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플레잉'에 해당되는 글 239건

  1. 2006.02.23 덧글 유감
  2. 2006.02.23 러닝머신의 패러독스
  3. 2006.02.22 훈고학의 추억
  4. 2006.02.19 TV와 씨름하다
  5. 2006.02.17 황당한 오해들
  6. 2006.02.15 내 인생의 명장면 (1)
  7. 2006.02.15 엉뚱한 곳에서 불타오르다
  8. 2006.02.13 공력과 젊음
  9. 2006.02.13 이야기 5.3
  10. 2006.02.10 본전 생각

덧글 유감

롤플레잉 2006. 2. 23. 13:54
인터넷 뉴스에 달린 덧글을 보면 등골이 오싹하다 못해 슬픔이 밀려올 때가 많다. 어제 네이버 뉴스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대입실패 재수생, 한강투신후 "살려달라" 외쳐 구조 [from 네이버 뉴스]
그런데 이 뉴스에 달린 글을 보면 정말이지 슬퍼진다.
'찌질이...에효'
'완존 웃찾사 구만..'
'쿠쿠 두렵나?'
'핳핳핳핳핳핳 비굴하다 정말.......'
'죽으려면 바닥이 딱딱한 곳으로 떨어져야지 .. '
아니, 사람이 죽다가 살아났으면 다행으로 여겨야 되는 거 아닌가? 자기 친구나 동생이 저런 상황에 처했어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도대체 인간의 잔인함은 어디까지일까...

햇볕은 쨍한데 기분은 눅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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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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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마님 들어오세요."
"예..."
집 근처 정형외과에서 두 시간을 기다려 겨우 진찰실에 들어갔다. 세상에나... 거리에 노인들이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병원 대기실에 다들 모여 있는 것이다. 시장바닥과 다름 없다. 이렇게만 장사가 된다면야 의과대학 안 갈 이유가 없다. 요새 문 닫는 병원도 많다던데 다 거짓말인가...
"어디가 아프신가요?"
"예. 양 무릎이 아파서요."
"어디봅시다. 자~ 바지를 올려 보세요."
"..."
"여기가 아픈가요."
"아얏!"
"흠... 언제부터 아픈거죠?"
"며칠 되었어요."
벌써 두 달째 러닝머신 위에서 하루 한 시간씩 걷고 있다. 갑자기 몸무게가 10킬로 정도 늘었기 때문이다.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강호동이 될 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런데 요 며칠 사이 아침에 일어날 때 무릎이 시큰거린다. 계단을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로 아프다.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영 나아지지 않아서 혹시 러닝머신 때문인가 하고 동네 병원을 찾은 것이다.
"러닝머신을 두 달째 하고 있어요."
"그것 때문이네요."
"여태까지 멀쩡했는데 며칠 전부터 갑자기 아프네요."
"그동안 무릎의 피로가 누적되어 온 거겠죠. 암튼 사진을 찍어 봅시다."
두 시간 기다린 것도 모자라 또 얼마간을 기다려 엑스선 사진을 찍었다.
"역시나 무릎 연골이 문제네요."
"며칠 쉬면 나아질까요?"
"빨리 치료해야죠. 이 방 옆의 물리치료실 봤죠? 이대로 두면 거기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돼요."
"그게 무슨 소리죠?"
"관절염이 된다는 얘기죠."
이 나이에 관절염이라... 아직 딸 유치원도 안 보냈는데 그놈의 '글루코사민' 신세를 져야 한단 말인가.
"그럼 치료하면 완치되는 거죠?"
"음... 일단 증상은 완화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몸무게를 줄여야죠."
"어떻게요?"
"다이어트에는 걷는 운동이 좋아요."
"그럼 러닝머신을 계속 하라는 건가요?"
"아뇨. 지금은 무리죠. 몸무게를 줄인 다음에요."
'이 인간을 확 그냥~!!'
다행이다. 역시 교육의 효과는 오래 간다. 사람이 모든 일에 성질대로 하고 살 수는 없는 거다. 그래 참자...
"저어 선생님... 그러시면 무릎을 치료하자니 다이어트를 해야 되고, 다이어트를 하자니 러닝 머신을 해야 되고, 러닝 머신을 하자니 무릎이 아프고... 어쩌면 좋은가요?"
"에~ 그런 문제점이 있죠..."
도그마 성질 많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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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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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고학의 추억

롤플레잉 2006. 2. 22. 15:54
그러므로 진리의 피안(彼岸)이 사라진 뒤에, 차안(此岸)의 진리를 확립하는 것은 역사의 임무이다. 인간의 자기 소외의 신성한 형태가 폭로된 뒤에, 그 신성하지 않은 형태들 속의 자기 소외를 폭로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역사에 봉사하는 철학의 임무이다. 이리하여 천상의 비판은 지상의 비판으로, 종교의 비판은 법의 비판으로, 신학의 비판은 정치의 비판으로 전환된다.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中, 칼 마르크스
학창시절엔 약속을 잡게 되면 기다리기 좋은 단골 만화방을 주로 선호했으나, 사회인이 되어 버린 지금은 아무래도 약속 장소가 학교 쪽이 아니다 보니 시내의 대형 서점에서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얼마전 친구들과 강남에서 모였을 때에도 교보문고에서 책을 보며 기다렸다. 인문 섹션을 둘러보는데 특가 세일 코너가 눈에 띄길래 뭔가 하고 다가가서 봤더니 [책세상문고·고전의세계] 시리즈를 할인 판매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들어오는 한 권의 책은 바로 마크르스의 '공산당선언'이다.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론 쓴웃음도 나온다. 불과 10년 사이에 세상은 이렇게도 변해 공산주의는 할인 판매의 대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약속 시간은 넉넉하게 남아있는지라 본문을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아주 재미있는 발견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책 내용이 의외로 굉장히 쉽다는 것이다.
'이상하네... 예전에도 이렇게 쉬웠던가?'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그 당시엔 꽤 어렵다고 생각했던 책이 지금 이렇게 이해가기 쉬운 언어로 되어있는 것은 무슨 조화란 말인가. 처음엔 번역이 달라졌나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다. 낯익은 문구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그동안 내가 사회과학만 들입다 공부해서 알게 모르게 내공이 쌓인 것인가. 물론 절대 그렇지 않다.

집에 와서 책장에 꽂혀 먼지만 마시고 있던 마크르스 엥겔스 저작들을 꺼내 들었다. 여기저기 몇 장을 넘기면서 실소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참나... 이 말이 대체 뭐가 중요하길래 밑줄을 그어 놓았을까.'
'아니 여긴 왜 중요 표시가 되어 있나?'
'허허... 이런 메모를 해 놓았단 말인가...'
책은 밑줄과 메모로 꽉 차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지 나도 꽤 열심이었던 적이 있었다. '미시경제학' 책을 이렇게 열심히 봤더라면 지금 뭔가 되더라도 되었을지 모른다.

근데 지금 보면 아무 것도 아닌 내용을 그 당시에는 왜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게다가 그때는 한줄 한줄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마치 문예비평지처럼 술술 넘어가는 까닭은 무엇인가.

역시나 대학 2,3학년에게 정치 팸플릿은 너무 어려운 것 같다. 그들의 사유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추상에서 구체로 상승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직은 책 속에만 머무는 진리.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인 얘기가 나오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다.

원전(原典)이라는 말 자체가 벌써 수기 아저씨의 말마따나 '훈고학(訓詁學)'적인 냄새가 물씬 나지 않은가. 아무도 스스로 권위를 세울 수 없어 문장의 권위를 빌어오고 싶었던 것이다. 공자曰 맹자曰이 '마르크스 가라사대' '레닌이 말하기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니 사실은 뭐가 중요한 것인지도 잘 모른다. 통째로 암기할 뿐... 그 중에서 필요할 때마다 그에 적합한 문구를 그때그때 따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그냥 '창작과 비평' 또는 '문학과 사회'처럼 읽으면 되었던 것을 마치 수능(당시엔 학력고사였다) 공부하듯이, 전혀 비본질적인 부분에 밑줄까지 쳐 가면서 매달렸던 것이다.

고전을 읽으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로부터 파생된 해설서나 소위 사회과학 서적이라는 것 자체가 훈고학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보석을 보석함 속에 넣는 순간 더이상 빛을 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전 또한 진리의 영역 속에 박제하는 순간 단순히 낡은 텍스트로 전락할 것이다.

고전을 읽자. 지하철에서 읽는 '씨네21'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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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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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와 씨름하다

롤플레잉 2006. 2. 19. 20:09
TV의 리모컨이 고장나서 며칠을 열받아 하다가, 처가에 들렀을 때 다른 리모컨으로도 아무 문제 없이 TV를 제어할 수 있다는 얘길 듣고 남는 걸 하나 가져왔다. 아니나 다를까 잘 되는 게 아닌가. 오히려 이전 것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번호를 눌러 원하는 채널로 바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진 6번 SBS를 보다가 33번 OCN으로 가기 위해선 원하지 않는 많은 채널을 거쳐가야 했던 것이다.

또하나 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덤으로 축복이 내렸는데, 바로 갑작스레 시청 가능한 채널이 많아진 것이다. 리모컨을 교체하기 전까지는 집에서 my favorite channel인 바둑TV, 온게임넷 등은 볼 수 없었다. 프리미엄 채널이라서 안 나온 것인지, 아니면 리모컨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이제껏 볼 수 없던 채널이 갑자기 잡힌다는 것은 아무래도 나쁜 일 같지는 않다.

그리하여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기념으로 오늘 하루 종일 TV 앞에 모로 누워 씨름을 했는데...
바둑TV에서 내가 좋아하는 서봉수 아저씨가 hangame 팀으로 나와서 가뿐하게 불계승한 것도 보고, 스포츠 채널에서 농구, 축구도 보고, 게임 채널에서 스타크래프트, 카트라이더도 보고, 그 와중에 짬짬이 낮잠도 자고...

오늘 또 누군가가 새롭게 모험을 떠났는지도 모르고, 오늘 또 세계는 누군가에 의해 구원 받았는지도 모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난 그저 방에서 뒹굴뒹굴... NPC의 하루는 정말 잘 간다. 세상은 정말 평화롭다. 이제 늦은 저녁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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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오해들

롤플레잉 2006. 2. 17. 17:00
다른 사람에 비해 암기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억력 일반은 나쁘지 않다고 자부하고 있다. 더우기 유년 시절의 기억은 일전에도 얘기했듯이 나를 따라올 사람을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런 기억력에 부작용도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느 순간 잘못된 정보가 내 머리 속에 입력되어 검증 절차 없이 오랜 기간동안 다른 정보나 내 가치 판단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아주 예전에 어떤 계기로 인해 생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사실로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최근에야 오해를 풀게 된 것들이 몇몇 있다.

1. 이명박
모두들 알다시피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최수종이 나왔던 '태조 왕건' 외에는 대부분의 드라마를 띄엄띄엄 보아 왔다. 그런데 아주 예전에 '야망의 세월'인가 하는 드라마에서 유인촌이 이명박 역으로 나왔을 때 이 드라마를 말 그대로 띄엄띄엄 지나가다 보게 되었다. 이 드라마에서 정말로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이명박이 정주영의 사위가 되는, 아니 최소한 정주영의 딸과 야릇한 눈길이 오가는 사이로 드라마가 흘러갔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아주아주 황당하게도 이명박이 정주영의 사위라는 거다. 난 얼마 전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으며 이명박과 정씨 일가와 때로 의견이 충돌하는 부분이 있을 때마다 속으로 '아니... 저래가지고서 명절에 어떻게 얼굴을 보려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겉으로는 저래도 결국은 한통속이지 하고 말았었다.
이명박과 정주영의 관계는 확인 한 번만 해 보면 금방 아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한 사실로 알았고 그래서 사실 확인 자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런 코미디가 없다.

2. 김용옥
내가 김용옥을 싫어하는 이유는 우선 첫째 말이 많아서이지만, 사실 할 말이 많아서 말을 많이 하는 것에 대해선 그다지 딴죽을 걸기가 쉽지 않다. 이건 그냥 취향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 외에도 그동안 김용옥을 마뜩찮게 생각해온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전두환 자식들 과외' 사건이다.
혹시 이런 사건을 아는 분 계신가. 나는 이것이 사실이라고 이제껏 믿고 살아왔다. 그 이유가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김용옥에 대한 기억은 워낙 머리 속에 뒤죽박죽 엉망으로 얽혀 있기 때문인데, 내 나름대로 가닥을 잡아보면 이러하다.
1986년 김용옥이 '한국의 오늘을 사는 한 지성인의 양심선언'을 했다. 그런데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잡지에 김용옥이 포함된 한 무리의 현직 교수들이 전두환네 자식들의 과외 공부를 시켜주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 물론 사실 관계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런 잡지 또는 기사가 실재했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 여하튼 이 두가지가 묘하게 뒤섞여서 난 이제껏 김용옥의 양심선언의 내용 중에 전두환 자식들 공부시켜 준 것까지 포함되어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권력자 자식들 뒷구멍이나 닦아주던 놈이 무슨 철학 운운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최근에 문득 그 생각이 다시 들어 김용옥 관련 자료를 찾아 보았으나 김용옥과 전두환 간의 커넥션에 대한 자료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정말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이명박과 달리 김용옥은 내가 그간 오해를 해 온 건지 아닌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확신하던 내용에 대한 물적 자료를 전혀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김용옥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은 혹시 그 때 정황들을 잘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내게 뭐라도 단서가 될 만한 내용을 가지고 계신 분은 연락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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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아무런 의심 없이 믿어온 것들이 최근 들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간의 오해가 우습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그로부터 파생된 이차 정보 또는 그 후의 사실을 대할 때의 나의 태도가 분명 왜곡되었을테니 말이다.
물론 이렇게 살아도 한 세상이고, 평생 동안 잘못된 사실을 진리라 믿고 살다가 죽는 사람도 많겠지만, 왠지 알고 나면 그간의 세월이 좀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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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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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많은 영화를 본다. 하지만 이제껏 보아 온 영화를 모두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선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도 있을테고, 베스트 목록에 들어갈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준 것도 있으리라. 영화 한 편을 놓고 본다면 1시간 30분짜리 영화 전체를 기억하는 미친 인간은 아마 없다고 본다. 그중에서 관객에게 호소하는 포인트, 즉 우리가 이른바 명장면이라고 부르는 부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명장면이라는 것은 영화사에서 발표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평론가들이 찍어주는 것도 아니고, 관객 스스로 제각기 자신에게 와닿은 지극히 주관적인 부분을 말한다.
인생을 70년짜리 영화 한 편이라 했을 때 이런 명장면이 없겠는가. 게다가 픽션이 아닌 다큐멘터리가 주는 감동은 7000원짜리 영화 한 편에서 받는 그것과 비교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소자는 컴퓨터의 저장장치와는 달라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불쾌한 기억을 지워주는 편리함과 함께, 간직하고 싶은 좋은 기억까지 함께 없애는, 시키지 않은 기능까지 가지고 있는 놈이다. 그래서 추억이란 반복 학습과 같이 계속 갈고 닦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인생의 명장면' 시리즈를 기획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폭력적인 상황에 놓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다. 당시 내 짝이었던 L은 우리반 반장이었다. 어떻게 해서 둘이 짝이 되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확실하진 않다. 다만 키 순서로 짝을 정할 때 L이 다른 애들과 순서를 바꿔서 나랑 짝이 된 게 아닐까 하고 어렴풋이 짐작한다. 당시 반에서 공부를 잘하는 축에 들었던 나랑 짝이 되면 뭐 먹을 거라도 떨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무튼 둘은 짝이 되었고 그 사실은 어느 정도는 내게 상당한 힘이 되어 주었다. 반장이라는 완장이 가지고 있는 힘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힘에서도 당시 L은 우리반에서 적수가 없었다. 한번은 내게 태권도를 배웠다고 말한 것 같다. L의 짝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애들이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유는 충분했다. L은 남이 자기 밥에 손대는 일은 절대로 참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자기 밥이라니. 그렇다. L이랑 짝이 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편리함과 함께 상당한 고통이 따른다는 걸 의미하는데, 그것은 L의 괴롭힘 때문이다. 자기중심적인 L은 왜곡된 방식, 즉 못살게 구는 방식으로 자기 애정을 표현했다. 좋아하는 여학생을 괴롭히는 것과 같은 식이다. 게다가 그의 괴롭힘은 쉬는 시간을 넘어서 수업시간으로 이어졌는데, 이것만큼은 내가 정말로 참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현재 나를 아는 사람들은 절대 믿지 않겠지만 당시만 해도 수업시간에 선생님을 쳐다보지 않고 딴 짓을 한다는 것은 내게 있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당연히 나는 L의 장난에 항의했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무자비한 주먹이었다.
아~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땐 정말 아침에 학교 가기가 싫었다.

불의에 항거하다
말이 통하는 상황, 즉 이성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상황에 놓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L의 괴롭힘에 대해 처음엔 전후 관계를 따져서 바로잡아 보려고 했던 나는 차츰 물리적 폭력 앞에선 이런 것들이 다 무의미하다고 느끼고 다른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러나 현실은 '말죽거리 잔혹사'가 아니며 나 또한 권상우가 아니었다. 힘을 통한 해결 방식은 그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듯이 내 방식이 될 수 없었다. 난 아무리 운동을 해도 배에 王자가 새겨지지도 않았고, 이두박근 삼두박근이 튀어나오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런 방식 자체가 나를 힘들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무작정 당할 수만은 없었다. 아무리 봐도 암울한 상황이지만 이대로 참고 있는다는 것은 뭔가 억울했다. TV에서도 나쁜 놈들을 응징하지 않던가. 그런데 현실은 뭐 이런가...
그러던 어느날 우연하게 사촌형으로부터 힘센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실패할 확률도 매우 높아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이대로 당하고 살 수는 없는 거다. 난 혼자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연습을 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이날도 L은 수업시간에 연필로 나를 쿡쿡 찌르며 장난을 쳤다. 심지어 선생님께서 장난치지 말라고 지적을 하셨는데도 소용 없었다. 수업 시간이 끝나자 나는 L에게 대들었다. 그만 좀 하라고. 싫다는 걸 왜 자꾸 하냐고... 당연히 L은 힘으로 나를 제압하려고 했으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오늘을 위해 연습한 시간이 대체 얼마인가. 유도의 빗당겨치기로 순식간에 L을 눕힌 나는, L이 어리둥절한 사이 바로 그 다음 동작인 조르기로 들어갔다. 여기서 오늘의 거사를 위해 익힌 필살기가 첨가되었는데 바로 점혈수법이었다. 온몸으로 L의 상체를 제압하면서 동시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으로 L의 예풍혈(입을 벌리면 귀밥 밑에 생기는 옴폭한 곳, 아래턱뼈 끝의 윗부분)을 있는 힘껏 눌러갔다. 교실은 L의 비명 소리로 가득했다.
"악~! 이거 안 놔?"
"웃기지마. 네가 잘못했잖아.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해."
"너 죽을래? 빨리 이거 안 놔?"
"이거 놓으면 날 또 때릴 거지? 네가 항복해."
"미쳤냐 이 새끼야. 빨리 놔 이거. 죽여버린다."
"절대 못 놔. 빨리 항복해."
"아야! 이 새끼 정말..."
둘은 땀이 비오듯 흘렀다. 워낙 힘이 좋은 L이었으나 나는 그야말로 죽기 살기였고, 예풍혈을 공략한 나의 필살기는 의외로 효과 만점이어서 L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놀라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도 감히 이 싸움에 끼어들지 못했다. 교실은 L의 짐승같이 으르렁대는 소리만 흘렀고 나는 두려움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지만 상대를 풀어줄 마음은 전혀 없었다. 쉬는 시간 10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작은 승리
그렇게 쉬는 시간이 흘러 다음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지만 둘은 대치 상태를 풀 수가 없었다. 나도 힘이 빠졌지만 L도 조르기를 풀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지라 역시나 기진맥진했다. 드디서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교실은 책상이 엎어지고 난리가 나 있었다.
"이놈들! 무슨 일이야. 교실에서 쌈질이라니. 빨리 일어나지 못해?"
그러나 둘은 꼼짝도 않고 있다. 하나는 일어날 생각이 없고 하나는 일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둘 다 빨리 일어나!"
"헉헉... 선생님, L이 아직 항복 안 했어요."
"뭐 항복?"
"예... 항복하기 전엔 일어날 수 없어요."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아직도 존경하는 이유는 단순히 1년 내내 숙제를 거의 내지 않으셨기 때문만은 아니다. 잠시 선생님은 생각하시더니,
"야 L... 네가 잘못한 거 맞냐?"
"헉헉..."
"어이, 어떻게 된 거냐고. 둘이 무슨 사연인지 알아야 할 거 아냐."
"..."
"L, 네가 잘못한 거 맞어?"
"예..."
"그럼 잘못했다고 인정해라."
"예..."
L의 눈에서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내가 항복이라니...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도 있다.
"항복이냐?"
"응, 항복이다."
그제서야 나도 맥이 탁 풀렸다.
그렇다. 난 승리한 것이다.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내 인생에 있어 불의에 항거한 최초의 승리였다.

남은 후회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일어나기도 힘들었지만 어쨌든 둘은 선생님 앞에 섰다.
"어떻게 된 거야. 둘이 왜 싸웠어?"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뭘 어떻게 잘못했는데?"
"선생님, L이 수업시간에 자꾸 저를 괴롭혀서요."
"정말이냐?"
"예..."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짝을 바꾸어 줄까?"
"아뇨, 선생님..."
"예. 바꿔 주세요!"
소위 피해자의 입에서 이런 얘기까지 나온 이상 선생님으로서도 수습할 수 있는 선을 넘어가 버렸다. 선생님으로선 당사자 둘의 깔끔한 화해를 원하셨음에 틀림 없다. 그러나 당시 나로선 혹여 있을지도 모르는 L의 보복이 두려워 어떻게든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둘은 그렇게 서로 다른 짝을 찾아 떠났다.

걱정과는 달리 L의 보복은 없었고, 그 이후로 다시는 나를 못살게 굴지 않았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이상 두 번 다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점은 정말 본받을 만하다. 그에 비해 두려움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은 점은 두고두고 후회되는 일이다.

L은 잘 사는지 모르겠다. 아니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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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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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참 낭패가 아닐 수 없다.
DOSBox용 프로그램을 정리하다가 옛날 생각에 피식 웃으며 무심코 실행시켜 본 '대항해시대2'가 문제가 될 줄이야... 아무 생각 없이 새 게임으로 시작했는데 몇 시간째 불타오르고 있다. 요기까지만 하고 그만둬야지 하면서도 안 되는 게 이놈의 게임의 무서운 점이다. 이문이 많이 남는 걸 뻔히 알면서 어찌 가까운 항구로 뱃머리를 돌릴 수 있겠는가. 돈을 조금만 더 모으면 더 나은 배를 장만할 수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어찌 여기서 그만두겠는가. 눈이 침침해지고 뒷목이 뻣뻣한 지는 오래 되었다. 지금 도너츠와 우유를 옆에 두고 열심히 항해중이다. 아마도 내일 아침 엄청 구박을 들을테지...

요새 남들 한창 하고 있는 '대항해시대 온라인' 까지는 아니다 하더라도, 최소한 대항해시대 3/4 정도는 되어야지 않겠는가. 근데 뜬금없이 무슨 놈의 2란 말인가. 집에 '포트로얄'도 손도 안 댄 채로 던져두고선 말이다. 남들 3D 하는 시대에 2D도 모자라 윈도우즈에선 바로 실행도 안 되는 게임이라니. 하긴 루나틱돈 시리즈 중에서도 버젼 2가 제일 재밌었다. 역시 재미의 원천은 보이는 것과는 다른가 보다.

아~ 괴롭다. 그만하고 자야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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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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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력과 젊음

롤플레잉 2006. 2. 13. 17:03
어제 Cable TV에서 '택견 명인전' 이라는 대회를 중계해 주었다. 무협지 팬인 내가 그냥 지나갈 리 없다. 최소한 대회용으로는 얌전하게 다듬어진 스포츠인 태권도와 달리, 택견은 마치 K1의 그것과 같이 거세되지 않은 무술로서의 숨소리가 살아있다.

대회는 16강이었는데 그 중 한 시합에는 띠동갑 간의 대결이 이루어졌다. 20대 중반의 날렵한 청색 도복과 30대 후반의 적색 도복 간의 대결이었다. 해설자의 소개로는 날렵하고 힘과 스피드가 장점인 젊은 고수와 노련미 넘치는 장년 고수의 대결이란다. 경기가 시작되자 처음엔 마치 유도와 같은 탐색전이 벌어진다 싶더니 한순간에 손과 발이 상대방을 향해 날아들어갔다. 둘 다 고수인지라 쉽게 승부가 날 것 같지는 않았으나, 어느 한 순간 젊은 고수가 장년 고수에게 바람같이 다가서더니 오른발을 번쩍 들어 상대방의 얼굴을 찍어내려갔다. 그와 함께 반사적으로 장년의 고수도 반격을 위해 함께 돌진해 들어갔고, 자신의 얼굴에 상대방의 발이 닿는 그 순간 되치기로 젊은 고수를 넘어뜨려 버렸다. 심판의 손은 적색 도복의 장년 고수를 향해 번쩍 올라갔다. 장년의 고수가 상대방을 넘어뜨렸으므로 1점과 함께 첫 판을 따낸 것이다. (택견은 점수가 나면 바로 한 판이 끝나며, 총 세 판으로 승부를 가른다.) 그런데 이 젊은 고수의 발길질이 예사롭지가 않았나 보다. 적색 도복은 계속해서 코에서 피를 흘렸고, 응급처치에도 불구하고 경기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해설자 말로는 발이 코를 스쳤는데 그 정도로도 코뼈가 부러지는 건 예사란다. 아무래도 이 경우도 그런 것 같았다. 결국 경기는 둘째 판에서 한 점을 더 따냈지만 더이상의(8강 이후의) 경기를 진행하기 불가능했던 장년 고수의 기권으로 끝나 버렸다.

무협지에선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고수 대접을 받는다. 단순히 예의범절 차원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러하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허연 수염을 휘날리는 고수가 이제 막 강호에 나온 젊은 초짜 고수 여럿을 가지고 노는 장면은 무협지에선 너무도 당연한 얘깃거리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왜 태권도는 올림픽에 나이 든 고수들을 내 보내지 않는가. 눈만 뜨면 내공 운운하는 우슈는 또 어떠한가. 올림픽의 무술 종목 중 맏형이라 할 수 있는 유도도 마찬가지 아닌가.

역시 무협지는 판타지일 뿐인가 보다. 힘이 빠져 뒷방 신세로 전락해가는 고령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머리를 짜낸 것이 무협지의 공력인지도 모르겠다. 설령 나이를 먹을수록 공력이 올라간다고, 그래서 더욱 강해진다고 해도, 공력과 젊음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난 주저 없이 젊음을 선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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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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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5.3

롤플레잉 2006. 2. 13. 01:40
서핑 중 우연히 예전에 컴퓨터 통신 시절에 사용하던 '이야기'를 발견했다. 도스용 게임 때문에 깔아 놓은 DosBox를 이용하여 실행해 보았더니 의외로 잘 되는 게 아닌가. 물론 모뎀은 찾을 수 없다고 나오지만...

반갑기 그지 없는, 도스 화면이 갈라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니, 90년대 초반의 일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월동 준비로 부엌 한쪽에 천장까지 연탄을 쌓아두고 흐뭇해하던 일이며, 석유 곤로에 불을 댕겨 밥 해먹던 일이며, 연탄불 꺼뜨리지 않으려고 불광동 전철역에 버스를 내리자마자 산동네 비탈길을 한달음에 올랐던 일이며...
하숙비가 아까워 판자촌 자취 생활을 해놓고선 통신비가 아까운 줄도 몰랐으니, 방세에 식비와 교통비, 통신비를 더하면 배보다 배꼽이 훨씬 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체 무엇에 그렇게 홀려 그 시절을 홀라당 다 태워 먹었는지 모르겠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참으로 우습게도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공부 외에는 별로 한이 맺힌 게 없다. 해 볼만한 거 대충은 다 해 본 것 같다.

가슴이 아프다. 열심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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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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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전 생각

롤플레잉 2006. 2. 10. 12:17
별로 자랑할 만한 얘기는 아니지만, 막상 하고 나면 잘 했다는 생각도 들고 마음이 후련하고 몸도 개운한데, 시작하기까지가 정말 힘든 것이 두 가지 있다. 바로 러닝머신(또는 조깅)과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이다. 전자야 다들 공감하는 바일테고, 후자의 사정은 이러하다.

신촌에서 하숙을 할 때만 해도 장미사우나가 영업중이었고,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씩 목욕탕에 갔었다. 그곳이 그다지 고급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저렴한 가격에 그만그만한 시설로 하숙생이나 신촌에서 한잔 꺾은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러다 불광동 산동네 판자촌에서 자취 생활을 하면서부터 좀 달라지기 시작했다. 불광동 주민들에겐 좀 미안한 말이지만, 이쪽 로컬 목욕탕은 위생 상태가 뭔가 모르게 좋지 않았고(미끌거리는 바닥에 뒤통수가 깨질 뻔한 적도 있다), 왠지 거길 다녀오면 개운함 보다는 뭐라도 하나 더 묻혀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얼마 안 가 장미사우나도 문을 닫아 버린 것이다. 당시만 해도 찜질방 같은 건 없었다. 그렇다고 목욕을 하려 마포로, 여의도로 원정을 가기도 참 우습지 않은가. 그러니 자연스럽게 한달에 목욕탕을 가는 횟수는 줄어들고, 대신 한 번 가면 확실하게 껍질을 벗기고 오는 식으로 된 것이다.
나중에 다시 신촌으로 옮기고, 전세방을 얻어 자취를 하고부터는 집에서 샤워를 하게 되니 아무래도 더욱 목욕탕 발길이 뜸해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집에 무슨 월풀 욕조가 있지 않은 이상, 뜨거운 탕에 담그는 것과 집에서 하는 샤워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아내의 구박도 심해져 가고 몸도 뭔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때쯤이면 그래도 대중목욕탕에 가서, 끓는 물에 한 번 데쳐 오곤 한다. 그런데 이러다 보니 약간의 부작용이 생겼는데, 그것이 뭔고 하니, 언제 또 올지 기약할 수 없으니 본전을 뽑고 싶은 마음에 거의 목숨 걸고 밀고 오는 거다. 그러고는 집에 와서 앓아 눕는다. 물론 아내는 무슨 큰 일을 해냈길래 이렇게 죽는 시늉을 하냐고, 누가 보면 독립 운동이라도 하고 온 줄 알겠다고, 그러니까 자주 가서 조금씩 하고 오면 될 거 아니냐고 또 구박을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습성을 고치기란 쉽지 않다.

올 겨울에 아내랑 안면도의 노천 스파에 다녀왔다. 몸이 찌뿌드해서 온천수에 확실하게 한 번 삶아서 오자고 얘기가 된 것이다. 노천탕에 앉아서 바라보는 저녁놀은 나름대로 운치 있었다. 그런데 코스 한쪽에 폭포수처럼 물이 쏟아져서 등 안마를 할 수 있는게 아닌가. 시험삼아 등을 대 보니 얼마나 시원한지... 근데 그것도 조금만 하면 될 것을, 이번에도 거의 본능적으로 본전 생각이 나서 오래오래 그 물벼락을 맞고 버틴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다른 코스 다 돌고 나서도 나가는 길에 한 번 더...
안마도 과하면 구타가 된다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다.

목욕탕... 자주 가서 살살 하고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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