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니의 A80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며 사진 찍는 맛을 들인 작은딸. 시도때도 없이 엄마 아빠에게 "엄마, V해 봐. 아빠, V해 봐."라며 포즈를 요구한다. 언니가 사진 찍을 때마다 하는 동작을 보고 배운 탓이다.

오늘도 V해 보라는 딸에게 "그럼 네가 해 봐. 아빠가 찍어줄테니"라고 말했더니 당장 시범을 보인다. 이래 봬도 나름 V한 거다. 물론 뒤로 갈수록 애초의 취지는 잊고 다른 포즈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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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전에는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도 제법 또렷하게 생각나더니, 요샌 거의 대부분 기억해내지 못한다.나이를 먹는다는 게 이런 건가. 하긴 수험서만 해도 그렇지. 책을 덮는 순간, 마치 史官이 洗草하는 것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되기 일쑤다. 좋은 말과 글은 되도록이면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욕심인데, 그걸 받쳐주지 못하는 몹쓸 기억력을 보면 자괴감보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뿐만 아니라 이건 제대로 된 독서가 아니다 싶다.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선 책에 밑줄을 그어서 나중에 찾아보기 좋도록 하면 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정하고 책상에 앉아 책을 볼 때만 가능하다. 보통은 지하철을 타고 이동 중에, 이불을 펴 놓고 누웠을 때, 화장실에 앉아서, 벤치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심지어는 길을 걸으며 책을 보기 때문에 필기구가 준비되지 않을 때가 많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이 견출지 같은 걸 붙여놓는 건데, 이것도 무언가를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그리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다. 컴퓨터가 옆에 있다면 마음에 두는 문구와 함께 그 당시 떠오르는 생각들을 함께 갈무리해 둘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이 방법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을 읽다가 컴퓨터 앞에 앉는 순간 (지금도 그러하다!) 독서의 흐름이 딱 끊어지기 때문이다. 30분 책 보다가 한 시간 컴퓨터 앞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는 게 어디 한 두 번인가. 게다가 그렇게 놀다가 다시 책을 잡는다고 해서 그 흐름을 다시 이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낡아가는 머리를 보완할 만한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놓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그래서 몇 번 시도해 봤는데 지금 가지고 있는 휴대폰 카메라로는 어림도 없다. 그렇다고 디카를 가지고 다니면서 찍자니, 그럴 바에야 수첩과 필기구를 가지고 다니는 게 훨씬 낫지. 결론은 지금보다 고성능의 휴대폰 카메라가 필요한데, 그러자면 지금 쓰는 휴대폰을 버리고 스마트폰으로 옮겨가야 되나...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스마트폰으로 가고 싶은 이유치고는 너무 궁색하다.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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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에 아내가 쓰던 수동카메라 FM2.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사용한지 10년도 더 된 물건이라는 말씀이다. 아직도 필름카메라 사용자들에겐 인기가 꽤 높다던데. 예전에 필름카메라를 쓰긴 했어도, 거의 반자동이라 할 수 있는 캐논 AV-1만 써 봤던 나로서는 완전 수동카메라가 불편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써 보고 싶기도 했다.

안 쓴지 워낙 오래된 물건이라 렌즈에 곰팡이가 폈다. 닦아낸다고 했지만 그것도 겉뿐이다. 렌즈 속은 어쩔 수 없다. 아무튼 카메라 가방 속에 지금은 필름 사업을 접은 코니카의 ISO 200 컬러 네거티브 필름도 두 통이나 들어있다. 유통기한이 지나도 한참 지난 건데 이걸로 찍으면 사진이 제대로 나오긴 할까? 필름카메라가 주는 불편한 매력이 이런 게 아니겠나. 찍고 나서 바로 확인해 볼 수 없다는 거 말이다.

그런데 이 무슨 기구한 카메라의 운명인지... 10년 동안 가방 속에서 멀쩡하게 잠자던 놈이 사람 잘못 만나서 한순간에 벼락을 맞았다. 너무도 오랜만에 필름을 넣는 거라 익숙치 않은 손으로 버벅대다가 그만 이 묵직한 놈을 바닥에 떨어뜨린 것이다. 와작! 하는 소리와 함께 50mm F1.4 짜리 밝은 단렌즈가 그만 테러를 당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렌즈 앞의 UV 필터가 깨진 건데, 문제는 필터 링이 휘어서 렌즈에서 빠지질 않는다는 것. 어쨌거나 이 더운 여름 주말, 온가족이 거실에 모여 있는 순간에 아빠가 사진을 찍어준다고 설쳐대다가 카메라 하나 말아드시고 거기에 덤으로 유리 파편이 바닥에 튀어서 애들보고 피하라고 난리를 치고... 거실 바닥을 정리하는 동안 정말 땀이 뚝뚝 떨어졌다. 이 무슨 한심한 사고인지... 하필이면 내 물건도 아니고, 아무리 그동안 안 쓰고 버려두었다지만, 아내의 물건을 말이다. 아내는 물론 괜찮다고 하지만 최소한 유쾌할 리는 없잖은가.

바닥을 쓸고 닦고 카메라를 가방 속에 넣어서 다시 책장 위에 올려 놓을까 하다가, 오늘 다행히 이 사고를 피해간 망원 렌즈로 아내와 딸들 몇 컷 찍어주긴 했다. 실내에서 무슨 놈의 망원렌즈인가 하겠지만 어쩌겠나, 멀쩡한 렌즈가 그놈 하나뿐인 것을... 조리개가 단렌즈에 비해 턱없이 적게 열리기 때문에 빨리 찍을 수도 없어서 나중에 현상을 하면 죄다 흔들리지 않았을까 싶다.

왜 그순간 갑자기 필름카메라 생각이 나서 오늘 하루가 이렇게 꼬이는지... 그냥 속편하게 디카로 찍지 무슨 분위기를 잡을거라고... 게다가 망원 렌즈 한 번 들고 나니까 손목이 시큰거린다. 역시 그냥 디카 쓰자.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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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카메라 렌즈가 아닌 내 눈에 흑백모드 전환 단추가 달려 있어서, 원할 때에는 세상을 무채색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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