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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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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약 먹을 때 금해야 하는 음식 목록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커피를 마실 시간을 자꾸 놓치기 때문이다. 보통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밥 먹고 나서 30분 사이인데 이때 약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기가 좀 애매해진다. 약을 먹은 다음에는 또 한 시간 내에 영양제를 먹다 보니 또 커피 마실 시간이 없다. 그렇게 넘어가다 보면 다음 밥때가 되어버린다.

여름 내내 하루에 믹스커피 4 스틱 이상 먹던 사람에게 한 잔도 안 마시고 하루를 보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커피 없이도 잘 산다. 내게는 담배도 이와 같았다. 하루 두 갑씩 피울 때는 담배 없는 삶은 생각할 수도 없었지만, 어느날 저녁 먹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쓰레기통에 문득 담배갑과 라이터를 집어던지고 그날부로 금연한 이후 8년 동안, 꿈 속에서 몇 개비 핀 것 말고는 단 한 번도 담배를 입에 물지 않았지만, 사는 데에는 아무 지장 없더라.

그렇다고 이참에 커피를 끊겠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지금은 시간이 좀 애매해서 그렇지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온다면 언제든 커피를 마셔 주리라.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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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에 부부가 놀러 나갔다. 녹색극장이 아트레온인가 뭔가 하는 아스트랄한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오늘 아침 표를 끊으면서 알게 되었다. 원래는 영화까지 보겠다는 생각은 아니고 그저 여름인데 냉면 한 번 먹어 줘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소박한 계획이었으나, 고작 냉면 먹으러 은평구에서 서대문구까지 그 먼 길을 나간다는 건 확실히 우리 부부의 세계관과 충돌한다. 그리하여 덤으로 영화 한 편을 집어넣게 된 거였다.

신촌 가는 버스를 타니 가스통 폭발 사고가 자연스럽게 머리 속에 떠올랐으나, 그렇다고 어쩌겠나 뭐. 우리같은 가난한 부부들은 주차할 곳도 마땅찮은 신촌에 차를 끌고 나가느니 그냥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험 속에 몸을 맡기는 게 더 경제적이지 않겠나.

영화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지만 조조로 보는 건 더 오랜만이다. 아마 이병헌과 송강호, 이영애가 나왔던 JSA가 마지막이지 않나 싶은데 자세한 건 모르겠다. 아무튼 요새 표 한 장에 8000원이나 하는데 조조는 5000원이라니까 왠지 많은 혜택을 본 것 같다. LG카드 할인도 기대했으나 요런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지난 3개월 평균 카드 사용 실적이 30만원 이상이어야 된단다. 영화 한 편 할인 받으려고 30만원을 쓰는 게 말이 되나. 당연히 패스.

원빈이 나오는 '아저씨'라는 영화를 봤다. 무슨무슨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맘먹고 있었던 게 아니라 순전히 우리의 메인 이벤트 냉면 계획에 영화는 꼽사리를 끼는 형국인지라 약간은 성의 없이 골랐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막상 고르려 했더니 별로 볼 영화가 없긴 없더라. 그래서 그다지 맘엔 안 들지만 남들 많이 본다는 영화로 골랐다.

극장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평일 조조인데 당연하지 뭐. 우리 부부 말고도 단체로 보러 온 사람들이 몇 있긴 했는데 좌석을 지정한 게 의미 없을 정도의 규모였다. 극장 안은 전반적으로 쾌적하지 못한 상태. 팝콘 냄새인지 와플 냄새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심히 느끼한 냄새가 건물 전체적으로 짙게 깔려서 머리를 띵하게 만들었다. 영화 시작하니까 냄새가 가시긴 했지만 아트레온, 청소 좀 잘 하자.

영화 보는 내내 사실 좀 힘들었다. 남들은 박진감 넘친다는데 내가 보기엔 불필요하게 잔인한 액션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었다. 영화를 보며 느낀 점, 주위의 아저씨들한테 함부로 시비 걸지 말자는 것. 멋도 모르고 까불다간 죽는다 정말... 그리고 또 하나. 무릇 아저씨라면 배가 좀 나와 주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감...

힘들게 영화를 봐서 그런지 다 보고 나오니 허기진다. 오전에는 구름이 많았는데 극장 밖으로 나오니 구름 속으로 해가 많이 나왔다. 곧장 오늘의 메인 이벤트, 냉면을 먹으러 갔다. 사실 어제 집에 있으면서 냉면 생각이 나서 시켜 먹었는데, 이게 입맛을 확 버렸다. 아무 말도 없이 주문한지 한 시간 만에 배달해 주질 않나, 맛으로 승부하는 대신 양으로 승부하려는 비빔냉면 때문에 헛배만 부르고 기분 제대로 잡쳤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비빔국수 삶아먹는 건데 그랬다. 사정이 이러해서 오늘 제대로 된 냉면을 먹지 않으면 가슴에 응어리가 질 것 같아서 굳이 날도 더운데 신촌까지 나온 것 아니겠는가.

부부가 신촌에서 자주 가는 냉면집은 현대백화점 후문 쪽에 있는 '함흥냉면'인데, 맛이 그럭저럭 괜찮다. 신촌에서는 '고박사집 냉면'이 더 유명하다는데, 거긴 확실히 맛이 없다고 보증할 수 있다. 그 집에서 파는 건 사실 냉면이라 하기 좀 민망하다. 신촌 '함흥냉면'은 고향 부산의 '원산면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냉면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맛은 지키고 있다. 비교적 무난하달까. 비빔냉면에 나오는 육수도 그럴듯하다. 부부가 이번 여름에 부산에서 먹은 밀면 맛이 별로였다는 얘길 하면서, 만두까지 시켜 먹었더니 배도 부를 만큼 부르다.

점심을 해결했으니 신촌은 언제 떠도 아쉬울 게 없으나, 부부가 언제 또 이렇게 나오겠나 싶어 잠깐 걷기로 했다. 냉면 가게 옆에 있는 팬시점에 들러 딸에게 사줄 만한 게 뭐가 있는지 구경도 하고, 맞은 편의 현대백화점에도 잠깐 들렀다. 예나 지금이나 현대백화점은 역시 정이 안 간다는 결론을 뒤로 하고 학교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냥 집에 갈까 하다가 커피라도 한 잔 하자는 생각에 찻길에서 한 블럭 뒷쪽으로 가 봤다. 예전에 자주 다니던 만화방, '까페 차리려다 실패한 만화동산'은 PC방으로 바뀌었다. 감자탕을 많이 먹으러 갔던 '보은집'도 없어졌다. 정말로 많이 변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 '여우사이' 정도일까. 돌아보는 김에 대학 1학년 때, 입학하자마자 처음으로 살았던 하숙집이 있던 곳도 가 봤는데, 예전의 낡은 단층집이 헐리고 3층집을 짓고 있었다. 아쉽다.

찻길이 아닌 그 뒷골목은 완전히 변해서 커피나 차를 마실 만한 곳이 거의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큰길로 나와서 자리를 잡은 곳이 'Angel in us Coffee'.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곳이더라. 커피 자주 마시는 사람들이야 맛을 구별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겐 다 똑같다. 그래도 이렇게 커피 한 잔 하게 되니까 부부가 오랜만에 마주보며 얘기하게 된다. 결혼 생활 해 본 사람들이야 다 알겠지만, 신혼 때 아니면 부부가 얼굴 마주보면서 얘기할 기회가 어디 그렇게 많던가. 한 사람은 TV 보고, 한 사람은 컴퓨터 들여다 보면서 짤막하게 한 두 마디 얘기하는 정도. 집에서는 커피를 마셔도 각자 한 잔씩 들고 알아서 마시지 이렇게 마주앉지는 않는다. 아내가 며칠 전 오랜만엔 친구들 만나서 논 얘기, 애들 키우는 얘기, 집 문제 얘기, 내가 하고 있는 공부 얘기... 이런저런 얘기 속에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조조 보느라 아침부터 서둘렀는데 하루가 짧다.

커피점을 나설 때에는 해가 완전히 나와서 선글라스 없이는 눈도 못 뜰 정도로 햇살이 따갑다. 학교쪽으로 올라와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신촌은 그래도 접근성이 좋다. 갈아타지 않고 버스 한 번에 이렇게 다녀올 수 있으니 말이다. 방학이라 학생은 얼마 없어도 학교 앞으로 지나가는 차는 여전히 많다.

집에 가서 치우고 뭐하고 하면 애들 데려올 시간이고, 저녁 먹고 애들 씻기로 재우면 또 하루 끝. 오늘 공부는 공쳤다. 아내는 내일 애들 어린이집 보내고 쇼핑하러 나간단다. 애들 데리고 하는 쇼핑은 정신이 없다. 내일은 여유있게 둘러볼 참이란다. 내일 점심은 혼자 먹어야겠다.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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