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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기형도의 말마따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떨어진 영수증도 종이는 종이다. 오늘 버릴 책들을 정리하다가 찾아낸 1992년도 6월자 PC통신 요금 납부 영수증. 나에게 터보-C 책은 타임캡슐이었구나. 내 기억이 맞다면 이때가 아마도 코텔에서 하이텔로 서비스 이름이 바뀔 때가 아닌가 싶은데… 아무렴 어떠랴. 하이텔, 나우누리 모두 사라지고 이제 이 영수증만 남아서 그때를 증명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찍힌 도장도 지금은 없어진 한일은행 연세지점이네. 납입기한을 열흘이나 넘겨서 납부한 걸로 보아 며칠 동안 접속을 못했을 듯.

누군가는 촌스럽게 ID를 모두 대문자로 썼다고 놀렸지만, 이것은 BASIC 프로그래밍의 전통이라고 감히 우기고 싶다. 요샌 그때처럼 겁도 없이 전화비 아까운 줄도 모르고 밤새도록 채팅할 사람들도 없거니와, 그런 공간이 생긴다 해도 열정과 체력도 남아 있지 않다.

이 영수증, 책과 함께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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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릴 책들

카테고리 없음 2013. 1. 29.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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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사 통에서도 살아남았으나 그 후로 일 년이 넘도록 박스 속에서 잠자던 책들이 이번에 아내의 준엄한 검열에 걸려서 방출 통보 받음. 나로서도 이젠 할 말이 없다. 그동안 이런 책들의 존재조차 까맣게 잊고 살았으며, 없어도 사는 데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 마당에 이들을 구제해 줄 명분이 없다. 하기야 지금 살펴보니 내게 FORTRAN, COBOL 책들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터보 C, 파스칼 책들도 가지고 있었네. 그리하여 예전에 동철이 형이 준 진드리히 젤레니의 『맑스의 방법론』을 포함한 18권의 책을 이번 주말에 일괄 퇴출하기로 전격 결정. 그래도 그동안의 정리情理를 생각해서 기념사진 한 컷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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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손이 저려서 눈을 뜨니 새벽 5시 30분. 왼손이 배 밑으로 들어가서 고생 좀 했다. 어지간하면 이렇게 잠을 깨는 일도 없을텐데 몸살 기운 때문인지는 몰라도 몸의 감각이 예민해져 있는 듯. 아무튼 이렇게 그만 잠이 깨 버렸다. 새벽 시간에 딱히 할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운동하러 밖에 나가자니 너무 춥고 어제 얻은 감기 더 신나서 날뛸까 심히 저어하다. 어쩌겠나. 책이나 봐야지. 그리하여 밖에 나가는 대신 실내자전거 위에 몸을 싣고 펼친 책이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 되시겠다. 언제 한번 꼭 봐야지 하면서도 이제껏 다른 책들한테 밀려서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더니 이렇게 달밤에 체조하는 격으로라야 간신히 읽을 기회를 잡는 것인가.

예전에 알뛰세, 발리바르 등에서 이미 질려 버렸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왜 글을 이 따위로 쓰는지 도통 모르겠다. 이들의 재미없는 글쓰기 전통의 연원은 얼마나 거슬러 올라가는 걸까. 간단하고 재밌고 알아듣기 쉽게 글을 쓰면 인정받지 못하는 지적 전통이라도 있나. 왜 한 문장을 써도 꼭 이렇게 중간에 주석과 수식어를 겹겹으로 넣어가면서 문장의 주어와 술어가 뭔지도 헷갈리게 만드는지. 그게 아니라면 혹시 불어와 한국어 사이의 궁합지 맞지 않아서인가. 불어는 영어나 독일어와는 달리 번역하는 데에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닌지. 김화영 선생의 번역문학을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말야.

아무튼 애초에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독서도 아니었지만, 마지막엔 기분이 좀 더 꼬인 상태로 책을 덮었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몸은 점점 깨어나는데 책읽기는 영 따분하기 그지없다. 이제부터 새벽에 프랑스 사람이 쓴 책은 피해가야 될까. 근데 그럼 『증여론』 저 책은 언제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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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몸살

카테고리 없음 2013. 1. 26. 20:35
어젯밤 몸상태가 수상하더니 오늘은 종일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 금방이라도 공중부양할 듯한 이런 느낌, 정말 싫다. 약을 먹었으면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내일 아침 일어나면 멀쩡해져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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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처럼 추리소설에 불타오를 수 있는 시절이 다시는 오지 않을 듯. 오랜만에 잡은 추리소설, 역시 잡생각이 너무 많아서 순수하게 몰두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나이 먹어가면서 추리소설 읽기가 너무 피곤하다는 게 문제. 우리의 주인공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 모두를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지 않은가. 이건 애초에 불공정 게임이다. 퍼즐을 배치하는 작가 입장에서야 어떤 팩트가 사건 해결에 실마리가 되는지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을 알 수 없는 독자 입장에서야 무엇 하나 빠뜨릴 수가 없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작가가 제시하는 팩트들을 모두 조합한다고 해도 독자는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소설 속의 대부분의 등장인물도 마찬가지이다. 퍼즐 조각을 다 모은다고 해도 퍼즐을 풀 수는 없다. 그것은 선택받은 자들의 권리. 주어진 단서들을 꿰뚫는 비범한 통찰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솔직히 말해서 처음부터 사건 해결은 독자의 몫이 아니다. 그냥 흐르는 물결에 몸을 맡기듯 가벼운 마음으로 소설의 전개를 따라 천재들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결말에 이르러 감탄과 함께 기꺼운 마음으로 천재들에게 박수쳐 주면 되잖아. 그럼에도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주어지는 단서로 이리저리 조각을 맞추지 않는다면 독자로서 뭔가 임무를 팽개치는 것 같은 강박에 눌린다. 그리하여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오늘도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든다.

다음부턴 좀 편하게 읽을 수 있을까? 여전히 안 될 것 같지 않나… 아참! 완전범죄에 필요한 고양이는 몇 마리더라. 어디 보자… 다 읽었는데도 잘 모르겠다. 암튼 우리의 주인공들은 역시 머리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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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카테고리 없음 2013. 1. 16. 16:22

어제 큰딸이 수영 다녀오는 길에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오늘 동선을 따라서 이리저리 수소문해 보았으나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휴대폰을 새걸로 바꿔야 할 모양인데, 이참에 자급제 스마트폰으로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 엄마 아빠도 아직 안 써 봤는데 굳이 초등학생이 스마트폰을? 심지어 엄마는 아직도 2G인데 말야. 그렇긴 하지만 요샌 3G폰 구하기가 어디 말처럼 쉬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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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읽지 않을 권리
  2. 건너뛰어서 읽을 권리
  3.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 연거푸 읽을 권리
  5. 손에 집히는 대로 읽을 권리
  6. 작중 인물과 자신을 혼동할 권리
  7. 읽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을 권리
  8. 여기저기 부분적으로 읽을 권리
  9. 소리 내에 읽을 권리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 다니엘 페나크, 『종이책 읽기를 권함』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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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

카테고리 없음 2013. 1. 10. 12:43

체질적으로 마취가 잘 안 되는 사람은 병원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예전에 아말감으로 때운 곳 주변으로 다시 이빨이 망가졌다. 그저께부터 아파 오기 시작했는데, 무슨 놈의 베짱인지 미련하게 치과에 안 가고 버텨본 게 실수였다. "피곤해서 잇몸이 부은 거야. 며칠 지나면 나아질 거야." 이렇게 자기 최면을 걸어 보았지만, 사실 이런 경우 처음부터 환자가 지는 게임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아픈데 장사가 어딨겠나. 어젯밤엔 두통약을 먹고도 잠이 안 오더라.

아침에 시원하게 슬라이딩 한번 해 주신 그 몸 그대로 치과에 달려갔더니 당연히 신경치료에 들어간단다. 의사에게 미리 마취가 잘 안 된다고 밝혔지만 돌아오는 건 그저 알았다는 대답뿐, 그렇다고 무슨 특별한 조치가 취해질 리도 없고, 사실 그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 마취 주사를 맞은지 10분이 지났는데도 입천장이 얼얼하기만 하고 여전히 아픈 곳은 나를 곤두서게 하고 있는데 치료가 시작되었다.

신경 같은 건 말야, 대뇌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면 자기도 알아서 좀 무뎌주시면 안 되냔 말이지. 드릴이 닿는 느낌이 나고 몇 초 지나자 신경에 바로 느낌이 왔다. 예상한 것보다 비명 소리가 너무 큰데다가―나도 내 소리에 놀랐는데, 목놓아 울면 이런 소리가 날까―순간적으로 환자의 몸까지 홱 돌아가면서 의사도 깜짝 놀랐나 보다. 허겁지겁 추가 마취를 했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결국 한번 더 마취를 하고서야 간신히 치료를 계속할 수 있었다. 너무 아픈 나머지 나도 모르게 왼손이 자꾸 얼굴쪽으로 올라왔는데 옆에 있던 간호사가, 물론 손이 올라오는 걸 방지하고자 하는 차원이었지만 내 손을 꼭 잡아주는데, 갑자기 무슨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듯한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고 하면 너무 웃긴가?

아무튼 치료가 끝나고 의자가 올라올 때쯤엔 이미 탈진 상태. 뇌가 놀라서 그런지 두통까지 묵지근하게 오고… 모두들 애썼다. 이빨 치료, 정말 전쟁이다. 금요일 또 가야 되는데 벌써 두렵다. 그래도 오늘밤엔 아무 일 없이 잘 수 있겠지. 처음부터 순순히 무릎 꿇으면 될 것을, 무엇을 얻으려고 이렇게 버틴 건지… 미련하게 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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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다.

카테고리 없음 2013. 1. 10. 12:29

아침 출근길, 빙판 위에서 멋지게 꽈당. 넘어지자마자 벌떡 일어나 바지 툭툭 털고 아무일 없다는 듯 지하철을 탔다. 사실 별로 아프지도 않더라. 근데 사무실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으니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네. 왼쪽 손바닥은 까졌고, 오른쪽 무릎은 시큰거리고, 허리도 뻐근하고, 왼팔은 들기도 힘들고… 몇 년만 더 있으면 노인들마냥 낙상해서 드러눕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이빨 때문에 간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정말 여러가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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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생攝生

카테고리 없음 2013. 1. 1. 19:34
진원방이 말하기를陳元房曰, “백 가지 병에 걸려서 비명에 죽는 것은百病橫夭 대다수가 음식으로 말미암은 것인데多由飮食, 음식의 해는飮食之患 성색―음악과 여색―보다 더하다過於聲色. 성색은 1년 이상 끊을 수 있으나聲色可以絶踰年, 음식은 하루도 끊을 수 없는 것인데飮食不可癈一日, 유익함도 많지만 해로움도 매우 많다爲益多爲患亦切.” 《지비록知非錄》

산림경제山林經濟 제1권 섭생攝生 중

절대 공감. 2013년 첫날부터 운동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음식은 조절해야 함이 마땅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 여전히 먹고 싶은 것 앞에서는 힘없이 무너진다. 뭔가 중대 결심이 필요한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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