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worm


    나온지는 꽤 오래되었으나 아직도 이만한 게임을 찾기 힘든 워드 게임이 바로 Bookworm이다. 물론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닌 이상 현란한 단어는 조합하기 쉽지 않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반복하다 보면 운좋게도(?) 그럴듯한 단어를 만들어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게임을 하면 할수록 긴 단어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조금씩 많아지는 것을 보며 게이머는 자신이 이른바 레벨업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Bookworm의 미덕은 역시 비네이트브들을 위하여 무한정 기다려줄 줄 안다는 거다. 스펠링에 신경쓰는 것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타이머 갖다 놓고 재촉하면 긴장감보다는 짜증이 나거나 지레 포기해 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여러 워드 게임을 해 보았으나 결국은 이 게임 하나만 집중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 또한 게임인지라 반복되는 패턴과 어느 수준 이상으로는 늘지 않는 실력. 그리고 알파벳 3~4개 짜리 단어에 신물이 나서 몇 년 동안 제쳐두고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찾아보니 어느새 요놈의 게임의 후속 버전이 어드벤쳐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는 게 아닌가. 역시 강호를 떠난지 오래이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영 어둡다.

    Bookworm의 재미를 잃지 않으면서 RPG의 요소를 가미한 Bookworm Adventures. 역시 재밌다. 이전 버전에 비해 특히 좋은 점은, 인접하지 않은 알파벳이 주는 상실감이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이젠 바로 옆에 붙어 있지 않아도 주어진 16개의 알파벳을 마음대로 조합하면 된다. 공격력, 방어력 등의 요소도 들어가 있고, 당연히 아이템이 주는 재미도 있다.

Bookworm Adventures


    영어 워드 게임을 하면서 언제나 느끼는 것은, 주어진 영단어의 뜻을 아는 것과 스스로 그 단어를 머리 속에서 생각해내는 것의 간극은 정말로 안드로메다와의 거리만큼이나 멀다는 거다. 우리가 접하는 영단어 중에서 x, y, z 혹은 qu가 들어가는 게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이걸 던져주고 단어를 만들어 보라고 하면 그냥 죽고 싶다.

    이제 한글 워드 게임이 나올만도 한데... 만들고 있는 곳 어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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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인에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겠지만 사람의 만남에서 첫인상을 극복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이상은은 내가 내린 최초의 부정적 평가를 아주 천천히 그러나 일관된 경향으로 극복해나간 몇 안 되는 가수다. 그런데 이 비쩍 마르고 멀대같이 큰 동갑내기 가수한테 내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첫인상 운운하며 평가절하했단 말인가.

   1988년 강변가요제 대상을 받은 '담다디', 아니 그런데 멜로디는 경쾌하고 다 좋은데 무슨 놈의 가사가 이렇게 내용이 없단 말인가. 게다가 담다디는 무슨 뜻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청산별곡의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는 용서가 되면서 담다디에게는 무슨 거창한 의미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이미 공정하지 않은 게임이다.

   그러나 이른바 아이돌 스타로 입지를 굳혀가나 싶더니 갑자기 유학길에 올랐고, 그 이후 어느새 달라져 있는 음악. 그렇다.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이 시점에서 화려했던 옛 영광 만큼이나 변화할 줄 모르는 김건모에게 삼가 애도를...



   사실 이상은을 아티스트라 말하는 것에는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상은의 매력은 남이 좋아해 줄 수 있는 음악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 또는 적절한 자리잡기가 아닐까. 5집의 '언젠가는'은 그러한 이상은을 가장 잘 말해주는 노래다.

   연예계가 아닌 문화계에서 살아보니 너무 가난해지더라는 이상은. 이제 노래로 팔자 고치는 건 이제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굶진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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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의 지존 아내에게 주말 낮잠의 의미는 남다르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부대끼고, 집에선 어린 딸과 씨름하고, 거기에 청소며 빨래까지... 주말에 풀어주지 않으면 이놈의 피로를 다음주까지 등에 지고 가야 된다. 그리하여 심지어는 주말 낮잠을 위해 한 주를 달려온다는 말까지 할 지경인데...

    일요일 오후, 딸내미가 오늘따라 엄마의 낮잠에 영 협조를 안 해 준다. 사실 딸이 잠들지 않고서 엄마 혼자 자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딸이 자기가 잠이 안 온다고 순순히 엄마가 낮잠을 즐기도록 허락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자면서 제일 짜증날 때가 왜 잠이 드는 순간에 방해받는 거 아닌가. 의식의 저편으로 막 넘어가려는 찰나에 마치 누군가가 뒤에서 머리카락을 확 잡아채듯이 딴죽을 걸면 온몸의 맥이 탁 풀리면서, 없던 피로가 어디에서 이렇게 몰려오는지... 아무튼 잠에 대해 조금이라도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인지 다 안다.

    엄마가 재우려고 했을 때 딸이 안 잔다고, 자긴 더 놀고 싶다고 한 것까진 좋았는데, 이놈의 딸내미, 엄마가 고이 자는 꼴은 또 못 보겠나 보다. 엄마가 잠들만 하면 옆에 가서 깨우기를 몇 번...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엄마가 드디어 폭발했다.

아니 얘가 왜 이래 오늘...
으아앙~
방에서 당장 나가!
엄마 미안해요~
다 필요 없어. 안 자려면 나가!
으아앙~

    어쩔 수 없다. 차라리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게 낫지... 백 번 혼나도 싸다. 결국 딸내미는 방에서 쫓겨나고, 아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이 든다. 훌쩍거리는 놈을 내가 떠맡아야 했는데, 아주 난감하다. 일요일 오후에 나라고 어디 힘이 펄펄 남아돌아 딸이랑 뛰어놀겠나 뭐...

    이때 문득 딸이 아직 기어다닐 때 재우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혹시 가능할지 모른다. 딸을 안아들고 등을 토닥이면서 '마녀의 택급편' OST를 들려 주었는데, 처음엔 별 반응을 않던 딸이 두 번째 트랙부터 슬슬 몸에 힘이 빠지더니, 다섯 곡을 채 넘기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다. 역시 마녀의 힘은 대단하다... 딸의 무의식 저편에 예전의 잠들던 상황들이 여전히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

    마녀의 택급편 OST 중에서 두번째 곡명은 '旅立ち 타비다치'인데 일본어는 까막눈인 나로선 뭐라고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행을 떠나다'로 해석해야 할지, 혹은 '출발' 정도로 해야할지... 처음에는 다른 곡들에 묻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는데, 요새는 이 곡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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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people
    다음주에 가는 고적답사 기간 동안 읽을 책이 없나 하고 도서관을 훑었다. 이동하거나 잠시 짬이 날 때 볼 책이므로, 무엇보다도 가벼운 내용과 책 크기가 미덕이라 하겠다. 그런 면에서 적당해 보이는 책이 눈에 들어왔는데, 바로 지금은 고인이 된 영국의 아줌마 역사학자 아일린 파워(Eileen Power)의 'Medieval People'이다. 이 책의 부제가 'The story of six ordinary lives in the middle ages', 즉 중세의 평범한 여섯 사람의 이야기다. 앞주머니에 넣어 보았더니 쏙 들어가는데다가, 이번 학기 수강하고 있는 서양중세사와 적당히 어울리겠다 싶어서 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들고 나왔다.

    어렵쇼, 재밌잖아... 집에 오는 길에 어떤 내용인가 하고 읽었는데 의외로 재밌다. 내용을 완전히 도외시하고 선택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영어 수준도 그렇게 빡빡하진 않다. 쓰잘데기 없이 어려운 단어들만 잔뜩 동원해 글을 써 놓으면 아무래도 진도가 안 나갈텐데, 내가 보기에도 그럭저럭 무난하다.

    역시 사회경제사의 강점은 정치사에 비해 옛날 이야기 같은 느낌이 팍팍 묻어나 준다는 거다. 지금 여섯 명의 주인공 중에서 아직은 첫 번째 '샤를마뉴 시대의 프랑크족 농부 보도(BODO)' 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정치사에서 만날 수 없는 9세기 유럽의 농촌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낭만주의 식의 '돌아가고 싶은 옛날'은 절대 아니지만, 지금도 육체노동으로 살아가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나이지만, 그래서 당시의 농부로 살아가는 것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지만, 오늘날 프랑스에 사는 아무개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 아버지는 저렇게 살았을 거라고 생각해 보면, 당시가 그렇게 비현실적인 세상도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서 별 생각 없이 아일린 파워 관련 정보를 찾으려고 검색해 봤더니, 옴마야, 어느새 우리나라에 번역본도 나와있다. 아주 잠깐 원서를 포기하고 번역본으로 갈까 생각했으나, 새로 책을 사는 것도 귀찮은 일이고, 지금의 책으로서도 충분히 재밌고, 다음주 월요일부터 출발하는 답사 기간에 따로 볼 책도 지금으로선 떠오르질 않고... 그래서 그냥 읽던 책 마저 읽기로 했다.

중세의 사람들(히스토리아 문디 09) 상세보기
아일린 파워 지음 | 이산 펴냄
정통 역사서를 추구하는『히스토리아 문디』시리즈. '히스토리아 문디'는 라틴어로 세계의 역사, 인간의 역사라는 뜻이다. 각국사, 지역사, 문명사, 문화사 등을 담아내며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전해준다. 제9권 <중세의 사람들>은 서양중세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입문서이다. 중세의 민초들을 통해 서양중세사를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서양의 중세시대에 살았던 평범한 여섯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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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모뎀의 블로그에 갔다가 '호호아줌마'의 원제가 'Mrs. Pepperpot'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대체 누가 이름을 지었을까. '티스푼아줌마', '스푼아줌마', '숟갈아지매' 등등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호호아줌마'로 결정된 까닭이 무얼까. 이 아줌마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게 바로 저 티스푼 아니던가. 근데 호호아줌마는 아무런 특색이 없잖아. 그렇다고 원제보다 재밌는 것도 아니고...

    비단 이 경우뿐 아니라 우리에게 소개된 외국 영화나 만화/애니메이션의 원작을 나중에 알게 되면 정말 어이없는 경우가 많다. 원제가 외설적이거나 반체제적인 것도 아니라면 굳이 족보에도 없는 이상한 제목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

    원제랑 다르게 이름 붙일 거라면, 그것에 책임질 수 있도록 작명가의 이름도 공개해야 된다. 도대에 누구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인지 똑똑히 기억하게 말이다.

원글: 애니메이션 오프닝 걸작선 - 천재 난케 코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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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상세보기
신동준 지음 | 살림 펴냄
조선왕조 500년 역사가 말하는 통치 리더십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누구인가? 통치 리더십의 조건을 조선 역사에 묻는다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는 조선의 왕과 신하를 통해 통치 리더십의 조건을 살펴보는 책이다. 저자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지속된 왕권과 신권 사이의 협력과 견제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조선이 패망한 근본 원인을 왕권이 미약하고 신권이 강한 '군약신강'의 왜

    이번 학기에 쓸 논문에 필요할까 하여 어제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이다. 책을 고를 때 최소한 머리말이라도 읽어 봐야 하거늘 목차만 보고 골랐더니 역시 이런 쓰레기를 건지게 된다. 집에서 와서 출판사를 보니 역시 살림에 일말의 보탬이 된 책이라고는 낸 적이 없는 '살림'이다.

    대학 동기 T와 이름이 한 끝 차이 나는 이 책의 저자는 조선이 패망한 것이 왕권보다 신권이 강했기 때문이란다. 얼핏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폭군으로 기억되는 임금들은 대부분 신권을 누르고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한 과감한 개혁가들이었다'는 말을 보는 순간, '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뭐냐' 이런 생각이 딱 든다.

    왕권 강화가 개혁이란 말인가. 갑자기 유럽의 절대왕정시대 수준으로 역사가 퇴행하는 순간이다. 왕에게 권력이 가면 선善이고 신하에게 권력이가면 악惡이라는 이런 순진하고 철부지같은 말은 대체 어디서 나오나. 선조가 조선 왕조사에서 다섯 명만 받았던 조祖의 묘호를 받았던 명군이란다. 조祖의 호를 받으면 명군名君이라고? 이 사람 역사 시간에 졸았나? 그럼 인조는 무슨 명목의 명군이란 말인가. 인조가 부국강병과 무슨 관련이 있나. 삼전도에서 당한 치욕이 설마 조선 백성의 생존을 위해서였다고 말하고 싶은가.
 
    머리말까지만 읽고 책을 덮으려다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본문까지 가보자 싶어 한 번 읽어 봤더니 역시나다. 제발 역사적 사실에 무지하면 역사 관련 책은 쓰지 말자. 그게 독자들에 대한 도리 아닌가. 대체 18,000원이나 하는 책에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단 말인가. 무려 600 페이지 가까운 분량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혹시 왕정복고를 꿈꾸나. 그게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박정희식의 철권 대통령제를 말하고 싶은가. 저자 당신이 보기에 조선이 당파싸움으로 망했다면 대한민국도 민주주의 때문에 망할 거라는 거 아닌가.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책값이 만만찮은 관계로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볼 것 같지는 않다. 역시 도서관이라는 시설은 좋다. 이런 책 사서 안 봐도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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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곰TV 스타 인비테이셔널 준결승전이 테크노마트에서 열렸다. 대회가 열리기 전부터 계속 봐야지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간 무슨 일인지 손이 안가는 반찬처럼 시청을 외면해(?)왔다. 언제라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어제 곰플레이어를 실행했더니 마침맞게 준결승 경기가 시작하는 시간에 걸린 거다. 이왕이면 TV로 보는 게 좋겠다 싶어 케이블TV로 경기를 봤다.

    평소 응원하는 선수들이 오늘따라 모두 승리를 했다. 이영호와 오영종의 경기는 1세트의 경기력을 보건데 무난하게 오영종이 결승에 올라갈 것 같더니, 역시 이영호 이놈 뚝심이 장난 아니다. 2세트도 완전히 진 경기였는데 그걸 뒤집다니. 그것도 2007 프로리그 후반기의 최강자 오영종을 상대로 말이다. 역시 업그레이드된 테란의 메카닉의 힘이란... 2경기 변형태와 송병구의 경기는 3:0 결과만 놓고 본다면 싱겁게 끝난 것 같지만, 내용을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 공변증(?)이라고 해야 할까, 평소에 변형태만 만나면 허무하게 무너지던 그 송병구가 아니었다. 완전한 앙갚음이었다. 게다가 2세트에서 보여준 집념의 캐리어 플레이는 오늘 경기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결승은 이영호와 송병구의 대결. 이 둘 중에서 이른바 본좌 중의 본좌가 나온다는 것인가. 둘 간의 전적으로 보면 송병구의 압승이 예상되긴 하지만, 송병구가 누구인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때 정상의 문턱에서 미끄러지는 기술은 당대 최고 아닌가. 결론은 뚜껑 열어 봐야 안다는 얘기다. 흥미진진한 결승전이 되리라 본다.

    그런데 TV 시청 내내 뭔가 허전한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오늘 애들 컨디션도 좋고, 경기 내용도 좋아 보이는데 왜 그럴까. 혹시 해설이 맘에 안 들어서 그러나? 딱히 흠잡을 정도는 아닌데. 그렇다. 분명 뭔가 빠진 게 있다. 그것은 경기장의 열기였다. 아니, 당대 최강을 뽑는다는 본좌전인데 이렇게 경기장이 조용하단 말인가. 다들 넥타이 맨 아저씨들만 구경 왔나. 경기 시작하는 순간에 'OOO 파이팅' 하는 응원 소리는 모기소리처럼 작을 뿐만 아니라, 경기 도중 극적인 순간에도 도무지 관중석은 반응이 없다.

    대회의 흥행을 평가하는 지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시청률, 광고수입, 동영상 클릭 수 등등. 그러나 그 중에서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가 바로 관중 동원이다. 명색이 본좌전에, 그것도 준결승전에 관중이 없다니. 어떻게 된 일인가.

    곰TV가 이번 대회를 열게 된 것은 그 이전의 '임요환과 마재윤', '마재윤과 이윤열'의 슈퍼파이트의 경이적인 성공 때문이다. 이 경기들을 통해 마재윤은 진정한 본좌라는 칭호를 얻고 전성시대를 선언했다. 개인리그가 2개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둘의 우승자끼리 붙어보면 누가 더 셀까 하는 소박한 궁금증을 해결해준 것이다. MSL이 지금 '당대 최강을 배출하는 리그'라고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것도 이 슈퍼파이트 덕이다.

     올스타전의 맛은 단기간의 일정에 있다.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최고로 인기 좋은 선수를 모아서 하루 날 잡아서 멋진 경기로 팬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잔치를 여는 거다. 그런데 이놈의 잔치가 아무리 상다리가 부러지고 풍악이 울리면 뭐하나. 좋은 음식도 하루이틀이지, 계속하면 물리게 마련이다. 그런면에서 이번 스타 인비테이셔널은 흥행의 요소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기획했음에 틀림 없다. 참가한 선수들 면면으로 보면야 최고의 흥행 코드라 할 수 있지만, 이들이 이렇게 모여 16강, 8강 어쩌고 하면 벌써 이것은 또다른 개인리그일 뿐이다. 경기가 많아지다 보니 다른 개인리그에 치어서 경기 날짜 잡기도 쉽지 않고, 그러다 보니 명색이 준결승인데도 평일 낮에 열리고, 그 결과는 당연하게도 관중 동원력이 프로리그 주중 경기 수준밖에 안 나오는 것이다. 고수들의 매치는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다. 스타챌린지나 듀얼토너먼트, 그리고 메이저리그 격인 MSL, 스타리그에서도 이른바 '죽음의 조'는 차고 넘친다. 그 경기들만 보기에도 팬들은 벅차다. 물론 그들 중에서도 최강자들만 뽑았으니 뭔가 더 나은 흥행 코드 아니냐고 하겠지만, 이미 경기가 리그 수준이 되는 순간 기존 개인리그의 역사가 가지는 기득권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경기 말고 차라리 MSL와 스타리그 우승자가 정기적으로 슈퍼파이트를 열도록 제도화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하긴 그러면 양대 개인리그 입장에선 우승 트로피의 권위가 떨어지는 부담이 있으니 별로 달가워 하지 않겠지만.

    어쨌거나 이영호와 송병구의 결승전은 이 정도는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e스포츠의 새로운 시도가 그저 어정쩡한 리그 하나 실험적으로 해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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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고, 그래서 사실은 어느 순간부터는 노력을 포기한 게임 장르가 슈팅이다. 오락실 게임의 대명사 갤러그부터 라이덴, 아쏘, 트윈코브라, 제비우스 등등 게임사에서 그렇게 많은 멋진 슈팅 게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혜택을 전혀 못 봤다고 말해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다. 여하튼 뭔가 쏘는 게임은 젬병이다. 쏘는 게임은 잘 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잘 피해야 되는데, 결정적으로 난 그게 안 되기 때문이다. 종스크롤이든 횡스크롤이든 심지어 FPS도 마찬가지, 어쩌면 그렇게 적의 총알이 날아오는 곳으로 초개와 같이 몸을 던질 수 있는지... 이렇게 말하고 나니 갑자기 또 울컥해진다.

    그러니 슈팅 중에서도 마니악한 쪽으로 분류되는 탄막슈팅은 어떻겠는가. 말이 필요 없다. 화면을 온통 뒤덮어버리는 총알만 봐도 벌써부터 숨이 막힌다. 이쯤되면 피하기도 싫어진다.

'아니 대체 어쩌라고...'
'이걸 지금 나더러 피해 보라고 쏘는 거냐.'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이런 망할 놈의 게임을 만든 놈이 바로 옆에 있었다면 그놈 대갈통부터 쏴 버렸을 거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런 말도 안 되는 게임이 불현듯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까맣게 잊고 살다가도 밥을 먹다가, 책을 보다가, TV를 보다가, 화장실에 앉아 힘을 주다가, 문득 '뭔가 상큼한 거 없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빗발치는 총알 사이를 피하면서 느끼는 스릴과 카타르시스를 맛보고 싶은 거다. 이런 게임의 묘한 맛은, 처음엔 절대로 피할 수 없을 것 같던 적의 탄막을 어느새 조금씩 피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 대견해한다는 데에 있다.

    건데모니엄 리컬렉션은 탄막슈팅 중에서 비교적 나같은 슈팅 젬병도 하기 쉬운 게임이다. 이름에 리컬렉션이 붙은 이유는 게임 개발팀이 예전에 출시했던 건데모니엄을 리메이크해서 내놓았기 때문이다. 식신의성 같은 종스크롤이 아니라 이 게임은 횡스크롤인데, 탄막슈팅이 다 그러하듯, 게임 설정이나 내용 같은 건 거의 없다. 그저 주어진 총으로 열심히 쏘고, 열심히 피하고, 폭탄 마구마구 던져주면 된다.

게임 시작 화면. 한눈에도 made in japan 분위기가 난다.


    캐릭터 선택 메뉴가 있다 하더라도 이 게임은 한 캐릭터밖에 없기 때문에 의상만 다르게 보인다. 이렇게 외형적으로는인 큰 차이가 없으나 기본 장착 총과 마나 스킬, 폭탄의 종류를 다르게 사용할 수 있다.

캐릭터 선택 메뉴다


    슈팅 젬병이 가끔 필 받아서 하는 게임이면 말도 안 되게 쉬운 게임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실은 스테이지5를 아직도 못 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쉬운 모드로 해서 말이다.

보스 아니다. 스테이지5의 처음에 나오는 언니다. 아주 밉다.


    삶의 의욕이 떨어질 때, 봄 탄다 싶을 때, 입맛이 없을 때, 요런 게임 한 번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총알 갈겨 주고 나면 잠깐이나마 활력소가 되지 않겠나. 하긴 나처럼 한 스테이지만 며칠 째 하면 절망감이 더 커질 수도 있겠지만.

어영부영하다가 탄막에 갇히려고 한다.ㅜㅠ


    게임의 출처는, 음~ 모른다. 눈치껏 알아서 구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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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야흐로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이다.
    최소한 3년은 간다, 아니다 2008년 올해가 마지막이다 등으로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쨌거나 현재 오락 프로그램의 대세라는 데 대한 이견은 없다.

    아으 동동다리.

  2. 그 중 쌍벽을 이루는 것은 당연히 무한도전과 1박2일이다.
    이 둘은 서로가 서로를 베껴가면서, 의도하든 그렇지 않건 간에 동업자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으 동동다리.

  3. 근데 거의 비슷한 이 둘은 이상하게 차이가 난다.
    아내와 나는 1박2일만 본다.
    왜냐고? 무한도전은 재미 없으니까.
    왜 무한도전은 재미가 없을까.
    반면 1박2일은 본 것 또 봐도 여전히 재밌다.
    혹시 이거 근거 없는 편애 아닌가?

    아으 동동다리.

  4. 무한도전과 1박2일의 체계적인 비교 분석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그런 거창한 것들은 연예전문기자나 문화평론가들의 몫으로 남겨 두자.
    여기선 단지 나의 개인적인 코미디 취향이나 그런 것들을 짚어보는 걸로 충분하다.

    아으 동동다리.

  5. 유재석은 좋다.
    오히려 그간 큰 목소리로 오버하는 강호동이 싫었다.
    유재석을 좋아하는 것은 순전히 내 취향과 관련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코미디언은 이홍렬, 유재석이다. 그들은 상대방을 깔아뭉개는 법이 없다. 그러면서도 충분히 웃음을 준다.
    아, 이홍렬쇼 같은 멋진 프로그램은 다시 안 나오나?

    아으 동동다리.

  6. 반면 이경규, 김구라, 탁재훈 등의 코미디는 싫다.
    난 남을 깔아뭉개는 그들의 탁월한 순발력 앞에서 금방 지쳐버린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라디오스타'는 최악의 프로그램이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건방짐과 예의 없음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건방진 도사 유세윤은 예의 없진 않다.
    그러나 라디오스타는 그 자체로 공해다.

    아으 동동다리.

  7. 그런 유재석이 진행하는데도 무한도전은 재미가 없다.
    단적으로 말해서 자기들끼리는 재밌을지 몰라도 보는 내 입장에선 '대체 저게 뭐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내 생각이 정점에 다른 것은 저들만의 잠 참기 대결이었다.
    저들은 치열했을지 몰라도 보는 나로선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아으 동동다리.

  8. 물론 무한도전이 모두 나빴던 건 아니다.
    아내도 나도 재밌게 본 적이 있는데, 바로 'shall we dance' 편이었다.
    그러나 그런 적당히 감동적이고 재밌는 기획 중간에 뜬금 없이 끼어들어간 패리스 힐튼이라는 쓰레기는 정말 참아주기 힘들었다.

    아으 동동다리.

  9. 1박2일은 출연진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전혀 내 취향이 아니다.
    그 중에서 그나마 봐줄만한 인물은 김씨나 이수근 정도랄까.
    강호동, 은지원, 이승기, 엠씨몽 등등 다들 탐탁지 않던 멤버인데...
    그런데 이들이 모이면 재밌다.
    원래 티비 보면서 잘 안 웃는 나로서도 박장대소를 한다.
    이상하다. 왜지?

    아으 동동다리.

  10. 두 프로그램 모두 한 사람씩 군대에 보냈다.
    이 과정에서도 무한도전은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김종민과 하하의 입대 과정은 너무나 달랐다.
    내 눈에는 하하가 마치 3부요인급 인물처럼 보였다.
    '아니 이렇게까지 띄워주나. 남들 다 가는 군대 이놈만 두번 가나. 아직도 안 갔나. 어휴 지겨워~'

    아으 동동다리.

  11. 여기까지 와서 돌아보니 역시 합리적 근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편애였다.
    그래도 난 현재의 입장을 철회할 마음이 없다.

    아으 동동다리.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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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동안 Walter Moers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라는 소설을 보고 있다. 집에서 진득하게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번에 깨달았다. 책을 펴들자마자 바로 내용에 몰입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앞에 읽었던 부분도 다시 확인하고 끊어졌던 상상력을 최대한 이어서 다시 시작할라 치면 어김없이 딸이 무슨 일인가를 만들어낸다. 아무튼 이런 악조건(?) 속에서 오랜만에 소설을 보고 있는데...

책과 문학을 소재로 한 판타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재밌다. 용과 오르크, 늑대 등이 나오는 판타지는 이제 너무 많지 않은가. 아참, 여기도 용은 아니지만 공룡은 나온다. 주인공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의 고향 린드부름 요새의 주민은 문학을 사랑하는 공룡이며, 미텐메츠도 아직 출판한 책은 한 권도 없지만 시인을 지향하는 공룡이다. 절대 싸움 잘하는 족속은 아니니 실망하지 않길 바란다. 판타지 문학이 대개 그러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만들어 놓은 세계인 차모니아도 꽤나 매력적이다. 사실 이 소설의 주무대인 부흐하임(책들의 마을이라는 뜻이다)이라는 도시는 책과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로망의 도시이지만, 또한 출판산업의 추악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음~ 본의 아니게 글이 책 소개로 흐르는 듯하여, 소설 내용은 여기까지. 이 책에서 재밌는 것은 차모니아 문학가들이 만든 책의 제목이다. 몇 가지를 인용하자면, 『털양말을 신은 호랑이』, 『면도를 한 혀』,『삶은 신선한 돼지고기 속의 생쥐 호텔』, 『오직 어제만 짖는 개』, 『나의 순간들은 너희의 머리카락보다 길다』, 『상처 입은 고마움』등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그 내용이 궁금해지는 책의 제목은 『비웃음을 안 당한 우스운 케이크』인데 유머의 거장 아네크도치온 페카의 전설적이고 희극적인 인생사를 다룬 책이란다. 제목만으로도 나의 상상력이 자극이 된다. 이러한 제목의 책을 실제로 만나보고 싶다.

책을 사랑하는 외눈박이 괴물 부흐링(책 마니아라는 뜻이다)족이 주인공에게 조언하는 말들도 인상적이다.
수식어는 주어의 천적입니다.
괴기소설은 목덜미에 차가운 행주를 걸친 채 쓰는 것이 가장 좋아요.
한 명의 시인이 표절하면 절도이지만, 많은 시인들이 표절하면 그것은 탐구입니다.
두꺼운 책들은 지은이가 짧게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두꺼워진 겁니다.
소설 내용을 떠나서 이런 뜻하지 않은 언어 유희가 글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어제는 이 소설의 저자가 만들었다는 '차모니아 야간학교'라는 사이트를 보기 위해 독일어를 공부할까 하는 미친 생각도 잠깐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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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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