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 의사 선생 말 안 하기로 유명하다. 오늘도 딸의 아픈 곳을 보여주었는데, 그저 보기만 할 뿐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아쉬운 놈이 우물 판다고, 묻지도 않았지만 내가 그간의 사정을 다 읊어야 했다. 아픈 건 3주 전부터였으며, 처음엔 단순한 기저귀 발진으로 알았는데, 아무래도 낫질 않아서 지난 주에 소아과에 갔더니 이런 약을 처방해 주더라. 그런데 낫질 않더라. 그래서 오늘 왔다... 이렇게까지 얘길 했는데 의사 선생의 대답은 "연고를 처방해 드릴게요" 라는 딱 한마디밖에 없다. 부모의 입장에서 딸이 아픈 원인은 뭔지, 이 증상의 이름은 뭔지, 약을 쓰면서 주의사항은 있는지 등등 궁금할 게 많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는 걸까.

"선생님, 단순한 기저귀 발진은 아닌 것 같은데요, 이 병이 대체 뭡니까."
"아 예. 피부병이예요."

뭐라고, 피부병? 아니, 이런 일반명사를 듣자고 그렇게 장황하게 내가 떠들었단 말인가. 이것보다는 좀 더 전문적인 용어가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럼 피부과에 피부병으로 왔지 두통으로 왔을까. 마치 내과에 가서 병이 뭐냐고 물었더니 '배가 아프다'라는 말을 해 주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런데 버럭 화를 내어도 시원찮을 마당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손님을 앞에 두고 이렇게 쿨한 선생이 있다니. 피부병. 피부병이란 말이지... 물론 이 선생의 성향(?)을 평소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도 한 몫 했다. 다른 의사 선생이 이렇게 말했다면 화가 머리 끝까지 났을텐데, 원래 이런 캐릭터라는 걸 아는지라 예사로운 대답은 안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는 간파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딸 아픈 게 나아야 된다. 그러면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다. 내일부터 지켜 보리라...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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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야 뭐 최근에 주욱 병원과 약국 먹여살리고 있는 중이라 전혀 새롭지 않은 병원행인데, 문제는 아빠다. 지난주 금요일에 약국에서 애들 땀띠에 발라주려고 연고를 하나 샀는데 어제 애들 엄마가 잘못해서 많이 짜 버렸다. 버리기도 아깝고 해서 아빠 팔꿈치 안쪽에 발랐는데 이게 탈이 났다. 연고를 바른 부분이 확 일어난 거다. 피부가 뻘겋게 부어 팔이 접혀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는데, 하늘이 무슨 천벌을 내리는지, 후끈후끈 열이 나고 가렵고 따가워서 머리 속이 온통 이놈의 피부 염증으로 가득가득 차서, 다른 건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가려워서 돌아가시겠지만 그렇다고 긁으면 그 부분이 더 올라올 게 뻔하고, 시원해지라고 반대편 손바닥으로 때리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나중에는 아파서 이것도 못할 짓이다. 아무튼 그리하여 오늘은 딸만 병원에 간 게 아니라, 아빠도 딸이 가는 이비인후과와 같은 건물에 있는 피부과에 갔다.

딸이 가는 이비인후과는 응암동에서 꽤 유명하다. 두 가지로 유명한데, 하나는 의사들이 친절하기로, 또 하나는 그와 정 반대로 간호사들은 불친절하기로 말이다. 이 동네 간호사들은 그 불친절의 수위가 병원 등급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거기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은평구 보건소의 공익근무요원에 필적할 정도이다. 손님을 맞이하는 데스크에 앉아, 한 손으로 전화를 받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환자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려서 지시하거나, 문진표 작성 요령도 안 가르쳐 주면서 볼펜 한 자루 띡 던져주는 모습은 영락없는 공익이다. 이런 일을 당하면 내가 왜 이따위 병원에 와서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나 싶은데,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이 일대에선 그나마 이 병원이 제일 잘한다고 소문이 났을 뿐만 아니라, 딱히 달리 갈 곳도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왜냐고? 다른 곳에 가면 일단 병이 낫질 않는다는 건 거의 진리에 가깝다.

그런데 오늘 아빠가 간 피부과는 간호사는 그다지 빠지는 편이 아닌데 의사가 문제인 동네다. 이놈의 의사는 어떤 병으로 가든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얘기한다. 즉 환자에서 뭐 하나라도 친절하게 말해 주는 게 없다. 답답해서 환자가 물어보면 그제서야 한 두 마디 던져주듯이 얘기하는데, 그것도 선문답과 같아서 정확히 이해한 건지 나중에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오늘만 해도 그런데, 어제 바른 연고가 현 상황의 주범이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란다. 그럼 그 연고를 계속 발라도 되냐고 물었더니 또 그건 아니란다. 왜냐고 물었더니 어제 바른 연고가 단지 별 효과가 없기 때문이며, 그래서 자기가 새 연고를 처방해 주는 게 아니겠냐고 한다. 그럼 왜 어제 연고를 바른 부분이 이렇게 일어났냐고 물어보니 그건 알레르기성 피부염이라서 그렇단다. 이런 식이다. 게다가 그 외에는 별 말이 없길래 오늘 하루만 치료하고 약 받아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병원비 낼 때 간호사 말이 내일 또 오란다. 아니 내일만이 아니라 며칠 와야 된단다. 그러면서 약도 딱 하루치만 처방해 준다. 왜 이런 얘기를 의사가 아닌 간호가한테서 들어야 되지?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이 근방에 피부과가 한 군데만 더 있었어도... 이건 뭐 이비인후과보다 더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곳이라서, 의사가 베짱장사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비스를 개선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만은 확실하다. 내일 아침 일어나서 아픈 곳이 가라앉지 않으면 내일 한 번 의사에게 따져 볼까...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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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미소님 2011.03.12 12: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응암동 주민이시군요. 저도 응암동에 살아서 저 병원들이 어딘지 알 것 같은데, 정말 의사들은 친절한데 간호사들이란.... 살면서 다시 못 볼 불친절한 간호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간호사들에 대한 손님들의 클레임을 병원 의사들은 아는 지 모르는 지..

    저 병원은 하루나 이틀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제일 실력있는 의사에게는 치료를 못 받는 곳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