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리듬을 탈 줄 안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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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엄마가 어제부터 갑자기 허리가 아파 결국 처제가 출산한 곳에 가지 못하고 대신 병원에 갔다. 그리하여 졸지에 오늘 놀러갈 곳이 없어진 큰 딸. 할 수 없이 TV만 보고 있는데...

아빠로서 재밌게 놀아주고 싶은 맘이 없는 건 아니나, 칭얼대는 작은 딸을 업고서 놀아주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잠깐 짬을 내서 놀아준다고 해도, 무한 에너지로 충만한 딸에 비해 금방 배터리가 떨어지는 아빠...

항상 좋은 아빠로 남고 싶지만 그건 언제나 머리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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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네 마리

패밀리 2010. 3. 2. 21:37
고양이 네 마리 나무에 올라갔네
한 마리 떨어지고 세 마리 남았네

우리 큰 딸이 처음으로 지어서 아빠에게 보여준 詩.
어디서 본 내용인지 순수 창작인지 알 길은 없으나, 본인 말로는 혼자서 생각해서 쓴 글이란다.

"떨어진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니?"
"'아야~!' 하고 집에 갔어."

다행이다. 혹시나 떨어진 놈 죽여버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건 아니란다...
딸이야 오늘이 가면 금방 잊어버릴 게 틀림없겠지만, 아빠로선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일이라 이렇게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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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필요해

패밀리 2010. 1. 10. 17:22
큰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은 우리 동네가 아니라 외할머니가 사시는 동네에 있다. 외할머니 댁이 집에서 그리 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는 절대 아니다. 승용차로 10~15분 정도는 족히 가야 할 거리이다. 어린이집을 굳이 같은 동네에 하지 않고 먼 곳에 잡은 이유는 당연히 외가의 근접성을 고려한 때문이다. 그리하여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차로 딸을 외할머니 댁에 데려다 주고, 오후에 어린이집을 파하면 거기서 놀고 있는 딸을 저녁에 다시 데려오는 것이다. 동생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때에는 아침마다 딸을 데리고 외할머니 댁에 데려다 주는 일이 엄마의 몫이었으나 지금은 아빠가 그 일을 하고 있다.

며칠 전 아침이었다. 요사이 계속되는 추위로 아침마다 일어나는 일이 정말로 괴롭다. 큰 딸도 이런 일에는 예외가 아니어서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예전의 두 배는 걸리거니와, 일어나서 할머니 댁에 가는 도중에도 잠이 덜 깨어 멍하니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가 많다. 그런데 그날따라 큰 딸은 기상이 더욱 힘들어 보였고, 차 안에서도 운전석의 바로 뒷자석에 앉아서 라디오의 '굿모닝 FM'을 듣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내내 굳은 표정으로 오도카니 앉아만 있다. 본의 아니게 아빠랑 딸이랑 한바탕 싸우고선 서로 말도 안 하고 있는 것같은 냉랭한 분위기가 흐르는데...

문제는 이런 분위기를 떨쳐버릴 만한 묘안이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는 거다. 아빠란 사람이 이 아침에 당췌 딸내미에게 할 말이 없더라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평소엔 딸이 먼저 수다를 떨고 아빠가 그걸 받아주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는데, 딸이 먼저 입을 닫은 마당에 아빠로서 이걸 소위 breaking the silence할 능력이 안 된다는 거... 이거 아주 괴롭다. 아니 아빠랑 딸 사이에 이렇게 할 얘기가 없단 말인가. 외할머니 댁에 도착하기까지 15분 동안 부녀가 나눈 대화는 딱 한 마디.
"정인이 추워?"
"아뇨."
"..."
"..."
정말로 이 얘기 말고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나름대로 말을 붙여 보려고 춥냐고 물었더니 아니라는 딸의 대답. 아니라는데 뭐라고 할 건가. 더 이상 할 말은 없는 거지 뭐.

정말 심각하다.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지만 사실 웃어야 될 상황은 아니다. 이제 여섯 살되는 딸과 아빠가 이렇게 할 얘기가 없는데, 나중에 딸이 머리가 커지고 나면 정말로 무슨 얘길 하겠는가. 그 때쯤 되면 엄마 아빠의 얘기가 다 시시하게 들릴텐데 말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대화가 필요하고, 대화를 엮어갈 기술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서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사실 딸의 어린이집 친구 이름만 좀 알고 있어도 훨씬 쉽게 얘기가 풀릴텐데, 그 동안 아빠라는 사람은 무얼 하고 있었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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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개려고 거실에 널어놓은 다 마른 빨래를 아침부터 질겅질겅 씹는 작은 딸.
보통 때처럼 '에비, 그럼 못 써요...' 라고 딸을 말릴까 하다가, 맛있게 빨래를 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래 마른 빨래가 맛있는 게 아닐까?'
'우리가 몰랐던 맛이 빨래에 숨어 있는 게 아닐까?'
'그래... 실제로 먹어 본 적은 없잖아...'
나도 빨래를 먹어 보고 싶은 생각이 자꾸자꾸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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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낮잠도 조금씩 끊어서 자는 바람에 엄마를 녹초로 만든 작은 딸. 아빠와 언니가 크리스마스랍시고 시내 구경을 다녀온 사이, 원래 작전대로라면 엄마와 동생은 그 동안 낮잠을 달게 자며 충전을 제대로 해 주시는 게 마땅한 일이나 사람 일이 어디 그렇게 맘대로 되던가. 광화문에 나갔던 부녀가 돌아오니 엄마는 충전은커녕 방전의 조짐이 보인다. 세 시간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한 시간도 제대로 잠을 못 잤단다. 그것도 중간에 끊어서 말이다. 단언컨데, 낮잠 못 잔 아내만큼 대하기 조심스러운 존재는 없다.

그렇게 낮잠을 제대로 못 잤으면 저녁에 일찍 자줄 법도 하건만, 오늘 우리 둘째 딸, 작정이라도 한 듯이 늦은 시각까지 잠을 자지 않는다. 가만히 보니 전혀 안 졸리는 것도 아니다. 순간순간 밀려오는 졸음을 주체하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면서도 막상 재우려 하면 또 뒤집기 신공을 시전하며 기어다니기 시작... 엄마 아빠를 완전히 지치게 만들었다. 딸이 하나라면 그래도 그럭저럭 해 나가겠지만 오늘 저녁 큰 딸도 동생과 경쟁이라도 하듯 엄마 말 안 듣고 화를 슬슬 돋우고... 결국 엄마 입에서 큰 소리가 몇 번 나고서야 어찌어찌 분위기가 정리되고, 세 모녀 자는 방에서 불 끄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내 조용해지길래 다들 피곤해서 잠들었나 보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아내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달려갔더니 오늘 외출로 피곤한 듯 이미 먼 꿈나라로 가신 큰 딸, 아무 일 없다는 듯 해맑은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는 작은 딸,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엄마... 왜 그러냐고 물으니 작은 딸 입속을 만져보란다. 역시 그랬다. 이빨이 난 것이다. 축하할 일이다. 이빨이 날 때가 되었는데 조금 늦은 게 아닌가 싶던 차였다. 우리집 딸들은 이빨이 나기 전에 원래 남들 많이 흘린다는 침도 거의 안 흘리는데다가, 작은 딸은 치발기를 물어뜯지도 않았기 때문에 오늘 저녁에 발견한 이 경사(?)는 좀 갑작스럽고, 또 그렇게 기뻐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작은 딸은 엄마 젖만 찾기 때문이다. 이빨이 날 때 슬슬 분유도 좀 먹어주면 좋으련만 작은 딸은 요지부동이다. 처음에는 좋다고 달려들던 이유식도 요새는 잘 안 먹어서 엄마 아빠를 속상하게 하는데다가, 분유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나마 이유식은 울면서도 몇 숟갈 먹긴 하는데 분유는 손으로 밀어내고 얼굴을 돌리면서 자못 심각하고 단호하게 거부하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두 달 후면 엄마는 학교에 다시 나가야 하고, 낮시간 동안 아빠가 작은 딸에게 분유를 먹여야 하는데, 지금까지 분유는 전혀 훈련이 되어 있지 않고, 잘 될 것 같지도 않고... 애 키우기 정말 험난하다. 그래도 어쩌겠나. 우리 딸인데... 딸아 이빨 난 거 축하한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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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딸 VIPS에 가다

패밀리 2009. 12. 19. 22:02

오랜만에 큰 딸 사진을 올리고 나서 가만 생각해 보니, 8개월 째에 접어든 작은 딸이 기분 나쁠 것 같다. 언니만 딸이란 말인가. 이 집에 딸이 하나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최근에 찍은 본인 사진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 무슨 인륜을 저버리는 행동이란 말인가. 그리하여 미안한 마음에 지난 주 외할아버지 생신 때 VIPS에서 찍은 사진들을 골라 보았다. 숟가락을 입에 집어넣는 퍼포먼스를 보여 준 기념으로 촬영한 것들이다.

혹시라도 외출 중에 집에서 하던 대로 있는 성질 맘껏 부려 주시면 어쩌나 하는 엄마 아빠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종 일관 협조하는 자세로 꽤나 우호적이고 멀쩡하게 앉아 있더랬다. 장하다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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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한 어린이집 동요 발표회를 마치고 온 가족이 이마트에 갔다. 뭐 살 게 있어서 간 게 아니라 큰 딸 장하다고 햄버거 사 주러 간 것이다. 얼마 전까지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여러 사람 앞에서 무대 위에 오르는 게 쑥스럽고 심장이 떨린다는 게 아닌가. 이른바 울렁증이란다.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고 칭찬도 해 주었으나 어찌 된 일인지 영 자신 없어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발표회 날짜가 다가올수록 스트레스를 받는지 밥도 잘 안 먹는다. 그래서 정말로 자신 없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말하니까 너무나 좋아한다.

본인이 하기 싫다는 거 억지로 시키는 부모는 아닌지라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도 이렇게 떨리거나 하기 싫은 일이 생길 때마다 지레 포기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린이집 선생님한테는 전화로 애가 끝까지 무대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올리지 말라고 일러두고 발표회를 보러 갔다.

그런데 엄마 아빠의 걱정과는 달리 막상 발표회가 시작되니 아무 일 없다는 듯 노래와 율동을 잘 해내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작은 것이지만 이런 일이 하나의 실패의 역사가 되진 않을까 노심초사했었는데, 딸 나름대로도 고비를 잘 넘긴 것 같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어 반갑다. 그리하여 돌아오는 길에 이마트에서 햄버거 먹자고 했더니 아주 좋아 죽는다. 공연 때 긴장했었는지 배가 무척 고팠나 보다. 햄거버에 엄마의 돈까스와 우동까지 뺏어먹고 심지어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싶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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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네번째 생일

패밀리 2009. 2. 26. 23:29
오늘은 딸이 우리에게 온 지 정확히 4년이 되는 날이다. 어린이집에서 이미 생일잔치를 한 터라, 딸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생일 축하한다고 했더니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축하한다고 말해 주었다.

우리에게 온 거 많이 고맙다. 그리고 딸과 함께 좀 더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리고 오늘 자기 전에 아빠가 화내서 정말로 정말로 미안하다. 늘 그렇듯이 내일 아침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어날 거지?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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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과 수영장

패밀리 2008. 8. 22. 03:11

    8월 18~19 양일간, 내 자발적 의지으로는 절대 갈 리가 없는 곳에 다녀왔다.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 뷔페 'Four Season'에 밥 먹으러 다녀왔을 때에도 위화감 팍팍 들었던 곳이었는데, 이번에는 그야말로 숙박까지 하고 왔다. 멀리 바캉스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동생 내외가 하루 쉬려고 예약해 놓았던 건데, 그나마도 바쁜 일이 생겨 우리 부부에게 패스한 것이다. 숙박비까지 지불되었다니 우리로서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호텔에 딸린 리버파크 수영장 이용권까지 포함된 패키지였다. 딸내미 데리고 수영장 한 번 다녀와야 부모 할 도리를 다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맘을 원래부터 먹고 있었던 차라 팔자에 없는 호텔행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근데 18일이 점점 다가올수록 게으른 우리 부부, 놀러갈 맘에 들뜨기 보다는 오히려 맘이 착 가라앉는다. 왠지 모르게 동생의 숙제를 대신해주는 기분이라고 할까. 수영장에 가는 것 때문에 일부러 며칠 전에 할인점에 가서 없던 수영복까지 장만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닌 것이, 차라리 장급 여관이나 펜션이면 맘 편하게 다녀올텐데, 이놈의 별 몇 개짜리 호텔이다 보니 비치된 비품에도 요금이 붙는다는 사실이 우리 맘을 무겁게 만들었다. 칫솔을 물론이고 치약까지 요금을 내야 한단다. 이 무슨 황송한 일인가 말이다.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부담 없이' 다녀오리라 믿었던 휴가가 '부담 백배' 짜리 휴가가 되고 만 것이다.

    주전부리용 과자에다가 심지어 밤에 배고플까봐 컵라면까지 사들고, 굳은 날씨를 뚫고 호텔에 도착했다. 날씨가 안 좋아 수영장 이용을 못하게 되면 한편으로는 좋은 일이기도 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괴로운 일이 될 터인데, 옷 갈아 입고 여러모로 절차가 복잡해지는 수영을 귀찮아하는 우리로서야 반가울 수도 있겠지만, 며칠 전부터 수영장 가서 한 번 휘저어 주리라고 잔뜩 기대하고 있는 딸내미의 상심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었다. 워낙 호텔에 늦게 도착하기도 하였지만, 모두들 알다시피 18일은 도저히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날씨가 아니었다. 서울/경기 전역에 많은 비가 내렸고, 바람까지 강하게 불었다. 당연히 우리는 수영은 물론이거니와 산책 같은 것도 못해보고 체크인하자마자 방에 갇혔다. 호텔 패키지 상품이 다들 그렇겠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물론 부부만 갔다면 좋았을 것이다. 책이나 보고 푹 쉬었다 오는 거, 우리가 딱 좋아하는 여행이다. 하지만 딸이 끼어 있는 여행에서 조용하게 책이나 읽고 돌아오는 건 애초에 기대할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겠나. 그냥 TV만 봤다. 아니 이럴 거면 기름값 눈물 나는 시절에 은평구에서 세 식구가 이렇게 먼 곳까지 올 필요가 있었을까...

    무엇보다 우릴 난감하게 한 것은, 날씨로 인해 수영장 문을 일찍 닫으면서 우리가 도착했을 때엔 이미 수영장에 딸린 뷔페를 이용할 수 없었기에 저녁식사가 날아가 버렸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린 딜레마에 빠졌는데, 여기까지 와서 그림같이 굶어죽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품요리 하나에 봉사료와 부가세를 제외하고도 4~6만원 씩이나 하는 저녁식사를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껏 공짜 호텔 숙박권으로 놀러와서 한 끼 식사로 10만원을 훌쩍 넘겨 지출하면, 그렇잖아도 숙제하는 기분으로 온 길인데 받아들일 수 있겠나. 결론은 나가서 먹자는 거였다. 이렇게 비싼 식사를 한다면, 이것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생기는 일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오는 길에 보아둔 광장사거리에 있는 칼국수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혹시라도 광장사거리에 있는 칼국수집에 가고 싶은 사람은, 도시락 싸들고 따라다니며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추천하고픈 맘도 절대 없다. 주차가 가능하다는 것 말고는 아무른 특징도 없는 그저 평범한, 그리고 적당히 맛없는 식당이다.

    이렇게 저녁 먹고는 1박2일 중 첫날이 그냥 지나갔다. 이 먼 곳까지 와서 올림픽 경기나 보고 있다니. 게다가 호텔이면 일반 가정집보다는 채널 수가 좀 많고 그러면 누가 잡아가나? 채널 수도 우리집보다 형편 없이 적었다. 이놈의 호텔에 와서 딱 하나 좋은 것은 욕조 가득히 물 받아놓고 목욕할 수 있다는 거다. 그 외에는 맘에 안 드는 것 투성이다. 좀 전에 말한 그 터무니 없는 밥값과 더불어 우리를 화나게 한 것은, 방 안에 있는 소모품과 냉장고 속의 음료수의 가격이었다. 아니 캔콜라 하나에 5,500원이 대체 뭔가. 쵸콜릿이 22,000원, 생수가 10,000원... 이런 어이없는 가격이란... 어차피 손도 안 댈 거니까 가격에 신경쓸 일도 없었다. 안 먹으면 될 거 아닌가. 그러나 이런 가격은 그저 봐 버린 것만으로도 사람을 화나게 한다.

'세상에는 이런 가격에 이걸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정말로 있단 말이지...?'
'우린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렇게 쓰고 싶지는 않을 것 같은데...'

우리 같은 사람은 같은 하늘 아래라고 믿고 살지만, 그들은 아니라고 생각할 거다 아마.

    둘째날까지 날씨가 개떡같았다면 정말 숙제만 하고 돌아오는 스토리였을 거다. 그러나 딸에게는 다행히도 19일은 수영하기 그지없이 좋은 날씨였다. 해가 쨍쨍 내리쬐면서도 바람도 꽤 시원했다. 김치도 없는 조식 뷔페는 정말 맘에 안 들었으나, 수영장에 딸린 중식 뷔페는 괜찮은 편이었다. 물론 그래봐야 간이뷔페인지라 Four-Season 같은 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아침 식사에 상처받은 우리로선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수영복은 장만하였으나 딸내미 물놀이하는 거 사진 찍어주고 튜브 밀어주기만 하기에는 성인 1인 입장료 6만원이 아까웠다. 우리 옆자리에는 정말로 수영복도 없이 가족들 물놀이하는 거 구경만 하고 있는 할머니도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입장료가 면제될 리는 만무하다. 공짜 아니었으면 우리가 언제 이런 곳에 한 번 오겠나 하는 생각이 드니 노는 게 노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엄마 아빠의 기분과는 전혀 관계 없이 딸은 수영장에서 맘껏 놀았다. 물론 타보고는 싶으나 막상 그러자니 무서운 미끄럼틀 때문에 엄청 울긴 하였으나, 전체적으로는 원없이 놀았다.

    신나게 뛰어논 딸이야 그렇다 쳐도, 뭘 한 게 있다고 엄마 아빠는 녹초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오후 늦게 돌아오는 길에, 딸은 차에 타자마자 골아떨어졌는데, 운전하는 나도 졸려 죽는 줄 알았다. 마누라랑 역시 부모 노릇 제대로 하는 거 쉽지 않다는 데에 공감하며, 팔자에 없는 호텔 패키지 1박2일 여행을 마쳤다. 집에 가기 싫다고, 수영 조금만 더 하겠다고 조르는 딸을 보며, 남들은 다들 잘 하는데 우리 부부만 유독 딸 데리고 이런 곳도 놀러오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론 이런 거창한(?) 패키지가 아니더라도, 가끔씩 가까운 실내놀이터라도 가서 놀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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