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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잘, 게보린

롤플레잉 2010. 1. 28. 22:05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말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다. 결과는 당연히 상대방의 오해, 그리고 언쟁으로까지 이어지는 때가 많지만, 알량한 자존심때문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설령 인정한다 하더라도 한 번 뱉은 말이 아예 없었던 것이 될 수는 없고, 따라서 어색한 기류가 흐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대인관계 속에서의 말실수만큼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나를 황당하게 만드는 실언들도 있다.

거의 20년 가까이 만성두통으로 살아온 사람이 갖추어야 할 상비약이 바로 두통약이다. 요즘도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엔 사리돈을 이용했고, 그 후에는 타이레놀, 펜잘을 거쳐 지금은 게보린을 쓰고 있다. 그렇다 '두통엔 게보린, 한국인을 위한 두통약 게보린' 말이다. 게보린이 다른 약에 비해 특별히 좋은 성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과학적인 근거에 의한 것인지, 혹은 그냥 주관적인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약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약효가 떨어지는 때가 온다. 그 때가 바로 두통약을 바꿔 줘야 하는 시점이다. 지금 쓰고 있는 게보린도 언제 어느 때에 더이상 효과를 못 볼지 모른다. 그 때엔 또 다른 약으로 갈아타야겠지.

암튼 가지고 있던 약이 다 떨어져 집 앞의 약국에 갔는데, '게보린'을 머리 속에 떠올리고는 너무도 당당하게 '펜잘' 주세요 라고 말해 버린 것이다. 당연히 약사는 '펜잘'을 내밀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그 때까지도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하고 속으로 '아니... 새로운 겉포장이네...' 라고 생각하고 덥썩 약을 받아들고 집에 왔다. 그리고 포장을 뜯고 약을 입에 털어넣기 전에 가만히 살펴보니 이게 게보린이 아닌 거다.

'뭐야 이거. 게보린이 아니잖아.'
'어라, 펜잘이네.'
'이런 염병할... 잘못 말했다.'

이미 포장을 뜯었으니 바꾸러 가긴 글렀다. 아니다. 사실 포장을 안 뜯었어도 바꾸러 가진 않았을 거다. 그렇게 자신있게 '펜잘 주세요' 라고 외쳐놓고 이제와서 잘못 사갔다고 할 수가 있겠나. 에라 모르겠다. 그냥 두 알씩 먹자...

애정 없이(?) 산 약이라서 그런지 펜잘은 두어 번 먹고 나서 나머진 어딨는지 모르겠다. 아마 어느 구석에 쳐박혀 있다가 이사갈 때 기어나오리라...

요새는 젊은 사람도 치매에 걸린다던데 혹시 이런 게 계속되면 그렇게 되는 건가? 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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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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