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예전에는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도 제법 또렷하게 생각나더니, 요샌 거의 대부분 기억해내지 못한다.나이를 먹는다는 게 이런 건가. 하긴 수험서만 해도 그렇지. 책을 덮는 순간, 마치 史官이 洗草하는 것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되기 일쑤다. 좋은 말과 글은 되도록이면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욕심인데, 그걸 받쳐주지 못하는 몹쓸 기억력을 보면 자괴감보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뿐만 아니라 이건 제대로 된 독서가 아니다 싶다.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선 책에 밑줄을 그어서 나중에 찾아보기 좋도록 하면 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정하고 책상에 앉아 책을 볼 때만 가능하다. 보통은 지하철을 타고 이동 중에, 이불을 펴 놓고 누웠을 때, 화장실에 앉아서, 벤치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심지어는 길을 걸으며 책을 보기 때문에 필기구가 준비되지 않을 때가 많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이 견출지 같은 걸 붙여놓는 건데, 이것도 무언가를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그리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다. 컴퓨터가 옆에 있다면 마음에 두는 문구와 함께 그 당시 떠오르는 생각들을 함께 갈무리해 둘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이 방법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을 읽다가 컴퓨터 앞에 앉는 순간 (지금도 그러하다!) 독서의 흐름이 딱 끊어지기 때문이다. 30분 책 보다가 한 시간 컴퓨터 앞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는 게 어디 한 두 번인가. 게다가 그렇게 놀다가 다시 책을 잡는다고 해서 그 흐름을 다시 이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낡아가는 머리를 보완할 만한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놓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그래서 몇 번 시도해 봤는데 지금 가지고 있는 휴대폰 카메라로는 어림도 없다. 그렇다고 디카를 가지고 다니면서 찍자니, 그럴 바에야 수첩과 필기구를 가지고 다니는 게 훨씬 낫지. 결론은 지금보다 고성능의 휴대폰 카메라가 필요한데, 그러자면 지금 쓰는 휴대폰을 버리고 스마트폰으로 옮겨가야 되나...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스마트폰으로 가고 싶은 이유치고는 너무 궁색하다. = _=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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