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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과 수영장

패밀리 2008. 8. 22. 03:11

    8월 18~19 양일간, 내 자발적 의지으로는 절대 갈 리가 없는 곳에 다녀왔다.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 뷔페 'Four Season'에 밥 먹으러 다녀왔을 때에도 위화감 팍팍 들었던 곳이었는데, 이번에는 그야말로 숙박까지 하고 왔다. 멀리 바캉스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동생 내외가 하루 쉬려고 예약해 놓았던 건데, 그나마도 바쁜 일이 생겨 우리 부부에게 패스한 것이다. 숙박비까지 지불되었다니 우리로서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호텔에 딸린 리버파크 수영장 이용권까지 포함된 패키지였다. 딸내미 데리고 수영장 한 번 다녀와야 부모 할 도리를 다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맘을 원래부터 먹고 있었던 차라 팔자에 없는 호텔행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근데 18일이 점점 다가올수록 게으른 우리 부부, 놀러갈 맘에 들뜨기 보다는 오히려 맘이 착 가라앉는다. 왠지 모르게 동생의 숙제를 대신해주는 기분이라고 할까. 수영장에 가는 것 때문에 일부러 며칠 전에 할인점에 가서 없던 수영복까지 장만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닌 것이, 차라리 장급 여관이나 펜션이면 맘 편하게 다녀올텐데, 이놈의 별 몇 개짜리 호텔이다 보니 비치된 비품에도 요금이 붙는다는 사실이 우리 맘을 무겁게 만들었다. 칫솔을 물론이고 치약까지 요금을 내야 한단다. 이 무슨 황송한 일인가 말이다.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부담 없이' 다녀오리라 믿었던 휴가가 '부담 백배' 짜리 휴가가 되고 만 것이다.

    주전부리용 과자에다가 심지어 밤에 배고플까봐 컵라면까지 사들고, 굳은 날씨를 뚫고 호텔에 도착했다. 날씨가 안 좋아 수영장 이용을 못하게 되면 한편으로는 좋은 일이기도 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괴로운 일이 될 터인데, 옷 갈아 입고 여러모로 절차가 복잡해지는 수영을 귀찮아하는 우리로서야 반가울 수도 있겠지만, 며칠 전부터 수영장 가서 한 번 휘저어 주리라고 잔뜩 기대하고 있는 딸내미의 상심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었다. 워낙 호텔에 늦게 도착하기도 하였지만, 모두들 알다시피 18일은 도저히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날씨가 아니었다. 서울/경기 전역에 많은 비가 내렸고, 바람까지 강하게 불었다. 당연히 우리는 수영은 물론이거니와 산책 같은 것도 못해보고 체크인하자마자 방에 갇혔다. 호텔 패키지 상품이 다들 그렇겠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물론 부부만 갔다면 좋았을 것이다. 책이나 보고 푹 쉬었다 오는 거, 우리가 딱 좋아하는 여행이다. 하지만 딸이 끼어 있는 여행에서 조용하게 책이나 읽고 돌아오는 건 애초에 기대할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겠나. 그냥 TV만 봤다. 아니 이럴 거면 기름값 눈물 나는 시절에 은평구에서 세 식구가 이렇게 먼 곳까지 올 필요가 있었을까...

    무엇보다 우릴 난감하게 한 것은, 날씨로 인해 수영장 문을 일찍 닫으면서 우리가 도착했을 때엔 이미 수영장에 딸린 뷔페를 이용할 수 없었기에 저녁식사가 날아가 버렸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린 딜레마에 빠졌는데, 여기까지 와서 그림같이 굶어죽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품요리 하나에 봉사료와 부가세를 제외하고도 4~6만원 씩이나 하는 저녁식사를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껏 공짜 호텔 숙박권으로 놀러와서 한 끼 식사로 10만원을 훌쩍 넘겨 지출하면, 그렇잖아도 숙제하는 기분으로 온 길인데 받아들일 수 있겠나. 결론은 나가서 먹자는 거였다. 이렇게 비싼 식사를 한다면, 이것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생기는 일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오는 길에 보아둔 광장사거리에 있는 칼국수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혹시라도 광장사거리에 있는 칼국수집에 가고 싶은 사람은, 도시락 싸들고 따라다니며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추천하고픈 맘도 절대 없다. 주차가 가능하다는 것 말고는 아무른 특징도 없는 그저 평범한, 그리고 적당히 맛없는 식당이다.

    이렇게 저녁 먹고는 1박2일 중 첫날이 그냥 지나갔다. 이 먼 곳까지 와서 올림픽 경기나 보고 있다니. 게다가 호텔이면 일반 가정집보다는 채널 수가 좀 많고 그러면 누가 잡아가나? 채널 수도 우리집보다 형편 없이 적었다. 이놈의 호텔에 와서 딱 하나 좋은 것은 욕조 가득히 물 받아놓고 목욕할 수 있다는 거다. 그 외에는 맘에 안 드는 것 투성이다. 좀 전에 말한 그 터무니 없는 밥값과 더불어 우리를 화나게 한 것은, 방 안에 있는 소모품과 냉장고 속의 음료수의 가격이었다. 아니 캔콜라 하나에 5,500원이 대체 뭔가. 쵸콜릿이 22,000원, 생수가 10,000원... 이런 어이없는 가격이란... 어차피 손도 안 댈 거니까 가격에 신경쓸 일도 없었다. 안 먹으면 될 거 아닌가. 그러나 이런 가격은 그저 봐 버린 것만으로도 사람을 화나게 한다.

'세상에는 이런 가격에 이걸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정말로 있단 말이지...?'
'우린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렇게 쓰고 싶지는 않을 것 같은데...'

우리 같은 사람은 같은 하늘 아래라고 믿고 살지만, 그들은 아니라고 생각할 거다 아마.

    둘째날까지 날씨가 개떡같았다면 정말 숙제만 하고 돌아오는 스토리였을 거다. 그러나 딸에게는 다행히도 19일은 수영하기 그지없이 좋은 날씨였다. 해가 쨍쨍 내리쬐면서도 바람도 꽤 시원했다. 김치도 없는 조식 뷔페는 정말 맘에 안 들었으나, 수영장에 딸린 중식 뷔페는 괜찮은 편이었다. 물론 그래봐야 간이뷔페인지라 Four-Season 같은 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아침 식사에 상처받은 우리로선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수영복은 장만하였으나 딸내미 물놀이하는 거 사진 찍어주고 튜브 밀어주기만 하기에는 성인 1인 입장료 6만원이 아까웠다. 우리 옆자리에는 정말로 수영복도 없이 가족들 물놀이하는 거 구경만 하고 있는 할머니도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입장료가 면제될 리는 만무하다. 공짜 아니었으면 우리가 언제 이런 곳에 한 번 오겠나 하는 생각이 드니 노는 게 노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엄마 아빠의 기분과는 전혀 관계 없이 딸은 수영장에서 맘껏 놀았다. 물론 타보고는 싶으나 막상 그러자니 무서운 미끄럼틀 때문에 엄청 울긴 하였으나, 전체적으로는 원없이 놀았다.

    신나게 뛰어논 딸이야 그렇다 쳐도, 뭘 한 게 있다고 엄마 아빠는 녹초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오후 늦게 돌아오는 길에, 딸은 차에 타자마자 골아떨어졌는데, 운전하는 나도 졸려 죽는 줄 알았다. 마누라랑 역시 부모 노릇 제대로 하는 거 쉽지 않다는 데에 공감하며, 팔자에 없는 호텔 패키지 1박2일 여행을 마쳤다. 집에 가기 싫다고, 수영 조금만 더 하겠다고 조르는 딸을 보며, 남들은 다들 잘 하는데 우리 부부만 유독 딸 데리고 이런 곳도 놀러오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론 이런 거창한(?) 패키지가 아니더라도, 가끔씩 가까운 실내놀이터라도 가서 놀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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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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