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처음으로 밀려오는 것은 짜증이었다. 날도 더운데 별 게 사람을 다 힘들게 한다는 생각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주워담아야지 뭐.
그런데 바구니에 들어있던 잡동사니들을 주워담으면서 이렇게 작은 바구니에 참으로 많은 게 들어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컴퓨터 본체 나사, 압정, 핀. 심지어 열쇠고리까지...
그 다음으로 이런 걸 여기 담아놓고서도 다 잊고 살았다는, 즉 이런 게 여기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는 사실에,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런 거 없이도 그동안 잘 살았다는 사실에 쓴웃음이 나왔다. 분명 바구니에 담았을 때엔 버리는 게 아까워서, 나중에 필요할 것 같아서 그랬겠지. 하지만 그 이후로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다 버릴까 하다가 다시 바구니에 담아서 올려놓았다. 무얼 버릴지 고르는 게 귀찮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제 여기에 뭐가 있는지 알았으니까 다음에 필요한 일이 생기면 기억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도 들고... 그런데 이걸 다시 쓸 일이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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