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하다

롤플레잉 2009.01.31 07:55

    아침 먹을 때 그다지 입맛이 있지 않다는 정도였지만 체한 줄은 몰랐다. 평소 잘 체하지 않는 편인데다가, 사실 정오가 지나서도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오전 10시 영업 시작하자 마자 장을 보러 간 이마트에서 1시간쯤 지났을 때 갑자기 눈꺼풀이 무거워 혼났다는 게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다. 쇼핑 카트를 밀고 가면서도 대체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로 잠이 쏟아지는 게 아닌가. 아니 실은 눈을 뜰 수 없는 것 때문에 잠이 온다고 착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장을 봐서 집에 도착할 때만 하더라도 이것이 체한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심지어 점심은 뭘 먹을까 고민할 정도였다.

    12시면 점심 먹기엔 좀 이른 시간이다 싶어서 한 시간 후에 밥을 먹기로 했는데, 아까부터 무겁게 떨어지는 눈꺼풀을 주체할 길이 없어 잠깐 누워야지 하는 생각으로 쓰러졌다. 꿈도 꾸지 않는 무미건조하고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벌써 오후 2시. 침실에서 제대로 자리 펴고 누운 게 아니라 거실에서 무계획적으로 청한 잠이라, 베개 대신 쿠션을 베고 잤더니 뒷목이 거의 마비가 될 정도로 아팠다. 세상에 이런 영양가 없는 낮잠이 있다니... 게다가 나로 말하면야 원래 낮잠에 두통이 따르지 않던가. 그런데 뭔가 심상치가 않다. 낮잠 후의 두통 치고는 너무 심하게 머리가 아파온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두통. 낭패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두통약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빈 속에 먹기는 아무래도 속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낮잠 전에 정한 점심 메뉴인 자장면을 먼저 시켜 먹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몸 상태가 흔들렸다. 몸이 아프긴 아픈데, 도저히 말로 표현하기 좀 모호하게 아파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두 가지. 두통, 그 중에서도 전두통(前頭痛)과 메스꺼움. 그런데 이 둘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이 온 몸을 관통했다. 갑자기 식은땀이 나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떨려오기 시작했다. 혹시 토할지 몰라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아내가 묻는다.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잘 모르겠어."
"토할 것 같아?"
"응. 근데 막상 하려고 하니 또 안 나오네."
"낮잠 잤더니 머리 아픈 건가?"
"머리도 아프긴 한데,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워. 온 몸이 이상해."
"밥 먹을 수 있겠어?"
"두통약 때문에라도 다 먹어야지."

    메스꺼움을 참아가며 결국 자장면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리고는 식후 30분 시간 맞춰서 두통약을 입에 넣고 물을 들이키는 순간 모든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약 먹은 보람도 없이 바로 화장실로 뛰어가서 다 게워 냈다. 머리는 머리대로 뽀개질 듯이 아프고, 속은 속대로 다 뒤집어지는 고통... 올 겨울 크게 아픈 것 없이 넘어간다 싶어 내심 좋아했었는데, 명절 연휴 끝나고 감기 몸살로 한 이틀 고생하더니, 연이어 체하기까지...

    어릴 적에도 체했을 때 이렇게까지 머리가 아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체증에 두통이 따라오는지는 이번에 여러 곳을 찾아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편두통은 알아도 전두통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역시 이번 일을 계기로 알게 되었다. 머리와 배를 위시하여 온몸이 어찌나 아픈지 거의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끙끙 앓았다. 아내는 옆에서 안절부절이다. 하지만 어떻게 손을 쓸 방도가 없다.

"내가 어떻게 해 줄까?"
"몰라.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체한 거 맞지?"
"그것도 몰라."
"체하면 머리도 아프대."
"그런가. 암튼 너무너무 아프다."

    자주 체하진 않지만 이런 일을 당하는 것에 대해선 병적인 공포감을 느끼는 편이다. 토하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할까. 미처 화장실까지 가지 못하고 이불이나 방 바닥에 토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 실제로 어릴 때나 대학 들어와서 술 먹고 몇 번 그런 경우가 있었다. 토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죽을 지경인데, 그 와중에 직접 방을 치워야 하거나 또는 누군가에게 그런 수고를 하도록 짐을 지워야 한다는 사실이 참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에는 아파도 제대로 누워 있을 수가 없다. 약간이라도 속에서 어떤 반응이 오면 지금 일어나야 늦지 않게 화장실로 달려갈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과 이 정도는 참아야 한다는 생각들이 서로 겹쳐서 몸도 마음도 모두 괴로운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몇 번에 걸쳐 방과 화장실을 오가며 난리를 쳤다. 결국 아침에 먹은 콩나물을 하나도 소화되지 않는 채로 다 게워 내고서야 아침부터 체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드디어 몸이 탈진하여 방에 쓰러지고 나서 머리가 아픈 와중에도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두어 시간 잤더니 한 고비 넘어갔다. 저녁에 아내가 사온 약을 먹고 나서야 겨우 속은 진정되는 것 같았는데, 여전히 한 번 아프기 시작한 머리는 나을 기미가 없다. 두통약을 먹었더니 오히려 속만 쓰리고 머리는 별로 차도가 없다.

    어찌 되었건 간에 낮에 너무나 많은 낮잠을 잔 터라 밤에 잠이 올 리가 없는데다가 두통까지 도와주니(?) 또 이렇게 밤을 꼬박 새우고 대체 어쩌려는 건지 모르겠다. 한 번 아프면 연쇄적으로 생활의 리듬이 무너진다. 먹는 거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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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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