치가 있는 것인지 말이다. 전광판에 표시되는 정체 구간은 대체로 맞다. 그런데 소요 시간은 나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내 운전 실력으로는 도저히 제한 속도를 지켜가면서 전광판에 적혀 있는 시간 내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가 없다. 만약 천안IC까지 30분이라 되어 있으면 경부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를 훨씬 넘긴 120~130 km/h 정도로 열심히 달려야 겨우 그 시간 내에 도착하는 것이다. 아니 도로공사는 제한 속도를 지키지 말라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그 시간 내에 도착하는 비법이라도 있단 말인가. 혹시 통신원들이 계산해서 알려 주는 것이라면 그들은 이니셜D의 소위 드라이버 또는 운전의 신이라도 된다는 건가.

교통 방송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는데, 캐스터가 서울-부산 간 다섯 시간이라고 얘기하면, 내 경우엔 보통 거기에 두 시간을 더하면 얼추 맞아 떨어진다. 아직도 내가 초보를 못 벗어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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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유소에서 주유도 하시고 포인트도 싸으시고...
응암오거리에 있는 주유소의 포인트 안내 문구이다. 대충 매직으로 써 놓은 게 아니라 멋지게 현수막을 만들어 붙여놓았다. 이걸 보고는 아무런 논리적 합리적 근거 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전혀 고차원적인 코미디가 아닌데도 그냥 삶의 액센트 같은 게 느껴진달까, 암튼 그랬다. 가끔은 이런 것도 재밌지 않은가...

탐하지 아니하고, 진노하지 아니하고, 어리섞지 않은 ○○○!
청주 어느 지역의 5.31 지방선거에 나온 ○나라당 후보가 내건 현수막의 문구이다. 좀전과 다를 거 없는데도 이번엔 전혀 재밌지가 않다. 난 왜 같은 류의 코미디인데도 한 쪽엔 후한 점수를 주고 다른 한 쪽은 한심하게 생각하는지... 값싼 당파성의 찌꺼기인가, 아니면 '정치'라는 단어에 대한 병적인 과민반응인가...

아무튼 저런 주유소에서는 기름을 넣어도 저런 후보는 찍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난 아무래도 간판집 해서는 절대 성공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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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

롤플레잉 2006. 4. 10. 11:48
지난 겨울에 자다가 속이 쓰려 벌떡 일어났을 때 아무래도 이러다가 죽겠다 싶어 건강검진을 받았다. 검사는 명동 근처 백병원에서 받았는데 물론 삼성병원보다는 한 단계 떨어지지만 나름대로 깔끔하게 해 놓았다. 마침 검사하는 날 함박눈도 내리고 해서 생각지도 않던 분위기 있는(?) 병원행이 되었다.

종합검진이긴 하지만 이번엔 특정 부위, 즉 위장이 아파서 받은 검사였으므로 아무래도 문진할 때 위장 관련 얘기를 많이 하기도 했고, 나 자신으로서도 내시경 검사에 온 신경을 다 쏟고 있었다. 다른 검사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청력검사를 하러 작은 방에 들어갔을 때였다. 처음 하는 검사도 아니고 해서 마음 편하게 먹고 있었다. 헤드폰을 끼고 소리가 나는 쪽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검사였는데, 이상하게도 오른쪽만 계속 검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간호사의 표정이 조금 굳어진다. 이윽고 간호사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하는 말이,
"왼쪽은 안 들리세요?"
"예? 왼쪽도 했어요?"
"어 이상하네. 그럴 리가 없는데."
"..."
"다시 한 번 해 볼게요."
다시 검사를 시작했으나 여전히 왼쪽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그래도 안 들리세요?"
"예..."
"좀전에도 검사했는데..."
왼쪽 청력이 약해진 것도 아니고 완전히 귀머거리가 된 것이다. 순간 머리 속에 '아 드디어 나도 정말로 내리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 몸의 어느 한 부분이 고장나기 시작한 것이다. 불과 몇 초 사이에 갑자기 나이를 먹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이제 얼마 안 가 다른 곳도 이상이 생길까. 좀 있으면 눈도 침침해 질까. 이제부턴 재생도 안 된다던데... 남은 인생을 귀머거리로 살아야 하나...

근데 이쯤에서 뭔가 의문점이 생겼다. 아니 여지껏 귀머거리가 되도록 어떻게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물론 한쪽 귀를 막고 검사를 해 본 적은 없으나 이 정도라면 왼쪽에서 들리는 소리는 약하게 들려야 정상 아닌가. 간호사가 기계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더니 조금 후 돌아왔다. 고장이란다. 아휴~ 간 떨어질 뻔했잖아. 하필이면 내가 검사할 때 고장이 나서 사람 놀라게 하다니...

돌아오는 목요일에 치과에 간다. 어금니에 금을 입히는 날이다. 나하고는 전혀 관계 없는 줄로만 알았던 일들이 점점 나에게 생긴다. 무릎이 시큰거리고, 거울을 보면 새치가 하나둘씩 늘어간다. 기억력도 떨어진 것 같아 슬프다. 내가 아기를 낳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갑자기 이러는 건지...

영원한 젊음은 없겠지만 막상 예전같지 않으니 건강, 젊음 같은 단어가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운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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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부 안 해요

롤플레잉 2006. 4. 7. 16:55
오랜만에 집전화가 울렸다. 젊은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OOO 회원이시죠?"
"절 아세요?"
"안녕하세요. LG카드입니다. 저희 카드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번에 저희 LG카드에서 할부 이용하실 때 부담 없이 사용하시라고 XXX 카드를 발급해 드리고 있습니다. 이 카드를 사용하시면 혜택이..."
"전 할부 안 해요."
"예 그러세요? 고객님... 하지만 이 카드는..."
"전 원래 할부 안 해요."
"이 카드는 5년 동안 연회비도 없구요..."
"그래도 전 할부 안 해요."
"하지만 전자제품 같이 가격이 부담되시는 걸 사실 때나 자동차세를 분납하실 때에도..."
"전 전자제품 살 때도 할부 안 해요."
"고객님... 물론 지금까진 사용하지 않으셨지만..."
"앞으로도 할부는 안 할 거예요."
"허허... 알겠습니다. 고객님. 앞으로도 저희 LG카드를 많이 이용해 주세요."
"예..."
애썼다. 하지만 절대로 안 넘어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부디 좌절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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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와 미적분

롤플레잉 2006. 4. 7. 09:30
어제 도서관에서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의 책을 빌렸다.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서부 히말라야 고원의 '라다크' 지방에 대한 이야기다. 가난하지만 평화롭고 행복한 그 공동체를 서구식 '개발' 문화가 어떻게 파괴하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책의 첫장부터 무엇인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처음엔 그게 뭔지 구체적으로 감이 오지 않았으나 곧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 책은 그 내용이 어찌 되었건 간에 형식은 여행기이다. 그런데 첫장의 라다크 지방에 대해 묘사한 부분에서 그곳에 대한 풍경이 전혀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글을 읽을 때 가장 집중력을 요하는 부분이 묘사(描寫)이다. 글쓴이가 써 놓은 대로 하나씩 천천히 머리 속에 그 모습을 떠올려 보는데, 만약 잘 되지 않으면 글읽기가 금방 지쳐버린다. 내 경우는 허기도 진다. 때마침 주위가 소란하다거나 하면 괜히 짜증까지 나는 건 물론이다.

묘사를 미적분에 비유하고 싶다. 글쓴이가 눈으로 보거나 마음 속에 그리는 것을 언어라는 기호로 추상화시키는 것은 수학의 미분(微分)과 같고, 읽는이가 그 기호를 통해 다시 심상(心像)으로 구체화시키는 것은 적분(積分)과 같다. 하지만 이 과정이 수학과는 조금 다른데, 그것은 문학에서는 적분상수를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글쓴이와 읽는이의 지식과 경험이 다르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전혀 다르진 않더라도 꽤나 왜곡되어 전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읽는이의 대부분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묘사할 때엔 그림이나 사진을 함께 실어야 전달 과정에서의 정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읽기도 어려운데 쓰기는 오죽하랴.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묘사해 보라고 하면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대상에 대한 정확한 관찰도 어렵지만 더욱 어려운 것은 필요 없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대상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즉 한정된 기호로 문제를 푸는 이가 제대로 적분할 수 있도록 그 중에서 꼭 필요한 부분만 골라내야 하는 것이 어렵다. 이태준은 『문장강화』에서 묘사의 요점을 이렇게 말했다.
⑴ 객관적일 것, 언제든지 냉정한 관찰을 거쳐야 할 것이니까
⑵ 정연할 것, 시간상으로, 공간상으로 순서가 있어야 전폭(全幅)의 인상이 선명해질 것이니까
⑶ 사진기와는 달라야 할 것, 대상의 요점과 특색을 가려 거두는 반면에 불필요한 것은 버려야 한다.
말은 쉽지만 어려운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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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의 유혹

롤플레잉 2006. 4. 5. 13:17
우리 부부에게는 외식 메뉴를 선택함에 있어 한 가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기준이 있다. 바로 1인당 2만 원을 넘지 않는 가격이다. 아무리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라도 비싸면 안 된다. 심지어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가도 메뉴판을 보고 가격대가 맞지 않으면 주저 않고 일어선다. 게다가 마인트 컨트롤 내지는 포기가 동시에 일어난다.
"꼭 이걸 먹을 필요는 없잖아?"
"그렇지. 굳이 이걸..."
"일어서자구."
신혼 때는 둘이서 가끔 신촌의 2500원짜리 선지국밥을 먹으러 다녔다. 둘이서 5천원이면 충분히 배부른데 4만원이 넘어가는 음식은 좀처럼 용납하기 어렵다. 설마 이게 8배씩이나 맛있을까...

몇 년 전에 퓨전 일식집에서 동기들과 부부 또는 친구 동반 망년회를 한 적이 있다. 장소는 내가 잡았는데 자주 점심 먹으러 가던 집이었다. 그쪽으로 잡은 이유는 가게 분위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고 생각해서였다. 약속 시간에 모인 우리는 예약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이어 메뉴판이 나왔는데 그순간 난 뭔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챘다. 이상하게 내가 점심 때 늘 먹던 메뉴가 안 보이는 것이다.
'어 이상한데... 그게 어디갔지?'
'헉 이게 뭐야. 0이 하나씩 더 붙었잖아.'
아뿔싸. 난 이제껏 직장인을 위한 특가의 점심 메뉴만을 보아왔던 것이다. 내 굳어진 얼굴을 누구보다 일찍 알아챈 사람은 당연히 아내였다. 그리고는 내게 귓속말로 물었다.
"이거 맞어?"
"몰라... 이런 건 나도 처음 봐."
식은 땀이 흘렀다. 우리 둘만 있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를 일어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게다가 이 사람들이 이 망년회 시즌에 예약도 없이 어딜 가서 다시 자리를 마련한단 말인가. 고맙게도 친구들의 반응은 우호적이었다.
"Acceptable..."
"Not bad..."
음식은 맛있었고 분위기도 좋았다. 친구들과 기분 좋게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내게 말했다.
"다음엔 이런 데 잡지 마. 이번 한 번으로 충분해..."
"당연하지... 내가 미쳤남."
아직 딸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아내랑 양수리 방면으로 놀러 간 적이 있다. 오랜만의 나들이라 제대로 쉬었다 오자는 생각이었고, 당일 코스로 다녀오기엔 좀 아쉬워 하루 묵어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밤 11시가 넘어 눈에 띄는 여관을 찾았는데,
"5만원입니다."
"예? 얼마요?"
"5만원이요. 주말엔 이 근처 다들 이렇게 해요."
"그래요?"
순간 머리 속에는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5만원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마구 떠오른 것이다. 더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본인의 옷은 전부 1~2만원 짜리만 사는 아내가 이제껏 돈을 아끼지 않을 때는 남편 옷을 살 때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할인점이나 중저가 브랜드를 두고 굳이 비싼 백화점을 누비지는 않는다. 언제나 주장하는 바이지만 가격이 두 배가 되려면 효용도 두 배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나도 가끔은 사치하고 싶은 종목이 있는데 바로 컴퓨터이다. 컴퓨터 자체는 어차피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이다. 돌아서면 더 좋은 성능으로 신제품이 나오니 그걸 따라잡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한 번 장만할 때 당시 최고 사양으로 뽑아서 몇 년을 우려먹으면 된다. 내가 사치하고 싶은 것은 컴퓨터 본체가 아니라 주변 장치이다. 다년간 컴퓨터를 써 보니 보통은 소홀하게 생각하는 입력장치나 모니터, 스피커, 마우스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특히 모니터와 키보드는 무조건 좋아야 한다. 예전에 필립스 둥근 모니터에 하도 크게 당한지라, 조립업체에서 아무리 감언이설로 꼬셔도 브랜드 없는 건 절대 사절한다. 좀 비싸도 삼성이나 엘지 이상의 모니터가 아니면 안 된다.

며칠 전 딸이 아빠 키보드를 망가뜨렸다. 모니터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더니 실은 그 앞에 놓여있던 커피잔에 욕심이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쩔 도리 없었다. 커피가 쏟아진 키보드는 그걸로 끝이었다. 말려도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지난 세기부터 써오던 키보드라 사실 오래 되기도 해서 그렇잖아도 바꿀 참이었는데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모르겠다. 우선 급한대로 지난 번에 컴퓨터 새로 장만할 때 따라온 5천원짜리 키보드로 갈아놓았는데, 역시 싼 게 비지떡이라고 10분이 넘어가면 팔이 저려온다.

문제는 내가 예전부터 노려 오던 키보드의 가격인데, 아내의 결재는 물론이거니와 내 상식으로도 저항감이 심한 가격이다. 35만원이면 모니터 빼고 어지간한 컴퓨터 한 대 값인데 그걸 키보드 하나에 때려박다니... 그것보다 좀 싼 것도 있긴 한데 그것도 만만치 않다. 18만원이다. 이번 기회에 미친척하고 하나 사서 10년 정도 쓸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한편으론 35만원짜리라고 어디 딸의 커피 테러에 멀쩡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 고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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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3호선

롤플레잉 2006. 4. 4. 12:37
교대역 통학버스를 타기 위해서 매일 3호선 녹번-교대 구간을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교대에서 녹번으로 돌아올 때엔 자리 잡기가 쉽지만, 아침 교대행은 쉽지 않다. 지하철이 붐비기도 하지만 더욱 문제인 것은 녹번역에서 탈 때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교대에 도착할 때까지 거의 대부분 그대로 간다는 점이다. 이럴 때마다 정말 고통스럽고 짜증 섞인 의문이 든다. 지금 앉아 있는 사람은 집이 구파발 위쪽이나 일산 쪽이라는 얘긴데 대체 이들은 아침에 어디까지 가는 것일까. 서울 시내를 남북으로 관통하고도 모자라 교대에서도 내리지 않는다면 이들은 양재 이남에서 일한다는 걸까. 혹시 수서까지 가는 길인가. 양심이 있다면 종로3가 을지로3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고속터미널이나 교대쯤에선 내려 줘야 되는 거 아닌가? 이 머저리들은 이렇게 사무실이 멀면 남쪽으로 이사할 생각은 왜 않는 거냐.

물론 종로3가나 을지로3가에서 내리는 사람도 조금은 있다. 그런데 이 때에도 매너가 중요하다. 오늘 아침에 안국에서 한 자리가 났다. 잽싸게 앉으려는 순간 어떤 아저씨가 먼저 그 자리를 덮쳤다. 간발의 차로 놓쳤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대신 그 옆자리를 노려 볼까 하고 옆으로 한 간 비켜섰다. 아 그런데 이 인간이 종로3가에서 내리지 뭔가. 당연히 그 자리는 내가 비키고서 새로 들어온 어떤 망할 아가씨 차지가 되어 버린 거다. 순간 뒷목이 뻣뻣해 오는 것을 느꼈다. 대체 한 정거장 가려고 앉은 인간은 뭐란 말인가. 다리가 불편해 보이지도 않았다. 이런 날은 하루 종일 운이 나쁘다. 아니나 다를까 내 앞자리의 학생은 마치 내릴 것 처럼 몇 번 바깥쪽을 두리번거리더니 교대에 도착할 때까지도 일어설 생각을 앉는다. 이 땅에 정의란 없다. 나쁜 인간들...

그래 사연이 있겠지. 사무실은 남쪽이지만 어쩔 수 없이 북쪽에 사는 이유가 있겠지. 한 정거장이라도 앉고 싶을 정도로 다리가 아팠던 거겠지. 내리려고 한 게 아닌데 괜히 내가 오해한 거겠지... 미안하다. 잠깐 흥분했나 보다. 다만 이 한마디는 꼭 하고 싶다. 지하철에서 앉아 가는 사람들이여, 내릴 거면 기척이라도 해라. 안 내릴 것처럼 엉큼하게 눈 감고 있지 마라. 그럴 때마다 살의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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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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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딸꾹질에 민감한 체질인 사람이 있는데 바로 내가 그렇다. 딸꾹질을 한 번 시작하면 잘 그치지 않을 뿐더러 제대로 발동이 걸리는 날엔 거의 하루 종일 시달리게 된다. 물론 내내 그치지 않고 주욱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날은 호흡만 한 번 잘못해도 딸꾹질이 재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날은 심신이 지친다. 남들은 물만 먹어도 그친다는데 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도 별무신통이다. 그냥 운 좋게 멎기만을 바랄 뿐이고, 요행으로 멎는다 해도 재발할까 전전긍긍이다. 이렇게 평소 딸꾹질에 하도 당하다 보니 시작하기만 해도 벌써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아내도 내가 딸꾹질을 하면 슬슬 내 눈치를 볼 정도다.

목감기가 심하게 걸렸다. 편도선이 부어 침도 삼키기 어렵다. 오늘 학교 보건소에 갔더니 같은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을 목록에서 발견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같은 과 사람들이었다. 아무튼 목이 따끔거리고 간질거려 여간 불편하지 않은데, 이러다 보니 기침을 자주 하게 되고 호흡의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필연적으로 딸꾹질이 시작된다.

감기 증상이 시작된 어제부터 딸꾹질을 계속 하고 있다. 아주 괴롭다. 어차피 멎지 않을 거 그냥 포기하고 놔두면 어떠냐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그냥 두면 딸꾹질 소리가 기차 화통 삶아먹은 것처럼 커지고, 몸도 마치 탈춤 추듯이 들썩들썩거린다. 혹시라도 수업 시간에 딸꾹질이 재발할까 엄청 긴장했다.

우선 이놈의 감기부터 나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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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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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 → 공주박물관 → 우금치 → 정림사지 → 능산리고분군 → 관촉사 → 미륵사지 → 금산사 → 백산 → 만석보 → 말목장터 → 전봉준고택 → 황토현 → 동학혁명모의탑 → 고창읍성 → 반계유허지 → 내소사 → 무량사 → 성주사지 → 김좌진장군생가터 → 홍주성 → 서산마애삼존불 → 보원사지 → 해미읍성 → 수덕사 → 추사고택 → 맹씨행단(맹사성고택)
적고 보니 답사 기간 동안 정말 많은 곳을 다녔다. 전북과 충남 지역 답사의 테마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동학농민혁명이고 또 하나는 백제 문화권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답사자를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남아 있는 볼거리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실패한 혁명과 패망한 나라는 그 흔적을 남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부여는 이번 답사가 두 번째 방문이었으므로 그 초라함과 을씨년스러움이 주는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다른 곳, 특히 동학과 관련된 답사지에서 느끼는 황량함은 날씨 탓만은 아니었다.

거름 냄새만 진동하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답사지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 들어있는 문화유적은 하나도 없다고 보면 된다. 그저 방문객을 위협하는 듯이 하늘 위로 뾰족하게 서 있는 기념탑이나, 문화재라고는 절대 인정할 수 없는 기념비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또한 만약 이러한 기념물이 없다면 그곳이 어떠한 역사를 지닌 곳인지 절대 알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시골 풍경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그나마 세워져 있는 기념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독재자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동학 관련 사업을 처음 한 사람은 박정희였다. 당시 핵 문제로 미국과 사이가 나빠지자 자주국방을 강조하는 이념 사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하면서 역사적으로 이용할 만한 사건이 없나 살펴보던 중 '반외세'라는 명제에 적합하다 싶은 동학을 발견한 것이다. 이 정도는 그나마 못 봐줄 정도는 아니다. 두 번째로 동학 관련 사업을 벌인 장본인은 바로 전두환이었던 것이다. 전(全)씨 중에서 중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없는지 살펴보니 전봉준(全琫準)이 걸린 것이다. 정말 우울한 유머다. 이러다가 혹시 조(趙)씨 중에 대통령이라도 나오면 조병갑(趙秉甲)이 실은 탐관오리가 아니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고부봉기를 유발한 조병갑의 학정의 상징물인 만석보터에 도착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코를 찌르는 거름 냄새였다. 분노한 농민들이 당시 만석보를 없애버렸으므로 당연히 기념비 외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고, 오로지 사방으로 펼쳐진 것은 논밭이었다. 만약 거름 냄새가 없었더라면 약간은 비현실적인 풍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냄새가 이곳이 여전히 삶의 터전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동학 관련 유적은 가슴 없이는 절대 가 볼 곳이 못된다.

우리의 무늬가 아름답다
아무래도 고적 답사에는 절이나 절터가 많이 포함된다.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이 사찰 중심이기 때문이다. 역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받은 곳만이 살아남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곳의 국보나 보물 등의 문화재는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중요하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알 뿐이다. 오히려 내 눈을 끄는 것은 작은 것이었다. 처마의 생김새나 창살, 석등이나 탑에 새겨진 조각, 담벼락의 무늬 등이다.

내소사 일주문의 전나무 숲길은 꽤 유명하다. 삼림욕장으로도 잘 알려진 이 아름다운 숲길을 걸으면 기분이 절로 상쾌해진다. 그러나 이번 방문은 그렇지 않았다. 150 여명의 불청객이 일시에 이 숲길에 들이닥치면서 그들의 발길이 만드는 먼지로 뒤덮인 것이다. 게다가 이 불청객들이 만들어내는 소란에 조용하던 산사가 일시에 시장바닥이 되어 버렸다. 다른 방문객들은 이 불청객들에 대한 적대감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불쾌감도 내소사의 경관과 대웅보전을 보는 순간 어느덧 사라져버린다. 특히 대웅보전의 꽃창살무늬는 내소사의 꽃이라 할 수 있다. 근엄한 절간의 창살을 어떻게 이렇게 꾸밀 생각을 했는지 놀라울 뿐이다.

추사(秋史) 김정희의 고택을 방문하면 조선의 멋진 담벼락이 우릴 반긴다. 사는 사람은 없고 추사의 글씨만 곳곳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이 마치 액세서리를 마구 다는 바람에 오히려 더 어색한 것처럼 조금 우스꽝스러운 집이었지만, 이 예쁜 담벼락의 무늬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이 용서된다.

그밖에도 고창읍성, 해미읍성의 성벽의 돌담 모양이나 보원사지 법인국사보승탑에 새겨진 사자상, 맹사성 고택의 담벼락 무늬 등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도 자연이 더 아름답다
미륵사지에서 선조들의 돌 다루는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1400년 전에 현재 기술로도 흉내낼 수 없는 멋진 기술로 그렇게 아름답고 웅장한 구조물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정말로 놀랍다. 군더더기 없이 날씬한 당간지주도 단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법인국사보승탑 사자상의 통통한 넉넉함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웃음이 나도록 만든다.

그러나 유적의 아무리 멋진 건축물도 그 주변 자연 경관이 품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국보니 보물이니 하는 건물보다 그 뒤에 서 있는 산자락이 훨씬 아름답다. 왜 사람들이 다른 곳을 두고 하필 이곳에 절을 지어 불국토를 건설하려 했겠는가. 산자락을 그대로 닮은 지붕들... 선운사의 지붕들은 인간의 멋진 건축물도 주변 경관에 어울려야 정말로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유적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만나는 해넘이가 이번 답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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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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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의 하나

롤플레잉 2006. 4. 1. 02:14
2006년도 상반기 고적 답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많은 곳을 둘러보았으나 많은 것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우선 매서운 바람과 맞서야 했으며, 빡빡한 일정과 씨름해야 했으며, 높은 곳을 오를 때마다 날 그 자리에 주저앉히려는 중력과 싸워야 했다. 이 중에서 무엇보다도 괴로웠던 것은 바람이었다.

백제의 땅은 타지의 방문객에게 어떠한 호의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사고(思考)의 끝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마저 얼려버릴 것 같은 무시무시한 추위와 바람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마누라 말 들어 손해 날 일 없다더니 역시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두터운 옷 챙겨 가라는 잔소리를 몇 번이나 무시하고 가방 무거워지는 게 싫어 그냥 나섰더니 날씨가 아주 제대로 보복을 해 오는 것이다. 바람은 답사 마지막 날에서야 잦아들었다.

그런데 용케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첫날 의례적으로 감기약을 하나 먹긴 했으나 실제로 감기 기운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로선 생각밖의 선전이다. 찬바람만 쐬어도 바로 감기 몸살로 몸져 눕던 기억이 불과 몇 달 전의 일 아닌가. 그런데 이런 악랄한 추위에 감기 환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도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만으로도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둘 중의 하나이다. 그 사기꾼 같던 한의사가 제대로 약을 썼거나, 나도 아내처럼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있다는 얘기다. 진짜 이유가 무엇이건 집나가서 아픈 서러움을 겪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솔직히 여행 중에 아프거나 탈이 날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런 속에서도 배탈 하나 없이 어디 부러진 곳 없이 요 며칠을 대견하게도 잘 버텼다. 물론 강행군 속에 무릎이 시려오고 약간의 술병(두통)은 있었지만 이정도면 훌륭하다.

가을에도 보약을 먹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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