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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0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10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1996.01.01
평점

인상깊은 구절
종말이 가까워질 무렵, 황제는 자기 주위의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 후궁들과 법가 신하들을 모두 죽인 뒤에, 황제는 철기 기술자인 자기 스승에게 명하여 철제 꼭두각시들을 만들게 했다. 자기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 신하들은 오로지 그 꼭두각시들뿐이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세상에는 화장실에서 읽기 좋은 책들이 있다. 백과사전류는 그런 용도로 쓰기 딱 좋은 책이다. 항목별로 짧게 끊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언제 책을 덮어도 부담이 없다. 화장실에서는 단편소설도 부담스럽지 않은가 말이다. 한 편 다 보고 나가려다가 다리 저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또한 백과사전은 어디까지 읽었는지 굳이 책갈피로 표시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잡히는 대로 눈이 가는 대로 훑어가면 된다.

제정신이라면 절대 돈 주고 사지 않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이 집에 한 권 있다. 바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다. 당연히 사서 보는 책은 아니다. 누군가가 아내에게 선물한 책이다. 세상에는 이른바 어이없이 뜬 소설가도 있기 마련인데, 베르베르가 딱 그런 인물이다. '개미'를 읽을 땐 나름 신선한 맛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 작품인 '타나토노트'를 보면서 경악했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윤회'라는 개념을 천박하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글을 쓰면서 부끄럽지도 않나? 아니나 다를까 고향인 프랑스에서는 전혀 먹어주지 않는 이 사람의 책을 어째서 우리는 자꾸자꾸 팔아 줘서, 이 말도 안 되는 상상력에 용기를 불어 넣어 준단 말인가. 그리하여 나 혼자라도 이 사람의 책을 팔아 주지 않는 것이 인류 공영을 위하여 조금이나마 일조하는 길이라 생각하여 그 이후로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작가인데, 어쩌다가 이놈의 책이 우리 집에 굴러들어왔는지... 책으로서도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그래도 '개미'는 제대로 봤기 때문에 그 속에 등장하는 '... 지식의 백과사전'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데다가, 이 책을 보면서 지금은 다 까먹은 '개미'의 스토리도 조금씩 생각나게 하는 효과도 있어서, 무엇보다도 요즘 화장실에서 읽을 만한 마땅한 소스가 떨어진 마당에, 이 책은 이 공간에서 나름대로 존재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어쨌거나 베르베르에 대한 나의 심한 평가절하에도 불구하고 막상 읽어보니 꽤 재밌는 내용이었다. 개미와 곤충뿐만 아니라 작가의 여러 잡상식이 뒤덤벅되어 뜻하지 않았던 읽을 거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화장실에 있는 시간이 그리 외롭지만은 않았다.

이 놈 의외로 박식한 면이 있었군...
뭐 완전 또라이스키는 아니었나...
개미의 사회나 파리 지하철역의 귀뚜라미 같은 항목은 꽤 재밌더라. 그런데 '진시황'에 와서 잠깐 동안 괜찮아졌던 작가에 대한 인상이 한 순간에 허물어져 버렸다.

아니 이 놈은 한 번이라도 제대로 중국 역사나 진시황에 대해 공부해 본 적이 있는 놈인가.
도대체 이 놈은 어디서 진시황 얘기를 들은 거야? 무슨 야사집 같은 데서?
'믿거나 말거나'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고 책으로 옮겨 적었나?
진시황 정(政)이 법가 신하들을 모두 죽였다고? 그럼 혼자서 나라를 다스렸단 말인가? 후궁을 모두 죽였다고? 야, 베르베르. 솔직히 말해라. 이 스키 중국 역사책 한 번도 본 적 없지? 그러고도 이런 글을 써서 돈을 벌 생각을 한단 말이냐...

이 시점에서 정말로 궁금해진다. 이런 식의 독자들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치는 생각의 원천은 베르베르 개인의 얕음인지, 프랑스인의 문제인지, 그것도 아니면 유럽인의 동양사에 대한 인식의 한계인지. 황제지배체제의 선결요건인 군현제나 그와 동전의 양면인 관료제 등에 대한 깊은 지식은 사실 바라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인식은 동양인을 '반지의 제왕'의 오크 정도로 보는 것과 매한가지다. '진시황' 항목에 와서 이제까지 봤던 책의 다른 내용에 대한 생각도 한꺼번에 달라졌다. 귀뚜라미? 이 놈이 정말로 조사를 해 보고 글을 쓴 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요네즈? 아는 친구한테 듣고 무작정 쓴 내용인지 모를 일이다.

처음부터 기대하고 본 건은 아니지만 다시 한 번 베르베르를 업수이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책이다. '타나토노트'에서 받았던 어처구니 없음이 긴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한 번 벌떡 일어난다. 일개 소설가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건가? 근데 독자로서 이 정도는 기대해도 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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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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