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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10 망향에 홀리다

망향에 홀리다

롤플레잉 2008. 3. 10. 00:05
망향[望鄕]
  1. [명사] 고향을 그리워하며 생각함 ≒ 사향(思鄕)

  2. [영화정보] 망향 (Pepe Le Moko, 1937)
    87분
    프랑스
    감독 줄리앙 뒤비비에르
    출연 장 가방, Mireille Balin, Gilbert Gil, 마르셀 달리오

  3. [가곡] 채동선(蔡東鮮) 작곡, 박화목(朴和穆) 작사의 가곡
    작곡  채동선(蔡東鮮)
    작사  박화목(朴和穆)
    종류  가곡
    제작연도  1933년

  4. [고속도로정보] 망향휴게소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요방리 121
    노동자 강제해고, 용역깡패 동원 무차별 폭력, 여성 노동자 성추행 등 '무대포식 노동자 탄압'으로 악명 높은 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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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휴일 고속도로는 느긋하고 나른하다. 평소 서초 나들목에서 청주 나들목까지 1시간 20분, 청주 톨게이트에서 학교 앞까지 30분, 거기에 집에서 고속도로 진입까지의 시간을 고려해 여유있게 집에서 나온 것은 좋았으나, 그놈의 여유가 지나친 감이 있었다. 휴일 고속도로에 차가 막힐 리는 당연히 없겠지만 예상보다도 더 적은 차량 흐름 덕분에 약속 시간에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할 것 같았다.

    전세금 잔금을 치르기 위해 아내랑 일찍 집을 나섰다. 일요일 아침에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건 평소 생활신조를 크게 거스르는 일이나, 한국사회에서 세입자는 분명 갑이 아니라 을이다. 집주인이 일요일 오전밖에 시간이 없다는데 별 수 있나. 한 주 동안 쌓인 피곤을 그대로 짊어지고 시동을 걸었다. 딸을 외가에 맡기고 그길로 청주로 나섰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하는 것이 또한 을의 미덕인지라, 아침도 거른 채 아직 떨쳐내지 못한 잠도 함께 머리에 이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안성을 지난지 얼마나 되었을까. 시계를 보니 청주에 너무 일찍 도착할 것 같았다. 그제서야 아침식사 생각이 난 우리 부부는 휴게소를 찾았다. 밥 먹고 가도 충분할 만큼 시간이 남았다. 그리하여 들어간 곳이 망향휴게소. 5000원 짜리 밥이 이렇게 맛이 없어도 되는 걸까. 최대한 음식 솜씨 안 타는 걸로 고른 메뉴가 장국밥이었는데, 맛이라고는 그냥 짠맛 말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요상한 장국밥. 아내가 선택한 것은 콩나물국밥이었는데, 내가 알기로 저렇게 생긴 콩나물국밥은 아직 학계에 보고된 바가 없다.

    이건 뭐 밥을 먹었다기 보다는 그저 배만 채웠다는 느낌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밥은 밥, 뱃속의 민원이 해결되고 나니 이제 뇌의 민원이 문제가 된다. 휴게소를 나서니 날은 점점 따뜻해지고, 음악도 적당히 흐느적거리면서 졸음이 몰려온다. 그래도 졸음운전을 할 수는 없다. 망향이면 청주가 얼마 남지 않았다. 사탕으로 졸음을 쫓아가면서 제한속도를 유지하면서 고속도로를 달렸다. 어디쯤 왔나 하고 도로 오른쪽 표지판을 흘끗 보았더니 '청원'이란다. 그렇다면 곧 청주다. 이제 거의 다 왔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청원을 지났다 싶은데 영 낯선 이 느낌은 뭔가. 날이 따뜻해서, 눈이 부셔서 그런가... 아무튼 조금 더 달렸을 때, 이번엔 뭔가 구체적으로 이상하다. 신탄진? 서울-청주 사이에 신탄진이 있었던가? 엥 대전? 나오라는 청주는 나오지 않고 대전이 웬말인가. 청원 다음은 청주가 나와야 되는데...

    여기까지 온 이상은 어쩔 수 없다. 일단 대전 톨게이트를 나오면서 표받는 아주머니한테 물었더니, '청주요? 30분은 더 오셨네요.'란다. 부부가 깜짝 놀랐다. 둘 중에 아무도 청주를 본 적이 없거늘 30분씩이나 지나쳤단 말인가. 고속도로에 안개가 끼었으면 이런 말도 안 한다. 멀쩡한 날에 이 무슨 귀신에 홀린 것 같은 일이란 말인가. 결국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유턴을 해서 다시 서울 방향 고속도로로 올라왔는데... 정말로 30분은 서울 쪽으로 내달려서야 청주 나들목으로 나올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망향에서 출발하고 3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대전이라니. 아마도 망향휴게소와 청주 간 거리가 5분도 안 되나 보다 하고 말았는데... 잔금을 치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망향휴게소를 찾아 보았는데 어째서인지 영 나타나질 않는다. 그래서 상행선 쪽에서는 망향휴게소가 안 보이나 보나 생각하고 한참을 달렸는데, 갑자기 왼쪽에 떡하니 나타나는 휴게소 표지판, '망향'...

"아니 청주에서 이렇게 떨어졌다는 거야?"
"뭐지, 이거? 그럼 우리가 그 먼 길을 남쪽으로 왔다는 건데..."
"정말 귀신에 홀렸나..."


    오늘 하루 종일 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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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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