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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없는 도시계획의 결과가 어떤지 여실히 드러내는 도그마토피아.

다 때려부수고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지만, 다행히도 여기선 아무도 피해 입지 않으므로 쇼는 계속된다. #social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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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인터넷 서점에 들러도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만 하다 장바구니에 넣어 놓거나 보관함에 모셔 두는 정도로 끝나기가 일쑤였다. 한데 오늘 알라딘에 들어갔더니 반값으로 내놓은 책들의 가짓수가 전보다 확실히 많아졌다. 이렇게 되면 한 번쯤 질러 주는 것도 책 읽는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 싶어 아무 생각 없이 몇 권 장바구니에 쑤셔 넣었는데, 이미 들어가 있는 것들도 있어 순식간에 7권 짜리 거래가 만들어졌다.

요즘은 정말 배송도 착하게스리 오전에 주문하면 저녁에 받아볼 수 있다. 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인가. 물론 책값에 그런 게 다 들어 있다는 거 모르는 바 아니나, 그렇다고 내가 종로까지 나가서 교보나 영풍에서 직접 책을 산다고 해서 택배비나 교통비를 깎아 줄 것도 아닌 바에야 그냥 기분 좋게 사야 되지 않겠나.

오늘 건져 올린 아이템들은 주로 역사책이다. 연민수의 『일본역사』는 오로지 시험용이고, 서중석 선생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는 내용도 좋고 종이질도 좋으나 역시 시험용으로 산 책이다. 어쨌거나 서중석 선생을 빼놓고서 한국 현대사를 말할 수는 없다. 펑유란의 『현대 중국 철학사』는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중국 근현대사를 보고 싶어서 산 책이다. 후스, 량수밍, 천두슈, 리다자오 등 쟁쟁한 중국의 사상가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역사 임용 시험의 경향을 보면 좀 웃기는 것이, 쥐꼬리만큼 가르쳐 주고 문제는 엄청 심도 깊은 것을 던져 준다는 데에 있는데, 어쩌겠나. 아쉬운 놈이 따라가야지 뭐.

『열하일기』, 『한국사의 천재들』, 『조선의 힘』 등은 교양을 위해 산 책 인데, 이왕이면 역사와 걸치는 쪽으로 읽자는 생각으로 샀다. 어디가서 한국사, 특히 조선시대를 공부하고자 샀다고 우겨도 할 말 없는 내용들 아닌가. 마지막으로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는 역시 서양사에 대한 편애가 약간 작용한 결과라 하겠다. 굳이 안 봐도 되는 책을, 시험 준비하는 데 밑바탕이 될 거라는 자기 암시를 듬뿍 쳐서 두 눈 질끈 감고 샀다.

아 배부르다. 이걸 언제 다 읽냐. 이미 가지고 있는 책만으로도 차고 넘치는데 말이다. 그래도 내가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바람을 피우길 하나, 단란주점 같은 데서 100만원 짜리 술을 먹길 하나, 이 정도로 저렴하게 취미생활을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그러겠나. 게다가 어디 단순 취미생활인가. 이게 다 생산적인 일에 필요한 연장들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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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 킹 콜 아저씨가 부르는 것보다 피츠제럴드 아줌마의 것이 딱 세 배 반쯤 좋다. 이 노래를 부를 땐 쿨한 척 건들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 사랑의 본질이 뭐겠어. 유치하더라도 그냥 믿어주는 거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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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매일은 아니더라도 딸에게 잠자리에 들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준다. 어제 본 책은 『밀로의 모자 마술』이란 동화인데, 딸이랑 내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 다른 동화와는 뭔가 좀 다르다. 아이들의 눈높이보다는 조금 더 높은 수준의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웃음으로 이끄는 스토리 구성이 굉장히 극적이다. 즉 책을 읽다가 웃음이 갑자기,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빵 터진다는 얘기다. 어제 딸에게 이 동화를 읽어주다가 갑작스럽게 웃음이 밀려왔는데 도저히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어찌나 얘기가 웃긴지 미친 놈처럼 꺼이꺼이 웃었는데, 물론 딸이 그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빠가 저렇게까지 뒤집어질 필요가 있을까 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이쯤에서 웃음을 멈추고 딸에게 계속 책을 읽어주고 싶은데, 도대체 이놈의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급기야 눈물을 보이고 만 아빠. 더욱더 걱정스러운 얼굴이 된 딸. 물론 아빠가 적당히 상황을 정리하고 계속 읽어주길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한 번 NG가 나면 계속 난다더니 딱 그 꼴이다. 여기서 끊고 다시 읽어야 하는데 이거 정말 쉽지 않다.

눈물이라는 게 묘한 마법이 있어서, 웃음으로 시작된 눈물도 일단 시작되면 더 이상 웃음이 아닌 울음이 될 가능성도 있는 걸까? 아무튼 처음엔 웃으면서 흘린 눈물이었으나 나중엔 좋게 끝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 감정을 스스로 내가 조절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애 엄마가 방에 들어와 나에게 괜찮은지를 물었을 때엔 정말로 괜찮지 않은 상황이 되어 있었다. 결국은 동화책을 애 엄마에게 넘기고 방을 나왔다.

여기까지 쓰고 처음부터 읽어 보니, 우울증 환자의 일기 같은 건 본 적이 없지만, 혹시 이런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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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다리미랑 얘기하다가 학교 다닐 적 수학 얘기가 잠깐 나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보니 책장에 아직도 꽂혀 있는 Lang의 『Linear Algebra』. 허허... 이게 아직도 꽂혀 있구나. 정말 명줄이 긴 놈이구만...

대학 1학년 3월에, 그러니까 아직은 공부가 날 싫어하기 전일 때, 학교 구내서점에서 산 책이다. 아마 하숙집의 경영학과 선배의 권유로 샀을 거다. 경제학과에서는 공식 교재로 Lang이 아닌 정필권 교수가 쓴 촌스럽게 시퍼런 표지의 『경제수학』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난 당시만 해도 안 해도 될 짓을 하던, 즉 오버질을 제대로한 학생이었던 셈이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내 책임만은 아니다. 그 선배가 경제수학을 하려면 이 정도의 책은 기본적으로 봐야 된다고 해서, 누구나 사서 보는 줄 알고 산 거다. 그 다음주에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 책이 있다고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잖은가. 그래, 공부하자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그래서 그냥 봤다.

당연히 이 책을 끝까지 본 건 아닌데, 내가 파란 『경제수학』을 너무나 사랑하게 되어서가 아니라, 공부가 날 싫어하게 되어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내가 이 책을 버리지 못한 건, 설마 아직도 나에게 수학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인가... 모를 일이다.

아무튼 한편으로는 반갑고 또 한편으로는 어색한 마음에 요즘도 이 책을 파는지 인터넷 서점을 뒤졌더니 역시 팔고 있다. 그러나 가격에 쓰러진다. 7만원이 넘는단다. 그때랑 지금이랑 Third Edition에서 판수도 올라가지 않았는데, 설마 이 가격에 사는 사람이 있나? 이렇게 무식하게 비싸다는 건, 다시 말해서 모두들 복사해서 쓴다는 얘기가 되나? 그 때도 그렇게 비쌌다면 내가 샀을 것 같지 않은데... 생각하긴 싫지만 혹시 그 무시무시한 가격에도 공부하겠다는 일념으로 책을 지른 건 아니겠지... 아닐 거다. 그럴 리가 없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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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면 이것도 레어는 아니지만 영어로 된 책은 많이들 가지고 있어도 불어로 된 건 주변에서 그다지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

사실 이 책을 사게 된 것은 순전히 사고였다. 원서 파는 사이트에서 이 책을 보고, 그렇잖아도 원서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고 싶었던 차에 그림을 보고 이거다 싶어 단숨에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집에 도착한 책을 보니까 어째 좀 이상하다. 책 표지에 있는 'Alice' 말고는 도무지 읽을 수 없었다. 뭐야 이거... 그렇다. 불어다. 중학교 1학년 때에 불어사전을 영어사전으로 착각하고 1달 여를 이상하게 찾을 수 없는 단어가 많다고 투덜거리며 쓰다가, 나중에 사건의 전말을 알고는 가차없이 집어던진 이후로 처음 보는 불어다.

반품을 할까 말까 살짝 고민하다가, 반품 택배를 기다리는 건 또 귀찮아서 못 참는지라 관두기로 했다. 당연히 그림만 보는 거지 뭐...

그래도 이런 황당한 사고를 그림이 모두 보상해 줄 정도로 예쁘다. 지금은 꽤나 애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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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장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바둑소설
슈사이 명인과 기타니 7단의 바둑사의 대승부!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박진감에 넘친다. 마치 바둑을 두는 것을 직접 보고 있기라도 하듯 손에 땀이 쥐어진다. 긴장된 두 대국자의 표정이 눈에 선하고, 바둑돌 놓는 소리뿐인 대국실의 분위기가 가슴을 짓누른다. ...
-- 신경림‧시인

이같은 신경림 시인의 소개글에도 불구하고 전혀 박진감 또는 긴장감이 없는 신기한 소설이다. 당연히 바둑을 모르는 사람은 관심을 가질 수 없는 글이지만, 바둑을 알고 또 좋아하는 사람조차도 '바둑에 대한 사랑'만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이 책을 보게 되면 왜 노벨 문학상이 별 게 아닌지를 어느 정도는 추론할 수 있지 않을까. 실화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이 이토록 재미 없기 힘들텐데도, 작가는 그 중에서 가기 어려운 길을 택한 것 같다. 아무튼 이상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독후감이므로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재미 있을 가능성은 무궁하다.

이 소설은 마지막 세습 혼인보(본인방本因坊) 슈사이(秀哉, 1908-1940) 명인의 인퇴기(引退碁)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등장 인물에 기타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실명을 사용할 정도로, 타큐멘터리인지 소설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출판사의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 칭찬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작품에서 큰 감동은커녕 별다른 재미도 얻지 못한 이유는, 일본인 특유의 승부에 대한 비장함을 나로서는 별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닮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둔 노(老)명인이 자신의 바둑 인생을 이 한 판에 걸었다는데, 왜 난 자기 인생을 바둑 한 판에 거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그 승부에서 이기면 성공한 삶이고, 지면 실패한 삶이라는 건가? 왜 삶 자체로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되는지... 한국 사람들이라고 해서 안 그런 건 아니지만 일본 사람들이 이런 게 특히 심한데, 김연아와 대결하는 아사다 마오에게서도 이런 비장함이 풍겨 나오는 게 그래서 난 싫다. 기합이 들어갔다느니, 이를 악물고 했다느니... 스포츠 경기를 꼭 그렇게 목숨 걸고 해야 하나...

1992년 도서출판 '솔'에서 나왔다. 책값 4,000원은 당시의 기준으로 보아도 전혀 착하지 않다. 당연히 내가 사진 않았다. 당시 내게 바둑을 가르쳐 주던 두 학번 후배가 사서 보고 내게 준 책인데, 그 많은 이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용케 살아남은 책이다. 다음 번 이사 때 버릴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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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정리하다가 아내의 대학 전공 서적 중에서 『韓國漢文學史』라는 양장본의 책을 발견했다. 내 전공이 이래뵈도 역사인지라 끝에 史가 들어가는 책이 어찌 반갑지 않을까. 당연히 내용이 궁금하여 하던 일을 멈추고 책을 펴 보았는데...

당연히 내용을 알 수 없는 고사하고 도대체 눈을 둘 곳이 없다. 책의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漢字로 쓸 수 없는 글자를 빼고는 모두 한자다. 어쩜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하긴 '한국문학사'를 쓴다 해도 한자 없이는 글이 안 될텐데, 하물며 '한국한문학사'임에랴... 그렇지만 본문에 정말 필요한 한자가 있나 하면, 내가 보기엔 이런 평범한 설명까지 한자로 표기해야 되나 싶을 정도로, 그리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질려버릴 정도로, 아무튼 가능한 한 모든 영역에서 한자로 도배를 해 놓았다. 혹시 한문 훈련용인가...

그래도 나름대로 역사책을 발견했다는 기쁨도 잠시, '한문학사'가 굳이 따지자면 '역사'가 아닌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건 어디까지나 문학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즉 역사와 한문학사가 보편과 특수의 관계가 아니라, 문학과 문학사가 그러한 관계인 것이다. 몇 학기 한문 사료읽기까지 우수한(?) 학점으로 패스했다고 어디 가서 자랑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설마 못 읽으랴...' 하는 맘도 없지 않았으나, 이놈의 책은 한 장만 봐도 숨이 턱 막히고 손발이 저려온다.

이런 무시무시한 책에 아내는 공부 열심히 했는지, 여기저기에 줄도 긋고 주석도 달아 놓았다. 그동안 몰랐는데 업수히 여길, 혹은 쉽게 볼 사람이 아니었다. 알고보면 이런 엄청난 공부를 했던 사람인 것이다. 오늘부터 아내를 존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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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한 번 보고 다시는 안 보는 책이 있나 하면, 또 어떤 책은 두고서 여러 번 보아도 언제나 재밌고, 다시 보면 그 전에 볼 때와는 다른 맛이 나거나 그 때에는 놓쳤던 새로운 부분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는 책이 있다. 이태준의 『문장강화』는 당연히 후자에 속하며, 도그마 북컬렉션의 보물 1호를 다투는 후보 중의 하나다.

이 책을 살 때에 사연이 하나 있는데, 영풍문고에서 이 책을 본 순간 제목이 맘에 들었다.

"문장강화? 이걸 보면 글이 세지나? 책값도 싼데 그냥 속는 셈 치고 사 볼까?"

그런데 책을 일독하고서도 눈치채지 못하다가 두 번째 볼 때가 되어서야 '강화'가 强化가 아닌 講話임을 알게 되었다.

"어라, 강화가 그 강화가 아니네. 하하 재밌다..."

아무렴 어떠랴. 실제로 이 책은 글쓰기를 세게 만들어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우선 이 책은 다른 책에 비해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책값이 감동적이다. 1996년에 영풍문고에서 살 때만 해도 4,000원이었고 지금도 8,500이란다. 쓸데없이 4도 인쇄에 그것도 모자라 별색 표지를 써서 책값에 금칠을 하는 대신, 딱 받을 만큼만 받고 보라는 거다.

둘째, 가지고 다니기 좋다. 문고판이라 약속이 생겨 외출할 때 책장을 둘러보며 이번에 함께 출전할(?) 멤버들을 고르면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고 일어난다. 가방에 넣을 필요 없이 외투 주머니에 넣거나 그냥 손으로 들고 다녀도 좋다.

셋째,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재밌다. 글쓰기를 주제로 한 글이지만 그 속에 예문으로 제시되고 있는 글들이 주옥같은 명작들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글들을 골라내는 이태준의 안목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하지만, 어쨌거나 좋은 글 없이 좋은 편집자 나올 수 없듯이 이 책이 나올 당시의 한국문학이라는 좋은 텃밭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 그리하여 좋은 글쓰기라는 원래 목적의 달성뿐만 아니라 어느 새 우리 문학을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부수적인 효과가 덤으로 따라온다.

넷째, 어쨌거나 이 책은 글쓰기를 위한 책인데, 과연 이 책을 통해 글쓰기가 나아질까? 최소한 내가 보기엔 그렇다. 요샌 워낙 글쓰기가 대부분 블로깅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오래 생각하고 글을 쓰지도 않을뿐더러 제대로 된 퇴고의 과정을 거치기가 힘들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모르게 전수받은 그 무엇이 작용한다고 믿는다. 글을 써 놓고 한 주만 지나면 맘에 안 드는 부분 주어와 술어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문장이 확 드러난다. 이럴 땐 정말 모조리 뜯어고치고 싶다.

아무튼 가격 대비 성능, 아니 효용으로 보자면 이만한 책이 없다.

하지만 이 책에도 아쉬운 부분은 있다. 1939년에 나온 책이므로 그 이후의 한국문학의 성과물은 전혀 반영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 이 책에서 박완서, 공지영, 은희경, 황석영, 조정래 등을 찾으려고 했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그렇다고 상허를 다시 살려내어 최근의 글들을 소재로 해서 재출간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거야 상허의 후배들이 낸 다른 책들이 그 몫을 해 주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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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책장에 꽂혀 있는 초레어 아이템이다. 1991년 푸른숲에서 나온 헝가리 태생의 독일 작가 가보 폰 바싸리(Gabor Von Vazary)의 소설 『몽쁘띠』. 거창한 이야기도 멋진 등장인물이 나오는 것도 없는 소설. 그러나 이 책 이후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내 아이디는 monpetit가 되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만큼 내 삶에 나름대로 큰 영향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단 한 번만 읽었다는 것. 사실 그 이후로 다시 읽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두 번 다시 끝까지 읽지 못하고 몇 장 읽다가 다시 책장으로 밀려나곤 했다. 아마도 소설의 슬픈 결말을 내가 참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독일에서는 무려 500만부나 팔렸다고 하였지만, 한국에서는 장담하건데 초판도 다 밀어내지 못했을 거다. 당연히 지금은 어디 가서 구할 수도, 사실 아는 사람 아니면 구하고 싶지도 않을 그냥 그렇게 스쳐가는 소설. 그러나 여전히 내 책장 한 켠을 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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