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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2 사람이 우습게 보일 때
  2. 2008.03.11 오랜 친구 같은 노래
    싸이에서 학교친구찾기 라는 메뉴가 있길래 무심코 눌렀더니, 초등학교 동기라 일컬어지는 사람들 목록이 떴다. 과연 이 사람들과 내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에 다녔단 말인가. 전혀 기억 나지 않는 얼굴과 이름들... 혹시 내가 입학년도를 잘못 입력한 건 아닐까? 그건 아니다. 곧바로 눈에 익은 얼굴이 잡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놈의 얼굴이다. 확실히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벌써 27년이나 흘렀구나...

    반가운 마음은 눈꼽만큼도 생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놈은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인데, 전형적으로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유형이다. 5학년 때 이놈에게 학교 건물 뒤로 불려가서 얻어맞았는데, 당시 이유도 모르고 그냥 맞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반 반장 녀석이 나한테 기분 나쁜 일이 있어 이놈을 시켜 시쳇말로 날 손을 좀 봐준 것이다. 반장놈은 또 더도 덜도 아닌 엄석대인데, 나에게 열받은 이유도 듣고 보니 좀 어이가 없었다. 담임 선생님이 내 앞에서 반장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니 근데 왜 내가 당해야 되냐고. 선생님한테 화가 났으면 당사자한테 따지든지, 면전에서 안 되면 밤길에 선생님한테 테러를 하든지... 그렇지만 12살 어린 나이에도 시킨 놈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하라는 대로 하는 놈이 더 미웠고, 더 한심해 보였다. "이놈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걸까... 오야붕이 시키는 대로 하면 행복할까..."

    학교에서 배운 대로, 어릴 때 생각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미니홈피에 올라온 그놈의 얼굴이 그럭저럭 행복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정말로 평범하게 늙어서 한심한 눈빛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이지만 오히려 후덕해 보이기까지 하는 저 얼굴이란... 저렇게 살던 놈도 나이 먹고 사회 생활을 하고 결혼하고 그러는구나. 또 저런 멀쩡한 표정이 나오는구나...

    그놈은 그날의 일을 까맣게 잊었겠지만, 난 덕분에 무의식 속에서 고이 잠자던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놈에게 끌려가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놈이 나를 두들겨 패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이 한심한 청춘을 내가 얼마나 경멸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몇 발짝 앞서 가던 놈이 갑자기 몸을 돌려 멋지게 내 복부에 주먹을 한 방 날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마치 통나무가 쓰러지듯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왼쪽 뺨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대고 보는 세상의 풍경... 아랫배의 극심한 고통도 잠시, 빨리 이 시간이 끝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머리 속을 스쳐갔다.

    그 사건 이후 그놈을 경멸하는 맘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두려운 맘도 있었다. 어찌 되었거나 그놈의 주먹은 매웠으며 내 힘으로 어찌 해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놈보다 몇 배는 싸움을 더 잘한다는 반장은 대체 얼마나 세단 말인가..." 그런데 내가 이놈을 결정적으로 업수이 여기게 된 사건이 터졌다. 11월 생일이 다가왔는데 어머니께서 어쩐 일로 집에서 생일파티를 열어줄테니 친한 친구들을 초대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평소 각별하게 지내던 놈들로 파티멤버를 꾸렸는데, 며칠 후 이놈이 나한테 다가오더니 실실 웃으며 내 생일에 자기를 초대해줄 수 없겠냐는 거다. 아니 얘가 정신 나갔나.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판에 파티 초대라니. 혹시 이놈이 나를 놀리는 건가...

   근데 의의로 놈은 진지했다. 자긴 이제껏 생일 파티에 초대된 적이 없었으며, 이번에 꼭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거였다. 그랬다. 이놈은 내 상상을 초월하여 단순한 인간이었던 거다. 나를 두들겨 팬 건 나한테 무슨 악감정이 있었던 게 아니라, 단순히 대장이 시켜서 한 짓이었다. 지금은 단순히 생일 파티가 궁금해서 나에게 부탁하는 것이고... 사람이 이렇게 단순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했을까. 당연히(?) 그놈도 멤버에 끼워서 밥 한 끼 먹여 보냈다. 그 후로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나에게 살갑게 굴어서가 아니라 이런 놈은 더이상 무섭지 않았다. 그저 적당히 피해 가거나 으르는 법만 알면 되는 거다.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또 그 많은 만남 만큼이나 많은 헤어짐이 있었다. 다행인 것은 이런 유형의 인간을 그 이후로는 내 삶에서 자주 만날 수 없었다는 것과, 커가면서 내가 이런 인간들을 적당히 피해갈 줄 아는 영악함 또는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갖출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뱉고 보니, 나는 혹시라도 이제껏 살아오면서 그 누군가에게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던 적은 없는지 한번 돌아보게 된다. 착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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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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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우울해지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다시 자취생활을 시작한 첫날, 나쁜 일은 함께 들이닥친다는 평범한 진리는 한 번도 빗나가는 적이 없다. 본격적인 이사는 다음 주말에 하기로 하고 우선 이번 주에 갈아입을 옷가지와 노트북, 그리고 수업에 필요한 교재만 챙겼는데도 집을 나서는데 벌써 어깨가 빠질 것 같다. 오늘 하루 쉽지 않겠구나 하는 예감과 함께 시작한 월요일. 자취방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원룸을 빌리지 않은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이 넓은 곳을 어떻게 다 치운단 말인가. 방이 2개, 작지만 치우려면 넓어 보이는 거실, 보일러실, 베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숨 나오는 것은 이 세상 곰팡이란 곰팡이는 다 모아놓은 것 같은 욕실이다. 이 많은 곰팡이를 왜 계약하기 전에는 못 본 걸까.

    어차피 본 짐은 도착하지도 않았고, 나 혼자 이 많은 걸 하루에 다 치운다는 것도 불가능하기에 오늘은 잠자는 방 하나만 걸레질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오후 네 시에 수업이 끝나면 잠들기 전까진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는다. 이 시간을 보고 자취 생활을 다시 한 것 아닌가. 그래 시간은 많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쉬엄쉬엄 천천히 하나씩 하자...

    그렇지만 처음 생각과 달리 일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당장 오늘 덮을 이불이 필요했다. 이런 건 당연히 근처에서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리고 근처에 이불 가게가 있다는 얘기까지 들었건만 어찌 된 일인지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 말고도 오늘 살 게 많은데 도대체 어디 숨은 걸까. 이리저리 찾다가 결국 집에서 한참 떨어진 옆 동네의 시장까지 와서야 이불 가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 쇼핑한 다른 물건 때문에 지칠대로 지쳐 있었기에, 이불값을 흥정하고 싶은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는다. 주인도 내 상태를 눈치챘는지 값을 깎으려는 나의 시도에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제 컨디션이라면 절대 용서하지 못할 가격으로 이불을 양 손에 사들고 돌아오는 길이 왜 이리 먼지...

    집으로 돌아왔더니 몇 가지 재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3월 초, 아직 추운데 이놈의 보일러가 작동을 안 한다. 이게 뭐냐. 그렇다. 나는 보일러도 한 번 돌려보지 않고 덜컥 2년 짜리 전세 계약을 한 것이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음을 깨달았지만 이번엔 뭔가 조치를 할 시간이 없었다. 학교 과제가 갑자기 떨어진 것이다. 팀 활동이라 내가 늦게 하면 할수록 팀원이 피해를 보게 된다. 일단 보일러는 그대로 두고 학교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도서관에 자리 잡고 부랴부랴 과제를 해서 넘기고 한숨 돌렸다 싶은 순간, 이번엔 또다른 과제가 떨어진다. 게다가 이번엔 좀 전의 것보다 더 급하고 더 힘든 과제다. 시계는 저녁 7시. 난 아직 저녁밥도 먹지 않았단 말이다. 그래도 조금만 더 힘내자. 내 처지대로 세상이 돌아가는 건 아니잖아. 그리하여 어찌어찌 두 번째 과제도 마무리하여 넘기고 8시 30분에 학교를 나섰다. 늦은 저녁을 먹고 서울 집에 전화를 했더니 엄마한테 혼났는지 딸 목소리도 힘이 없다.

    다시 집에 도착하니 잠깐 미루어 두었던 보일러 문제가 다시 나를 괴롭힌다. 희망도 없이 몇 번의 의미 없는 재시도. 이젠 정말로 조치를 취하기엔 너무 늦었다. 밤 9시가 넘어서 사람을 부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면 가능한 것부터 하자. 우선 욕실의 곰팡이와 힘닿는 대로 싸워주고, 그 다음엔 당장 오늘 잘 방을 치우기. 원래는 큰 방에서 자려고 했으나 짐이 없으니 휑한 것은 그렇다 쳐도 목소리가 울리는 것이 영 맘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계획을 수정하여 작은 방을 걸레로 훔쳤다.

    아까부터 아내는 오늘 내 일진을 염려하여 격려와 위로 전화를 계속 해댔다. 그러나 난 괜찮다. 이 정도에 무너질 내가 아니다. 보일러 문제야 내일 해가 뜨면 해결할 수 있고, 오늘 냉방에서 자는 것은 옷 껴입고 이불 말고 자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 내일 아침 찬물에 머리 감는 큰 시련이 남아있지만 그 정도는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에게 불가능한 일이 절대 아니다. 오늘 이불 사건으로 좀 피곤하긴 하지만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는 거 아니냐. 여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이불도 깔았으니 자리에 누우려고 찬물에 세수를 하는데, 아 글쎄 집에서 가져온 비누가 영 안 도와주지 뭔가. 비누를 감싸고 있는 비닐 포장지가 아무리 애를 써도 벗겨지지 않는다. 뭐 이런 거지같은 경우가 다 있단 말인가. 나 오늘 그래도 꽤 힘들게 살았다. 그런데 이놈의 비닐 나부랭이가... 갑자기 우울해진다. 갑자기 이 세상에 완벽히 버려졌다는 느낌. 이런 하찮은 비닐까지 나를 우습게 보나... 그러고 보니 아닌게 아니라 게임도 없고, 인터넷도 안 되고, TV도 없고, 난 완벽히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다. 노트북을 켜 보니 어제 백업해 둔 게임이나 음악 파일도 웹하드에 저장해 놓고 이쪽으로 옮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새삼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아직 11시밖에 안 되었는데 무얼 할 수 있단 말이냐... 하드 디스크를 통째로 긁어보아도 할 만한 게 안 보인다. 그때 찾아낸 것이 2개의 음악 파일. 하나는 'Porco e Bella',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양희은 아줌마의 '내 어린 날의 학교'이다. 영화 '선생 김봉두'의 삽입곡이기도 한 이 노래는 나처럼 시골 분교에 다녀본 사람만이 그 속에 흐르는 정서를 완전히 공감할 수 있다.

미루나무 따라 큰 길 따라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따라
시냇물을 따라 한참을 가면
어려서 내가 다니던 우리 학교
......

    난 완전히 버려진 것은 아니다. 이렇게 나를 위로해 주는, 오랜 친구 같은 노래가 두 곡이나 있지 않은가. 방은 조금 춥지만 그래도 마음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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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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