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육체노동자가 아니며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기를 신께 빈다. 그런가 하면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육체노동도 있다. ...... 그러나 아무리 애를 쓰고 훈련을 받는다 한들, 광부는 될 수 없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中, 조지 오웰)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오쇼 라즈니쉬가 쓴 『반야심경』에 보면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는 말이 나온다. 아는 만큼 근심이라.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살다 보면 그런 일들을 꽤나 만난다. 올 가을에 산 『세계문화전쟁』의 경우도 그러하다. 출판사 비슷한 직장에서 잠깐 일해 본 게 무슨 큰 벼슬이라고 책을 볼 때마다 제본이나 인쇄 같은 것도 신경을 쓰는 폐단이 생긴다는 얘기. (그러고 보니 이놈의 '폐단'도 栗谷의 <萬言封事>를 공부하고 난 이후로 자주 쓰는, 별로 남에게 권장하고 싶지는 않은 표현이다.) 아무튼 『세계문화전쟁』을 보려고 책을 펼쳤다가 기분이 팍 상해서 도로 덮어버렸다. 2도 인쇄는 단도나 4도 인쇄와 달리, 편집자에게 뽑힌 그 색깔이 모든 영광과 비난을 한 몸에 받는, 아주 부담스러운 위치에 있다. 자신 없으면 그냥 4도에서 다른 색에 묻혀갈 일이다.

글 첫머리부터 딴 데로 새 버렸다. 원래 이놈의 인쇄 상태 따위를 얘기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결론은 그래서 『세계문화전쟁』이 미움을 받아 잠깐 쫓겨나고 그 자리를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차지했다는 얘기였는데, 이런 얘길 이렇게 장황하게 하다니... 그런데 『위건 부두...』를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없게 만드는, 자세를 고쳐잡고 읽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드는 구절이 나온다.

웃기지 못하는 걸로 유명한 개그맨 박수홍이 이제껏 방송에서 수없이 많은 말들을 했지만 딱 한 마디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가난이 제일 무섭다"다는 말. 남들은 다른 게 무서울지 몰라도 박수홍은 가난이 제일 무섭단다. 박수홍이 남들을 웃기려고 한 말인지, 아니면 정말 삶 속에서 우러나온 말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처음에는 웃었고 그 다음엔 충분히 불편했고 그래서 결국은 내 기억 속에 살아남은 말이다. 아마도 박수홍이 방송을 그만둔다 해도 이 말 만큼은 내가 죽는 순간까지 가지고 갈 것 같다.

대학 1학년 때 농활을 다녀왔을 때 3학년 선배가 나를 상경대 로비에 따로 불러서 앉혀 놓고 커피를 한 잔 뽑아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

"그래, 열흘 동안 고생해 보니 어떤 생각이 드니. 이제 노동의 의미를 알겠니?"

순간 당황했다. 엄청 고생한 것은 확실히 기억에 나는데 노동의 의미까진 솔직히 모르겠더라. 그 대신 이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앞으로 난 힘 쓰는 일로는 절대로 먹고 살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 힘 쓰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글쎄다. 삶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내가 육체노동 외에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도록 흘러간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내 스스로 육체노동이 좋아 그것을 선택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입으로는 노동의 신성함, 노동자의 힘, 노동자의 역사적 책무 운운하지만 막상 그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로 끔찍한 일이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일이 되는 순간 고달픈 건 마찬가지겠지만,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사이에는 책 몇 권 읽어서는 도저히 좁힐 수 없는 커다란 심연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 선배가 내게 말한 노동의 의미라는 게 혹시 이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의 불편함은 세월이 흐르면서 희석되어 갔다. 한 학번 선배들까지만 해도 노동운동 현장으로 들어가야 되는 걸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고, 앞으로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이 두려워서 떠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면서 이러저러한 반성(난 반성도 하지 않았는데!)들이 난무하고, 그 이후 몇 해가 가지 않아서 굳이 노동운동의 길을 걷지 않아도 아무도 손가락질 하지 않고, 스스로도 불편하지 않는 세상이 와 버렸다. 비록 대기업에 들어가서 돈 많이 벌진 않더라도, 그래도 좋은 사람 만나서 가정을 꾸리고 애들 낳아서 크는 모습 보면서 충분히 살 수 있는 정신노동의 길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차마 조지 오웰처럼 육체노동자가 될 일이 없기를 드러내놓고 신께 빌 수는 없었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정신노동의 길을 택한 거지, 노동 계급과 가까워질 생각은 손톱 만큼도 없다고 차마 말 할 수는 없었다. 몇 년 동안 놀고 먹다가 다시 내 손으로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 왔어도, 비록 말은 공공근로라도 해야겠다고 했지만, 육체노동이 내 몫이라는 생각은 하기 힘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지 오웰의 이 책은 이제 앞 부분의 몇 장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불편하다. 또 한편으로 불편하기 때문에 읽어야 할 것 같다.

이제사 하는 말이지만, 나는 육체노동자가 아니며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란다.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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