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여름도 오늘로 끝이라는데 두 딸은 기분 전환을 위해 엄마와 함께 미용실에 다녀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무더운 여름에 그 긴 머리로 어떻게 버텼는지... 단정하게 잘라주지 않은 엄마 아빠의 게으름 탓이다.

큰딸이야 다 컸으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작은딸은 미용실에 가면 가위를 보고 무서워하거나 머리 하는 동안 지겨워하지 않을까 염려하였으나 아주 멀쩡하게 자리에 앉아 잘 해냈다고 한다. 장하다.

근데 이제 찬바람 불면 긴머리가 날씨에 더 맞는 거 아닌가. 후후... 우리 하는 일이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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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에 신촌 나갔을 때 이발했으니 며칠 빠지는 석 달이다. 그동안 머리가 자라서 거울을 보니 히말라야 설인이 날 바라보고 있다. 날도 더운데 이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무슨 고행에 나섰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한심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래도 이발은 귀찮은 거다.

아무튼 오늘 바람도 시원하고 날도 좋고 해서 드디어 결심하고 동네 미용실에 갔다. 문을 여니 허연 개 두 마리가 뭐하러 왔냐는 눈빛으로 손님을 쳐다본다. 문을 닫고 다른 집으로 갈까 하는데 먼저 와 있던 손님들이 괜찮다고, 들어오라고 한다. 이런 말까지 들은 마당에 굳이 여기서 물러날 건 없잖은가. 내친 걸음이라고 빈자리에 앉았다. 많이 기다릴 줄 알았는데 할머니 두 분은 그냥 수다 떨러 오신 거였다.

암튼 조금 기다리니 내 차례가 와서 앉았다. 석 달 치를 잘라달라고 했는데 이집 미용사 아줌마는 주관이 너무 뚜렷하시다.

"머리 어떻게 해 드릴까요?"
"석 달 전에 잘랐어요."
"그럼 그 때 머리로 해 드릴까요?"
"예. 그렇게 해 주세요."
"근데 손님, 손님은 짧은 머리가 안 어울리는 거 아시죠?"
"예?"
"손님은 얼굴이 재벌 스타일이라서 긴 머리가 어울리거든요."
"재벌 스타일? 그냥 뚱뚱하다고 하시죠 왜."
"아니 뭐 꼭 그렇게 표현할 건 없구요... 암튼 복스런 인상이라서..."
"전 미용실 자주 안 오거든요. 그러니 그냥 짧게 해 주세요."
"......"

별 말 없길래 석 달 전 머리로 만들어줄 줄 알았는데 이 아줌마 끝까지 자신의 주관을 밀고 나가신다. 이발하는 시간은 석 달이이 아니라 일 년 치 머리를 자르는 것처럼 길었는데 다 됐다고 하며 보여줄 때 거울을 보니 아까랑 별 차이 없는 아저씨가 앉아있다. 약간 다듬은 정도랄까.

"너무 길지 않아요?"
"아녜요. 지금이 제일 예뻐요."
"그러지 말고 좀 더 잘라 주시죠."
"아니라니깐요. 손님은 여기서 더 길러도 좋아요."

요만큼 잘랐는데도 시간이 이렇게 많이 걸리면 다시 자르면 또 얼마나 걸리겠나 싶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좀 있으면 작은 딸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야 하는데 말이다. 오늘은 내가 졌다. 그래서 순순히 물러나기로 했다. 최소한 머리를 오늘 아침보다 길러서 들어가는 건 아니니...

이 아줌마 마지막 마무리도 시크하게 하신다. 아주 클래식한 도루코 양면 면도날을 그냥 손으로 쥐고, 면도 거품도 없이 뒷목을 훑어주시는데 아주 깜짝깜짝 놀랐다. 따끔따금하는데 이러다가 잘못해서 목을 그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하는 생각에 갑자기 에어콘을 파워냉방으로 튼 것처럼 뒷목이 서늘...

간만에 좋은 경험 하고 왔으나 또 가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진 않다. 이발한 직후에 거울로 본 모습은...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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