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 의사 선생 말 안 하기로 유명하다. 오늘도 딸의 아픈 곳을 보여주었는데, 그저 보기만 할 뿐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아쉬운 놈이 우물 판다고, 묻지도 않았지만 내가 그간의 사정을 다 읊어야 했다. 아픈 건 3주 전부터였으며, 처음엔 단순한 기저귀 발진으로 알았는데, 아무래도 낫질 않아서 지난 주에 소아과에 갔더니 이런 약을 처방해 주더라. 그런데 낫질 않더라. 그래서 오늘 왔다... 이렇게까지 얘길 했는데 의사 선생의 대답은 "연고를 처방해 드릴게요" 라는 딱 한마디밖에 없다. 부모의 입장에서 딸이 아픈 원인은 뭔지, 이 증상의 이름은 뭔지, 약을 쓰면서 주의사항은 있는지 등등 궁금할 게 많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는 걸까.

"선생님, 단순한 기저귀 발진은 아닌 것 같은데요, 이 병이 대체 뭡니까."
"아 예. 피부병이예요."

뭐라고, 피부병? 아니, 이런 일반명사를 듣자고 그렇게 장황하게 내가 떠들었단 말인가. 이것보다는 좀 더 전문적인 용어가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럼 피부과에 피부병으로 왔지 두통으로 왔을까. 마치 내과에 가서 병이 뭐냐고 물었더니 '배가 아프다'라는 말을 해 주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런데 버럭 화를 내어도 시원찮을 마당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손님을 앞에 두고 이렇게 쿨한 선생이 있다니. 피부병. 피부병이란 말이지... 물론 이 선생의 성향(?)을 평소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도 한 몫 했다. 다른 의사 선생이 이렇게 말했다면 화가 머리 끝까지 났을텐데, 원래 이런 캐릭터라는 걸 아는지라 예사로운 대답은 안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는 간파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딸 아픈 게 나아야 된다. 그러면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다. 내일부터 지켜 보리라...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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