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추석 즈음에 태풍이 올라오면 이 정도로 비가 오긴 했지만, 근자에 들어서는 볼 수 없었던 날씨. 이래서는 성묘 갈 엄두도 못 내는 건 물론이거니와 연휴라고 해서 어디 놀러 가기도 쉽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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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오늘 저녁에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 하는 얘기가 많이 먹으란다. 지금 몸이 전체적으로 면역체계가 떨어져서 엉망이라고 영양가 있는 거 많이 먹어야 된단다. 이런 얘기까지 듣고 더 굶을 수 있나. 집에 오는 길에 바로 돼지 목살 사다가 구워먹었다. = _=

오늘 병원에서 상처에 발라준 「알보칠」이라는 이름의 약, 크기는 작지만 존재감 하나는 확실한 놈이다. 입 속 상처에 바르면 그 부분을 마치 인두로 지지는 것 같다. 연휴동안 계속 바르라는데 도저히 내 손으로는 감행할 엄두가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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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뭐라든 우리만 열심히 살면 길이 열리리라 생각해 왔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았다. 인생이라는 것이 계획한 대로만 그려지지 않다는 것을 몰랐던 바 아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머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뿐. 이렇게 막상 몸으로 체험하게 되면 황망해하고 분노하고 또 힘없이 주저앉고야 만다.

어쨌거나 수업료가 너무 비싸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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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재운 후 무심코 냉장고를 열었더니 못 보던 단지가 하나 들어있다. 아내에게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오늘 학교에서 얻어온 사과주스란다. 이렇게 생긴 주스가 다 있구나. 검색해 보니 마티넬리 골드메달 사과주스란다. 이름이 너무 거창한 거 아닌감?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거에 대해서만큼은 상당히 진취적이라고 자부하는 내가 이런 거 맛 안 보고 넘어갈 수 없다.

근데 주스병을 이렇게 디자인한 것은 혹시 사과처럼 보이기 위함인가?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꼭 『천녀유혼』에서 본 왕조현의 유골단지처럼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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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속병도 거의 다 나아가는지 밤에는 슬슬 야식이 생각난다. 간밤에 뭐 먹을 게 없나 하고 찬장을 열어 보았더니 아내가 사다 놓은 인디안밥이 보인다. 아니, 웬 인디안밥? 우리집에서 이걸 누가 먹지?

언제 출시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어릴 때 먹었던 인디안밥. 처음 이 과자를 접했을 때는 이렇게 맛없는 과자를 어떻게 팔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한 입 먹어 보고는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한참을 외면하고 살았는데, 어느날 같은 동네의 친구가 이 과자에 우유를 부어먹는 게 아닌가. 그렇잖아도 맛없는 과자에 우유까지? 이해할 수 없는 만행임에 분명했으나 친구놈의 표정은 너무나도 맛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게 뭐야? 우유 아냐?"
"응. 우유."
"맛있냐?"
"그럼, 얼마나 맛있는데... 너도 좀 줄까?"
"웩~. 아니. 난 안 먹어. 맛없어."
"이렇게 먹어 봤어?"
"아니..."
"먹어 보지도 않고서 맛없는 건 어떻게 알아?"
"전에 우유 없이 먹어 봤어. 정말 별로더라. 목만 막히고..."
"우유랑 함께 안 먹어서 그렇지. 이거 한 번 먹어 봐."
"맛있냐?"
"이 자식이... 싫으면 관둬..."
"아, 아냐. 한 숟갈만 줘 봐."

아니, 이것은~? 완전히 다른 맛이 아닌가. 오호~ 이런 맛이 다 있다니. 목이 막히지도 않고 맛이 괜찮았다. 요즘으로 치면 우유를 부어먹는 곡물시리얼이었던 셈이다. 아하~ 이렇게 먹는 법도 있구나.

...

시리얼이 판치는 세상에 이젠 이런 거 없어진 줄 알았는데 요즘도 나오는구나. 왠지 반가운 마음에 오늘 야식은 이걸로 결정. 단종(?)되었던 B29도 다시 나오더니 역시 대세는 레트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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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부터 아픈 몸, 여전히 맘에 들지 않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구내염은 더욱 악화되어 어제 저녁 밥상 앞에서는 숟가락질하다가 그야말로 울부짖고 말았다. 하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체증이 가시질 않는다는 것. 그래서 어제 오후 드디어 내과에 다녀왔다.

그동안 병원에 다녀오라는 아내의 말을 흘려듣고 있었던 것은, 거기 가 봐야 딱히 별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서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이렇게 가 보는 것은 그저 공인된 기관에서 확인 받는 것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동네 병원의 마음씨 좋게 생긴 의사 선생, 역시 내 예상에서 한 발짝도 비켜가지 않는다.

"이건 뭐 별 수 없어요. 한 이틀 굶으세요. 위장도 쉬어야죠. 계속 안 낫는 건 위장이 쉬질 못해서 그런 거예요."

그래도 사람이 안 먹고 살 순 없으니 일체의 다른 음식을 삼가고 미음이나 죽을 먹으란다. 그리고 약을 처방해 주겠단다.

그런데 병원비가 3,600원이 나왔다. 세상에 이렇게 비싸다니. 청진기 한 번 대고 굶으라고 얘기해 주는 게 이렇게 엄청난 일이었나. 그 건물 1층에 있는 약국에 갔더니 이럴수가, 약값은 그 보다 더 비싼 4,400이다. 두 군데 합쳐서 8,000원. 소화제를 손에 쥐고 오면서, 한마디로 길에서 강도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그냥 집에 있으면 될 것을 뭐하러 기어나와서 이런 봉변을 당하는지... 물론 건물 임대료도 내야 하고 간호사 월급도 줘야 하고 의사 선생 본인 가족도 먹여살려야겠지만, 그래도 굶으라는 말 한 마디가 이렇게 천금같은 귀한 말이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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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비가 와도 왜 이렇게 요란스럽게 오는지. 그래도 비는 조용하게 오는 것보다 화끈하게 오는 게 훨씬 좋다. 그렇지만 지금은 좀 아니다.

외과에서는 복합골절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해당하는 내과 용어는 없을까? 어제 저녁부터 아주 총체적으로 아프다. 아니, 실은 어제 오후부터 조짐이 왔다고 봐야 하는데, 점심 먹은 후 속이 좀 더부룩했는데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겼다. 그런데 이게 저녁 먹은 후에는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하더니 8시가 되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

우선 오후의 증상의 연장선상에서 체증이 제대로 왔다. 거기다가 설사병까지 왔는데 이게 좀 심각해서 마치 수도꼭지가 고장난 것처럼 몸에서 물이 빠져나간다. 거기다가 감기몸살까지. 허리가 끊어질 듯한 것은 물론이고 온몸이 뭘로 두들겨맞은 것처럼 아프다. 마지막으로 두통까지. 하긴 두통은 언제나 따라오는 것이긴 하지만... 머리 아픈 것때문에 두통약을 먹고 싶었으나 체했기 때문에 도무지 입에다가 뭘 털어넣기가 곤란하다. 그렇잖아도 구역질을 계속하는데 여기서 뭘 더 넣어봐야 게워내고 나면 아니 먹은 만 못하다.

할 수 있는 게 끙끙 앓는 것 말고는 없다.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일찌감치 자리에 눕긴 하였으나 몸이 아파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게다가 화장실에서는 주기적으로 오라고 난리지.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 간밤에 제대로 잠도 못 잤다.

이러다 보니 이 비를 뚫고 아침에 작은 딸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것이 엄청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잖아도 허리 아파 죽겠는데 10kg이 넘는 애를 안고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어린이집에 가려니 눈물이 쏙 빠지고 머리는 울렁울렁...

저녁에는 딸아이 병원에 데려가야 되는데, 그 때까지 내 몸이 괜찮아질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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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태규가 가끔 내 꿈에 나온다. 그렇다. 배우 봉태규 말이다.

가끔 나오는데 매번 역할은 고정되어 있다. 우리 둘의 관계는 처남과 매부 사이다. 즉 봉태규가 아내의 오빠로 등장한다. 이 시점에서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를 하자면, 아내는 딸만 넷인 집의 맏딸이다. 그러니 오빠가 있을 리 만무하다. 남동생도 없는데 하물며 오빠라니. 그런데도 내 꿈 속에서 봉태규와 나는 아무런 어색함이 없이 반갑게 만난다. 봉태규가 나더러 형님이라고 부르는 걸로 보아, 꿈 속에서의 설정으로는 아내와 나의 나이 차가 좀 나는 듯 싶다. 물론 현실에서는 한 살 차지만...

어쨌거나 우리 둘은 만나서 차도 마시고 당구도 치러 가는 등 극히 일상적으로 논다. 그러면서 주로 하는 얘기의 주제는 아내에 관한 것이다. 우리 부부 사이는 좋은지도 물어봐 주고, 다투었다면 오빠로서 동생에 대한 얘기도 해 주고, 여자들은 공감할 수 없는, 즉 남자들끼리만 통하는 그런 얘기들을 하면서 맞장구도 쳐 준다.

이 꿈의 패턴을 살펴보면 아내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지인도 등장하지 않고 오로지 우리 둘만 등장한다. 아내랑 오빠(?), 그리고 남편이 함께 등장하지 않음으로 인해 어색하지 않아 좋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렇다.

이런 꿈을 꾸고 나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내보다 나이도 새파랗게 어린 배우가 오빠 노릇을 하는 것도 우습고, 그 오빠라는 인간이 우리 부부 사이에 좋았던 일, 안 좋았던 일들을 다 들어주는 것도 우습고, 시시콜콜 다 얘기하는 나도 우습다. 게다가 그 오빠가 하필 왜 봉태규냐. 참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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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밌다. 당연히 문학작품이 재밌어야지 않을까만, 요새 누가 동문선을 재미로 읽을 생각이나 할까. 아무튼 의외의 발견이자 유쾌한 경험.
  2. 대단하다. 이 많은 DB를 어떻게 다 모았을까. 조선 초기의 축적된 문화적 역량을 엿볼 수 있다.
  3.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편지글(書)이다. 다른 글들과 달리 편지는 지은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 아니다. 즉 받은 사람이 보관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이 후대에 간행되기 위해서는 받은 사람이 잘 보관하고 있다가 지은이가 죽으면 돌려주는 걸까? 돌려주면 누구에게? 아니면 그냥 보관? 그런데 내가 보기에 개인 문집에 자기가 쓴 글은 있어도 받은 편지를 올리지는 않는 걸로 보아, 어떤 경로를 통하는지는 몰라도 나중에 지은이 쪽으로 글을 되돌려주는 어떤 제도적 장치가 있는 모양인데... 지금으로선 잘 모르겠다. 예전엔 명망가가 죽으면 그 사람이 쓴 글을 다시 수집하는 절차가 있었는지 알아봐야겠다.
  4. 요즘처럼 종이에 글을 남기지 않는 세상에는 후대에 어떻게 글을 전할까. 누군가가 죽으면 그 사람의 블로그와 미니홈피를 다 정리해야 할까. 그건 그렇다고 해도 편지는? 이메일 계정을 뚫어야 하나? 보낸 편지함이라는 게 있으니까 굳이 글을 다시 받을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5. 어쨌거나 이제는 新東文選 또는 증보판이 나와야 되는 거 아닐까. 아니, 난 모르지만 이미 그런 작업이 되어 있거나 최소한 진행중일지도...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교과서를 통해 낯익은 정지상의 시 한 수 인용.

송인送人 / 정지상鄭知常

비 갠 긴 언덕엔 풀 빛이 푸르른데 / 雨歇長堤草色多
남포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울먹이네 / 送君南浦動悲歌
대동강 물이야 어느 때 마를거나 / 大同江水何時盡
해마다 이별 눈물 강물을 더하는 것을 / 別淚年年添綠波

(동문선 제19권, 칠언절구七言絶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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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에 신촌 나갔을 때 이발했으니 며칠 빠지는 석 달이다. 그동안 머리가 자라서 거울을 보니 히말라야 설인이 날 바라보고 있다. 날도 더운데 이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무슨 고행에 나섰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한심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래도 이발은 귀찮은 거다.

아무튼 오늘 바람도 시원하고 날도 좋고 해서 드디어 결심하고 동네 미용실에 갔다. 문을 여니 허연 개 두 마리가 뭐하러 왔냐는 눈빛으로 손님을 쳐다본다. 문을 닫고 다른 집으로 갈까 하는데 먼저 와 있던 손님들이 괜찮다고, 들어오라고 한다. 이런 말까지 들은 마당에 굳이 여기서 물러날 건 없잖은가. 내친 걸음이라고 빈자리에 앉았다. 많이 기다릴 줄 알았는데 할머니 두 분은 그냥 수다 떨러 오신 거였다.

암튼 조금 기다리니 내 차례가 와서 앉았다. 석 달 치를 잘라달라고 했는데 이집 미용사 아줌마는 주관이 너무 뚜렷하시다.

"머리 어떻게 해 드릴까요?"
"석 달 전에 잘랐어요."
"그럼 그 때 머리로 해 드릴까요?"
"예. 그렇게 해 주세요."
"근데 손님, 손님은 짧은 머리가 안 어울리는 거 아시죠?"
"예?"
"손님은 얼굴이 재벌 스타일이라서 긴 머리가 어울리거든요."
"재벌 스타일? 그냥 뚱뚱하다고 하시죠 왜."
"아니 뭐 꼭 그렇게 표현할 건 없구요... 암튼 복스런 인상이라서..."
"전 미용실 자주 안 오거든요. 그러니 그냥 짧게 해 주세요."
"......"

별 말 없길래 석 달 전 머리로 만들어줄 줄 알았는데 이 아줌마 끝까지 자신의 주관을 밀고 나가신다. 이발하는 시간은 석 달이이 아니라 일 년 치 머리를 자르는 것처럼 길었는데 다 됐다고 하며 보여줄 때 거울을 보니 아까랑 별 차이 없는 아저씨가 앉아있다. 약간 다듬은 정도랄까.

"너무 길지 않아요?"
"아녜요. 지금이 제일 예뻐요."
"그러지 말고 좀 더 잘라 주시죠."
"아니라니깐요. 손님은 여기서 더 길러도 좋아요."

요만큼 잘랐는데도 시간이 이렇게 많이 걸리면 다시 자르면 또 얼마나 걸리겠나 싶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좀 있으면 작은 딸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야 하는데 말이다. 오늘은 내가 졌다. 그래서 순순히 물러나기로 했다. 최소한 머리를 오늘 아침보다 길러서 들어가는 건 아니니...

이 아줌마 마지막 마무리도 시크하게 하신다. 아주 클래식한 도루코 양면 면도날을 그냥 손으로 쥐고, 면도 거품도 없이 뒷목을 훑어주시는데 아주 깜짝깜짝 놀랐다. 따끔따금하는데 이러다가 잘못해서 목을 그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하는 생각에 갑자기 에어콘을 파워냉방으로 튼 것처럼 뒷목이 서늘...

간만에 좋은 경험 하고 왔으나 또 가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진 않다. 이발한 직후에 거울로 본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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