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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을 두 곳이나 지나와서야 그 사실을 알아채고 황급히 뛰어내려 반대편 선로로 뛰었으나 간발의 차로 문이 닫혔다. 그 순간 김이 팍 새 버렸다. 출근할 의욕이 꺾였다고 해야 하나.

이런 일이 대개 그러하다. 업무시간과 그 외의 시간을 무 자르듯 나누어 일할 수 없다는 것. 언제든지, 무슨 생각이, 무슨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그것에 매달려야 한다. 하던 일이 어느 순간 막히면 잠자는 시간도 따로 없고, 밥 먹는 시간도 따로 없다. 문제가 해결되어 평화를 찾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의 하나.

날도 화창한데 이대로 그냥 도망가 버릴까 생각했지만, 추운 날씨를 핑계삼아 터덜터덜 걸어 사무실에 도착했다. 따뜻해지면 그때 도망가자. 그래. 그때 도망가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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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무렵 눈두덩이 아파오면서 그와 함께 감기몸살도 슬금슬금 따라오는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 주먹으로 내 눈을 때리는 듯, 도저히 모니터를 볼 수가 없어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게다가 지하철 역을 나서니 매서운 바람에 영혼까지 날아가는 것 같다. 그리하여 가방에서 넥워머―요거 순우리말로 적당한 낱말 없을까. 내 비록 분위기 파악 안 하고 순우리말을 고집하는 부류는 아니지만 넥워머 같은 참으로 아름답지 아니한 낱말은 주는 거 없이 밉지 않은가. 차라리 '목덥히개'라고 부를까?―를 꺼내어 쓰고 집에 왔다. 현관에 들어서자 딸들이 달려나오다가 놀라서 그 자리에 선다.

"뭐예요? 이 밤에 웬 선글라스?"
"그러게 말이다. 선글라스라니, 웃기지?"
"예. 그리고 얼굴은 왜 가렸어요?"
"아빠가 아파서 그래."

엘리베이터로 올라오면서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니 이런 반응이 나올 만도 하다. 따끈한 물로 온몸을 데치고 나니 좀 살 것 같다.

근데 무슨 파충류도 아니고 바람 좀 분다고 이렇게 골골하면 어쩌냐.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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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 책을 보러 오랜만에 종로에 나갔다. 그동안 책을 전혀 안 산 건 아니지만, 서평이나 목차만 보고 온라인으로 서점으로 책을 주문하는 것이 아직은 매장에 나가서 직접 책을 펼쳐보고 사는 것에 비할 순 없다.

그런데 그간 꽤 오랜 기간 매장에 나가지 않아서일까. 슬쩍 둘러보기만 했는데도 보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주체할 수 없다. 이 책도 보고 싶고 저 책에도 눈길이 가고, 또 다른 책도 재밌어 보이고, 심지어 사전 같은 책도 정말 멋지다. 분야를 막론하고 보고 싶은 책이 널리고 또 널렸다. 요즘은 다들 편집을 선정적으로 잘해서 그런 건지...

어쨌거나 큰딸에게 나중에 사 줄 초등용 국어사전을 봐두고 문구 코너를 발길을 돌렸다. 수첩을 하나 살까 하는 생각이었다. 스마트폰이 있으면 메모 같은 것도 다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로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다. 아무렴 펜을 잡고 손으로 쓰는 것보다 빠를 수 있으랴. 요것도 스마트폰 없는 자의 합리화인가. 아무튼 그래서 지하철에서 앉아 졸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거나, 책을 보다가 옮겨놓고 싶은 문구를 발견했을 때 뭔가 적어놓을 만한 게 예전부터 필요했다. 지금 쓰고 있는 건 너무 작은 수첩이라 글씨를 쓰기에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아 좀 넉넉한 크기의 수첩을 하나 마련하고 싶었다. 매장을 둘러보니 적당한 수첩이 눈에 들어왔다. 줄이나 모눈이 없는 흰 종이에다가 A5 정도 되는 크기. 그렇다 이런 걸 원했다. 그런데 뒷면에 적힌 가격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26400원? 2640원이 아니고? 아니 수첩에 무슨 금테를 두른 것도 아닌데 이런 가격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단 말야? 백주 대낮에 이런 날강도를 만나도 되는 건가? 놀란 가슴 진정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수첩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옆에 있는 다른 브랜드의 수첩도 그 정도의 가격이다. 게다가 한 눈에 봐도 싼 티를 팍팍 풍기는 동시에 실용성까지 없어 보이는 다이어리도 1만원은 훌쩍 넘어간다. 그렇구나. 요새 수첩이 원래 이 정도는 하는구나. 하드커버 같은 거 하나 붙이면 26400원도 충분히 가능하겠구나.

물론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구매로 이어질 수는 없다.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는다면 모르겠거니와, 가격표를 본 이상 그걸 산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하드커버가 없으면 글 쓰는 데 많이 불편하겠지만, 그냥 다음에 할인점에 갔을 때 문구 코너에 들러서 3천원 짜리 무지노트 하나 사는 걸로 만족해야겠다. 나로서는 도저히 2만원을 넘어가는 가치의 생산적인 글쓰기를 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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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의 꿈에다 굳이 테마를 붙이자면 '형제' 정도가 아닐까. 아무튼 동생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우리 형제가 지금처럼 결혼해서 떨어져 살기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사는 곳은 처음 보는 곳인데,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다락방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에 물이 있는 걸로 보아 바닷가나 강가, 또는 호숫가가 아닐까 싶다. 다락방의 창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은 꿈 속에서도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아름다웠는데, 동생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경이롭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형제가 그렇게 창밖을 보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두 분 외삼촌께서 다락방에 올라오셨다. 외삼촌들도 지금이 아닌 젊었을 때, 즉 우리가 어렸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 계셨다. 외삼촌들은 먹을 것을 싸가지고 올라오셔서, 그 자리에서 간단하게 자리를 잡고 우리 넷이서 식사를 했다. 정찬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간식이라 하기엔 좀 거한 음식이었다. 내가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 때 정황으로 보아 외삼촌들이 멀리서 놀러 오신 게 아니라는 것은 거의 확실했다. 말인 즉슨, 우리 형제와 외삼촌 형제가 한 집에서 살거나, 최소한 한 동네에서 산다는 얘기다. 그리고 꿈 속에서 나는 그 사실에 대해 너무나 당연하고 또 자연스럽게, 즉 그렇게 모여 사는 것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식사 후에 외삼촌들이 내려가시고 나도 삼촌들을 배웅하러 다락방을 내려오면서 슬며시 다른 꿈으로 넘어갔는데, 뒤의 꿈도 그렇지만 앞의 꿈도 금방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보통은 잠에서 깨는 순간, 또는 잠에서 깨어 물 한 잔 마시면서 좀전의 꿈을 다 잊어버리기 마련인데 오늘은 꽤 오래 간다. 등장인물들이 좀처럼 내 꿈에 나오는 사람들이 아닌데 오늘따라 한꺼번에 다 나와서 인상 깊은 것 같기도 하고, 형제들끼리 모였다는 게 신기해서 꿈이 오래가나 싶기도 하고, 꿈 속에서 본 풍경이나 다락방 정경이 좋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요즘은 명절에도 잘 모이기 힘든 가족·친척들. 심지어 모두 모여서 산다고 생각하면 꽤 불편할 것 같다. 그렇지만 간밤의 꿈에서만큼은 모여 사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또 정답기까지 했다. 동생과 나도 예전엔 현재 우리 두 딸처럼 한 이불 속에서 장난도 치고, 서로 싸우다가 부모님께 혼나기도 하고 그랬다. 외삼촌 형제도 어렸을 때에는 아마 그랬겠지. 그러다가 자라면서 서로 각자의 삶을 따라 철새처럼 떠났겠지. 祭亡妹歌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한 가지에서 나서 가는 곳 모르게 된' 것이겠지. 한 번 가지가 나누어지면 비록 그것이 뿌리쪽으로는 연결되어 있다 하더라도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하긴 그래서 가끔 이렇게 꿈속에서나마 돌아보는 게 아닐까.

방금 전에도 한 몸처럼 뒤엉켜 노는 딸들이 나중에 자라서 각자의 삶을 살면서 한 번쯤은 오늘을 기억할 수 있으려나. 작년 연말에 동생이랑 술 한 잔 하기로 했다가 약속이 깨졌는데, 그 이후로 다시 약속을 잡지 못했다. 다음 주에 연락 한 번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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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빵을 먹었더니 계속 속이 들뜨길래 그걸 가라앉히려고 이른 점심식사를 한 후, 안마기를 켜고 누워서 종아리의 뭉친 근육을 풀다가 그만 잠이 들어 버렸다. 보통은 그래 봐야 한 두 시간이면 일어나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네 시간을 넘겼다. 죽은 듯이 잔 건 아니고, 중간중간에 자기 코고는 소리도 들어가면서...

눈을 뜨니 저녁 6시. 하루가 허무하게 간다. 그 덕분에 사무실에서 얻어온 뽕나무 술에다가 맥주까지 한 잔 했음에도 이 시각까지 정신이 멀쩡하다. 책을 보기에도 너무 늦었고, 그렇다고 잠이 올 것 같지도 않고, 이래저래 어중간한, 그래서 맘에 안 드는 토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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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할 때에는 몰랐는데 이번에 도착한 책들의 공통점은 꽤 뚱뚱한 놈들이라는 것.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엔 좀 부담스러운 몸집인데 괜찮을까...

사은품으로 함께 온 백은 아무리 봐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땐 큰딸에게 주는 게 좋다. 딸이라면 이 물건의 적절한 용도를 찾아내겠지.

그런데 어느 책부터 먼저 볼까. 그것도 고민이라면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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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수험·입시 등의 단어가 작업기억 속에 로딩이 되면 그 순간 뇌 구조가 바뀌는 게 아닐까? 아무튼 이 또한 인체의 신비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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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연말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얼마간 내버려 두었더니 이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쓸 수가 없다. 어떤 주제일지라도 무언가 쓰려는 순간 이상한 자기검열의 열기(?)에 휩싸여서, 굳이 그걸 글로 남길 것까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냥 넘어간다. 최소한 좋은 버릇은 아닌 것 같고, 나쁘다면 나쁜 버릇이 생긴 거다.

글도 음식과 마찬가지여서 습관이다. 습관적으로 뭐라도 써 나가야 그나마 자신과 주변에 대한 하찮은 성찰이라도 할 시간을 만든다. 대체 뭘 했는지도 모르게 24시간이 지나가면 허무하지 않은가 말이다. 나쁜 버릇은 빨리 버리자.

그나저나 작은 딸은 한동안 멀쩡하다가, 부산 할머니 댁에 내려가려고 하니 아프기 시작하네. 오늘 엄마가 병원에 데려갈 모양인데 빨리 나아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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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우울할 때 쇼핑을 한다던데 아내와 나는 그런 취미는 없다. 그것이 우리 부부가 그 적은 수입으로도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결정적은 아니지만 제법 주요한 원동력이기도 할 터이다. 스마트폰 안 쓰면 병신 취급 받을 것 같은 세상에서도 그쪽으로 별로 관심 안 가고, 겨우내내 몇 벌의 옷으로 버텨도 아무렇지도 않다. 월급 받아서 한 달 동안 지출 내역을 돌이켜 보면 작은 딸 빵값으로 나간 돈이 제일 많았다.

그런데 요 며칠은 책을 좀 사고 싶다. 몇 년 전에 은사님이 내신 두 권으로 된 『영국의 역사』도 보고 싶고, 에드워드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그러고 보니 이것도 역시 두 권이구나─도 보고 싶고, 피터 윗필드의 『세상의 도시』도 보고 싶고, 요네즈 가즈노리의 『자전거로 멀리 가고 싶다』도 보고 싶고, 심지어는 예전에 도서관에서 본 에릭 홉스봄의 『역사론』도 다시 찬찬히 읽어 보고 싶다. 이 외에도 보고 싶은 책이 얼마나 많은지...

물론 지금 사 봐야 읽지 못할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보고 싶다. 작년에 사서 아직 개시도 못한 책이 책장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안다. 그렇더라도 더 사고 싶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책을 펴들면 두어 장 읽어내려가기도 전에 조는 것을 안다. 그렇더라도 책을 더 보고 싶다.

그냥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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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에 애들 재우고 부부가 맥주 한 잔 마셨을 뿐인데, 게다가 어제 잘 때는 멀쩡했는데, 오늘 아침 일어나니 머리가 띵하다. 자는 도중에 뒤늦게 취기가 올랐단 말인가.

사무실에 도착하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오전 10시 30분 현재 전혀 아니올시다. 머리는 여전히 지끈지끈. 그리하여 두통약을 먹을까 말까 고민 중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실은 먹는 방향으로 거의 마음을 굳혀가고 있다. 경험적으로 보건데 이럴 경우 약으로 두통을 끊어주지 않으면 당일은 물론, 그 다음날까지 머리가 심통을 부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아내더러 어제 TV 보면서 맥주 한 잔 어떠냐고 할 때 남편 머리 아플까 겁난다더니 딱 그 말대로 되었다. 이런 안 좋은 예감은 빗나가 줘도 되는 거 아닌가. 아무튼 이렇게 또 한 주가 삐걱거리면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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