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에서 학교친구찾기 라는 메뉴가 있길래 무심코 눌렀더니, 초등학교 동기라 일컬어지는 사람들 목록이 떴다. 과연 이 사람들과 내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에 다녔단 말인가. 전혀 기억 나지 않는 얼굴과 이름들... 혹시 내가 입학년도를 잘못 입력한 건 아닐까? 그건 아니다. 곧바로 눈에 익은 얼굴이 잡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놈의 얼굴이다. 확실히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벌써 27년이나 흘렀구나...
반가운 마음은 눈꼽만큼도 생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놈은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인데, 전형적으로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유형이다. 5학년 때 이놈에게 학교 건물 뒤로 불려가서 얻어맞았는데, 당시 이유도 모르고 그냥 맞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반 반장 녀석이 나한테 기분 나쁜 일이 있어 이놈을 시켜 시쳇말로 날 손을 좀 봐준 것이다. 반장놈은 또 더도 덜도 아닌 엄석대인데, 나에게 열받은 이유도 듣고 보니 좀 어이가 없었다. 담임 선생님이 내 앞에서 반장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니 근데 왜 내가 당해야 되냐고. 선생님한테 화가 났으면 당사자한테 따지든지, 면전에서 안 되면 밤길에 선생님한테 테러를 하든지... 그렇지만 12살 어린 나이에도 시킨 놈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하라는 대로 하는 놈이 더 미웠고, 더 한심해 보였다. "이놈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걸까... 오야붕이 시키는 대로 하면 행복할까..."
학교에서 배운 대로, 어릴 때 생각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미니홈피에 올라온 그놈의 얼굴이 그럭저럭 행복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정말로 평범하게 늙어서 한심한 눈빛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이지만 오히려 후덕해 보이기까지 하는 저 얼굴이란... 저렇게 살던 놈도 나이 먹고 사회 생활을 하고 결혼하고 그러는구나. 또 저런 멀쩡한 표정이 나오는구나...
그놈은 그날의 일을 까맣게 잊었겠지만, 난 덕분에 무의식 속에서 고이 잠자던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놈에게 끌려가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놈이 나를 두들겨 패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이 한심한 청춘을 내가 얼마나 경멸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몇 발짝 앞서 가던 놈이 갑자기 몸을 돌려 멋지게 내 복부에 주먹을 한 방 날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마치 통나무가 쓰러지듯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왼쪽 뺨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대고 보는 세상의 풍경... 아랫배의 극심한 고통도 잠시, 빨리 이 시간이 끝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머리 속을 스쳐갔다.
그 사건 이후 그놈을 경멸하는 맘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두려운 맘도 있었다. 어찌 되었거나 그놈의 주먹은 매웠으며 내 힘으로 어찌 해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놈보다 몇 배는 싸움을 더 잘한다는 반장은 대체 얼마나 세단 말인가..." 그런데 내가 이놈을 결정적으로 업수이 여기게 된 사건이 터졌다. 11월 생일이 다가왔는데 어머니께서 어쩐 일로 집에서 생일파티를 열어줄테니 친한 친구들을 초대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평소 각별하게 지내던 놈들로 파티멤버를 꾸렸는데, 며칠 후 이놈이 나한테 다가오더니 실실 웃으며 내 생일에 자기를 초대해줄 수 없겠냐는 거다. 아니 얘가 정신 나갔나.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판에 파티 초대라니. 혹시 이놈이 나를 놀리는 건가...
근데 의의로 놈은 진지했다. 자긴 이제껏 생일 파티에 초대된 적이 없었으며, 이번에 꼭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거였다. 그랬다. 이놈은 내 상상을 초월하여 단순한 인간이었던 거다. 나를 두들겨 팬 건 나한테 무슨 악감정이 있었던 게 아니라, 단순히 대장이 시켜서 한 짓이었다. 지금은 단순히 생일 파티가 궁금해서 나에게 부탁하는 것이고... 사람이 이렇게 단순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했을까. 당연히(?) 그놈도 멤버에 끼워서 밥 한 끼 먹여 보냈다. 그 후로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나에게 살갑게 굴어서가 아니라 이런 놈은 더이상 무섭지 않았다. 그저 적당히 피해 가거나 으르는 법만 알면 되는 거다.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또 그 많은 만남 만큼이나 많은 헤어짐이 있었다. 다행인 것은 이런 유형의 인간을 그 이후로는 내 삶에서 자주 만날 수 없었다는 것과, 커가면서 내가 이런 인간들을 적당히 피해갈 줄 아는 영악함 또는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갖출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뱉고 보니, 나는 혹시라도 이제껏 살아오면서 그 누군가에게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던 적은 없는지 한번 돌아보게 된다. 착하게 살자...
반가운 마음은 눈꼽만큼도 생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놈은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인데, 전형적으로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유형이다. 5학년 때 이놈에게 학교 건물 뒤로 불려가서 얻어맞았는데, 당시 이유도 모르고 그냥 맞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반 반장 녀석이 나한테 기분 나쁜 일이 있어 이놈을 시켜 시쳇말로 날 손을 좀 봐준 것이다. 반장놈은 또 더도 덜도 아닌 엄석대인데, 나에게 열받은 이유도 듣고 보니 좀 어이가 없었다. 담임 선생님이 내 앞에서 반장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니 근데 왜 내가 당해야 되냐고. 선생님한테 화가 났으면 당사자한테 따지든지, 면전에서 안 되면 밤길에 선생님한테 테러를 하든지... 그렇지만 12살 어린 나이에도 시킨 놈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하라는 대로 하는 놈이 더 미웠고, 더 한심해 보였다. "이놈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걸까... 오야붕이 시키는 대로 하면 행복할까..."
학교에서 배운 대로, 어릴 때 생각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미니홈피에 올라온 그놈의 얼굴이 그럭저럭 행복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정말로 평범하게 늙어서 한심한 눈빛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이지만 오히려 후덕해 보이기까지 하는 저 얼굴이란... 저렇게 살던 놈도 나이 먹고 사회 생활을 하고 결혼하고 그러는구나. 또 저런 멀쩡한 표정이 나오는구나...
그놈은 그날의 일을 까맣게 잊었겠지만, 난 덕분에 무의식 속에서 고이 잠자던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놈에게 끌려가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놈이 나를 두들겨 패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이 한심한 청춘을 내가 얼마나 경멸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몇 발짝 앞서 가던 놈이 갑자기 몸을 돌려 멋지게 내 복부에 주먹을 한 방 날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마치 통나무가 쓰러지듯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왼쪽 뺨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대고 보는 세상의 풍경... 아랫배의 극심한 고통도 잠시, 빨리 이 시간이 끝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머리 속을 스쳐갔다.
그 사건 이후 그놈을 경멸하는 맘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두려운 맘도 있었다. 어찌 되었거나 그놈의 주먹은 매웠으며 내 힘으로 어찌 해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놈보다 몇 배는 싸움을 더 잘한다는 반장은 대체 얼마나 세단 말인가..." 그런데 내가 이놈을 결정적으로 업수이 여기게 된 사건이 터졌다. 11월 생일이 다가왔는데 어머니께서 어쩐 일로 집에서 생일파티를 열어줄테니 친한 친구들을 초대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평소 각별하게 지내던 놈들로 파티멤버를 꾸렸는데, 며칠 후 이놈이 나한테 다가오더니 실실 웃으며 내 생일에 자기를 초대해줄 수 없겠냐는 거다. 아니 얘가 정신 나갔나.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판에 파티 초대라니. 혹시 이놈이 나를 놀리는 건가...
근데 의의로 놈은 진지했다. 자긴 이제껏 생일 파티에 초대된 적이 없었으며, 이번에 꼭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거였다. 그랬다. 이놈은 내 상상을 초월하여 단순한 인간이었던 거다. 나를 두들겨 팬 건 나한테 무슨 악감정이 있었던 게 아니라, 단순히 대장이 시켜서 한 짓이었다. 지금은 단순히 생일 파티가 궁금해서 나에게 부탁하는 것이고... 사람이 이렇게 단순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했을까. 당연히(?) 그놈도 멤버에 끼워서 밥 한 끼 먹여 보냈다. 그 후로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나에게 살갑게 굴어서가 아니라 이런 놈은 더이상 무섭지 않았다. 그저 적당히 피해 가거나 으르는 법만 알면 되는 거다.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또 그 많은 만남 만큼이나 많은 헤어짐이 있었다. 다행인 것은 이런 유형의 인간을 그 이후로는 내 삶에서 자주 만날 수 없었다는 것과, 커가면서 내가 이런 인간들을 적당히 피해갈 줄 아는 영악함 또는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갖출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뱉고 보니, 나는 혹시라도 이제껏 살아오면서 그 누군가에게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던 적은 없는지 한번 돌아보게 된다. 착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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