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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필요해

패밀리 2010. 1. 10. 17:22
큰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은 우리 동네가 아니라 외할머니가 사시는 동네에 있다. 외할머니 댁이 집에서 그리 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는 절대 아니다. 승용차로 10~15분 정도는 족히 가야 할 거리이다. 어린이집을 굳이 같은 동네에 하지 않고 먼 곳에 잡은 이유는 당연히 외가의 근접성을 고려한 때문이다. 그리하여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차로 딸을 외할머니 댁에 데려다 주고, 오후에 어린이집을 파하면 거기서 놀고 있는 딸을 저녁에 다시 데려오는 것이다. 동생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때에는 아침마다 딸을 데리고 외할머니 댁에 데려다 주는 일이 엄마의 몫이었으나 지금은 아빠가 그 일을 하고 있다.

며칠 전 아침이었다. 요사이 계속되는 추위로 아침마다 일어나는 일이 정말로 괴롭다. 큰 딸도 이런 일에는 예외가 아니어서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예전의 두 배는 걸리거니와, 일어나서 할머니 댁에 가는 도중에도 잠이 덜 깨어 멍하니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가 많다. 그런데 그날따라 큰 딸은 기상이 더욱 힘들어 보였고, 차 안에서도 운전석의 바로 뒷자석에 앉아서 라디오의 '굿모닝 FM'을 듣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내내 굳은 표정으로 오도카니 앉아만 있다. 본의 아니게 아빠랑 딸이랑 한바탕 싸우고선 서로 말도 안 하고 있는 것같은 냉랭한 분위기가 흐르는데...

문제는 이런 분위기를 떨쳐버릴 만한 묘안이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는 거다. 아빠란 사람이 이 아침에 당췌 딸내미에게 할 말이 없더라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평소엔 딸이 먼저 수다를 떨고 아빠가 그걸 받아주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는데, 딸이 먼저 입을 닫은 마당에 아빠로서 이걸 소위 breaking the silence할 능력이 안 된다는 거... 이거 아주 괴롭다. 아니 아빠랑 딸 사이에 이렇게 할 얘기가 없단 말인가. 외할머니 댁에 도착하기까지 15분 동안 부녀가 나눈 대화는 딱 한 마디.
"정인이 추워?"
"아뇨."
"..."
"..."
정말로 이 얘기 말고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나름대로 말을 붙여 보려고 춥냐고 물었더니 아니라는 딸의 대답. 아니라는데 뭐라고 할 건가. 더 이상 할 말은 없는 거지 뭐.

정말 심각하다.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지만 사실 웃어야 될 상황은 아니다. 이제 여섯 살되는 딸과 아빠가 이렇게 할 얘기가 없는데, 나중에 딸이 머리가 커지고 나면 정말로 무슨 얘길 하겠는가. 그 때쯤 되면 엄마 아빠의 얘기가 다 시시하게 들릴텐데 말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대화가 필요하고, 대화를 엮어갈 기술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서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사실 딸의 어린이집 친구 이름만 좀 알고 있어도 훨씬 쉽게 얘기가 풀릴텐데, 그 동안 아빠라는 사람은 무얼 하고 있었나 말이다...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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