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말하는 히데요시와 요도기미는 『불멸의 이순신』에서 나온 인물들이 아니다. 1985년에 MBC에서 했던 『조선왕조 오백년』 「임진왜란」 편의 정진 아저씨와 이혜숙 아줌마 말이다. 현석 아저씨가 연기했던 선조나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무생 아저씨가 연기했던 이순신보다 훨씬 카리스마 넘쳤던 정진 아저씨의 히데요시.
전쟁이 오래도록 소강상태가 되자 부하들에게 대체 뭐하냐며 오만 짜증을 다 부리는 히데요시. 그런 히데요시를 달래기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다른 곳에 있던 히데요시의 측실 요도기미를 불러오는데,
"합하, 요도기미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오~ 요도기미!"
요도기미가 왔다는 이에야스의 한마디에 좀전의 짜증은 어디로 가고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도는 히데요시. 그 장면이 너무나 강렬하여 기억 속에 불도장처럼 남았다. 솔직히 말해 「임진왜란」의 다른 장면은 지금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오로지 '요도기미'를 외치는 히데요시의 목소리만 남았다. 뭐랄까, 정말로 우습게도 비본질적이고 지엽적인 것만 남아있다는 얘기다.
그놈의 기억이 뭐 그러냐고? 7년 전쟁 동안 남은 게 고작 히데요시의 목소리와 얼굴이냐고? 어쩌겠나. 그게 제일 가슴에 와닿은 것을...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무려 25년이라는 긴긴 세월을 넘어서 지금 이순간 내 머리 속에 작업기억(working memory)으로 떠오른 이유는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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