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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8 소설을 써 볼까
  2. 2010.01.28 펜잘, 게보린 2
  3. 2010.01.21 훌라후프
  4. 2009.12.24 오라메디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
  5. 2009.07.12 그냥 집에 있을 걸
  6. 2009.07.10 뭐든 안 되는 날?
  7. 2009.03.05 개념의 문제
  8. 2009.03.03 폭식
  9. 2009.02.17 말조심 - 꿈 이야기 3
  10. 2009.02.13 중심극한정리

소설을 써 볼까

롤플레잉 2010. 1. 28. 23:13
어제 갑작스런 감기몸살로, 두 딸로부터 탈출하여 초저녁부터 방에 불도 넣지 않은 큰 방 침대에 누워 묵직한 이불 뒤집어쓰고 비몽사몽 잠의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을 때였다. 밖의 거실에서 도란도란 들리는 목소리들이 처음엔 분명 아내와 딸들의 것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들의 목소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 시작했다.

이게 아내 목소리 맞나...
혹시 지금 이 순간 저 문을 열고 나가면 낯선 세계의 낯선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날 바라보는 건 아닐까...

물론 이성의 끈은 끝까지 놓지 않고 있었던고로 이 공상이 말도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냥 지금 이불을 박차고 문을 열고 나가면 아무 것도 아니다. 당연히 저들은 내 가족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를 쳐다볼 것이다.

문득 나도 소설을 써 볼까 하는, 쓸데없기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생각이 머리 속을 아주 잠깐이나마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아픈 와중에도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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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잘, 게보린

롤플레잉 2010. 1. 28. 22:05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말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다. 결과는 당연히 상대방의 오해, 그리고 언쟁으로까지 이어지는 때가 많지만, 알량한 자존심때문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설령 인정한다 하더라도 한 번 뱉은 말이 아예 없었던 것이 될 수는 없고, 따라서 어색한 기류가 흐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대인관계 속에서의 말실수만큼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나를 황당하게 만드는 실언들도 있다.

거의 20년 가까이 만성두통으로 살아온 사람이 갖추어야 할 상비약이 바로 두통약이다. 요즘도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엔 사리돈을 이용했고, 그 후에는 타이레놀, 펜잘을 거쳐 지금은 게보린을 쓰고 있다. 그렇다 '두통엔 게보린, 한국인을 위한 두통약 게보린' 말이다. 게보린이 다른 약에 비해 특별히 좋은 성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과학적인 근거에 의한 것인지, 혹은 그냥 주관적인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약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약효가 떨어지는 때가 온다. 그 때가 바로 두통약을 바꿔 줘야 하는 시점이다. 지금 쓰고 있는 게보린도 언제 어느 때에 더이상 효과를 못 볼지 모른다. 그 때엔 또 다른 약으로 갈아타야겠지.

암튼 가지고 있던 약이 다 떨어져 집 앞의 약국에 갔는데, '게보린'을 머리 속에 떠올리고는 너무도 당당하게 '펜잘' 주세요 라고 말해 버린 것이다. 당연히 약사는 '펜잘'을 내밀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그 때까지도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하고 속으로 '아니... 새로운 겉포장이네...' 라고 생각하고 덥썩 약을 받아들고 집에 왔다. 그리고 포장을 뜯고 약을 입에 털어넣기 전에 가만히 살펴보니 이게 게보린이 아닌 거다.

'뭐야 이거. 게보린이 아니잖아.'
'어라, 펜잘이네.'
'이런 염병할... 잘못 말했다.'

이미 포장을 뜯었으니 바꾸러 가긴 글렀다. 아니다. 사실 포장을 안 뜯었어도 바꾸러 가진 않았을 거다. 그렇게 자신있게 '펜잘 주세요' 라고 외쳐놓고 이제와서 잘못 사갔다고 할 수가 있겠나. 에라 모르겠다. 그냥 두 알씩 먹자...

애정 없이(?) 산 약이라서 그런지 펜잘은 두어 번 먹고 나서 나머진 어딨는지 모르겠다. 아마 어느 구석에 쳐박혀 있다가 이사갈 때 기어나오리라...

요새는 젊은 사람도 치매에 걸린다던데 혹시 이런 게 계속되면 그렇게 되는 건가? 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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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후프

롤플레잉 2010. 1. 21. 22:55

훌라후프

생활과 레저 > 레저와 스포츠 > 레저 > 레저시설 및 장비

유희도구의 일종. 지름 1m 안팎의 플라스틱제(製)의 테[輪]로서, 그 속에 들어가 허리 둘레가 테의 내경(內徑)어느 부분에 닿은 상태로 몸을 흔들어 그 테가 땅에 떨어지지 않고 계속 돌게...

출처 : 두산백과사전 EnCy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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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우리 집에 훌라후프가 왔다. 그렇다 문제의 훌라후프 말이다. 큰 딸이 느닷없이 훌라후프를 하고 싶단다. 예전에는 사 준다고 해도 싫다던 딸아이가 값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훌라후프를 하겠다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뭐 비싼 것도 아닌데, 운동을 하겠다는데, 불건전한 것도 아닌데 못 사줄 건 없잖은가. 그래서 당장 사 줬다.

그런데 큰 딸, 허리에 얹고 돌려보자 마자 바닥으로 툭 떨어져 버리는 훌라후프를 보며 엄청 실망한다. TV 같은 데서 봤는데 남들은 잘하는데, 그래서 멋있어 보여서 해 본 건데 왜 자기는 안 되는 건지 알 수도 없고 속상하기도 한 거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엄마와 아빠는 생산적인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닌 것이, 엄마 아빠도 도무지 훌라후프는 젬병인 것이다. 그러니 딸아이에게 '요런 식으로 해 봐라...'는 얘기는 못 해주고 아주 일반적인 수준의 멘트밖에 날릴 수 없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열심히 하다 보면 잘하게 될 거야.
하지만 이런 말도 사실은 확신이 없다. 열심히 하면 정말 되긴 되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엄마는 몰라도 최소한 아빠라는 인간은 어렸을 때부터 훌라후프에 좌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딸에게 자신있게 열심히 연습하면 잘 될 거라는 말을 해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번 기회에 큰 딸이 안 하는 틈을 타서 나도 훌라후프를 살짝 돌려 보았는데, 여지없이 두 바퀴를 돌리지 못하고 땅바닥으로 직행이다. 여전히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훌라후프에 왜 좌절하는지를 살짝 돌이켜 보자면, 훌라후프를 잘 돌리는 기술이 있는데 내가 그걸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애초에 그런 기술은 없으며, 농업적 근면성으로 우직하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몸이 알아서 만들어지는 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당장 안 되는 이 순간이 의미 있는 시간인지, 아니면 기술도 모르고 완전히 맨땅에 헤딩하는 건지를 모르는 불안에 떨어야 하고, 그러니 이놈의 훌라후프가 재미가 있겠나 말이다.

암튼 딸아이는 엄마 아빠의 확신 없는 접대용 멘트를 곧이 곧대로 믿고 계속 연습중이니 조만간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두고 볼 일이다. 부디 딸이 성공해서 아빠에게도 희망을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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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서커 대리인

감독 조엘 코엔

출연 팀 로빈스,제니퍼 제이슨 리,찰스 더닝,폴 뉴먼

개봉 1995.04.29 영국,미국, 1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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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후프를 보니 팀 로빈스 아저씨의 유쾌한 영화 '허드서커 대리인'이 생각난다. 옛날에 볼 때에도 훌라후프 돌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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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처가 다 그러하겠지만 특히 입속의 상처는 더욱 사람을 괴롭게 한다. 다른 곳의 상처야 약을 바른 후에 외부의 자극을 차단하기 위해 밴드나 붕대를 붙이면 되겠지만 어디 입속의 상처는 그러한가. 더우기 뜨거운 국물이나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즐거워야 할 밥 때가 오히려 고통의 시간이 되어 버린다.

지난 주에 큰 딸이 입속이 헐어 음식도 제대로 못 먹는 고생을 했었는데, 그 바통을 이어받아 내가 똑같이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엔 자그마한 상처였는데, 3일 정도 지나자 밥 먹을 때는 물론 말을 하다가 혀만 닿아도 아플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딸아이가 아플 때 외가에서 발라 주었던 오라메디라는 연고를 얻어 와서 한 번  사용해 보았는데, 크게 깨달은(?) 바 있어 그냥 아픔을 참고 지내기로 했다. 아내는 왜 연고를 바르지 않냐고 말했지만 못 들은 척하고 그냥 눈물로 이 아픔을 견뎌내자고 마음 먹은 것이다.

딸아이는 그걸 바르고 금방 나았다는데, 왜 나는 굳이 아픔을 참아가며 하루 이틀이면 낫는다는 병을 거의 일주일이나 끌고 왔단 말인가. 제약회사와 원수진 일도 없고, 광고 모델이 주는 거 없이 미운 경우도 아니었고, 약값이 턱없이 비싸 화가 난 것도 아니고, 효과가 없어서도 아닌데. 글쎄... 이 약은 입속의 상처 부위에 얇은 보호막을 만들어서 일종의 밴드나 붕대 구실을 해 준다. 그런데 이 약을 바르는 순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쾌함이 밀려왔다. 사람을 정말로 기분 나쁘게 만드는 이물감. 약을 먹어도 된다고 하는데, 아니 이 기분 나쁜 걸 왜 먹어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어쨌거나 입 속으로 밀어 넣었으니 언젠가는 녹아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리라는 생각을 하면 더욱 기분 나쁘다. 또한 약 속에 약간의 마취제도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상처 주변의 근육이 굳어져서 말도 약간씩 새는 것은 그저 기분 탓인가. 이 약의 가장 큰 단점은 온통 신경을 그 쪽으로 쏠리게 만드는 이기적인 성질에 있다. 입속의 상처가 비록 견디기 힘들지만 그래도 내내 사람의 신경을 거스르지는 않는다. 자극이 주어질 때만 아프다. 그런데 이 약을 바르는 순간부터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온통 거북한 느낌과 함께 이놈의 이른바 보호막이 아직 다 없어지지 않고 덮여 있다는 의식(!)에 계속 사로잡혀 다른 생산적인 무언가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아픈 게 낫겠다. 제약회사와 원수진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내 기분을 잡쳐가며 그 회사를 도와야 할 이유도 나에겐 없지 않은가. 그나저나 입속 상처 치료제는 어쩔 수 없는 걸까. 이렇게밖에 안 되는 걸까. 누군가는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는데, 물론 난 이런 거 개선하고픈 생각은 꿈에 없다. 귀찮게 왜 내가 그런 걸... 그냥 아프면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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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엔 남부 지방에 물폭탄이라더니 오늘은 중부 지방이 딱 그렇다. 얼핏 뉴스를 보기엔 잠수교가 잠겼다던데, 우리집은 멀쩡한가 모르겠다. 그렇잖아도 지난 비는 은평구가 제일 많이 내렸다던데. 이번 비는 또 어떨지...

아무튼 아침부터 고민이었다. 도서관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집에 있자니 방바닥에 엎드려 하는 공부가 대체 몇 시간을 갈 것이며, 밥 때는 또 어찌 할 건가. 그렇다고 가방 싸서 도서관에 가자니 예사 비가 아니다. 지난 밤 먹은 닭 냄새가 진하게 베인 반바지를 다시 입고 가는 것도 언짢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 비에 긴바지는 자살이나 다름 없다.

이렇게 뭉그적거리다 보니 어느새 12시가 다 되어 간다. 이러다간 아무 것도 못하고 배만 고파지겠다 싶어 얼른 가방 싸들고 나왔는데... 도서관에 올라와서 가방을 열어 보니 책이 다 비에 젖어버렸다. 옷이야 말리면 되지만 한 번 젖은 책은... 가방 속까지 다 젖어서 말리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아무래도 오늘 내로는 쉽지 않겠다. 젖은 책으로 공부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런 기분으로는 집중이 잘 안 된다. 뭐랄까... 다른 건 몰라도 책만큼은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비슷한 게 있다.

이렇게 몸도 마음도 나 눅눅할 바엔 그냥 방에서 뒹굴면서 짬뽕이나 시켜 먹는 게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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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밤에 모기 한 마리때문에 잠을 설친 거나, 약간 어이 없을 정도로 생생한 악몽의 경험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새벽밥 지어먹고 청주에 내려와서 도서관에 앉았으나 부족한 잠으로 하루 종일 꾸벅꾸벅 존 것도 모른 척하자. 아직까지 내일의 스터디 준비를 다 못한 게 나름 가슴 아픈 일이지만, 오늘 밤에 하기엔 너무나 졸리지만, 까짓거 공부하다 죽는 셈치고 하면 안 될 것도 없다.

    그런데 방금 끝난 박카스배 스타리그 16강 경기는 좀 그렇다. 어쩜 네 경기 중에서 단 한 경기도 내가 응원하는 놈이 이기질 못하는지... 이영호가 김정우를 잡았을 때만 해도 별 생각 없었다. 송병구 이놈 오늘따라 스피디하게 잘 한다 싶었는데 정명훈 이 미친 놈의 벌처는 왜 이렇게 신나게 돌아다니는 거냐. 게다가 꼴도 보기 싫은 벌레 테란도 진영수를 밟은 데다가, 마지막엔 믿었던 고인규마저 조일장을 이기면 대체 어쩌라는 거냐. 그리고 고인규 이놈 '버티고' 모드는 어디다 던져 버리고 놈 답지 않게 공격 일변도의 경기를 구사하다니... 네 경기 모두 다 질 확률은 1/16 아닌가. 생각에 따라선 작은 확률은 결코 아닐 수 있지만, 그래도 네 놈 모조리 나가면 안 되지.

    공부가 안 되는 것도 안 되는 거지만 괜히 이런 날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얼쩡거리다 사고라도 당하는 게 아닌지 약간 떨린다. 대충 접고 내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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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의 문제

롤플레잉 2009. 3. 5. 21:16

오늘 수업 시간에 강사 선생이 학생들에게 물어본 말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여론이란 무엇인가?" 일순 흐르는 정적.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고 해야겠다. 우리가 평소 아무런 고민이나 의심 없이 쓰고 있는 많은 개념들. 그 개념의 정확한 뜻이나 형성 과정에 대해 어느 순간 질문을 받는다면 혹여 잘못된 답이라 하더라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분야 학문의 종사가 아닌 다음에야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 개념에 대해 누군가가 설명해 놓은 글을 보거나 말을 들어 보면 사실 별 건 아니다. 엄청나게 어려운 개념도 아니고 평소에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다. 즉 자신도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이다. 다만 그렇게 간단하고 깔끔하게 포장할 수 없었을 뿐. 강사 선생의 말을 듣고 나면 싱거울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약간 분하기까지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앞으로 이와 유사한 상황이 다시 벌어진다고 해서 앞으로 학생들이 자유롭고 자신있게 그들의 의견을 펼치진 않을 것 같다.

그럼 왜 우린 '정치'가 무엇인가 하는 평범한 질문에 대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는 걸까?

첫째로 수업 시간이라는 사태가 주는 무게가 작용하는 것 같다. 평소에 술자리에서라면 거침 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이렇게 수업 시간에 말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래도 뭔가 과학적이고 학술적인 용어를 써 가며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명제 형식으로 말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아무리 선생이 평소처럼 스스럼 없이 얘기하라고 하더라도, 선생 앞이라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학문 또는 진리 앞에서 벌거벗고 서 있는 무지한 개인이기에 그것이 어려운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교사의 능력일텐데, 이것이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둘째는 굳이 학문적인 명제가 아니라도 남들 앞에서, 즉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는 개인적 성향의 문제와 길들여진, 즉 후천적으로 체득된 처세에 가까운 '살아남는 법'이 버무려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남들 앞에서 틀릴 것을 각오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것은 그동안 우리 교육이 개개인에게 타인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훈련을 거의 시키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괜히 튀어서 좋을 게 없으며 가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진리 아닌 진리를 이제껏 살아오면서 체득해왔기 때문이다. 말 안 해서 보는 손해가 말해서 보는 손해보다는 훨씬 덜하다.

마지막으로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주어진 개념에 대해 실제로도 이제껏 별로 고민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매일같이 뉴스 섹션에서 보는 '정치'라는 개념이지만,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사람이 많진 않을 것이다. 이는 '정치'라는 주제가 무거워서인 것만은 아니다. MBC에서 하는 '세바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퀴즈 코너 중 '두 단어의 차이'를 설명 하는 게 있는데, 정말로 이걸 보면 만만치가 않다. 흔히 사용하고 있는 표현들이지만 그 차이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세상 뭐 그렇게 시시콜콜 다 따지고 사느냐, 그냥 편하게 살자고 말할 수도 있다. 그거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의사 소통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잖느냐고 말이다. 그렇다. '섹시'와 '요염'과 '뇌쇄'의 차이를 모른다고 사는 데 뭐 그리 큰 지장이 있겠는가. 하지만 요즈음과 같이 전 사회가 소통의 문제로 고통받는 것을 보면, 정말 개념의 문제부터 다시금 바로잡아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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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식

롤플레잉 2009. 3. 3. 18:42

점심을 좀 이르게 먹는다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오후 5시가 되니 허기져서 머리 빙글빙글 돌고 손이 떨려왔다. 역시 저녁 먹기엔 이른 시각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보던 책 덮고 학교식당으로 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내가 점심을 그렇게 적게 먹었단 말인가... 그 정도는 아닐텐데 이상하다. 오늘 점심 메뉴가 꽤나 맛 없긴 했지만, 그렇다고 음식을 남긴 것도 아닌데...

이렇게 배가 고프면 무슨 일이 나도 꼭 나게 마련인데 오늘이 딱 그렇다. 아무 생각 없이 허겁지겁 밥을 펐는데 평소보다 한 주걱 더 퍼담은 것이다. 자리에 앉으면서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싶었지만 워낙에 배가 고픈지라 개의치 않고 먹었는데, 다 먹고 나니 숨도 못 쉴 것 같다. 마지막으로 물을 마시는 순간 목까치 찰랑찰랑...

이렇게 폭식을 하면 최소한 한 시간은 아무 것도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 스스로 생각해도 건강에 좋을 리가 없다는 걸 안다. 그러나 이성은 멀고 감각은 가깝다. 배고픈 그 순간엔 참으로 나를 제어하기가 어렵다.

오늘 공부도 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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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대학 동기들이 등장하는 꿈을 꾸었다. 꿈이라는 게 원래 그렇듯이 예고하고 찾아오는 손님이 아니지만, 지인들이 잘 찾아와 주지 않는 내 꿈을 놓고 본다면, 한꺼번에 셋이나 친구들이 등장하는 꿈은 예사롭지 않을뿐 아니라 반가운 일이다. 그렇다 반갑긴 한데, 이번 꿈은 막상 깨어나니 아찔하기도 하거니와 한편으로는 현실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갑자기 친구들이 왜 내 꿈에 납시었나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얼마전 S와 저녁 먹자는 약속을 했었는데 하필이면 그날 몸살이 나서 기약 없이 다음에 보자고만 해 놓고 넘어간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이전에도 T가 S랑 통화하다가 설날 연휴에 친구들 한 번 모이자고 말만 해 놓고서 후속 연락 없이 잠수 탄 일이 있기도 하다. 워낙에 그런 공수표를 잘 날리는 위인인지라 이젠 괘씸하지도 않다.

"혹시 탱자한테 연락 없었냐?"
"없었는데. 왜?"
"짜식... 설날 연휴에 친구들 한 번 보자더니 애들한테 연락 안 했구먼..."
"기대하지 마. 원래 그렇잖냐. 안 그러면 탱자가 아니지..."
"그런가..."

아무튼 꿈 이야기로 돌아와서... 어젯밤 꿈에 친구들 세 명이 등장했다고 말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셋은 아니다. 문제의 T는 보이지 않았고, S놈과 얼마 전에 아빠가 된 D와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 모였다. 당연히 구체적인 장소는 지금 알 수 없다. 왜 모였는지는 모르지만 꿈 속에서는 전혀 어색하지 않은 만남이었고, 그 모임에 원래 T도 나오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T가 병원에 입원을 해서 못 나오게 되었다나 뭐라나... 아무튼 T는 그렇게 이야기 속의 배경 또는 맥락으로 등장한 것이다. 우리 셋이서 모여 놀다가 갑자기 S가 요 옆이 바로 T가 사는 아파트인데 가 보자는 것이다. 난 물론 반대했다.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 잘못이라서가 아니라, 아는 사람은 다 알듯이 T가 평소에 자기 방을 어떻게 해 놓고 사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로선 그 방에 들어가볼 생각이 전혀 나질 않았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야기 전개의 모순점이나 비논리성은 잠시 접어두자. 갑자기 아파트가 근처에 왜 나타날 것이며, 주인 없는 집에 왜 우리가 들어가 볼 것이며, 게다가 열쇠도 없이 어떻게 들어갈 것인가 등등 말이다. 꿈이잖은가. 안 되는 게 어딨나. 그것도 남의 꿈도 아니고 내 꿈인데 말이다.

어쨌거나 우린 T가 산다는 주인 없는 빈 방에 들어왔다. 방이 온통 쓰레기로 뒤덮여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현관에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 것 말고는 의외로 방이 멀쩡하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물론 우렁 각시가 와서 밥을 지어 놓고, 말끔하게 청소를 해놓고 갔다거나 하는 정도는 절대 아니다. 그저 T 치고는 깨끗하다는 얘기다. 다 먹어치우지 못한 과자가 방 바닥과 책상 위에 버려져 있었고, 이불도 펴 둔 채로 있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기특하다. 우린 심지어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방에 앉았고, 물론 순전히 내가 그랬지만, 과자 봉지를 뜯어서 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그런데 얘기 도중에 무심코 내뱉은 말에 갑자기 D의 안색이 확 변한다. T에 대한 얘기였는데, 내가 확실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T라면 원래 그렇겠지 하는 추측만 가지고 한 말이, 평소에 친구들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 하지 않는 D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뭐, 정말이야?"
"글쎄... 탱자라면 그렇지 않겠냐..."
"나한테는 그렇게 얘기 안 하던데."
"너한테 따로 얘기 했었냐."
"얘기했지. 이 자식 엄청 서운하네..."
"..."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어쩌지... 이미 D는 화가 나 있었고,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정확히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내가 그만 둘 사이를 이상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방을 나서서 병원에 누워 있다는 T를 보러 가기로 했던 차라 둘 사이에 오해가 있다면 금방 풀리겠지만, 결과적으로 중간에서 말을 만들어낸 나로선 상황이 참으로 꼬여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 순간 적당히 둘러대서 수습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고맙게도 자명종이 마침맞게 울려 주는 바람에 꿈에서 도망칠 수 있었지만, 괜스레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물론 꿈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구체적인 정황은 이미 잊었고, 기억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다지 명쾌하거나 논리적인 상황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내 경솔함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이 놈의 말 때문에 멀쩡한 사람 우습게 되는 게 정말 한 순간이다.  앞으로는 정말 말조심해야겠다. 조심, 또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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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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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극한정리

롤플레잉 2009. 2. 13. 20:13
오늘 통계학 공부를 한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니다. 그런데 저녁 먹고 도서관에 앉자마자 갑자기 머리 속에 떠오르는 단어, 바로 '중심극한정리'다. 뜬금없이 웬 중심극한? 살면서 이런 단어를 대체 얼마나 떠올릴 수있을까.

중심극한정리[中心極限定理, central limit theorem]

확률변수 제n항까지의 합의 분포가 n → ∞일 때 정규분포(正規分布)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이는 정리로 그 가장 기초적인 것은 이항분포(二項分布)의 정규조사에 관한 라플라스의 정리이다.

중심극한정리로서 가장 기초적인 것은 이항분포()의 정규조사에 관한 라플라스의 정리이다. 즉, X를 이항분포 nCkpkqn-k(p는 바라는 사건이 일어날 확률, q=1-p)에 따르는 확률변수라 하면,

      
(np는 X의 평균값, √npq는 X의 표준편차)

의 분포는 n → ∞일 때 표준정규분포 N(0,1)에 가까워진다.

     
......


그렇단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혹시 옆자리의 누군가가 통계학 책을 펴놓은 것을 지나치면서 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런 기억도 없는데, 마치 귀에 익은 노래가락처럼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말... 물론 살아온 동안 한 번도 접하지 않은 건 아닐게다. 재작년 교육통계 수업 시간에 들었던 말일 수도 있고, 고등학교 수학시간에 배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후론 내 삶에서 다시금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리게 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을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이 외에도 또 어떤 말들이 살아가면서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불쑥 떠오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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