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자의든 타의든 간에 책을 좀 읽게 된다. 그간 내게 주어진 시간에 비해서 독서량이 부끄러울 정도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단순히 게으른 천성 탓이나 네트워크에 물려 있었기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독서도 부단한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언제인가부터 지하철에서 자리 잡고 않기만 하면 졸기 시작한다. 피곤해서 독서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독서 자체가 피곤한 것이다. 활자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기껏 한다는 것이 무가지 위를 무의미하게 돌아다니는 정도다. reading은 줄어들고 그 자리를 glance가 채운다. 아무튼 이런 까닭으로 요즈음 독서량이 조금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아내의 문화생활비를 처치할 데가 없어 다수의 책을 구매하던 차에 '예스24'의 강력 추천도 있고 책값도 잔액과 거의 맞아떨어진다는 이유로 고른 책이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이다. 회원 리뷰를 신뢰하는 바는 아니지만 유난히 별이 많길래 대체 얼마나 내용이 좋길래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사고 방식과 지각 방식은 인류 전체에 대한 보편성만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그 차이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 말한다. 즉 문화적 차이가 세계관 뿐만 아니라 사물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체계까지도 구분짓는다는 얘기다.

이 책의 자랑거리는 비전공자도 아무런 준비 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여졌다는 것이다. 내용 자체는 다양한 심리학 실험의 결과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학구적인 분석을 전개해 나가지만, 뭐 그런 것쯤은 한글만 안다면 누구라도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다.

또한 이 책의 저자에 대해 대단하다고 느끼게 되는 점은, 정말로 새로울 것 하나 없는 뻔하디 뻔한 내용을 이렇게 책 한 권으로 부풀리는 재주이다. 읽기 쉽고, 내용 전개에도 무리가 없지만, 읽고 나면 뭐랄까 좀 허탈하기까지 하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일 뿐이다. 오만한 서양인들에게는 그나마 약간의 신선함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 그대로 서양인의 서양인에 의한 서양인을 위한 동양을 이해하려는 노력일 뿐이다. 그래 애썼다. 하지만 돈 아깝다...

혹시라도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 관심 가지는 사람 있다면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만 당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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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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