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에 수제비 먹으러 가는 건 어제부터 약속이 되어 있었다. 오늘 비만 오지 않는다면 나가기로 말이다. 역시 오늘 아침에 보니 날이 쨍한 정도는 아니지만 구름 정도야 아무리 많아도 상관없다.

집에서 삼청동으로 바로 가는 대중교통 수단은 없다. 그래서 어디선가 갈아타야 되는데, 우리가 주로 가는 길은 세종문화회관 맞은 편에서 11번 마을버스를 타고 경복궁 동쪽 담을 타고 올라가서 총리 공관을 지나는 길이다. 또 하나는 종로2가 YMCA에서 02번 마을버스를 타고 안국역을 끼고 가회동 쪽으로 올라가서 감사원 앞길로 내려오는 길이 있다. 이쪽으로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가회동 길을 택했다. 그런데 정확히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를 몰라 그만 감사원 앞에서 내리지 못하고 한 정거장 더 가서 말로만 듣던 통일부 앞에서 내렸다. 그래서 통일부를 왼쪽에 두고 다시 감사원으로 내려왔다. 다른 건 모르겠고 통일부 담장은 정말 높다. 한눈에도 위화감 충만이다.

감사원 쪽에서 삼청동으로 내려오면 된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처음 가 보는 길이라 확신 없는 걸음이었다. 감사원은 이렇게 조용하고 공기 좋은 곳에 있구나. 꿈의 직장이로고... 그 맞은 편의 베트남 대사관저의 담은 담쟁이로 덮여 있는데 꽤 멋지다. 길을 따라 밑으로 내려오니 삼청공원 입구가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아는 길이다. 전에 밥먹고 이곳에 놀러왔었다. 공원 입구를 지나 좀 더 내려오니 삼청공원으로 들어가는 차가 줄을 섰다. 삼청동이 원래 그렇게 조용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시끄러웠던 적도 없었다. 오늘 가 본 삼청동은 사방이 공사판으로 귀가 따갑다. 디자인 서울 어쩌고 하면서 보도 블럭을 바꾸나 보다.

삼청동 수제비는 일 년에 한 두 번 정도 먹으러 오는데, 그 날이 우리 부부의 삼청동 행차날이다. 꼭 수제비를 먹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더 나아가 반드시 뭘 먹어야 되는 건 아니지만, 이왕 나가는 길 뭘 먹으면 좋잖은가. 그리고 여기서 수제비 말고 다른 걸 먹어 봤는지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지금 떠오르지 않는 걸로 보아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 수제비 집에 대한 평가도 다양한데, 원래는 맛있었는데 어느 순간 주방장을 갈았는지 맛이 변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데 우린 모르겠더라. 그냥 먹을 만하다. 그리고 사실 이 넓은 서울에서 우리 부부가 알고 있는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수제비집은 이곳뿐이다. 그러니 우린 수제비를 먹고 싶을 때는 별 고민 없이 이곳에 간다. 오늘도 나온 수제비를 국물까지 비우고 배를 두드리며 나섰다.

점심은 해결했는데 이제 집으로 가는 길을 어느 쪽으로 잡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왔던 길을 되돌아 올라갈 것인가, 아니면 경복궁 쪽으로 내려갈 것인가. 올라가는 길은 아까 내려오면서 한 번 훑었다는 것과 이 더운 날씨에 오르막길을 걷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삼청공원에서 쉴 수 있다는 것과 마을버스를 타고 오면서 봤던 길을 걸어내려가면서 새로운 구경거리를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경복궁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아무 것도 없다. 그냥 내려가서 집으로 가는 것뿐이다. 물론 그렇게 심심하기 때문에 종로로 가서 영풍문고에서 책 좀 보다가 가자는 얘기를 해 두었다. 잠깐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삼청공원에서 좀 쉬었다 가자는, 즉 올라가자는 것.

전에 공원에 왔을 때에는 해가 다 져서 껌껌했다. 오늘은 오후 2시, 가장 환하고 더울 때이다. 게다가 오르막길을 올라왔더니 온몸이 땀에 절었다. 공원은 대체로 시원하다 할 수 있지만 여기도 공사판 소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도 나무 그늘이 꽤 깊어서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면 견딜 만했다. 공원 안쪽으로는 큰 딸이 놀기 좋은 미끄럼틀과 그네도 있고 서울 성곽까지 연결된 등산로도 있다. 더위가 물러가면 딸들 데리고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원에서 가회동으로 내려오는 길이 말로만 듣던 북촌한옥마을이란다. 그런데 첫인상은 좀 실망스러웠다. 한옥이 몇 채 안 보이더란 말씀. "길 가에 있는 한옥들, 이게 다야?"라고 내가 말했더니 아내가 그건 아닐 거라면서 골목으로 들어가 보면 좀 더 있지 않겠냐고 한다. 안국역까지 거의 다 내려와서 표지판을 보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한옥마을이라고 해서 민속촌처럼 모두 한옥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한 곳에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한옥이라고 해서 다 들어가 볼 수 있는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눈에 띄는 것은, 이 동네 양옥들이 다들 범상치 않다는 점이다. 문도 큼직큼직하고 담장도 아까 본 통일부처럼 까마득히 높은 것도 있고 CCTV들이 눈을 부라리고... 암튼 좀 산다 하는 사람들은 명함도 못 내밀 것 같다.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넘나들며 부부의 평소 운동량에 비해 과하게 걸었더니 안국역에 다 왔을 때엔 다리가 풀렸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지만 어디 시원한 데서 땀 좀 식혀야겠기에 커피집을 찾아 들어갔다. 커피맛에 비해 좀 비싸다 싶은 가격이었지만 에어컨 값이려니 생각했다. 아내의 방학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렇게 부부가 놀러 나오는 것도 오늘로서 끝이다. 주말에 애들 데리고 나가는 것은 제외하고...

올 때는 지하철로 왔다. 전에도 그랬지만 애들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는 시간을 맞추려면 여유있는 외출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언제까지 집에 도착해서 언제까지 애들 데리러 가야 하고... 놀면서도 머리 속에는 시계가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다. 우린 언제쯤 애들 신경 안 쓰고 놀러 다닐 수 있으려나...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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