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박수범... 중반까지 잘 하고서는 한 순간에 그렇게 무너지다니...
엉뚱한 곳에서 병력이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구성훈의 한 방 병력에 넥서스 3개를 한 번에 날리고 그 이후로는 비실비실.

이거 정말 토요일 오후에 게임 중계 보며 스트테스 더 쌓인다.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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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 이제동한테 특별히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난 얘가 좀 졌으면 싶은데, 그 이유는 제동이가 너무 게임을 심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얘는 무슨 게임을 죽을 둥 살 둥 한다. 난 이렇게 무슨 일에나 죽자고 덤벼드는 사람들이 별로 보기 좋지 않다. 그러고 보니 예전의 변은종도 이쪽 부류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추어 게이머도 아니고 프로인데 당연한 거 아니냐고, 자기 일에 그렇게 열심인 게 아름다운 모습 아니겠냐고, 즐기면서 일하는 거 그거 다 배부른 소리라고 말이다.

그래도 난 그냥 배부른 소리 하면서 살련다. 인생 너무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 좀 피곤하다. 좀 설렁설렁, 즐겁게 살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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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과 콩나무

제이콥스 지음 | 양연주 옮김
웅진씽크하우스 2007.11.20
평점

인상깊은 구절
없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 - 세계명작' 시리즈, 제13권 『잭과 콩나무』. 이 시리즈는 4세부터 8세까지의 아이들이 꼭 읽어야 할 세계명작만을 담아냈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세계명작을 중심으로 구성하여, 아이들의 올바른 인성과 풍부한 감성을 길러줍니다.

권선징악이 뚜렷한 이야기, 모험담과 성장담, 도덕과 철학이 묻어나는 이야기 등을 읽음으로써, 창의력과 배려심, 그리고 건강한 자아상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책마다 다른 기법의 독창적인 그림을 담아내 읽는 재미뿐 아니라, 보는 재미도 건넵니다.

제13권 『잭과 콩나무』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소년 '잭'이 신기한 콩 때문에 겪는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어머니와 가난하게 살던 '잭'은 어느날 젖소를 팔러 시장에 갔다가, 하룻밤에 하늘까지 자란다는 신기한 콩을 파는 노인을 만납니다. 노인은 '잭'에게 콩과 젖소를 바꾸자고 하는데……. 양장본.

...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이상이 '네이버 책'에서 볼 수 있는 책소개이다.

밤마다 큰 딸에게 읽어주고 있는 세계명작 시리즈. 근데 설마 『잭과 콩나무』에서 권선징악이나 모험담 또는 성장담, 도덕과 철학이 묻어난다고 편집자들은 생각한 건가? 이 책의 내용이 결국은 뭔가. 세상 어차피 착하게 살 필요 뭐 있나. 남의 물건 빼앗아 자기만 잘 살면 된다는 거 아닌가.

듣고 있던 딸이 묻는다.

"잭은 왜 거인에게서 거위를 훔쳐 왔어요?"
아빠로서 해 줄 말이 없다. 뭐라고 해야 되나. 거인이 아주 나쁜 놈이라서? 설령 그렇다고 해도, 거인이 나쁘면 나쁜 거지 그놈의 물건을 훔쳐오는 게 말이 되나. 여러 말 할 필요 없고 애들에게 이런 책을 보여 주면서 창의력과 배려심, 건강한 자아상을 바란다는 건 좀 우습다.

어쨌거나 오늘 저녁 딸에게 이 책을 읽어 주면서 다른 것보다도 주인공인 '잭'이 보통 놈은 아니라는 건 알겠다. 나라면 밤 사이에 콩나무가 하늘까지 자라도 그 위에 올라갈 수 없을 거다. 무슨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두 다리로 그 높은 곳을 올라갔다는 거 아닌가. 나쁜 놈이지만 아주 대단한 놈이다. 거인이 쫓아오니까 그 큰 콩나무를 단숨에 도끼로 찍어내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이름하여 '수퍼맨 잭'인가...

명작 어쩌고 하는 책들은 읽어 줄 게 못되는 것같다. 차라리 창작동화 쪽을 찾아보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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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강성호 지음
책세상 2003.09.10
평점

인상깊은 구절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입장에서 한국의 '일상적 파시즘'을 비판하는 주장도 이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먼저 극복되어야 하는 것으로는 일상 생활에서 발견되는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비민주적 관습의 폐해가 꼽힌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적 파시즘'을 극복한다고 해서 더 큰 '구조적 파시즘'이 해결될 수 있는가? 또한 '일상적 파시즘'을 극복하는 것이 현 시기에 집중해야 할 주요 과제인가의 문제도 여전히 남는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이 번지면서 한국의 역사학 또한 그 충격파에 시달려야 했다. 마르크스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갑자기 낡은 시대의 유산이 되어버렸고, 학계의 모든 영역을 ‘아직도 마르크스를 말하는가’하는 냉소적인 목소리가 지배했다. 한때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 차지했던 빈 자리를 빠르게 포스트모던 역사학이 채워나갔다.

강성호 선생의 문제 의식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성과와 한계, 그리고 그 후의 새로운 모색을 점검하면서, 여전히 우리에게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 필요하며, 오히려 이것이 21세기의 불확실성과 신자유주의에 대처하기 위한 무기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역사학이 실천적 대안을 제시해 주지 못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 거대담론으로 환원시켜 버렸던 다양한 하위주체들의 목소리들에 대해 주목해, 역사의 지평을 넓힌 점에 대해서는 정당한 평가를 내려 주어야 한다.

이 책의 미덕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 어떤 부분을 수용하여 새롭게 면모해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을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극복해야 할 것으로서의 스탈린주의에 대한 평가가 올바른가 하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강성호 선생과 캘리니코스는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이 곧 마르크스주의의 몰락은 아니며, 다만 스탈린주의의 몰락을 뜻할 뿐이라고 하지만, 이와 같은 생각은 도마뱀 꼬리 자르기를 연상시킨다. 스탈린이라는 타자他者를 만들어내고,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결함 또는 당시 전세계 공산주의자들 모두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실천적 오류들을 모두 스탈린에게 전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학자에 따라서는 스탈린주의의 근원을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사상을 오해하고 왜곡시킨 데에서 찾는 경우도 있다.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저작을 정리하고 출간하는 과정에서 임의로 내용을 수정․삭제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진의가 왜곡되어 전해졌다는 것이다. 마치 교회가 예수의 참된 뜻을 왜곡하였으므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듣는 것같다. 물론 여기서 스탈린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스탈린주의 자체는 객관적 실재였으며, 그것이 마르크스주의를 일정하게 왜곡시킨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모든 것이 스탈린만의 오류는 아니었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현실 적용의 실패는 스탈린의 작품인 것처럼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마르크스가 이 부분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차라리 아나키스트들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문제를 가지고 스탈린을 비판한다면 몰라도, 적어도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그럴 순 없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 대한 평가 또한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에서는 세계체제론이 핵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발전의 질적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여 서구 중심주의 시각에서 벗어났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 또한 서구 중심주의의 다른 일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은 영국의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공산품이 중국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를, 그리하여 마침내 영국이 아편 무역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서만이 대중국 무역 적자를 겨우 반전시킬 수 있었던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세계체제론은 논리의 전개 과정 속에서 서구만이 자본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한 점 의심도 없이 전제로 깔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스탈린에 대한 평가나 세계체제론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새로운 모색의 의의가 없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러한 견해 차이 또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 논쟁을 통해 고쳐가야 할 오류가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터이고, 이러한 과정 자체가 새로운 모색의 일부가 될 것이다.

포스트모던 역사학 또한 거시적 관점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미시사와 거시사의 분업을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이미 미시사의 사료 분석 틀 속에 거시적 관점이 녹아있다는 것은 비단 독자뿐만 아니라 미시사 역사가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사가가 고양이 학살이라는 사건 속에서 직조공과 부르주아의 긴장 관계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거시적 관점이라는 기초의 전제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두꺼운 묘사’라는 개념 속에 이미 ‘치밀한 묘사’를 넘어서는 거시적 관점이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강성호 선생이 맺음말에서 말하듯이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기존의 사회사, 미시사, 신문화사에서 제기된 연구 성과들을 적극 수용하여야 하며, 그동안 계급이나 민족의 개념 아래에서 소외되었던 다양한 역사 주체들을 복원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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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겨울에 과제로 썼던 글인데, 지금 다시 읽어 보니 정말 맘에 안 들지만, 이 또한 내 개인의 역사가 아니겠나. 그리하여 순전히 보관의 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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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1996.01.01
평점

인상깊은 구절
종말이 가까워질 무렵, 황제는 자기 주위의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 후궁들과 법가 신하들을 모두 죽인 뒤에, 황제는 철기 기술자인 자기 스승에게 명하여 철제 꼭두각시들을 만들게 했다. 자기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 신하들은 오로지 그 꼭두각시들뿐이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세상에는 화장실에서 읽기 좋은 책들이 있다. 백과사전류는 그런 용도로 쓰기 딱 좋은 책이다. 항목별로 짧게 끊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언제 책을 덮어도 부담이 없다. 화장실에서는 단편소설도 부담스럽지 않은가 말이다. 한 편 다 보고 나가려다가 다리 저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또한 백과사전은 어디까지 읽었는지 굳이 책갈피로 표시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잡히는 대로 눈이 가는 대로 훑어가면 된다.

제정신이라면 절대 돈 주고 사지 않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이 집에 한 권 있다. 바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다. 당연히 사서 보는 책은 아니다. 누군가가 아내에게 선물한 책이다. 세상에는 이른바 어이없이 뜬 소설가도 있기 마련인데, 베르베르가 딱 그런 인물이다. '개미'를 읽을 땐 나름 신선한 맛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 작품인 '타나토노트'를 보면서 경악했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윤회'라는 개념을 천박하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글을 쓰면서 부끄럽지도 않나? 아니나 다를까 고향인 프랑스에서는 전혀 먹어주지 않는 이 사람의 책을 어째서 우리는 자꾸자꾸 팔아 줘서, 이 말도 안 되는 상상력에 용기를 불어 넣어 준단 말인가. 그리하여 나 혼자라도 이 사람의 책을 팔아 주지 않는 것이 인류 공영을 위하여 조금이나마 일조하는 길이라 생각하여 그 이후로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작가인데, 어쩌다가 이놈의 책이 우리 집에 굴러들어왔는지... 책으로서도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그래도 '개미'는 제대로 봤기 때문에 그 속에 등장하는 '... 지식의 백과사전'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데다가, 이 책을 보면서 지금은 다 까먹은 '개미'의 스토리도 조금씩 생각나게 하는 효과도 있어서, 무엇보다도 요즘 화장실에서 읽을 만한 마땅한 소스가 떨어진 마당에, 이 책은 이 공간에서 나름대로 존재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어쨌거나 베르베르에 대한 나의 심한 평가절하에도 불구하고 막상 읽어보니 꽤 재밌는 내용이었다. 개미와 곤충뿐만 아니라 작가의 여러 잡상식이 뒤덤벅되어 뜻하지 않았던 읽을 거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화장실에 있는 시간이 그리 외롭지만은 않았다.

이 놈 의외로 박식한 면이 있었군...
뭐 완전 또라이스키는 아니었나...
개미의 사회나 파리 지하철역의 귀뚜라미 같은 항목은 꽤 재밌더라. 그런데 '진시황'에 와서 잠깐 동안 괜찮아졌던 작가에 대한 인상이 한 순간에 허물어져 버렸다.

아니 이 놈은 한 번이라도 제대로 중국 역사나 진시황에 대해 공부해 본 적이 있는 놈인가.
도대체 이 놈은 어디서 진시황 얘기를 들은 거야? 무슨 야사집 같은 데서?
'믿거나 말거나'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고 책으로 옮겨 적었나?
진시황 정(政)이 법가 신하들을 모두 죽였다고? 그럼 혼자서 나라를 다스렸단 말인가? 후궁을 모두 죽였다고? 야, 베르베르. 솔직히 말해라. 이 스키 중국 역사책 한 번도 본 적 없지? 그러고도 이런 글을 써서 돈을 벌 생각을 한단 말이냐...

이 시점에서 정말로 궁금해진다. 이런 식의 독자들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치는 생각의 원천은 베르베르 개인의 얕음인지, 프랑스인의 문제인지, 그것도 아니면 유럽인의 동양사에 대한 인식의 한계인지. 황제지배체제의 선결요건인 군현제나 그와 동전의 양면인 관료제 등에 대한 깊은 지식은 사실 바라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인식은 동양인을 '반지의 제왕'의 오크 정도로 보는 것과 매한가지다. '진시황' 항목에 와서 이제까지 봤던 책의 다른 내용에 대한 생각도 한꺼번에 달라졌다. 귀뚜라미? 이 놈이 정말로 조사를 해 보고 글을 쓴 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요네즈? 아는 친구한테 듣고 무작정 쓴 내용인지 모를 일이다.

처음부터 기대하고 본 건은 아니지만 다시 한 번 베르베르를 업수이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책이다. '타나토노트'에서 받았던 어처구니 없음이 긴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한 번 벌떡 일어난다. 일개 소설가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건가? 근데 독자로서 이 정도는 기대해도 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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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을 키우는 아빠가 되고 보니 가슴에 더욱 와닿는 노래,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노래가 한창 히트를 칠 때 이후로는 그동안 삶에서 완전히 지워졌던 노래, 그러다 최근 우연히 '맞다. 그런 노래가 있었지...' 하는 생각과 함께 다시 찾아본 노래가 바로 신디 로퍼 아줌마의 'Girl Just Want To Have Fun'이다. 마돈나 아줌마와 함께 여성 가수의 쌍두마차라 불리던 때가 있었으나, 1990년대 들어와서 뭘 하는지도 모르게 조용하게 잊혀져간 신디 로퍼. 그래도 난 주는 거 없이 정 안 가는 마돈나보다는 이 아줌마의 노래가 더 좋았다. 얼마 전에 오랜 공백을 깨고 신곡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얼핏 들었던 것 같은데 다시 조용한 걸 보면 역시 재기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
 
엄마 아빠가 딸에게 바라는 게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딸에게는 자신의 삶이 있고, 부모의 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일 뿐이다. 아주 작은 것까지도 말이다. 우습게도 아직 8개월밖에 되지 않은 작은 딸을 보며 이런 걸 깨닫는다는 사실...

Cindy Lauper - Girl Just Want To Have Fun .mp3


Found at bee mp3 search engine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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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죽이지 않아도 재밌는 게임, 크레용 피직스.

예전 직장 동료처럼 무릇 게임이라면 칼 한 자루 둘러메고 길을 나서는 RPG를 떠올리거나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이들 게임처럼 꼭 손에 피를 묻혀야만 재밌는 건 아니다. 보드게임이나 퍼즐게임도 얼마든지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다. 물론 어느 순간부터 안 되는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고통이 따르고 농업적 근면성이나 순발력만으로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선이 앞에 놓인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지만 말이다.

인디게임이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게임이 바로 크레용 피직스이다. 처음 보는 순간 '이렇게도 게임이 되나?' 하는 생각도 잠시, 몽환적인 음악과 함께 이제껏 생각해 보지 못한 자유도--물론 게임을 하다 보면 그 자유도라는 것이 상당히 제약되어 있음을 알게 되지만--에 깜짝 놀라게 된다. 유치원생 그림 그리듯이 게임을 할 수 있다니...


'피직스'라는 이름처럼 게임을 만들 때엔 물리학의 기술이 반영되겠지만, 게임을 즐기는 입장에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다. 그냥 상식 선에서 해결하면 된다. 무게를 가진 물체는 밑으로 떨어진다는 것, 그런 평범한 사실에서 출발하면 된다.

이 게임의 또 하나의 미덕은, '정답이 없는 퍼즐'에 있다. 한 스테이지를 해결하는 방법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나름 최선이라 생각해서 해결 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풀었는지를 유튜브 같은 곳에서 찾아보면, '아니 이렇게 쉽게?' 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공략법도 있을 뿐 아니라, 나보다 못하는구나 싶은 좀 어이없는 공략법도 많이 올라와 있다.


그래서 끝까지 클리어한 후에 다시 할 때엔 더 깔끔한 방법도 찾아서 해 보게 되고, 그것이 성공하는 순간 나름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

다만 이전에는 쉽게 해결했었는데 다시 해 보니 도무지 공략법이 생각이 안 나는 건 대체 뭔지... ㅠ
또 하나 아쉬운 것은 전반적으로 퍼즐 난이도가 쉽다는 것.
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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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바꾸는 월드체인저들의 미래코드"라는 어마어마한 부제목을 가진, 2009 신년 벽두에 갓 나온 따끈따끈한 책이다. 무려 703쪽이나 되는 만만치 않은 분량에, 요새 워낙 책값이 비싸서 어느 정도 단련이 되었겠지만 그래도 책 소개만 보고 덜렁 사서 보기엔 부담스러운 가격, 게다가 지속가능성을 내세운 책답지 않게 하드 커버에 종이 질은 또 엄청나다는 모순까지. 다행히도 학교 도서관에 들어왔다길래 잽싸게 달려가서 봤는데...

     아무튼 책의 취지는 환영할 만하다. 정말로 많고 많은 얘기를 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내용은 간단하다. 착하게 살자, 그리고 어떻게 하면 착하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전부이다. 얼마나 좋은가... 단순히 어떻게 살자는 것을 넘어서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고민이 들어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내용이 전부는 아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추가해 달라는 당부까지 잊지 않는다. 그런데 이놈의 성격 또 나오는지는 몰라도, 딴죽 걸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중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심각한 환경 문제들에 직면했다. 중국의 GDP는 1978년 이래 두 배가 되었고, 1990년대에 경제는 연간 10퍼센트씩 성장했다. 이 성장의 시기를 '중국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기적은 끔찍한 대가를 치렀다. ......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지역 열 곳 중 일곱 군데가 중국에 있다. 도시 용수의 90퍼센트가 오염된 것으로 보이고, 국토의 3분의 1 가량에 산성비가 내린다. ...... 또한 중국은 세계에서 둘째로 온실 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다. (중국 2004년 자료)
    중국은 이미 지구에 엄청난 충격을 준다. 중국이 완벽하게 변신하지 않고서는 지구의 밝은 친환경 미래를 상상하기가 어렵다. 중국은 그저 서구를 따라 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

(월드체인징, pp.342-343, 바다출판사)

    구구절절 옳은 얘기다. 그런데 중국더러 서구를 따라 하지 말라고 서구인들이 말하는 건 좀 웃기지 않은가? 아니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든 것이 누구인가. 물론 중국에 강제로 저들이 공장을 지었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세계적 분업 체계 속에서 임금 경쟁력 하나 보고 굴뚝 산업은 모조리 중국으로 몰려가지 않았던가. 자국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몰리건 말건, 실업자가 되어 굶어죽건 말건, 생산의 합리화라는 명목으로 전세계의 자본이 중국으로 몰려가지 않았던가. 좋다. 생산비가 절감된다는데 못 갈 것 없다고 치자. 그들이 중국에 공장을 세울 때 처음부터 환경을 생각했다면 지금처럼 중국의 변신 운운할 필요가 있었을까.

    신자유주의를 말할 때 선진자본주의의 행태를 이른바 '사다리 걷어차기'에 비유하곤 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친환경, 지속가능성 운운하는 논리 속에도 똑같은 철학이 숨어 있다. 친환경이라는 새로운 경쟁력으로 무장한 그들은 후발 개발도상국들에게 그들이 새롭게 만들어낸 기준을 강요한다. 중국에 마구잡이로 공장을 짓던 그들은 이제 다시 중국의 임금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 직면하자 또다른 공장을 찾아나섰다. 이미 동남아시아라는 새로운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무슨 화전민 보는 것 같지 않나? 한 곳의 지력이 떨어지면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물론 나도 누구보다 중국이 친환경 산업 구조를 갖추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내 자식이 지금 마시는 공기가 중국 어느 공장에서 뿜어낸 매연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괴롭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담론까지 새로운 장벽으로 삼는 서구의 행태를 보면 월드체인징 어쩌고 하는 꼴이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는다.

    역시 이놈의 성격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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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에 많이 부르던 그 노래.

아무리 유행이 돌고 돈다 해도, 제발 이런 상황은 돌아오지 않으면 좋으련만, 세월은 추운 날씨만큼이나 냉정하다. 여차하면, 아니 이미 이 노래가 적절한 세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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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성공한 뒤의 정치적 보상이 아니라, 그 시작부터가 짓밟히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향한 정의의 행동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혁명은 반드시 실패한다. 불행하게도 지도자들은 그 중요한 문제를 망각하고 혁명을 군사적 전술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혁명가가 진정으로 민중을 위한 새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데 실패한다면 어떠한 시도도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 『한 혁명가의 회상』(크로포트킨 자서전) 中 --

    모든 실패한 혁명이 이러한 이유에서 실패한 것은 물론 아니지만, 최소한 위와 같은 혁명은 내가 아는 한에서는 역사적으로 볼 때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진승, 오광의 난 이후 2천년 중국 농민 운동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는 태평천국(太平天國) 운동은 그 전까지의 농민 운동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무엇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고야 말았다. 눈에 보이는 성과물에 집착하는 혁명 지도부의 조급한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들이 남경(南京)을 함락하고 천경(天京)이라는 그들의 수도를 세움으로써, 그들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농민들의 천국에 통치기구를 만드는 우를 범하고 만 것이다. 이리하여 태평천국은 농민들에게 또 다른 왕조를 선물하고 말았다.

    세계 5대 자서전의 하나라 평가 받는 크로포트킨의 자서전. 원래 자기 자랑 늘어놓는 자서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그리하여 자주 접하지 않아서 객관적 비교 자체가 어려우나, 감동을 떠나 간만에 재밌는 책을 접하게 되어 우선 기분이 좋다. 자서전이라고 하지만 마치 제3의 관찰자처럼, 본인의 이야기보다는 자신이 살았던 동시대를 현장감있게 그려내는 재주는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신채호가 크로포트킨을 공자, 석가, 예수, 마르크스와 함께 5대 사상가로 칭송한 것은 그 자신 아나키스트로서의 정체성이 듬뿍 담긴 편애였겠으나, 자신이 향유하고 있는 봉건적 특권을 아무런 조건 없이,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내던질 수 있었던 러시아 인텔리겐챠들은 그들 사상의 완성도와 관계 없이 사랑받고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느낀 점. 러시아의 고등학생들의 문학, 철학, 사회,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독서량과 토론 문화를 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입시지옥에서 신음하는 우리 고등학생들이 새삼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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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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