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옆에서 살 땐 지금 시각에도 아내랑 둘이서 술 먹으러 나오곤 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는 가족이 우리 부부 둘 뿐이었구나. 딸들 다 키우기 전까진 홍대 옆이 아니라 맥주집 위층에 살아도 힘들겠구나...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 아내가 남편 맘을 귀신같이 예측하여 맥주 한 병 사다놓은 거 없나 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바로 닫았다. 세상에 그런 기적은 없다. 그냥 책이나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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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는 지니의 충고대로 4시간 이상 쌀을 물에 불릴까 했으나 그건 밥하는 것보다 더 지키기 쉽지 않은 일이라 이번에도 그냥 밥을 지었다. 그래도 전혀 불리지 않은 건 아니고 2시간 정도. 그 대신 이번에는 지난 밥에 비해 두가지 변화를 주었다.

첫째, 잡곡을 추가했다. 그랬더니 뭔가 다채롭게 씹히는 맛이 있다. 현미와 찹쌀현미가 주는 시각적·미각적 상실감 내지는 황량함을 어느 정도는 보상해 준다. 둘째, 밥짓는 시간을 대폭 늘였다. 늘상 집에서 해먹는 압력솥을 쓰긴 매한가지이지만 센불로 5분간 짓고, 약한 불로 7분간 뜸을 들였더니 이번에는 생쌀같은 느낌이 많이 줄었다. 이는 쌀을 물에 불리는 시간이 적은 것을 불로 만회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적절한 판단이었다고 본다.

다음에 지을 때는 4시간 이상 물에 불려서 한 번 해 보자. 그리고 현미와 찹쌀현미, 그리고 잡곡의 비율을 조절해 보자. 어떤 비율이 맛이 더 좋은지. 욕심을 부린다면 내가 좋아하는 기장을 좀 더 많이 넣어보는 방향으로...

그나저나 운동 안 하고 먹는 것만 이렇게 신경써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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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베갯잇만 빨래를 하는데, 이번에는 베갯속까지 다 빨았다. 메모리 폼 베개인데 속이 뭘로 만들어져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스펀지라면 가벼울텐데 이렇게 묵직한 걸로 봐서는 그건 아닌 듯하고, 솜인가 싶다가도 그렇다면 어떻게 형상 기억이 가능한가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그렇다면 고무인가? 그런데 고무도 물을 먹나? 아무튼 물을 부으니 그렇잖아도 무거운 베개가 거짓말 좀 보태서 다섯 배쯤 무거워진 것 같다. 물을 먹어도 이렇게까지 많이 먹나... 세탁기에 넣어 돌리려다가 괜히 멀쩡한 베개 망가지면 어쩌나 싶어 큰 대야에 넣고 발로 밟았는데 이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몇 번 뒤집으니까 숨차서 못하겠다. 불광천 달리기보다 더 힘들다.

원래 베갯잇만 빨려고 했는데 요즘 베개를 완전히 적셔놓는 머리의 땀 때문에 속까지 완전히 누렇게 변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버릴까 했는데 메모리 폼 베개 값이 꽤 비싸기도 하지만 주위에서 쓰던 베개를 버렸다는 얘기도 들은 바 없거니와, 심지어 전래동화 같은 데에서도 베개를 버린 이야기는 본 적이 없어, 이런 걸 버리는 게 무슨 패륜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굳이 버릴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번에 빨래를 해도 안 되면 그때 버려도 늦지 않다.

물론 베개 빨래 이거 해 보니 자주 할 만한 일은 절대 아니다. 정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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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꿈에서 어느 모임에 나갔는데 거기서 한 사람을 소개받게 되었다. 지금은 그사람의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나보다 약간 젊은 남자였다는 것만 기억날 뿐. 어쨌거나 그남자와 나, 그리고 두어 명 정도가 더 한 테이블에서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학교와 전공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그남자가 자기는 '국민대학교 국민학과'를 나왔단다.

"국민학과요?"
"예."
"거긴 뭐하는 뎁니까?"
"뭐하긴요. 국민학에 대해 배우는 곳이죠."
"국민학이 구체적으로 뭐하는 학문인데요?"
"글쎄요... 뭐라 한 마디로 대답하긴 그렇네요."

말하는 남자의 얼굴이 빙글빙글 웃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대화가 썩 내키는 눈치도 아니다.

"허허, 국민학이라... 설마 좋은 국민이 되자는 그런 겁니까."
"말하자면 그런 거죠."
"그래, 거기 나오니까 좋은 국민이 된 것 같습니까."
"전공 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래도 수업 시간에 좋은 국민이 되는 법은 갈쳐 줄 거 아닙니까."
"배운 거 다 까먹었지요."
"까먹었다손 치더라도, 가르쳐 주긴 한다 이 말이죠?"
"그런 셈이죠."

이제 남자는 이 불편한 대화를 어서 끝내고 싶은지 양미간에 주름이 가기 시작했다. 자기 전공에 뭐 하나 보태준 것도 없는 놈들이 자꾸 이렇다저렇다 하는 꼴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듣는 나로서도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는데, 대체 좋은 국민이 되도록 가르친다는 게 뭔지, 그런 걸 꼭 배워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걸 배운다는 것 자체가 '나는 말 잘 듣는 순한 백성이 되겠소'라고 선언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 싶어서 내 앞에 앉아있는 초면의 남자에게 불편한 감정이 불쑥 솟아올랐다. 그리고 남자를 소개시켜준 그 옆에 있던 지인에게도 뭐 이런 놈을 다 소개시켜준단 말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이런 놈과 알고 지낸다는 게 여간 한심해 보이지 않는 거다.

대화가 흐지부지 더이상 이어지지 않아서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 모두가 어색한 침묵의 바다에 빠질 즈음 부스스 잠이 깼다. 아침에 다시 꿈을 돌이켜 보니 우습다. 국민학과라니, 대체 누구의 아이디어인가. 글쎄, 어디서 들은 바는 없으니 필시 이 꿈의 주인인 내가 만들어낸 것일텐데. 그렇다면 혹시 난 좋은 국민이 못 되어서 슬픈 동물이었다는 건가.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 오히려 그 반대로, 좋은 국민--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겠지만--이 되고 싶은 놈들 꼴보기 싫은 마음이 이런 꿈으로 나타난 거겠지.

아무튼 요런 꿈, 재밌어서 좋다. 당시에는 어색했지만 깨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남는 게 있어서 좋잖은가. 국민학이라... 나 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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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약 먹을 때 금해야 하는 음식 목록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커피를 마실 시간을 자꾸 놓치기 때문이다. 보통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밥 먹고 나서 30분 사이인데 이때 약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기가 좀 애매해진다. 약을 먹은 다음에는 또 한 시간 내에 영양제를 먹다 보니 또 커피 마실 시간이 없다. 그렇게 넘어가다 보면 다음 밥때가 되어버린다.

여름 내내 하루에 믹스커피 4 스틱 이상 먹던 사람에게 한 잔도 안 마시고 하루를 보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커피 없이도 잘 산다. 내게는 담배도 이와 같았다. 하루 두 갑씩 피울 때는 담배 없는 삶은 생각할 수도 없었지만, 어느날 저녁 먹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쓰레기통에 문득 담배갑과 라이터를 집어던지고 그날부로 금연한 이후 8년 동안, 꿈 속에서 몇 개비 핀 것 말고는 단 한 번도 담배를 입에 물지 않았지만, 사는 데에는 아무 지장 없더라.

그렇다고 이참에 커피를 끊겠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지금은 시간이 좀 애매해서 그렇지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온다면 언제든 커피를 마셔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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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밥 건강에 좋은 거야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으나 실제로 먹기엔 좀 거북하다고 알고 있는지라 이제껏 직접 해먹을 생각은 못했다. 그러다가 현미밥으로 살 뺐다는 이야기를 TV에서 보고 나도 한 번 해 보자는 마음에 오늘 현미밥을 지었는데, 이건 뭐 밥이라 할 수 없다. 그냥 익은 쌀이다.

백미와 달리 현미는 물을 먹질 않는지, 밥솥 뚜껑을 열었더니 죽처럼 되어 있다. 뜸이 전혀 안 들었나 보다. 백미나 현미나 밥물의 양이나 밥 짓는 시간은 같을 줄 알고 그냥 했는데 완전 실패. 입에 넣었더니 씹히는 것이 분명 익긴 익었는데 생쌀을 씹는 기분이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해 볼 걸. 이걸 버릴 수도 없고, 언제 다 먹냐. 어차피 애들과 아내가 먹는 밥은 따로 하기로 되어 있었으니 이 많은 걸 내가 다 먹어야 한다. 괴롭다...

다음엔 꼭 물어 보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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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거의 구직활동을 위해 가산역에 다녀왔다. 가산 어쩌고 하는 긴 이름은 영 익숙하지 않다. 첫 직장이 바로 이 가리봉역 주변의 구로공단에 위치한 작업장이었다. 물론 본사는 대학로에 있었지만 내가 들어간 교구校具사업부는 생산라인과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구로공단에 있는 공장으로 떨어져 나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당시에는 틈만 나면 공장 옥상에서 담배를 피워대면서 시내에서 일하는 대학 동기 녀석들을 부러워했다. 나만 이런 외진 곳에서 유배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며...

구로공단도 많이 변했다. 내가 처음 이곳에서 일하던 당시만 해도 높은 건물은 거의 없었고 구로물류센터가 제일 공룡같은 건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개 들어 올려다 보기가 힘들 정도로 높은 빌딩들이 들어서 있고, 또 새롭게 올라가고 있다. 덕분에 일하던 공장이 있던 자리도 가늠이 안된다.

아무튼 기분이 묘하다고 해야 하나... 길다면 긴 시간을 돌고 돌아서 다시 가리봉역에 올 일이 생기다니. 다시 이곳에 돌아오려고 지난 5년을 헛되이 흘려보냈단 말인가. 물론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늘이 구직활동 첫날이고, 이곳에서 다시 일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그래, 아직 감상에 젖을 때는 아니다.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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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낼 수 있는 에너지가 100이면 지금 쓰고 있는 건 130 정도. 그래서 억지로, 무리해서 엔진을 돌리기 때문에 열이 나는 거라고... 우선 치료약을 먹긴 하는데 살을 빼는 게 좋단다. 뭐 그쯤은 나도 알고 있다. 빼기 어려워서 문제지, 몰라서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오늘밤 운동도 다녀오고, 야식도 안 먹고 자려고 맘 먹었다. 내일부터는 의사 선생 말대로 육식도 팍팍 줄일 참이다. 결론은, 좀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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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0분. 도저히 혼자서는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덜덜 떨면서 큰방으로 건너와서 다시 잠을 청했다. 물론 바로 잠들기에 성공하지도 못했고, 두어 시간을 깨어 있다가 결국 다시 작은방으로 돌아와서 잠들었지만, 어쨌거나 홀로 버려져 있기는 싫었다. 아내에겐 그냥 무서운 꿈이라고만 해 두었다.

오늘 낮에 설거지를 하다가 그 꿈에 대해 자세하게 얘길 하려고 했는데, 꿈 내용을 머리 속에 떠올리자 그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지난밤처럼 온몸이 떨려왔다. 결국 아내에게 꿈 내용을 말하지 못했다. 생각만 해도 무서운 꿈.

다행히도 꿈 속에서 큰딸은 무사했다.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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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추석날 낮잠을 좀 잤다. 한 시간만 잘 생각으로 누웠는데 일어나 보니 무려 네 시간이 지나 버렸다. 이러니 밤에 잠이 오겠나. 하지만 새벽 4시까지 못 자는 건 좀 심하다. 자리에서 뒤척이는 것도 지겨워서 운동복을 입고 불광천을 나섰다. 이 시각에 안 자고 달밤에 쌩쇼를 하는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니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되려나.

지난밤에는 보름달이 구름에 가려 잘 안 보이더니, 새벽에 서쪽 하늘 위에 떠 있는 달은 정말로 크다. 큰딸은 어제 구름에 가려진 달이라도 그걸 보며 뭔가 빌었는데 난 이 달을 보고 뭘 빌까. 모르겠다. 이런 것도 평소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나 보다.

잠이 올 때까지 잠깐만 돌고 오겠다고 맘 먹었으나 너무 많이 와 버렸다. 응암역에서 월드컵경기장까지 왔다. 돌아갈 길을 생각하니 아득하다. 평소에 운동 안 하다가 이렇게 하루 미친듯이 몰아서 하면 무슨 효과가 있겠나.

돌아오는 길에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온다. 남들은 이제 시작하려는 하루를 난 지금 마감하러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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