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한 달 동안 역시 중용이 좋다는 것을 느꼈다. 자취하면서 통신비도 아끼고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줄인답시고 인터넷을 안 깔았더니 세상에 이렇게 불편할 수가... 그간 느끼지 못했지만 인터넷은 어느덧 현대인에게 혈액과 마찬가지가 된 것 같다. 워드프로세서만 쓰면 되는데 오프라인이면 어떠랴 생각했지만 이내 그것이 잘못 되었음이 밝혀졌다. 특히나 괴로운 것이 사전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인데, 영어사전뿐만 아니라 백과사전, 한자사전, 국어사전, 게다가 도서 검색까지, 이런 거 없이는 대체 과제물 하나 제대로 만들 수가 없다. 과제하러 들어갔다가 이 사이트 저 사이트 서핑으로 시간 낭비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건 뭐 산속 암자에서 수도하는 것도 아니고...
    방학에는 요금을 안 내는 방법도 있다니 인터넷 깔아야겠다. 도무지 갑갑해서 못 살겠다. 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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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에 처자식 두고 다시 자취를 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서울 청주간 이동거리가 너무 아까워서였다. 차라리 기차로 이동하면 그 시간에 책이라도 볼 수 있지만 버스로 갈 땐 5분 이상 책을 볼 수가 없다.[각주:1] 그 외에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통학을 하다보니 아무래도 잠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에 청주에 방을 얻어 자취를 시작한 건 좋았는데...

    취지와는 달리 좀 엉뚱한 곳에서 자취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제껏 봉인되어 있던 잠의 본능이 서서이 깨어나는 것이다. 이동 시간을 온전히 공부하는 시간으로 돌려도 모자랄 판에 그 시간을 잠이 치고 들어오다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지금 자취방엔 덜렁 이불 하나 놓여있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TV도 없고, 인터넷도 안 된다. TV는 조만간 연결할 생각이지만, 며칠 간의 고민 끝에 인터넷은 연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방학 때엔 사용하지도 않을텐데 이용요금을 낸다는 것은 내 세계관으로서는 용서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아무튼 그래서 현재로선 자취방에 기어들어가는 순간 외부와는 완전 단절이다. 그러다 보니 방은 언제나 적막강산이다. 그렇다면 집에서 학생의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이라는 게 어디 그런가.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라더니 지금의 내가 딱 그렇다. 책상은 커녕 밥상도 없으니 책을 보려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보거나 아니면 엎드려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자세로 책을 보다가 문득 정신 차리면 불은 훤하게 켜 놓은 채 잠들어 있던 나를 발견하게 된다. 시계를 보면 거의 언제나 새벽 두 시다. 이때쯤 깨는 것은 보일러를 켜 놓고 자지 않으면 딱 이 시간에 방이 추워지기 때문이다. 새벽 두시에 뭘 하겠나. 불 끄고 다시 자야지 뭐...

    덕분에 아침엔 상쾌하게 일어난다. 하루 9시간 이상 자는데 당연하지 않겠나. 그런데 그것 말고는 남는 게 없다. 이래선 안 된다. 오늘부턴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버티다 돌아와야겠다.

  1. 가끔씩 옆자리에서 이동하는 내내 책을 들여다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지만, 나로선 옆에서 그저 쳐다만 해도 속이 울렁거린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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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점 관리법?

롤플레잉 2008. 3. 16. 02:16
    휴가 나온 동기가 며칠 전 술자리에서 내게 물었다.

"형님, 학점 관리 잘 하는 비법이 뭡니까?"
"그런 게 있나? 나도 잘 모르는데..."
"에이, 그래도 뭔가 있을 거 아닙니까."

    학점이라고 해서 특별히 관리해 본 적도 없지만, 그래도 지금까진 비교적 운이 좋아 그럭저럭 장학금도 타고 그랬더니, 남들이 보기엔 뭔가 비법이라도 있는 줄 아는 모양이다. 하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지금 내게 묻는 이 놈은 관리라면 관리가 필요한 놈이다. 군대 가기 전의 성적이 거의 내 이십대 초반의 그것과 유사하다.

"다른 거 있나 뭐. 수업 시간에 졸지 않는 거 아니겠어."
"그 외에는요?"
"흠... 글쎄... 시험기간 만큼은 오욕칠정을 끊고 공부하는 거랄까..."

    점점 수업 시간에 자리 잡기가 힘들어진다. 아무래도 앞자리가 선생님 말씀도 잘 들리고, 칠판이나 빔프로젝트 보기에도 좋으니까 그런가 보다. 그러나 그럼 뭐하나. 열심히 자리 잘 잡아놓고 수업 시간에 졸면 말짱 황인 것을. 게다가 최근에는 강의를 녹음하는 것이 새롭게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그럼 뭐하나. 수업 시간에 졸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나중에 녹음 한 거 백 번을 들어봐라. 수업 시간에 한 번 듣는 것보다 나은지...

    공부 잘 하는 비법 찾는 인간들이여. 그런 거 연구할 시간에 수업이나 잘 듣길...
    수업 시간에 조는 놈들, 하나도 안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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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우울해지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다시 자취생활을 시작한 첫날, 나쁜 일은 함께 들이닥친다는 평범한 진리는 한 번도 빗나가는 적이 없다. 본격적인 이사는 다음 주말에 하기로 하고 우선 이번 주에 갈아입을 옷가지와 노트북, 그리고 수업에 필요한 교재만 챙겼는데도 집을 나서는데 벌써 어깨가 빠질 것 같다. 오늘 하루 쉽지 않겠구나 하는 예감과 함께 시작한 월요일. 자취방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원룸을 빌리지 않은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이 넓은 곳을 어떻게 다 치운단 말인가. 방이 2개, 작지만 치우려면 넓어 보이는 거실, 보일러실, 베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숨 나오는 것은 이 세상 곰팡이란 곰팡이는 다 모아놓은 것 같은 욕실이다. 이 많은 곰팡이를 왜 계약하기 전에는 못 본 걸까.

    어차피 본 짐은 도착하지도 않았고, 나 혼자 이 많은 걸 하루에 다 치운다는 것도 불가능하기에 오늘은 잠자는 방 하나만 걸레질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오후 네 시에 수업이 끝나면 잠들기 전까진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는다. 이 시간을 보고 자취 생활을 다시 한 것 아닌가. 그래 시간은 많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쉬엄쉬엄 천천히 하나씩 하자...

    그렇지만 처음 생각과 달리 일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당장 오늘 덮을 이불이 필요했다. 이런 건 당연히 근처에서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리고 근처에 이불 가게가 있다는 얘기까지 들었건만 어찌 된 일인지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 말고도 오늘 살 게 많은데 도대체 어디 숨은 걸까. 이리저리 찾다가 결국 집에서 한참 떨어진 옆 동네의 시장까지 와서야 이불 가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 쇼핑한 다른 물건 때문에 지칠대로 지쳐 있었기에, 이불값을 흥정하고 싶은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는다. 주인도 내 상태를 눈치챘는지 값을 깎으려는 나의 시도에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제 컨디션이라면 절대 용서하지 못할 가격으로 이불을 양 손에 사들고 돌아오는 길이 왜 이리 먼지...

    집으로 돌아왔더니 몇 가지 재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3월 초, 아직 추운데 이놈의 보일러가 작동을 안 한다. 이게 뭐냐. 그렇다. 나는 보일러도 한 번 돌려보지 않고 덜컥 2년 짜리 전세 계약을 한 것이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음을 깨달았지만 이번엔 뭔가 조치를 할 시간이 없었다. 학교 과제가 갑자기 떨어진 것이다. 팀 활동이라 내가 늦게 하면 할수록 팀원이 피해를 보게 된다. 일단 보일러는 그대로 두고 학교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도서관에 자리 잡고 부랴부랴 과제를 해서 넘기고 한숨 돌렸다 싶은 순간, 이번엔 또다른 과제가 떨어진다. 게다가 이번엔 좀 전의 것보다 더 급하고 더 힘든 과제다. 시계는 저녁 7시. 난 아직 저녁밥도 먹지 않았단 말이다. 그래도 조금만 더 힘내자. 내 처지대로 세상이 돌아가는 건 아니잖아. 그리하여 어찌어찌 두 번째 과제도 마무리하여 넘기고 8시 30분에 학교를 나섰다. 늦은 저녁을 먹고 서울 집에 전화를 했더니 엄마한테 혼났는지 딸 목소리도 힘이 없다.

    다시 집에 도착하니 잠깐 미루어 두었던 보일러 문제가 다시 나를 괴롭힌다. 희망도 없이 몇 번의 의미 없는 재시도. 이젠 정말로 조치를 취하기엔 너무 늦었다. 밤 9시가 넘어서 사람을 부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면 가능한 것부터 하자. 우선 욕실의 곰팡이와 힘닿는 대로 싸워주고, 그 다음엔 당장 오늘 잘 방을 치우기. 원래는 큰 방에서 자려고 했으나 짐이 없으니 휑한 것은 그렇다 쳐도 목소리가 울리는 것이 영 맘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계획을 수정하여 작은 방을 걸레로 훔쳤다.

    아까부터 아내는 오늘 내 일진을 염려하여 격려와 위로 전화를 계속 해댔다. 그러나 난 괜찮다. 이 정도에 무너질 내가 아니다. 보일러 문제야 내일 해가 뜨면 해결할 수 있고, 오늘 냉방에서 자는 것은 옷 껴입고 이불 말고 자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 내일 아침 찬물에 머리 감는 큰 시련이 남아있지만 그 정도는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에게 불가능한 일이 절대 아니다. 오늘 이불 사건으로 좀 피곤하긴 하지만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는 거 아니냐. 여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이불도 깔았으니 자리에 누우려고 찬물에 세수를 하는데, 아 글쎄 집에서 가져온 비누가 영 안 도와주지 뭔가. 비누를 감싸고 있는 비닐 포장지가 아무리 애를 써도 벗겨지지 않는다. 뭐 이런 거지같은 경우가 다 있단 말인가. 나 오늘 그래도 꽤 힘들게 살았다. 그런데 이놈의 비닐 나부랭이가... 갑자기 우울해진다. 갑자기 이 세상에 완벽히 버려졌다는 느낌. 이런 하찮은 비닐까지 나를 우습게 보나... 그러고 보니 아닌게 아니라 게임도 없고, 인터넷도 안 되고, TV도 없고, 난 완벽히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다. 노트북을 켜 보니 어제 백업해 둔 게임이나 음악 파일도 웹하드에 저장해 놓고 이쪽으로 옮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새삼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아직 11시밖에 안 되었는데 무얼 할 수 있단 말이냐... 하드 디스크를 통째로 긁어보아도 할 만한 게 안 보인다. 그때 찾아낸 것이 2개의 음악 파일. 하나는 'Porco e Bella',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양희은 아줌마의 '내 어린 날의 학교'이다. 영화 '선생 김봉두'의 삽입곡이기도 한 이 노래는 나처럼 시골 분교에 다녀본 사람만이 그 속에 흐르는 정서를 완전히 공감할 수 있다.

미루나무 따라 큰 길 따라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따라
시냇물을 따라 한참을 가면
어려서 내가 다니던 우리 학교
......

    난 완전히 버려진 것은 아니다. 이렇게 나를 위로해 주는, 오랜 친구 같은 노래가 두 곡이나 있지 않은가. 방은 조금 춥지만 그래도 마음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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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에 홀리다

롤플레잉 2008. 3. 10. 00:05
망향[望鄕]
  1. [명사] 고향을 그리워하며 생각함 ≒ 사향(思鄕)

  2. [영화정보] 망향 (Pepe Le Moko, 1937)
    87분
    프랑스
    감독 줄리앙 뒤비비에르
    출연 장 가방, Mireille Balin, Gilbert Gil, 마르셀 달리오

  3. [가곡] 채동선(蔡東鮮) 작곡, 박화목(朴和穆) 작사의 가곡
    작곡  채동선(蔡東鮮)
    작사  박화목(朴和穆)
    종류  가곡
    제작연도  1933년

  4. [고속도로정보] 망향휴게소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요방리 121
    노동자 강제해고, 용역깡패 동원 무차별 폭력, 여성 노동자 성추행 등 '무대포식 노동자 탄압'으로 악명 높은 휴게소

-----------------------


    역시 휴일 고속도로는 느긋하고 나른하다. 평소 서초 나들목에서 청주 나들목까지 1시간 20분, 청주 톨게이트에서 학교 앞까지 30분, 거기에 집에서 고속도로 진입까지의 시간을 고려해 여유있게 집에서 나온 것은 좋았으나, 그놈의 여유가 지나친 감이 있었다. 휴일 고속도로에 차가 막힐 리는 당연히 없겠지만 예상보다도 더 적은 차량 흐름 덕분에 약속 시간에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할 것 같았다.

    전세금 잔금을 치르기 위해 아내랑 일찍 집을 나섰다. 일요일 아침에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건 평소 생활신조를 크게 거스르는 일이나, 한국사회에서 세입자는 분명 갑이 아니라 을이다. 집주인이 일요일 오전밖에 시간이 없다는데 별 수 있나. 한 주 동안 쌓인 피곤을 그대로 짊어지고 시동을 걸었다. 딸을 외가에 맡기고 그길로 청주로 나섰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하는 것이 또한 을의 미덕인지라, 아침도 거른 채 아직 떨쳐내지 못한 잠도 함께 머리에 이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안성을 지난지 얼마나 되었을까. 시계를 보니 청주에 너무 일찍 도착할 것 같았다. 그제서야 아침식사 생각이 난 우리 부부는 휴게소를 찾았다. 밥 먹고 가도 충분할 만큼 시간이 남았다. 그리하여 들어간 곳이 망향휴게소. 5000원 짜리 밥이 이렇게 맛이 없어도 되는 걸까. 최대한 음식 솜씨 안 타는 걸로 고른 메뉴가 장국밥이었는데, 맛이라고는 그냥 짠맛 말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요상한 장국밥. 아내가 선택한 것은 콩나물국밥이었는데, 내가 알기로 저렇게 생긴 콩나물국밥은 아직 학계에 보고된 바가 없다.

    이건 뭐 밥을 먹었다기 보다는 그저 배만 채웠다는 느낌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밥은 밥, 뱃속의 민원이 해결되고 나니 이제 뇌의 민원이 문제가 된다. 휴게소를 나서니 날은 점점 따뜻해지고, 음악도 적당히 흐느적거리면서 졸음이 몰려온다. 그래도 졸음운전을 할 수는 없다. 망향이면 청주가 얼마 남지 않았다. 사탕으로 졸음을 쫓아가면서 제한속도를 유지하면서 고속도로를 달렸다. 어디쯤 왔나 하고 도로 오른쪽 표지판을 흘끗 보았더니 '청원'이란다. 그렇다면 곧 청주다. 이제 거의 다 왔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청원을 지났다 싶은데 영 낯선 이 느낌은 뭔가. 날이 따뜻해서, 눈이 부셔서 그런가... 아무튼 조금 더 달렸을 때, 이번엔 뭔가 구체적으로 이상하다. 신탄진? 서울-청주 사이에 신탄진이 있었던가? 엥 대전? 나오라는 청주는 나오지 않고 대전이 웬말인가. 청원 다음은 청주가 나와야 되는데...

    여기까지 온 이상은 어쩔 수 없다. 일단 대전 톨게이트를 나오면서 표받는 아주머니한테 물었더니, '청주요? 30분은 더 오셨네요.'란다. 부부가 깜짝 놀랐다. 둘 중에 아무도 청주를 본 적이 없거늘 30분씩이나 지나쳤단 말인가. 고속도로에 안개가 끼었으면 이런 말도 안 한다. 멀쩡한 날에 이 무슨 귀신에 홀린 것 같은 일이란 말인가. 결국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유턴을 해서 다시 서울 방향 고속도로로 올라왔는데... 정말로 30분은 서울 쪽으로 내달려서야 청주 나들목으로 나올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망향에서 출발하고 3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대전이라니. 아마도 망향휴게소와 청주 간 거리가 5분도 안 되나 보다 하고 말았는데... 잔금을 치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망향휴게소를 찾아 보았는데 어째서인지 영 나타나질 않는다. 그래서 상행선 쪽에서는 망향휴게소가 안 보이나 보나 생각하고 한참을 달렸는데, 갑자기 왼쪽에 떡하니 나타나는 휴게소 표지판, '망향'...

"아니 청주에서 이렇게 떨어졌다는 거야?"
"뭐지, 이거? 그럼 우리가 그 먼 길을 남쪽으로 왔다는 건데..."
"정말 귀신에 홀렸나..."


    오늘 하루 종일 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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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열정

롤플레잉 2008. 3. 9. 00:42

    스스로 야망을 가지는 부류는 그나마 다행이다. 그것이 열등감의 왜곡된 표현이건, 감당할 수 없는 힘에 대한 미망이건, 나쁜 머리의 사생아이건...

    정말로 엄청난 부류는 어처구니 없게도 타인에게 그 가짜의 삶을 강요하곤 한다. "Boys be ambitious..." 지난 1월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철거민 고교생의 생계 호소에 장문의 답신을 보냈다. '...가슴에 묻어두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이다. 천성이 꼬였는지, 이상하게도 난 저 얘기가 '억울하면 공부해서 출세하라'고 들린다.

    저런 말 들을 때마다 더욱더 '악착같이', '열심히' 살기 싫어진다.

원글: <조여니와 이야기>: 야망과 열정을 구분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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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의 목욕물을 받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학창시절의 담임 선생님들의 성함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럴수가 있나. 초등학교, 중학교 선생님들의 성함은 떠오르는데, 정작 시기적으로 비교적 가까운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들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이날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선생님의 성함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예외 없는 규칙은 없듯이, 초등학교 5학년 담임 선생님은 오래전부터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이는 내 기억력의 편리한 점 때문인데, 나는 잊고 싶은 안 좋은 기억은 마치 없었던 것처럼 잊어버리지 않는가. 그래서 5학년 때의 선생님은 기억나지 않더라도 하나도 아쉽지 않고, 또 새삼스럽게 기억해내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다르다. 비록 내가 고분고분하다거나 모범적이거나 국가관이 투철하다거나 친구들과 원만한 학생이었다고 볼 수 없으려니와, 그러므로 선생님들에게 특별히 좋은 제자였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 선생님들에게 고마운 감정도 못 느끼는 후안무치는 아니다. 그런데 왜 선생님들 성함이 기억나지 않는 걸까.

    너무나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나머지 인상을 험악하게 썼는지, 아내가 어디 아프냐고 물어본다. 그렇잖아도 낮부터 두통 때문에 그다지 좋은 컨디션이 아닌데다가 나름 심각한 상황이라 대꾸도 별로 곱지 않다.


"아냐. 그런 게 아니라... 학창시절 선생님들 성함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나."
"난 또... 놀랐잖아. 별 거 아니네..."
"아니, 별 게 아니라니! 선생님 성함이 생각이 안 나는 게 어떻게 별 게 아니라는 거야."
"그런 게 아니고... 인상을 쓰길래 또 머리 아픈 줄 알고..."
"머리도 아파."

    오늘따라 엄마 아빠를 힘들고 지치게 하는 딸내미 때문에 완전 녹초가 되어 있는 아내의 상태를 모르는 바 아니나,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는 나로서도 감정 통제가 쉽지 않다. 단순히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기는 일이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너무나 안 좋다. 마치 내 삶의 앨범의 몇 페이지가 통째로 뜯겨져 나간 것 같다.

    여기까지 쓰면서 다시 고1 담임 선생님 성함은 떠올랐다. 서정원 선생님은 잘 지내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마누라, 미안하다. 그치만 나도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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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거의 언제나 몇 가지 종류의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의 모든 멀미하는 사람은 배가 고프면 멀미하는 사람과, 배가 부르면 멀미하는 사람, 그리고 배고픔과 아무런 상관 없이 멀미하는 사람들로 나눌 수 있다.

    나는 불행하게도 배고프면 멀미하는 쪽이다. 이는 살면서 꽤나 피곤한 상황을 많이 만들어낸다. 왜냐하면 배가 고프면 멀미하는 사람이 거의 언제나 배가 부르면 멀미하는 사람들보다 여행 단가에서 경쟁력이 딸리기 때문이다. 버스 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에도, 바로 버스로 뛰어가야 할지, 아니면 이 급박한 때에 매점으로 뛰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빵 하나 집어들었다가 순간, '목 마르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음료수도 하나 골라야 되고, 빵을 고를 때에도 그 바쁜 와중에 '이건 물렸어. 다른 건 없나. 이집은 다른 빵 좀 갖다 놓지...'

    오늘은 아무 것도 안 먹고 그냥 차를 탔다. 아니, 솔직해지자. 아무 것도 안 먹은 건 아니다. 우유가 잔뜩 들어간 커피를 마시고 탔다. 게다가 엄밀히 말하자면 점심 먹은지 몇 시간 안 되었을 때였다. 즉 든든하진 않더라도 배가 고픈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도 이렇게 차를 타면 언제나 불안하다. '이러다가 배고프면 어쩌지. 그냥 먹고 탈 걸 그랬나...'

    그나마 버스에서 내릴 때까진 괜찮았는데, 지하철로 갈아타서 심하게 멀미를 앓았다. 기차나 뭐 이런 종류는 멀미 안 한다고 누가 그랬나. 어쨌거나 집에 도착했을 때엔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 밥맛도 없었다. 아, 이 한 주는 왜 이렇게 긴지...

    차라리 배가 부르면 멀미하는 사람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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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은 자면서 만나는 한편의 드라마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꿈에서는 현실 생활에서 이루지 못한 것, 또는 일어날 수 없는 것 등을 제약 없이 펼칠 수 있을 것 같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꿈에서도 여전히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많으며, 꿈이라는 것이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꿈이 일정 유형(패턴) 속에 갇혀 있음을 알게 된다. 즉 유한한 개수의 유형을 따라 꿈을 꾼다는 얘기다.

    오늘은 그 유형 중의 하나인 '로드무비'에 대해 얘기해 보자. 내 꿈 중에서 꽤 자주 나오는 이 유형은 처음엔 일상의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하여 어느 틈엔가 평범한 일상을 뒤흔들고 세상을 구하는 스펙타클한 대서사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나는 꿈 속에서 멋진 모험을 시작하는 거다. NPC의 삶을 한순간에 내던지고 분연히 떨쳐 일어나 롤플레잉 게임의 주인공이 되어 악당이나 괴물을 처치하는 스토리, 이런 멋진 스토리로 반드시 흘러가는 것은 아니지만,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꿈 속에서 나는 꽤나 중요하고 진지한 미션을 수행하러 떠나게 된다.

    그런데 내 로드무비에는 심각한 결함이 하나 있는데, 아무리 잠을 오래 자도, 즉 아무리 긴 모험이 되더라도, 이놈의 모험이 도대체 제대로 마무리가 된 적이 없다는 거다. 꼭 중요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아무리 길게 잡아도 중요한 이벤트 직전에 잠이 깨 버리고 만다는 거다. 아니, 이렇게 멋진 모험을 왜 끝을 못 내는 거냐고... 원래 미션은 아주 거창했는데, 정작 그러한 중요한 일은 다 빼먹고, 그 준비 과정만 주욱 늘어놓다가 잠이 깬다. 꿈의 시간적 제약 때문일까. 그렇진 않다. 아무리 길게 꿈이 이어져도 결국 끝은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모험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내 모험은 처음엔 주된 줄기를 따라가는데, 어느 순간을 지나면 지엽적인 문제 때문에 시간을 다 잡아먹고 만다. 메인 스토리를 방해하는 작은 이벤트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면, 어느새 그로부터 파생되는 또다른 작은 이벤트, 그것을 해결하려고 애쓰다 보면 또다른 장애물이 나타나고... 하도 많이 당하다 보니까, 꿈을 꾸면서도 위기를 느낀다.

'이러다가 이번에도 메인 이벤트는 못 하는 거 아냐?'
'보스전 없이 또 끝나겠군.'
'결국 보물찾기는 시작도 못해보나.'
'출발을 해야 모험이 시작될 거 아냐. 빌어먹을...'

    의기의식 뿐만 아니라, 이놈의 모험을 메인 스토리로 끌어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다시 생겨나는 이놈의 곁가지들... 얼마 전 꿈에서는 꽤 메인 스토리에 접근했다 싶었는데, 뜻하지 않게 이경실 아줌마가 내 앞을 막아섰다. 이번 모험의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이 있었다. 그것을 천신만고 끝에 구하는 데 성공하고, 이제야 드디어 곁가지들을 쳐내고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나 싶었다. 그런데 진짜 모험을 떠나기 위해 잠시 들른 카페에서 사건이 생겼다. 카페 주인이 바로 이경실 아줌마가 아닌가. 근데 이 아줌마가 내가 가진 아이템에 관심을 가지더니 한마디 한다.

"이런, 이거 가짠데."
"아니 당신이 이게 뭐에 쓰는 물건인지 알고 진짜니 가짜니 하는 거요?"
"내가 그것도 모를 것 같나. 이리 줘 봐."

    나도 참 바보다. 달란다고 그걸 주냐... 뭔가 잘못 되어 간다고 느끼는 순간 일은 이미 틀어져 있었다. 잽싸게 그걸 갖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이런 낭패가 있나. 그는 내 모험을 방해하려는 세력의 주요 인물이었던 거다. 처음엔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내 체념하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어째 일이 잘 되어 가더니만...'
'오늘도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모험은 끝났다. 일어나서 세수하면서 다시 버럭 화가 치밀었다.

'아우~ 그걸 그냥 떠나지. 등신같이...'
'거기서 왜 커피 생각이 나냐고 이 쪼다야...'

    언제쯤 내 모험은 끝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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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학동안 이 이상 더 쉴 수 없을 정도로 푹 쉬었는데도 역시 개강은 우울하다.

    하루 7시간 차를 타고 길에 버리는 시간이 너무나도 아까워 다시 자취 생활을 하려고 한다. 오늘 개강하자 마자 수업 끝나고 학교 근처 부동산에 들렀다. 학기 초이기도 하거니와 요즘 추세가 있던 전제도 월세로 돌리는 마당이라 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란다. 정말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도 없고, 겨울방학 중에 하루 청주에 내려와서 허탕만 치고 갔던 아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앞뒤 재어 보지도 않고 대충 계약하자고 했다. 이만하면 그리 나쁘지 않다.

    주위에서 부동산 복비 아까운데 왜 굳이 그쪽으로 알아보냐고 하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차라리 돈을 좀 더 주고 안전하게 하는 게 낫지, 학생들 전셋돈 들고 도망가는 집주인 얘기를 몇 번 듣고 나니 전봇대에 붙여놓은 전세 광고는 눈이 안 간다.

    아무튼 일사천리로 계약하고 돌아오는 일요일에 잔금 치르고 다음주 중으로 이사가려고 하니, 멀쩡하게 아내랑 딸을 두고 객지에서 홀아비 신세로 2년을 살아야 된다는 사실이 새삼 슬프다. 내가 하숙을 두려워 하랴, 자취를 두려워 하랴. 다만 이 나이에 가족을 두고 이 무슨 팔자에 없는... 아니지, 없는 건 아니고 팔자가 원래 조금 사나운가 보다.

    집에 들어서자 딸이 울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만 아프단다. 갑자기 열이 난다는데, 오늘따라 맘이 더 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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