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당시 청년층은 희생을 했으나, 노년층은 지금 시점에 봐도 끔찍할 정도로 비겁했다. 말하자면 그들은 아들들이 독일군의 기관총 앞에 짚단 쓰러지듯 픽픽 넘어가는 동안에 안전한 곳에서 단호하게 애국을 요구했던 것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中, 조지 오웰)

어떤 배경으로 전쟁이 발발하였건,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건 간에, 전쟁 속에서는 이미 그 어떤 주의主義나 사상도 다 필요없다. 전쟁에 임하는 자의 임무는 오직 생존뿐.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에 보면 우물 속에 갇혀서 죽어가던 노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때 자기는 이미 죽었다고. 그 이후에 사는 삶은 사실 의미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서부전선의 참호에서 살아온 병사들은 어떨까. 그들은 이미 지옥을 본 게 아닐까. 이보다 더 존재가 무의미해지는 순간과 장소가 있을까.

전투 막바지의 억지스러운 "십자가의 고난" 장면이 거슬리긴 하지만,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지옥을 구경한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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